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4140 vote 0 2003.11.09 (22:33:28)

원은 으뜸이다. 으뜸이 둘이면 이미 으뜸일 수 없다. 으뜸이 여럿이면 으뜸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부정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일원론이 있을 뿐이며, 이원론이나 다원론 혹은 순환논리는 원초적으로 다른 배경과 토대를 가진 다른 차원의 논리라 할 수 있다. 해당사항 없는 거다.

적확하게 말을 하기로 한다면 '원론'이 있을 뿐이며, 그 원론이 곧 일원론이 되는 것이며, 원론이 아닌 것들로는 상대론(이원론) 혹은 순환론(동어반복), 혹은 불가지론(다원론)들이 있겠다. 이것들은 일원론과 다른 레벨의, 다른 차원의 구분지가 다른 개념들이다.

예컨대 ‘지구가 돈다’고 하면 지동설이 되지만, 모르겠다고 하면 ‘모르겠다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암것도 아닌거다. 그건 안쳐주는 거다. 그러므로 일원론이 유일하며 다른 잡다한 것들은 논리구축의 실패사례들이 되겠다.

왜 그러한가?

원은 으뜸인데 으뜸은 버금에 대해 으뜸이다. 으뜸과 버금을 구분하는 것은 곧 순서와 방향이며 이 외에는 없다. 순서는 시간적 순서이며 방향은 공간적 방향이다. 그러므로 원은 곧 '순서와 방향의 구분지'로서의 원이며, 그 순서와 방향을 구분짓는 1단위가 '계'가 될 것이며 원은 그 계의 1을 의미한다.

'일원'이란 계가 하나라는 뜻이다. 계가 둘이면 별개의 두 사건이 될 것이며 이 경우 둘은 만나지 않는다. 예컨대 선과 악이 있되, 선은 미국에 살고 악은 중국에 사는데, 두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면, 선과 악이 둘이므로 이원론이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은 별개의 두 사건으로, 둘을 통일할 이유도, 둘을 비교할 이유도, 둘을 대응시킬 이유도 없으므로 애초에 이 둘의 관계에 대하여는 논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이 논해지려면 어떤 형태로든 둘이 만나야 한다. 둘이 하나 안에서 공존해야 한다. 둘이 알고보니 하나이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둘이 하나일 수 있는가? 원인과 결과로서 하나일 수 있다.

자동차가 있다. 가만 있으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달리면 앞과 뒤가 구분된다. 이런 식으로 A와 B가 하나 안에 공존하면서 동시에 이항대립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며, 그 조건은 곧 운동이다. 즉 운동이 없다면 공간고 시간도 없으며, 방향도 순서도 없으며, 흑백도 음양도 전후도 상하도 내외도 원근도 장단도 고저도 없는 것이다.

즉 흑백은, 음양은, 전후는, 내외는, 상하는, 원근은, 남녀는, 고저는, 장단들은 모두 운동이 만들어낸 것이며 그 운동에는 반드시 시간이 걸리며, 공유하는 하나의 관문(루트)을 통과함에 있어서 각 패켓의 순서가 지정되는 것이며, 그 운동의 이전에 어떤 형태로 계를 성립시키고 있으며, 그 계는 공간에서 수평적으로 대비된 A와 B가 구분지가 다른 C에 의해 통일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내용의 특수한 만듦새의 구조를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하나의 계는 성립되지 않으며, 계가 성립되지 않으면 계는 외력에 대응하여 붕괴되지도 않고, 계가 붕괴되지 않으면 운동은 일어나지 않으며, 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인과는, 흑백은, 음양은, 전후는, 내외는, 상하는, 원근은, 남녀는, 고저는, 장단은 성립하지 않으며, 이항대립구조를 이루는 이원의 각 항은 찾아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일원론이란 계가 하나임을 의미하며, 그 계는 특수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그 구조가 하나의 집합일 때 그 집합의 원소들은 일정한 연산규칙을 충족시키고 있으며, 그 연산규칙은 공간의 방향이며, 그 방향은 서로 대응되는 두 A, B가 더 큰 C에 의해 통일된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구조체에 외력이 작용할 때 계의 붕괴가 일어나며, 그 계의 붕괴과정에서 운동이 성립하며, 그 운동에 의해 우리가 이원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혹은 상대성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혹은 순환으로 설명하고 싶어하는.. 흑백, 음양, 전후, 내외, 상하, 원근, 남녀, 고저, 장단이라는 형태로의 이항대립의 각항이 성립하는 것이며, 이들은 모두 계의 붕괴과정에서 외부환경에 대응시키는 형태로 그 자국을, 그 흔적을, 그 자취를, 그 증거를, 그 결과를, 그 현상을, 그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건전지에 음양이 있다고 믿지마는, 엄밀히 논하면 전하의 흐름이 있을 뿐이며 그 운동의 방향은 언제나 일방향이다. 즉 건전지에 음양은 없다. 왜? 그 음양은 전하의 일정한 형태로의 배열인데, 그 질서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음과 양을 직렬로 연결해야 하는데, 이 경우 전기의 흐름이라는 운동을 생성시키는 즉 '운동의 원인'으로서의 힘의 구조가 붕괴하여 순간적으로 쌍방향적인 해소가 이루어져 전기는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음양의 규칙을 일정시간 이상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전극을 연결시키고 일정한 정도의 압력으로 그 흐름을 차단하는 형태로 부하를 두어야 하는데, 이때 전기는 음이나 양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으로만 존재한다. 즉 전선의 특정한 부위를 토막내어 음양을 특정짓기는 불능이다.

