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어도 좋아'의 제한상영가 판정과 관련하여
이 논쟁 오래간다. 논쟁을 오래가게 하는 주역은 등급위 15인 심사위원들이다. 그들은 왜 역사적인 총대를 매어버린 것인가? 별 것 아닌 영화 한 편으로 '권리장전'을 만들어보려고 기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문화사에 길이 남을 마그나카르타가 탄생하게 될지도 모르게 되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들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버렸다. 그들은 영화인들을 단결시켰고, 관객들에게 모종의 일체감을 형성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역사의 무게를 실감할 일만 남았다.
필자는 이 영화가 극장에 걸리더라도 흥행에서는 죽을 쑬 것이라 예단한다. 잘해야 1만명 쯤? 어쨌거나 밑바닥에 쌓인 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그 에너지는 어떻게든 분출될 것이며 그것은 극장에서의 흥행이 아니라 극장 바깥에서의 어떤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터질 것이다.
퇴짜를 놓은 등급위 심사위원 15인의 글을 '씨네21'에 싣고 있는데 하나 그른 말이 없다. 다들 모범답안을 말하고 있다. 검열기준을 어겼으니 제한상영가 등급을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니므로 씨네21이 아무리 그들을 조롱해도 좋은 결과가 나오기는 글렀다.
반면 심의통과를 바라는 측의 논리는 옹색하기 그지없다. 명백히 잘라야 할 신을 자르지 않고, 제한상영관이 없다는 구실을 들어 어거지를 쓰고 있다. 제한상영가를 받으면 제한상영을 하면 된다. 아니면 모자이크 몇 개 넣고 등급을 얻어내든지.
정 가위질 당하기 싫다면 자기 돈으로 제한상영관을 지어서 300년 쯤 후에 상영하면 된다. 300년 후라면 등급외전용관이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극장이 없다는 것은 심의위원들이 고려할 사안이 아니다. 심의위원들은 영화를 보고 심의할 뿐이다. 그러니 심의위원들에게 떼를 쓴다고 답이 나오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없다.
그렇다면 답이 없는 상황에서는 무엇이 정답인가?
필자는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다. 자기편이라고 해서 무조건 편들어주지는 않는다. 진보지식인이라면 당연히 "상영을 허하라"고 목청을 높여야 하겠지만 근거가 있어야지.
예를 들자면 말이다. 민원인들이 관료들에게 하소연을 하는데, 관료들이 민원인들의 하소연을 다 듣고 나서는..
"네 이해합니다. 그 말씀 다 맞습니다. 근데 규정이 딱 요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해는 하고 동정도 하고 참 생각하면 원통한 일이라는거 저도 다 아는데 규정 때문에, 바로 이 규정 탓이지 제 탓은 아니고, 어쩔 수 없습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가 아닌가? 이때 쯤 해서 딱 나서는 것이 있다. 대통령이다. 근데 이 나라는 잼있는게 규정 때문에 절대로 안된다는 것도, 대통령이 한마디만 하면 하룻만에 해결된다.
코미디의 절정은 월드컵 전사들의 병역면제다. 이것도 규정대로 하면 월드컵에서 우승을 해도 병역면제는 불가능하다.
규정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다. 이나라에서는 대통령 말 한마디로 안되는 것이 없다. 대통령이 홍명보와 한마디 주고받은 다음 "규정을 바꿔서" 5분 만에 딱 해결이 된다.
어제까지 절대로 안된다는 것도 딱 5분 만에 된다. "규정 때문에 안된다면 규정을 바꾸면" 된다. 하여간에 그 때문에 DJ도 테레비에 한번 더 나오고, 카메라발 한번 더 받는 거다.
간단하다. 심의위원들의 판정에는 하자가 없다. 문제는 규정이다. 규정 때문에 안된다면 규정을 바꾸면 된다. 이런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은 규정을 바꿀 생각을 못하는가? 왜 대통령이 나서면 전화 한통화로 되는 것을 관료들은 절대로 못하는가?
답은 이거다. 심의위원들은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대통령이 아니란 사실을 처절하게 주제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논하려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하여간 필자는 민주국가에서는 모든 국민이 곧 대통령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법이 잘못되었으면 그 법을 어겨야 한다. 규정에 모순이 있다면 그 규정을 어겨야 한다. 간단하다. 규정? 무시해버려! 왜 못해?
