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amu.wiki/w/%EC%98%81%EA%B5%AC%EA%B8%B0%EA%B4%80#s-3.4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미래에는 가능할 수도 있다'며 영구기관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은 기존의 물리학 법칙에 어떤 허점이 있어서 영구기관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새로운 물리학 법칙이 발견되어서 영구기관을 지지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물리학 법칙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이론이 등장할 것이고 여러 이론들이 법칙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므로, 영구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100% 확신할 수는 없다. 낙천적으로 바라보면 우리가 절대적인 법칙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어떠한 기술이나 방법으로 파훼가 가능할 수도 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직 많으니까." [나무위키, 영구기관] 나무위키를 참고하기로 하자. '영구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100% 확신할 수는 없다.' 잘 나가다가 백퍼센트 확신할 수 없다며 갑자기 똥을 싸지르고 있다. 영구기관이 절대로 없다는 것은 백퍼센트 확신할 수 있다. 이것은 영구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와 개념의 문제다. 다시 말해서 나무위키를 편집한 바보는 아직 한국말을 떼지 못한 것이다. 먼 훗날에 뭔가 대단한 것이 발명되거나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그것이 영구기관은 아니다. 영구기관은 백퍼센트 성립이 안 되며 그것은 물리학 법칙이 맞기 때문이 아니다. 언어법칙의 문제이다. 하늘이 두 쪽 나도 1+1=3이 안 되는 것은 숫자는 인간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약속을 깨면 약속이 아닌 거다. 언어를 깨면 언어가 아닌 것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여러분이 만약 구조론을 공부하고 싶다면 아닌 것은 확실히 아니라고 말할 배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구기관이 없다는 것은 예컨대 타임머신이 없다는 것과 같은 것인데 언어감각의 문제다. 시간여행이라는 말은 언어적으로 불성립이다. 과거로 간다거나 미래로 간다면서 ~로를 붙이는데 과거에 ~로를 붙일 수 없다. 시간은 움직이고 움직이면 명사가 아닌 동사가 되기 때문이다. '공을 찬다'고 하면 말이 되지만 '찬다를 찬다'고 하면 말이 아니라 개소리다. '밥을 먹을래, 식사를 먹을래?'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패죽여야 한다. 식사를 먹는 게 아니고 식사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국말을 못 배워서 말을 똥같이 하는 베이비 토커는 보는 대로 쳐 죽여야 한다.
'1+1은 혹시 3일지도 모르잖아' 하는 밥통과는 대화할 이유가 없다. '절대적으로 3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냐?' 하는 자와는 절대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 절대 확신이 없으면 인류의 언어는 불성립이다. 언어는 절대 확신으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홍두깨라고 말하면 그것은 홍두깨다.
내가 '홍두깨'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다른 사람 귀에 '청두깨'로 변하지 않으라는 보장이 없잖아' 하는 넘과는 말할 이유 없다. 귀먹은 사람과 말하는 것과 같다. 어차피 듣지도 못하는데 왜 말해? 지하철에서 이어폰 끼고 음악 듣는 사람 있다. 그런 사람과 말하지 말라. 왜? 못 들으니까. 내가 계산을 해봤기 때문에 1+1=2인 것이 아니다. 당신이 계산을 했든 안 했든 상관없다. 수학공식이 그래서 그런 게 아니다. 언어가 그래서 그런 것이다. 언어는 인간들 간의 약속이고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약속을 깨고 깽판을 놓는 자한당 같은 자와는 말하지 않아야 한다. 영구기관의 문제는 일이라는 개념이 뭐냐에 따라 언어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실험을 할 이유가 없이 그냥 국어공부를 똑똑히 한 사람은 자동적으로 알아듣게 된다. 이것을 헷갈리는 사람은 초딩 때 국어공부를 안 한 것이다. 한국말도 모르는 주제에 말할 자격 없다. 말을 하려면 먼저 언어를 배워야 한다. 예컨대 숫자 1이 가리켜지는 사과라고 믿는 사람은 그 사과가 병들거나 썩거나 요리되거나 도둑맞거나 하면 0.9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숫자 1은 사과의 사정과 상관없다. 숫자 1은 사과의 상태를 나타내는 표식이 아니다. 사과와 인간을 연결하는 라인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그러므로 사과가 썩든 쪼개지든 망가지든 물러지든 녹아 없어지든 상관없이 1은 1이다. 1이 1인 이유는 2가 2이기 때문이지 1로 지목된 사과나 호두나 도토리와 상관없다. 영구기관이 절대로 없는 이유는 일이 일이기 때문이다. 일을 한다는 것은 접힌 것을 풀어낸다는 의미다. 실타래에 감긴 실을 풀어내는 것이 일이다. 즉 일한다는 것은 무언가 제거한다는 뜻이다. 영구기관이 없는 이유는 일한다는 말이 곧 영구기관을 제거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즉 일은 영구기관을 없애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영구기관은 말하자면 실타래에 감긴 실을 풀면서 동시에 감으면 영원히 실을 풀 수 있잖아 하는 것인데 동시에 감으면 실을 푸는 게 아니잖아. 그것은 3을 3이 아니라 2라고 치면 1+3=3이잖아 하는 것과 같다. 언어파괴인 것이다. 그런데 3을 2라고 쳐도 1+3이 3이 되지 않는다. 3을 2로 치면 4를 3으로 쳐야 하므로 달라진 것은 없다. 언어는 약속인데 그 약속을 깨는 넘은 패 죽여야 한다. 다른 말 필요 없고 그냥 몽둥이로 죽을 때까지 패버리는 수밖에 없다. 필자가 게시판에 쓰는 것도 언어다. 언어를 부정하는 자는 필자의 언어를 읽을 자격이 없다. 언어를 부정하려면 입을 닫고 언어가 아닌 텔레파시나 염력이나 뭐나 다른 것으로 해야 한다. 언어를 부정하면서 입으로 말을 내뱉으며 언어에 의지한다면 괘씸하다. 하여간 박살을 내야 한다. 돈은 한국에서 벌고 세금은 미국에 내겠다는 식이 아닌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
"약속을 깨면 약속이 아닌 거다. 언어를 깨면 언어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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