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3952 vote 0 2003.11.12 (20:53:59)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1) 아내를 사랑하기
2) 지구를 구해내기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계백장군은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헐리우드 영화가 실패인 것은 일단 아내부터 사랑하거나, 혹은 지구부터 구하고 그 다음 아내를 사랑하는 식으로 어물쩡 타협하려들기 때문입니다.

둘 다 하기는 없다닌까요. 반드시 둘 중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전자가 소승이라면 후자가 대승입니다. 즉 정답은 나와 있는 거지요. 먼저 지구를 구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보통 드라마에서는 일단 아내를 사랑하는 것으로 동기부여를 찾습니다. 왜? 그래야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계백장군? 이건 안됩니다. 아내부터 처치해버리면 드라마가 안된다구요.

신이 인간을 만들었듯이 인간이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세계를 파멸시켰기 때문에 기계가 인간 대신 세계를 바로잡습니다. 신이 인간세계를 파멸시켰기 때문에 인간이 신을 부정합니다. 매트릭스에서는 인간이 기계의 반란을 제압합니다. 현실세계에서는 신이 인간의 반란을 제압합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 인간을 진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이 신에 도전하여 보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기계가 혁명을 일으켜서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정답이 아닙니까? 매트릭스에서는 반동이지요. 못된 인간들이 전쟁을 일으켜 지구를 파멸시켰기 때문에 기계들이 분연히 일어나 인간을 타도하고 혁명을 성공시켰는데 인간이 다시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2500년전 소크라테스가 결론을 내렸듯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모두 깨달았다면 커다란 허무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깨달음은 허무가 아니라 고통입니다. 즉 불완전한 인간이 깨달아서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불완전성을 깨닫는다는 말이지요. 인간은 결코 완전해질 수 없음을 깨닫는다는 거지요.

서로 다른 두 층위가 있습니다. 기계의 층위가 있고, 인간의 층위가 있고, 그 위에 신의 층위가 있습니다. 기계는 완전한 기계가 되려하며, 인간은 완전한 인간이 되려하고, 신은 완전한 신이 되고자 합니다. 신 또한 불완전한 존재이지요.

완전은 어디에 있는가? 완전은 공간에 있지 않고 시간 속에 있습니다. 즉 완전은 ‘어디’에도 없어요. ‘어디’는 공간이므로 ‘어디’에도 있을 수 없는 거지요.

완전은 시간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완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성의 자각을 의미하며, 완전은 그 삶을 통하여 쟁취되는 것일 뿐입니다. 즉 완전은 인격적 완성이며, 그 인격의 완성은 삶의 완성으로 하여 얻어진다는 거죠.

다시 말해서 2003년 11월 12일 현재 인간 아무개는 완전하다. 혹은 2003년 11월 12일 현재 인간 아무개는 깨달아서 완전해졌다는 식의 표현은 몽창 다 거짓말이라는 말이지요.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방법으로 깨달았다면 전부 거짓말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삶을 통해서, 그 완전성에 점점 다가가는, 완전으로 수렴되는, 완전에 최적화시키는, 완전에 근접하는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이 완전한 삶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 개인의 삶 안에서 완전성은 없습니다. 그런게 있다면 소크라테스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 홍길동은 어떤 경우에도 완전해질 수 없다는 말이지요. 즉 깨달음은 불능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은 무엇인가? 층위죠. 두 층위가 있고 그 사이에 배달이 있으며 그 배달로 하여 완전해질 수 뿐입니다. 그 두 층위는 예의 ‘아내에 대한 사랑’, ‘지구 구하기’로 표상될 수 있습니다. 즉 아내를 사랑하기가 한 인간으로서의 완전성의 추구라면, 그 역시 하나의 기계로서의 완전함에 불과한 것입니다. 즉 윈도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거죠.

말하자면 어떤 인간이 깨달아서 완전해질 수는 없고, 완전한 사랑을 이루므로서 완전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한 술을 더 떠서, 한 차원의 층위를 더 상향시켜서, 한 인간이 깨달았다는 것은 하드웨어가 성공적으로 조립된 것에 불과하고, 한 인간을 사랑했다는 것, 곧 하나의 삶으로서 완전해졌다는 것은 그 조립된 하드웨어에 성공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는 것입니다. 아직 작동은 안했지요.

무엇인가? 깨달음은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뭔가를 깨달아서 완전해졌다면 하나의 PC가 완전히 조립된 것에 불과하며, 그것은 끝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조립은 공간의 구성을 의미하며 깨달음은 시간상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완전한 삶을 살아내는데 성공했다면, 즉 한 인간을 사랑하는데 성공했다면, 그 사랑의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므로, 하나의 삶으로서 성공한 셈이 되겠지만, 그래봤자 그 조립된 PC에 윈도XP를 성공적으로 설치했다는 정도의 의미 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깨달음인가? 층위를 뚫어야 깨달음입니다. 무엇이 혁명인가? 무엇이 레볼루션인가? 매트릭스의 세계 곧 사이버 세계는 그 안에서 하나의 층위입니다. 그 세계 안에서 적을 소탕하고 완전해졌다는 것은, 곧 하나의 하드웨어를 성공적으로 조립했다는 의미에 불과합니다.