그러므로 전기는 음양이 아니라 흐름이며, 우리가 음양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흐름을 막아놓고, 그 음양이 소멸하고 없는 상황에서, 그 막은 것을 열어제칠 때를, 곧 얼마간의 미래를 가상하여 일컫는 것이다. 즉 그것은 '가정'이다. 음양은 운동의 원인이 되는 힘의 구성상을 해체하는 방법으로 흐름을 유발하게 될 거라는, 곧 앞으로 이러이러하게 될거라는, 혹은 이러한 특정조건을 사전에 예비해두고 있는 하나의 약속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음양은 미래의 행동(흐름 및 흐름의 방향)에 대한 하나의 약속이다. 음양 뿐 아니라 2원으로 설명되는 이항대립구조를 가진 모든 것이 그러하다. 그것은 실재가 아니라 하나의 가상이다.

예컨대 사람은 그냥 사람인데 그 사람이 앞으로 가게에 가서 물건을 소비할 것을 가정하여 '소비자'라고 이름 하는 것이다. 실제 소비는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일단 소비자가 가게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소비자가 아니다. 왜? 소비하지 않았으므로. 가게에서 나오고 난 다음도 역시 소비자가 아니다. 왜? 이미 소비했으므로.

그러므로 소비자가 소비하는 자일 수 있는 기간은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동안만인 것이다. 그런데 그 '사는 동안'을 어떻게 특정지을 수 있지? 돈을 건네는 순간? 의미없다. 즉 소비자라는 호칭은 지금 소비하지 않고 있어도 앞으로 소비할 것을 가상하여 이름하는 것이다. 모두가 이런 식이다. 즉 자동차는 원래 앞뒤가 없지만 미래의 어떤 시점에 그 자동차가 달릴 것을 가상하여 지금 달리고 있지 않더라도 앞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다.

즉 우리가 이원이라고 믿는 모든 것은 가상인 것이다. 선악도 가상이다. 미추도 가상이다. 전후도, 상하도, 좌우도 다 가상이다. 애국자도 가상이고 도둑놈도 가상이다. 즉 앞으로 도둑질을 할 것으로 가상하여 도둑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악도 없고, 상하도 없고, 좌우도 없으며, 그 모든 것은 운동을 설명하기 위하여, 운동이 일어나지 않은 시점에 미래의 어떤 시점에 나투어 일어날 운동을 미리 가상하여 이름한 것이다.

실제로 운동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 운동은 시간 상의 운동이며 그 시간을 토막내어 보면 특정한 시점에는 운동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모두가 가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일어나고 있지 않은 일들을 가상하여, 가정하여, 가불하여, 미리 앞당겨서 이름붙여 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앞당기고, 가상하고, 상정하고, 예정하고, 가불하고, 가정하는 기준은? 그것이 '계'다. 계는 요소들 사이에 성립하는 일정한 연산규칙에 의하여 시공간을 통일하고 있다.

즉 보통 우리가 말하는 집합이나 체나 군이나 환이 공간상에서의 모둠을 이야기한다면, 계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가상하는 방법으로 시간까지 포함시킨 개념이며, 시공간상에서 일정한 연산규칙에 의해 모둠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의 집합을 의미하는 것이며, 일원론은 '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며, 그 원은 곧 계이며, 그 계는 내부에 운동을 통일하고 있으며, 그 계의 속성은 외력의 작용에 의해, 하나로 통일적인 대응을 보여주는 것으로 검증될 수 있으며, 일원론이란 임의의 계가 외력의 작용에 대해 시공간상에서 통일적으로 대응하는 성질을 의미한다.

매트릭스에 대해 논의하자면 가상세계와 실제 세계는 그 계가 다르다. 원이 다르다. 그러므로 그 두 세계는 뒤섞일 수 없다.

장자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장자꿈을 꾼 것인가? <- 얼빠진 소리다. 계의 존재는 반드시 외력의 작용에 대한 통일된 대응에 의해서만 성립되기 때문이다. 즉 그 장자의 꿈 속으로 또 다른 누군가의 꿈이 침투하지 않는 한 그 꿈은 하나의 계로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즉 사이버세계가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자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 사이버 세계를 쳐야 하는 것이다. 내 꿈 속의 나가 네 꿈속으로 침투하여 네 꿈속의 너를 쳐야 하는 것이다. 이때 그 외력에 작용하는 범위의 한계까지 하나의 계가 특정될 수 있다. 그것이 '원'이다.

인간계와 사이버계가 있다. 그 두 '계'를 특정하려면 사이버세계는 인간계 밖에 있어야 하고, 인간계는 사이버 세계 밖에 있어야 하며, 그 중 하나가 하나를 쳐야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내가 내 안에서는 나를 칠 수 없으므로 내가 내 안에서 별도의 나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설정.. 계의 벽을 허물어보려는 시도.. 단순한 착오에 불과하다. 그런 일은 성립될 수 없다. 하여간 내가 내 꿈속으로 잠입하여 내 꿈속의 나와 악수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지어낸 인간이 없다. 매트릭스가 바로 그 이야기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어찌 맹랑하다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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