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 뇌터의 정리 볼츠만이나 칸토어와 비슷한 예로 독일의 여성 물리학자 에미 뇌터를 들 수 있다. 어떤 계에 연속적인 대칭성이 있으면 이에 대응되어 보존되는 물리량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 뇌터의 정리다. 이들 셋의 공통점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문제에 걸려 고전한 점이다. 수학적 이상주의자들에게는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공격받는다. 수학은 아름다워야 한다. 빈틈없이 아귀가 들어맞아야 한다. 연속체 가설이 대표적이다. 참도 되고 거짓도 되는 얄궂은 것이 나오면 안 된다. 수학이라는 건축자재로 집을 짓되 벽돌 하나 남김없이 완벽해야 한다. 곳곳에 이상한 허방이 있고 돌출물이 있고 비틀어진 각도가 있으면 안 된다. 타지마할 묘당처럼 깔끔하고 완벽해야 한다. 남는 벽돌조각이 굴러다니면 안 된다.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모든 수학자가 지혜를 합쳐야 한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곳곳에 허방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볼츠만과 칸토어다. 수학을 누더기로 이끌고 있다. 괘씸하다. 이는 푸앙카레의 입장이다. 아인슈타인이 보어와 충돌한 것도 일종의 그런 거다. 양자역학이 물리학을 뭔가 점점 누더기로 만들고 있다. 불완전성이 강조되고 있다. 불완전해야 완벽하다는 식이 된다. 뇌터의 정리로 돌아가 보자. 에너지는 보존된다. 시간과 이동의 대칭으로 시간의 변화에 대해 불변이다. 도망가지 않고 거기에 있다. 운동량도 보존된다. 공간과 이동의 대칭으로 위치변화에 대해 불변이다. 각운동량은 보존된다. 공간과 회전의 대칭으로 회전에 대해 불변이다. 반드시 그곳에 있다. 그냥 그런 게 아니고 반드시 그렇다. 반드시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문제는 뇌터가 충분히 대접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성학자라서 편견이 작용했을 수도 있지만 구조론적으로 당연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양자역학이다. 통일장이론이고 입자이론이다. 입자가 반드시 있다. 확신할 수 있는가? 그렇다. 에너지 보존이든 운동량 보존이든 각운동량 보존이든 같은 말이다. 같은 것을 같다고 말하는 게 구조론이다. 우주 안에서 가장 강력한 법칙은 A는 A다이다. A는 비A가 아니다. 왜 이 말이 중요한가? 앞의 A는 전제이고 뒤의 A는 진술이다. 둘은 세트다. 그런데 모든 속임수는 전제 A를 중간에 바꿔치기한다. 처음에는 홍길동이라고 해놓고 말을 하다가 보면 이길동으로 변개되어 있다. 중간에 전제를 바꾸는 것이 숨은 전제를 덫으로 놓는 속임수다. 자한당 행동이 그렇다. 의열단의 약산 김원봉은 천만영화 밀정과 암살로 떴다. 한국인 중에 김원봉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자한당 김무성은 영화 암살을 보고 만세 삼창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다. 박근혜의 국정교과서에서 김원봉은 특별대접을 받다가 지금은 돌연 빨갱이로 바뀌었다. 김원봉이 순식간에 김월봉으로 바뀐 것이다. 전제만 바꾸지 않으면 우주의 모든 문제가 순식간에 풀린다. 왜? 그 전제가 바로 에미 뇌터가 찾은 보존이기 때문이다. 전제는 보존되어야 한다. 후건이 전건을 칠 수 없다. 자기가 한 말을 중간에 바꿔치기하기 없다. 이것만 지켜라. 보존은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하기 위해서 관성력 개념을 제안했을 때 확인된 것이며 뉴턴이 이를 구체화했다. 이를 다른 분야에 확대해서 적용한 것이 에너지 보존과 각운동량 보존이다. 양자역학과 통일장이론은 그 어딘가에 반드시 있다는 보존을 찾아서 증명한 것이다. 지구가 돈다고? 돌았냐? 지구가 1초에 400미터 속도로 빠르게 돌고 있다면 당신은 1초에 400미터라는 강력한 자전풍에 의해 뒤로 떠밀려야 한다. 그런데 떠밀리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는건 뭐냐? 자전풍은 어디갔냐? 그러므로 지동설은 가짜다. 갈릴레이가 말문이 콱 막혔다.