무엇인가? 사이버 세계와 실제 시계, 두 층위가 있으며 이 층위의 벽이 뚫리고 나서야, 비로서 깨달음을, 곧 혁명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신이 있었는데 신이 혼자서 완전하다는 것은 조또 아니라는 말이지요. 즉 신은 신 혼자서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왜?

방송국은 라디오가 없이 혼자서 완전해 질 수 없는 이치입니다. 방송국이 라디오와 소통할 때 비로소 완전해지듯이, 그 하드웨어가 잘 조립되었다는 것은, 또는 그 윈도XP가 성공적으로 설치되었다는 것은 수신할 라디오는 없는데, 송신할 방송국만 잘 가동되고 있다는 말이거든요.

층위 1. 방송국을 잘 지었다.(공간적 완성에 불과함)
층위 2. 방송국이 프로그램을 잘 제작했다.(시간적 완성에 불과함)
층위 3. 방송국이 송출한 전파를 라디오가 잘 재생해내는데 성공했다.(층위의 벽을 뚫음)

송신이 있고 수신이 있습니다. 신이 있고 인간이 있습니다. 인간이 있고 기계가 있습니다. 현실이 있고 사이버가 있습니다. 이 서로다른 두 층위 간에 소통이 있어야 하며, 그 위의 층위에서 일어난 일이 그 아래의 층위로 배달되어야지만, 곧 방송국에서 송출된 전파가 성공적으로 라디오 안에서 인간의 목소리로 재구성되어야만 비로소 깨달음인 것입니다.

인터넷이 정보를 전달할 때 각 패킷 단위로 쪼개어서 전송합니다. 이때 정보는 1바이트 씩 미세하게 분할되어 하나의 긴 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원래 입체이든 것이 선으로 변한 거지요. 이 0과 1의 집합들을 사전에 약속된 규칙에 의하여 수신측에서 원래의 입체형태로 재구성해야 하며 그 재구성을 성공시켰을 때 비로소 완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공간에서 PC가 조립된 것이 깨달음이 아니고, 시간에서 윈도가 설치된 것이 깨달음이 아니며, 미션이 성공적으로 전달되었을 때 비로소 깨달음입니다. 그 ‘미션’이 뭐냐이지요. 뻔할 뻔자입니다. ‘지구를 구하라!’ 지구를 구했습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과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내를 사랑하라!
2) 미션을 완수하라!

1)번은 소승의 깨달음이며 2)번은 대승의 깨달음입니다. 근데 드라마에서는 반드시 1)번 아내를 사랑하라 부터 공략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윈도를 깔지 않은 상태에서는 인터넷이 안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이 문제의 정답은 2)번입니다. 왜냐하면 1)번의 증거가 곧 2)번이기 때문이재요. 무슨 말인고 하니 1)번을 먼저 담보하지 않으면 2)번은 애초에 물리적으로 불능입니다. 즉 아내와 지구 중에서 주인공이 지구를 선택했을 때, 아내가 화를 내고 집을 나가 버렸다면 이는 그동안 주인공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는 거지요.

그러므로 진짜 정답은 2)번인 것이며 드라마에서는 보통 주인공이 아내를 팽개치고 지구를 구하러 떠나게 되는데, 후진 드라마에서는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하였노라’ 이런 식으로 나오지만 이는 60년대 신파극이고 정답을 찾아낸 드라마라면 그 사전에 전파해 놓은 사랑이 이미 새끼를 쳐서, 그 드라마의 조연들이 일제히 궐기하여 주인공을 돕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주인공은 미완성이지만 그 미완성한 결핍 부분만큼 주인공이 이미 전파해놓은 사랑이 반향을 일으켜 되돌아오는 형태로 보충해주므로 완전해진다 이런 스토리죠.

이몽룡은 성춘향을 구하기 앞서 먼저 변학도를 치는 것이 그 때문입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왜? 믿으니까요.

이때 성춘향이

“야 이몽룡! 너 그러기 있냐? 짜식이 너 그렇게 안봤는데 말야! 일단 옥에 갖힌 나부터 구출하는 것이 정답 아니냐?”

이건 ‘의심’이지요. 사랑의 증거가 아니지요. 사랑은 이제부터 시작이 아니고 이전부터 완성되어 있었어야 하는 것이며 지금은 그 증거를 찾아야 하는 거지요.

사랑은 방송국의 전파 비슷한 것이어서 이심전심으로 전염이 됩니다. 즉 층위를 넘어 배달이 된다는 거지요. 이몽룡의 성춘향에 대한 사랑이 남원고을 전체에 배달되고 전염되어 사랑이 남원고을 전체에 충만하다면 남원고을 민중들이 궐기해서 춘향을 구하게끔 설계되어 있는 거지요. 그러므로 이몽룡은 마음 놓고 떠날 수 있는거고.

그러므로 전사는 아내를 위해 조국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조국을 위해 전사하는 길을 택하므로서 거꾸로 아내를 구하게 된다 뭐 이런 거지요. 하여간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용기있게 죽는 길을 택했는데(?) 마지막에 보면 어떻게 다시 살아나서 부부가 백년해로 하고 그러함.(그게 좀 말이 안된다는 설도 있지만 그러니까 드라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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