구조론은 사건의 과학이다. 사건의 과학은 역사이래 있어 본 적이 없다. 인류 중에 누구도 사건을 사유하지 않았다. 사건 근처에서 두리번거린 사람은 더러 있지만 사건을 명확히 인식한 사람은 역사이래 없었다. 자연의 의사결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그들은 해명하지 않았다. 엔트로피를 논하고 있지만 구조론이 엔트로피 이론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구조론은 원래 언어학 개념 그리고 분류학 개념으로 출발한 것이다. 구조론의 각별한 점은 확실하게 말한다는 점이다. 애매하게 말하지 않는다. 확실한 것으로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무한동력이다. 막연히 세상에 확실한 건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열역학 1법칙과 2법칙은 확실하잖아. 구조론은 귀납이 아니라 연역이므로 확실하다구. 확실한 것을 복제하므로 확실한 거지. 없는 것을 만들어 낸다면 믿을 수 없지만 있는 것을 복제하겠다고 하면 확실한 것이다. 이미 있기 때문이다. 없는 불을 켜겠다면 믿을 수 없지만 옆집에 가서 불씨를 빌려오겠다면 확실하다. 세상에 확실한 게 있다는 사실을 열역학이 이미 증명해 놓았기로 구조론과 통한다. 그러나 나무위키만 해도 영구기관 문제를 백퍼센트 확신할 수 없다고 등신같이 써놓았다. 언어감각의 문제다. 다른 것이 다 애매하다고 해도 인간의 언어는 약속이므로 확실하다. 애초에 그 전제로 출발하는 것이다. 수학을 할 때는 숫자 1을 확실하게 정해야 한다. 1인 듯 1이 아닌 듯 1일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1이 아닐 수도 있노매라 하고 나자빠지면 수학 아니다. 우주 안에서 인간의 궁극적으로 믿을 구석은 언어밖에 없다. 언어가 틀리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의 언어는 구조와 수다. 인간의 언어는 국어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 때문에 헷갈리기도 하지만 자연의 언어는 절대로 맞다. 암캐와 수캐가 교미하면 강아지가 태어난다. 고양이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것이 자연의 언어다. 언어는 둘의 약속이며 약속은 일치를 추구하고 불일치를 배제하는 소거법을 쓴다. 불일치가 소거되고 일치되는 것만 남으므로 자연의 언어는 믿을 수 있다. 언어는 플러스법이 아니라 마이너스법을 쓰므로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강아지가 태어났다면 암캐와 수캐 사이에 거시기한 일이 있었다는 점은 명백하다. 개와 고양이가 거시기했을 수도 있잖아? 아니다. 그 경우는 자궁에 착상되기 전에 소거된다. 사건은 계에서 촉발된다. 그 부분을 가리키는 언어가 없다. 어휘도 없고 개념도 없고 이론도 없다. 사건은 원인에서 시작된다. 원인은 결과로부터 유추 혹은 추론된다. 이게 문제다. 사건은 원인에서 시작되는데 인간은 결과로부터 접근하므로 이미 틀려버린 것이다. 방향이 틀렸다. 인과관계는 원인과 결과를 별개의 두 사건으로 본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을 촉발한다. 틀렸다. 원인과 결과는 합쳐서 하나의 사건을 구성한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각각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합쳐서 존재하는 것이다. 앞면이 결정되고 별도로 뒷면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앞면을 결정할 때 동시에 뒷면도 결정된다. 단 사람이 동전을 나중에 뒤집어 확인할 뿐이다. 칼로 무를 자른다면 왼토막을 자르고 오른토막을 자르는 게 아니라 한 번의 칼질로 둘을 동시에 자른다. 단 요리사가 왼토막을 먼저 냄비에 담고 오른 토막을 나중 다음 담을 뿐이다. 이것이 언어의 프로토콜이다. 자연의 언어는 언제나 한 번 칼질로 둘을 생산하여 일치시킨다. 사건은 에너지의 입력에서 출력까지 굴러간다. 열역학 1법칙에 따라 입력과 출력은 같아야 하지만 인간의 개입을 차단하고 자연 스스로에 맡기면 의사결정 비용에 따른 구조손실분을 빼야 한다. 손실없이 효율이 극대화되었을 때 출력은 입력에서 구조손실분을 뺀 만큼이다. 100이 입력되었다면 구조손실 1을 제외한 99까지 출력될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의 개입이 없이 자체적인 전개가 어떻게 가능한가다. 높은 곳에 있는 돌은 저절로 굴러간다. 중력 때문이다. 풍선의 공기는 입구로 빠져나간다. 기압 때문이다. 열은 가만두어도 저절로 움직여 간다. 그렇다면? 기압처럼 열압이 있다고 봐야 한다. 열이 항상 뜨거운 데서 차가운 쪽으로 이동하는 이유는 뜨거운 곳의 열압이 차가운 곳보다 높기 때문이다. 열압이라는 단어를 만들지 않고 명사가 아닌 동사로 말하기 때문에 헷갈리는 것이다. 