등급위의 존재 자체를 무시해버리면 된다. 등급위는 민간위원회다. 위원회가 무엇인가? 뭣도 아이다. 그냥 하나의 절차로서 설치해 둔 기관이다. 무시해버리면 된다. 지들이 몬데? 넌 나서지 마! 등급위 너흰 잠자코 있어!
대통령이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민의가 곧 대통령이다. 헌법보다 높은게 민심이다. 이거 알아야 한다.
존경받는 김수용감독님도, 높으신 변호사님도, 훌륭한 시민단체 하는 분도 등급위에만 들어가면 갑자기 바보가 된다. 충직한 관료가 되고 공무원이 된다. 왜 그들은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간단하다. 그것은 자기존재를 부정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등급위가 '죽어도 좋아'의 상영을 허하지 못하는 것은, 등급위란 존재가 필요하지 않다는 비밀이 탄로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등급위가 이나라에 기여하는 것은 없다. 등급위의 존재 자체가 코메디다. 지들이 뭔데?
인간은 약한 존재다. 대통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처럼 사고하면 곧 대통령이다. 그들은 왜 대통령의 마음으로 살지 못하는 걸까?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기존재를 부정해야하는 존재론적 딜렘마에 갖혀버린 것이다. 인간의 약점은 이런 때 드러난다.
필자는 그들이 '완장병'에 걸려버렸다고 진단한다. 일종의 최면술이다. 인간은 누구나 대통령처럼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자기네가 이 나라 국민의 윤리를 책임지는 마지막 보루라는 집단최면에 걸려버렸기 때문에, 대통령처럼 사고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약하다.
등급위를 맹 비난하는 영화관계자들의 면면을 보라. 내노라 하는 감독들, 작가들, 평론가들, 영화인들 그들도 등급위에만 들여보내 놓으면 똑 저렇게 된다. 김수용감독을 비난할 일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김수용이다.
그러니 깨우쳐야 한다.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을, 자신이 최면에 걸려 대통령처럼 사고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자기부정이라는 존재론적 딜렘마가 인간의 약점을 코꿰어버렸다는 사실을. 힘들지만 인정해야 한다.
왜 우리는 세계최초가 되면 안되는가?
왜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로서 세계에서 1등이면 안되는가?
왜 대통령처럼 사고하지 못하는가?
기능하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등급위는 필요없다.
해산하라.
이 논쟁 오래간다. 논쟁을 오래가게 하는 주역은 등급위 15인 심사위원들이다. 그들은 왜 역사적인 총대를 매어버린 것인가? 별 것 아닌 영화 한 편으로 '권리장전'을 만들어보려고 기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문화사에 길이 남을 마그나카르타가 탄생하게 될지도 모르게 되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들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버렸다. 그들은 영화인들을 단결시켰고, 관객들에게 모종의 일체감을 형성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역사의 무게를 실감할 일만 남았다.
필자는 이 영화가 극장에 걸리더라도 흥행에서는 죽을 쑬 것이라 예단한다. 잘해야 1만명 쯤? 어쨌거나 밑바닥에 쌓인 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그 에너지는 어떻게든 분출될 것이며 그것은 극장에서의 흥행이 아니라 극장 바깥에서의 어떤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터질 것이다.
퇴짜를 놓은 등급위 심사위원 15인의 글을 '씨네21'에 싣고 있는데 하나 그른 말이 없다. 다들 모범답안을 말하고 있다. 검열기준을 어겼으니 제한상영가 등급을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니므로 씨네21이 아무리 그들을 조롱해도 좋은 결과가 나오기는 글렀다.
반면 심의통과를 바라는 측의 논리는 옹색하기 그지없다. 명백히 잘라야 할 신을 자르지 않고, 제한상영관이 없다는 구실을 들어 어거지를 쓰고 있다. 제한상영가를 받으면 제한상영을 하면 된다. 아니면 모자이크 몇 개 넣고 등급을 얻어내든지.
정 가위질 당하기 싫다면 자기 돈으로 제한상영관을 지어서 300년 쯤 후에 상영하면 된다. 300년 후라면 등급외전용관이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극장이 없다는 것은 심의위원들이 고려할 사안이 아니다. 심의위원들은 영화를 보고 심의할 뿐이다. 그러니 심의위원들에게 떼를 쓴다고 답이 나오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없다.
그렇다면 답이 없는 상황에서는 무엇이 정답인가?
필자는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다. 자기편이라고 해서 무조건 편들어주지는 않는다. 진보지식인이라면 당연히 "상영을 허하라"고 목청을 높여야 하겠지만 근거가 있어야지.
