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무슨 일이 있었다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의 이름은 진화다. 진화의 재료가 에너지라면 진화의 원리는 구조다. 에너지는 계의 통제가능성이고 구조는 대칭과 호응의 엮임이다. 비로소 사건이 일어났으니 세상은 에너지의 통제가능성에 따른 공간에서의 대칭원리와 시간에서의 호응원리가 각각 씨줄과 날줄이 되어 널리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그 시간의 순서와 공간의 방향을 되짚어보는 방법으로 근원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 세상이 짜장면이라면 베이스가 되는 밀가루는 에너지가 되고 그 밀가루 특유의 점성은 통제가능성이 되며 반죽이 만들어지는 것이 대칭이라면 면발이 뽑아져 나오는 것은 호응이겠다. 근본 밀가루의 점성에서 면발이 나온다는 것이다. 글루텐 함량에 따른 밀가루의 점성 차이에서 그 재료가 빵이 될지 짜장면이 될지 비스켓이 될지 정해진다. 여기서 결과가 상당부분 미리 정해져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원재료의 단백질 함량에 따라 글루텐이 많은 강력분은 빵이 되고 중간 정도인 중력분은 칼국수가 되고 글루텐이 적은 박력분은 비스켓과 케이크가 되는 것이다. 이는 다윈의 자연선택설과 다른 것이다. 자연선택설은 과학가의 언어가 될 수 없는 무책임하고 모호한 표현이다. 정답을 모르고 대략 얼버무리는 말이다. 엄격한 언어로 설명되어야 한다. 수학의 언어가 엄격하다. 구조론은 일종의 수학이다. 대칭과 호응이 딱딱 맞아떨어져서 낱낱이 증명된다. 결과에서 원인을 되짚어낼 수 있다. 자연선택은 말이 안 되는 것이 자연의 모습은 사건의 결과일 뿐 자연이 능동적으로 무엇을 선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자연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문학적인 표현이고 과학은 사건의 원인측을 봐야 한다. 귀납하지 말고 연역해야 한다. 연역은 낱낱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계의 통제가능성에 의해서 증명된다. 진화에는 분명한 방향이 있다. 그 방향은 통제가능한 방향이다. 통제가능성이 사회에서는 권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권력은 사건의 앞 단계가 뒷 단계를 지배하는 원리다. 부모가 자식을 지배한다. 원본이 복제본을 제한한다. 발명가는 로열티를 받는다. 작가는 저작권을 행사한다. 사건의 앞단계에 서는 사람에게 권력이 주어진다. 인류에게 기본 인권이 있는 이유는 인간이 먼저 나고 사회의 제도가 나중에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순서대로 간다. 진화가 에너지를 일으켜서 사건을 얽고 짓는 대칭의 방향과 호응의 순서가 있다. 상당부분 정해져 있다. 내부에서 권력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노가 추수를 하면 주인에게 수확의 90퍼센트를 빼앗기게 된다. 봄에 파종할 당시부터 가을에 수확을 빼앗길 것이 예정되어 있다. 이는 은행에 대출할 때 이자의 지불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과 같다. 장사를 해보고 잘 되면 이자를 쳐주고 장사가 잘 안되면 이자를 안 주겠다는 식으로 되면 시스템이 망한다. 은행이 멸망한다. 반드시 이자를 지불할 것이 보장되어야 대출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를 결정론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결정론은 톱니바퀴처럼 낱낱이 맞물려 돌아간다는 개념이고 구조론은 얽고 짓는 과정에서 세부사항은 매번 새롭게 결정된다는 개념이다. 확률로 이해해야 한다. 이자를 떼먹는 자가 반드시 있다는 말이다. 이자의 지불은 예정되어 있지만 흉년이라도 나면 농노는 세금을 바칠 수 없는 것이다. 파산신청을 하고 이자를 지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확률대로 간다. 자연에서 확률은 대개 100퍼센트 아니면 0퍼센트이고 중간은 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물고기는 알을 백만 개씩 낳고 소나무는 씨앗을 백만 개씩 퍼뜨린다. 숫자공격으로 초토화시켜서 넉넉하게 확률을 담보한다. 시스템이 망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사회가 특별히 확률의 물량공세가 통하지 않게 되어 있다. 이는 인간이 머리를 써서 효율적으로 경쟁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얍삽하게 머리를 쓰지 않는다. 대신 무지막지한 숫자공격으로 해결한다. 이는 상당한 에너지의 낭비가 된다. 물고기가 알을 백만 개씩 낳아서 99.9퍼센트는 치어로 죽으니 터무니없는 손실이다. 그러나 우주는 터무니없이 넓고 자연에 에너지는 터무니없이 많다. 원체 숫자가 넉넉하므로 인간의 문명이 등장하기 전에는 멸종사태가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인간은 극단적인 효율경쟁 속에서 겨우 사는 특별한 존재다. 들판의 사슴은 초원의 풀을 뜯으며 여유있게 사는데 말이다. 큰 틀에서 보면 자연은 확률의 지배 속에 있다. 통제가능성의 지배와 권력의 지배는 세상을 넉넉히 작동시킨다. 세부가 결정되어 있지 않지만 방향은 확실히 정해져 있다. 