아니다. 우리가 달리는 차에 타고 있으면 뒤로 밀리지 않는다. 차에 업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관성력이다.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의지하고 있다. 이것이 갈릴레이가 찾아낸 보존이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계다. 닫힌계에 의해 보존된다. 구조론은 다섯 가지 보존을 해명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이들은 각각 실패에 감겨진 실을 풀어낸다. 감긴 정도와 풀리는 정도는 비례하며 이들은 감고 있는 실패는 보존된다. 반드시 감긴 만큼 풀린다. 언어도 그렇다. 딱 전제만큼 진술된다. 뇌터의 정리는 유명하지가 않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기 때문이다. 구조론도 지극히 당연하다. 운동이 보이면 어딘가에 실패가 있다. 찾아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반드시 있다는 점이다. 절대적인 확신이 우리의 희망이 된다. 량이 변하고 있으면 어딘가에 불변의 운동이 있는 것이다. 운동이 변하고 있으면 어딘가에 불변의 힘이 있다. 힘이 변하고 있으면 어딘가에 불변의 입자가 있다. 입자가 변하고 있다면 어딘가에 불변의 질이 있다. 그러한 확신에 의해 통일장 이론의 여러 입자가 찾아졌다. 힉스입자는 반드시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연구비를 딸 수 있고 연구비를 따냈기 때문에 노벨상을 딸 수 있었다. 이명박이라면 가질 수 없는 확신이다. 이론적 확신의 힘은 위대하다. 능히 세상을 바꾼다. 미야모도 무사시의 오륜서와 같다. 폭이 30센티 되는 길이 있다면 당신은 그 길을 갈 수 있다. 100미터 공중에 폭이 30센티 길이 있다면 당신은 다리가 떨려서 갈 수 없다. 혹시 모르잖아. 아니다. 혹시 모르잖아가 아니라 아닌 것은 절대로 아닌 것이다. 과학자라면 그 길을 갈 수 있어야 한다. 앞만 보고 걸어가면 된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절대적인 확신이 과학자에게 필요한 것이며 에미 뇌터가 그러한 절대적인 확신을 준 것이다. 구조론은 언어적 확신이다. A는 A다. A는 비A가 아니다. A는 A가 아닌 것이 아니라는 절대적 확신이 있다면 용감하게 진도를 뺄 수 있다. 보통은 A를 바꿔치기한다. 말하다가 보면 어느새 A는 B로 변해 있다. 김원봉은 애국자라고 지들 입으로 말해놓고 빨갱이로 바꿔놨다. 우주의 모든 대칭에는 불변의 보존이 있다. 모든 사건 안에는 불변의 계가 있다. 왜 이게 문제가 되는가? 야구공과 야구장은 둘이다. 기준이 둘이다. 어디서부터 홈런인가? 야구공의 비거리가 중요한가 아니면 야구장의 규격이 중요한가? 여기서부터 골때려지기 시작하는 거다. 절대 해소될 수 없는 수학적 자투리가 발생하여 골탕을 먹인다. 구조론은 이를 한 방에 해결한다. 광원과 피사체와 그림자의 관계다. 피사체가 야구공이라면 그림자는 야구장이다. 광원은 불변의 보존이다. 광원이 보존되므로 피사체와 그림자는 대칭되어 상대성을 가진다. 피사체와 그림자의 간격이 벌어지는 문제는 광원의 위치를 이동시켜 해소한다. 즉 야구공이 멀리 날아갈수록 거기에 맞게 야구장의 사이즈가 연동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가변식 야구장이다. 타자가 잘 치면 홈런으로 만들고 못 치면 외야플라이로 만들어주는 친절 야구장이다. 무엇인가? 야구공과 야구장이 둘이라서 문제다. 그런데 보존은 하나다. 하나로 통합되면 해결된다. 광원은 하나다. 남녀 둘의 문제는 가족 하나가 해결한다. 두 가족의 대립은 한 사회가 해결한다. 두 사회의 문제는 한 국가가 해결한다. 두 국가의 문제는 유엔이 해결 못 한다. 이론적으로는 유엔이 해결해야 한다. 모든 국가의 힘이 균등해야 한다. 여기에 사과가 한 개 있다. 이래놓고 사실은 아까 그거 복숭아였걸랑요. 이런 식으로 반전영화 찍는 넘은 패 죽여야 한다. 사람이라고 해놓고 결말에 가면 사실은 그게 귀신이었걸랑요. 이런 짓은 하지 말자. |
해결을 못하니까 중국과 미국이 싸우고 있는 거지요.
국가도 사회문제를 해결 못하는 나라가 많습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하지만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라는 거지요.
인간사회의 일은 그렇고 자연의 일은 반드시 그러합니다.
넵 감사합니다.
전제는 보존되어야 한다. 후건이 전건을 칠 수 없다. 자기가 한 말을 중간에 바꿔치기 하기 없다. 이것만 '지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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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는 보존되어야 한다. 후건이 전건을 칠 수 없다. 자기가 한 말을 중간에 바꿔치기 하기 없다. 이것만 "지켜라".
감솨요~~
얼마전에 에미 뇌터와 관련한 책을 알게되어 읽어보려다 서평이 안좋길래 접었었습니다.
읽으려던 이유가 바로 구조론하면 떠오르던 대칭성에 대한 언급이었습니다. :-)
http://aladin.kr/p/aGeEp
"보존은 하나다. 하나로 통합되면 해결된다."
두 국가의 문제는 유엔이 해결못한다.-> ?? 해결못한다가 맞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