그것을 구조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주왕복선의 창문이 깨진다면 공기는 빠져나간다. 저절로 흩어진다. 구조압이 있는 것이다. 질은 입자로 가고, 입자는 힘으로 가고, 힘은 운동으로 가고, 운동은 량으로 간다. 구조압이 높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이동한다. 구조압은 주변과 연결된 라인의 숫자로 계량될 수 있다. 무질서도의 증가는 구조압의 감소다. 구조는 중첩된다. 중첩이 해소되는 방향으로 간다. 밀도>입체>각>선>점의 순서로 구조압은 낮아진다. 밀도는 더 많은 링크가 걸려 있다. 사방으로 더 많은 라인이 개설되어 있다. 그 라인을 잃어 먹는다. 밀도가 라인을 잃어먹을 수는 있다. 그 반대는 없다. 라인을 획득할 수는 없다. 물론 외력의 개입이 있으면 가능하지만 자체적으로는 없다. 왜냐하면 라인의 획득은 무에서 유가 생겨나는 것이고 열역학 1법칙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없는 것이 생겨날 수는 없는 것이다. 반면 있는 것은 몰래 사라질 수 있다. 라인이 끊길 수 있다. 이는 열역학 1법칙을 위반하지 않는다. 끊어진 채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끊어진 라인은 도망가지 않고 주변에 있다.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다. 주워 모으면 복구된다. 단 다시 주워 모으려면 밖에서 일을 투입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반영하면 2법칙이다. 2법칙은 간단히 닫힌계에서 외력의 도움 없이 자체의 힘으로 사건을 진행할 때 일의 소비가 에너지 손실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자체의 힘은 구조손실에서 조달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실이 실타래에 감겨 있는 정도를 나타낸다. 일한다는 것은 중첩을 풀어낸다는 것이다. 인간이 착각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풀리면서 부분적으로 되감기기 때문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에 걸쳐 다섯 번 부분적으로 감긴다. 질이 풀리면 입자가 감기고, 입자가 풀리면 힘이 감기고, 힘이 풀리면 운동이 감기고, 운동이 풀리면 량이 감긴다. 그러나 풀리는 쪽이 더 크다. 왜냐하면 닫힌계라서 되감는 비용을 자체의 구조손실에서 조달하기 때문이다. 질이 100으로 출발했을 때 입자는 비용을 제하고 99만큼 되감을 수 있다. 구조론으로 보면 쉽다. 통계를 내고 확률을 계산할 필요가 없다. 열역학 2법칙은 그냥 실타래에 감긴 실을 풀어내는 거다. 최초 100이 감겼는데 101을 풀 수는 없다. 풀어내는 비용을 빼고 99까지 풀어낼 수 있다. 풀면서 5번 되감지만 전체로는 오직 풀어내는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감은 것을 인간이 풀면 감은 만큼 풀린다는 것이 1법칙이고 저절로 풀리면 비용을 뺀 만큼 풀린다는게 2법칙이다. 실의 한쪽 끝을 잡고 높이 들어서 당기면 실은 저절로 풀린다. 이때 인간이 손에 잡고 들어서 당긴 값은 빼야 한다. 저절로 돌아가는 부분만 조사하기 때문이다. 1법칙과 2법칙은 인간이 개입했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뿐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이니 인간의 작위를 뺀다. 에너지는 안에서 일한다는 뜻이다. 실패에 감겨 있다는 말이다. 우주 안에서 풀리기와 감기기밖에 없다. 에너지는 원래 감겨 있으므로 풀리기가 먼저고 되감기는 나중이며 저절로 움직일 때는 풀리는 값이 되감기는 값보다 약간 크다. 풀려서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다. 풀리면 더 비효율적인 배치가 된다. 즉 외부에서 통제하기 어렵다. 감겨있는 실을 운반하기 좋다. 그러한 통제의 어려움을 무질서도 증가라고 표현한다. 혹은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라고 한다. 물론 풀린 실은 되감아서 쓰면 되지만 되감는데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이익이 없다. 에너지는 5회에 걸쳐 중첩되어 계를 이루며 계 안에는 구조압이 걸려 있으며 자연에서 일은 그 압을 풀어내는 과정에 구조손실을 일으킨다. 이것을 언어적으로 잘 표현해주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것이다. 말을 똑바로 하면 거의 모든 문제는 이미 해결되어져 있다. |
"에너지는 5회에 걸쳐 중첩되어 계를 이루며 계 안에는 구조압이 걸려 있으며 자연에서 일은 그 압을 풀어내는 과정에 구조손실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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