유전자 구조가 진화의 방향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보장하는 확률범위 안에서만 생명은 진화하게 되어 있다. 생명은 무질서하게 각개약진으로 진화하는 게 아니라 절대로 통제가능성을 따라간다. 모두 연결하여 일의적으로 통제가능한 방향으로만 생명은 진화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의외로 그 방향이 좁다. 인간의 문명도 마찬가지다. 크게 울타리가 쳐져 버린다. 자본주의에 사회주의에 무슨주의 무슨주의로 이념의 종류가 잔뜩 있는 것은 아니다. 발달한 자본주의와 뒤처진 자본주의가 있을 뿐 다른 길은 절대로 없다. 수렴진화가 그러하다. 환경이 확률을 제한하기 때문에 박쥐와 새의 수렴진화가 일어난다. 환경에게 권력이 있는 것이다. 울버린과 태즈매니아 데빌은 진화의 갈래가 전혀 다른 데도 닮았다. 너구리와 라쿤이 그렇다. 이름도 헷갈리고 생긴 것도 비슷하다. 생태적 지위가 같으면 닮는다. 환경이 종의 다양성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외계에 어떤 고도의 지적 생명체가 있다면 인간의 모습을 닮을 수밖에 없다. 다섯 발로 걷는 외계인이나 여섯 발로 걷는 외계인은 없다. 세눈박이 외계인과 네눈박이 외계인은 없다. 뇌의 의사결정 효율성 측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 경우 통제되지 않는다. 자연은 효율성의 압박으로 매우 통제하고 있다. 단백질과 산소호흡과 유전자 외에 다른 재료와 다른 방법으로는 생명을 진화시키기 어렵다. 수소와 헬륨부터 산소와 철과 구리와 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원소가 있지만 사실 숫자가 많지 않다. 의외로 다양성이 낮다. 물질들은 대개 안정되어 있다. 반응을 잘하는 물질은 종류가 많지 않다. 자연을 요리할 재료가 많지 않다. 물질들이 너무 반응을 잘해도 산화되고 환원되다가 망한다. 적절히 반응을 차단시켜야 획일화를 막는다. 반응을 잘해도 망하고 반응을 안 해도 망하는 것이다. 이리 막고 저리 막고 요리조리 다 막는다. 강스파이크를 때려봤자 블로킹에 다 막힌다. 여기서 마이너스 통제다. 뚫는 기술보다 막는 기술이 더 운용범위가 넓은 것이다. 진화를 일으키는 힘은 계의 통제가능성이다.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키는 것을 차단하는 기술이 진화의 핵심이다. 어떤 변이가 일어나면 그 결과로 진화할 확률보다 망할 확률이 일억 배로 높다. 자연의 통제는 거의 마이너스 통제다. 시스템은 단 한 곳이라도 뚫리면 전체를 다 막아야 하기 때문에 확률은 적절히 제한되는 것이다. 플러스는 확산방향이지만 마이너스는 수렴방향이므로 계가 통제된다는 말이다. 즉 생명이 진화할수록 다양성은 오히려 감소하게 되어 있다. 어느 면에서 5억 년 전의 캄브리아 대분화기가 오히려 더 다양했다는 말이다. 우주는 경우의 수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세상을 통제한다. 분모를 줄이고 모집단을 줄이는 방향으로 간다. 이에 대칭과 호응이 공간과 시간의 씨줄 날줄이 되어 세상의 삼라만상을 직조하는 것이다. 어떤 옷감을 썼는지에 따라 바지가 될지 저고리가 될지 정해져 있다. 재단사가 제출하는 디자인의 종류가 많지 않다. 유전인자 외에 다른 기술로 진화하는 생명체는 없다. 모든 생명체가 단일기술을 쓰고 있으니 졸지에 멸종할 수도 있다. 인간사회도 같다. 물질이 진화하는 원리와 생명이 진화하는 원리와 문명이 진화하는 원리는 같다. 큰 틀에서 예정된 길을 가는 것이다. 그 방향은 수렴방향이다. 조직이 클수록 마이너스 통제에 지배된다. 중소기업은 운에 맡기고 도박을 거는 플러스 통제로 성공하지만 대기업은 리스크를 회피하는 마이너스 통제로 살아남는다. 새로 창업하는 사람은 유행에 편승하여 성급하게 뛰어든다. 플러스 통제다. 확산방향으로의 기동이다. 환경이 바뀌면 높은 비율로 망한다. 치킨집을 하든 커피집을 하든 플러스는 망한다. 대기업은 리스크를 줄이는 마이너스 통제로 살아남는다. 리스크를 줄이는 수렴방향의 기동이다. 우주는 근본 마이너스 통제로 구축돼 있다. 역주행하는 자들은 바보다. 다양성에 의해 이리로도 가고 저리로도 가는 게 아니라 모로 가도 어차피 서울에서 다 만나게 되어 있다. 갈림길 숫자가 마이너스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해진 궤도를 빨리 가거나 늦게 가는 차이뿐이라면 비용을 적게 들이고 효율적으로 가는 사람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그 사람이 바통을 넘겨준다. 밀가루 반죽의 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나오니 이는 대칭원리다. 열역학 제 1법칙을 이룬다. 풍선효과와 같다. 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나온다. 반죽이 어디로 안 가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면발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요리사의 일량은 면발의 숫자에 숨어 있으니 이는 시간의 호응이 되어 열역학 제 2법칙을 이룬다. |
"인간사회도 같다. 물질이 진화하는 원리와 생명이 진화하는 원리와 문명이 진화하는 원리는 같다. 큰 틀에서 예정된 길을 가는 것이다. 그 방향은 수렴방향이다."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
읽고 또 읽어야 할 글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