예를 들자면 말이다. 민원인들이 관료들에게 하소연을 하는데, 관료들이 민원인들의 하소연을 다 듣고 나서는..
"네 이해합니다. 그 말씀 다 맞습니다. 근데 규정이 딱 요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해는 하고 동정도 하고 참 생각하면 원통한 일이라는거 저도 다 아는데 규정 때문에, 바로 이 규정 탓이지 제 탓은 아니고, 어쩔 수 없습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가 아닌가? 이때 쯤 해서 딱 나서는 것이 있다. 대통령이다. 근데 이 나라는 잼있는게 규정 때문에 절대로 안된다는 것도, 대통령이 한마디만 하면 하룻만에 해결된다.
코미디의 절정은 월드컵 전사들의 병역면제다. 이것도 규정대로 하면 월드컵에서 우승을 해도 병역면제는 불가능하다.
규정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다. 이나라에서는 대통령 말 한마디로 안되는 것이 없다. 대통령이 홍명보와 한마디 주고받은 다음 "규정을 바꿔서" 5분 만에 딱 해결이 된다.
어제까지 절대로 안된다는 것도 딱 5분 만에 된다. "규정 때문에 안된다면 규정을 바꾸면" 된다. 하여간에 그 때문에 DJ도 테레비에 한번 더 나오고, 카메라발 한번 더 받는 거다.
간단하다. 심의위원들의 판정에는 하자가 없다. 문제는 규정이다. 규정 때문에 안된다면 규정을 바꾸면 된다. 이런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은 규정을 바꿀 생각을 못하는가? 왜 대통령이 나서면 전화 한통화로 되는 것을 관료들은 절대로 못하는가?
답은 이거다. 심의위원들은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대통령이 아니란 사실을 처절하게 주제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논하려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하여간 필자는 민주국가에서는 모든 국민이 곧 대통령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법이 잘못되었으면 그 법을 어겨야 한다. 규정에 모순이 있다면 그 규정을 어겨야 한다. 간단하다. 규정? 무시해버려! 왜 못해?
등급위의 존재 자체를 무시해버리면 된다. 등급위는 민간위원회다. 위원회가 무엇인가? 뭣도 아이다. 그냥 하나의 절차로서 설치해 둔 기관이다. 무시해버리면 된다. 지들이 몬데? 넌 나서지 마! 등급위 너흰 잠자코 있어!
대통령이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민의가 곧 대통령이다. 헌법보다 높은게 민심이다. 이거 알아야 한다.
존경받는 김수용감독님도, 높으신 변호사님도, 훌륭한 시민단체 하는 분도 등급위에만 들어가면 갑자기 바보가 된다. 충직한 관료가 되고 공무원이 된다. 왜 그들은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간단하다. 그것은 자기존재를 부정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등급위가 '죽어도 좋아'의 상영을 허하지 못하는 것은, 등급위란 존재가 필요하지 않다는 비밀이 탄로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등급위가 이나라에 기여하는 것은 없다. 등급위의 존재 자체가 코메디다. 지들이 뭔데?
인간은 약한 존재다. 대통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처럼 사고하면 곧 대통령이다. 그들은 왜 대통령의 마음으로 살지 못하는 걸까?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기존재를 부정해야하는 존재론적 딜렘마에 갖혀버린 것이다. 인간의 약점은 이런 때 드러난다.
필자는 그들이 '완장병'에 걸려버렸다고 진단한다. 일종의 최면술이다. 인간은 누구나 대통령처럼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자기네가 이 나라 국민의 윤리를 책임지는 마지막 보루라는 집단최면에 걸려버렸기 때문에, 대통령처럼 사고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약하다.
등급위를 맹 비난하는 영화관계자들의 면면을 보라. 내노라 하는 감독들, 작가들, 평론가들, 영화인들 그들도 등급위에만 들여보내 놓으면 똑 저렇게 된다. 김수용감독을 비난할 일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김수용이다.
그러니 깨우쳐야 한다.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을, 자신이 최면에 걸려 대통령처럼 사고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자기부정이라는 존재론적 딜렘마가 인간의 약점을 코꿰어버렸다는 사실을. 힘들지만 인정해야 한다.
왜 우리는 세계최초가 되면 안되는가?
왜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로서 세계에서 1등이면 안되는가?
왜 대통령처럼 사고하지 못하는가?
기능하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등급위는 필요없다.
해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