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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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753 vote 0 2008.12.30 (23:16:54)

 

깨달음 - 우주와의 합일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노랑제비꽃 화분이다.” (반칠환의 노랑제비꽃)

“원각이 보조하니 적과 멸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시회대중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스님의 법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이오?(祖師西來意)” “뜰 앞의 잣나무로다(庭前栢樹子) (조주스님의 공안)

모두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완전성의 경지다. 우주와의 합일의 경지라고도 하겠다. 누구든 한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와 세상이 온통 하나가 된 느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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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과학의 출발점은 ‘부분의 합은 전체와 같다’는 요소환원주의 논리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부분의 합은 전체와 같을까? 에너지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정보’로 보면 부분의 합은 언제나 전체보다 작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규명하고 있듯이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낮은 집적도를 가진다. 열역학에서는 이를 ‘무질서도의 증가’로 표현한다. 이러한 원리는 특히 스포츠 분야에서 잘 관찰될 수 있다.

피겨스케이팅의 복잡한 연결동작이나 혹은 야구나 골프의 스윙에서 각 부분동작의 합은 항상 전체동작보다 작다. 부분동작의 합에는 리듬과 타이밍 그리고 호흡과 밸런스라는 핵심요소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투수가 공을 놓는 순간 타자가 호흡을 멈추면 공이 수박만큼 커 보인다. 반대로 호흡을 들이마시면 그 주변 풍경들이 보인다. 관중석도 보이고 외야수도 보인다. 그 경우 공이 좁쌀만큼 작아 보인다.

이 부분은 에너지의 환원논리로 설명할 수 없고 정보의 집적원리로 설명해야 한다. 하나의 공이 주변의 몇 가지 변수와 동시에 맞물리느냐다. 리듬과 물리고 호흡과 물리고 타이밍과 물리고 밸런스와 물린다.

전체동작에는 부분의 합에 없는 것이 있다. 맞물림이다. 스포츠맨이 이 원리를 터득할 때 선수의 기량은 급속하게 향상된다. 코치들은 보통 릴렉스라는 표현을 쓴다. 야구에서는 이를 두고 ‘힘을 빼고 던진다’는 표현을 쓴다.

프로야구 속설에 ‘힘을 빼고 던지는데만 1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이제 힘 빼고 공을 던질 만하니까 은퇴할 때가 됐어요.”(김일융 선수) “선동렬 코치에게 전수받은 기술은 힘을 빼고 공을 던지는 방법입니다.”(배영수 선수)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팔에서 힘을 빼면 공을 던질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힘을 빼고 던지라고 하지? 성철스님의 선문답과도 같다. 어느 분야든 그 분야의 최고수가 되려면 어느 정도는 깨달음의 경지를 통과해야 한다.

교육학에서는 이를 전습법과 분습법으로 설명한다. 분습법은 부분을 학습한 후 이를 연결하여 전체를 구성하는 것이고 전습법은 서로 맞물려서 이루어진 전체의 맥락을 먼저 이해한 후 부분동작을 가다듬는 것이다.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작으므로 전습법이 옳다. 분습법에 의존할 경우 리듬과 타이밍과 호흡과 밸런스의 맞물림을 포착할 수 없다. 프로야구에서 힘을 빼고 던진다는 말은 전습법에서 강조되는 릴렉스 원리를 활용하라는 뜻이다.

피아노 연주라면 손목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전개된 엄지와 비엄지의 균형이 있다. 엄지와 비엄지의 균형이 평형에 도달할 때 손목이 개입한다. 낮은 단계의 대칭이 평형을 이룰 때 높은 단계가 개입하는 것이다.

손과 손목 사이에서 힘의 배분이 평형에 이를 때 팔꿈치가 개입하고, 팔꿈치와 손목이 균형을 이룰 때 어깨가 개입한다. 그리고 상체와 하체가 차례로 개입한다. 최종적으로는? 대지(大地)가 개입한다. 그리고 온 우주가 개입한다.

마침내 신(神)과의 합일이 된다. 적어도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러한 단계적 개입 과정에 리듬과 타이밍과 호흡과 밸런스의 맞물림이 있다. 전습법으로 훈련해야 그러한 맞물림에 의한 외계의 개입을 깨닫게 된다.

골프선수가 최고의 스윙을 하는 방법은 하체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손과 손목, 손목과 팔, 팔과 상체의 대칭구조가 평형에 도달할 때 밸런스가 이루어져 하체가 개입한다. 반대로 상체가 무너지면 하체가 받쳐주지를 않는다.

마찬가지로 상체와 하체의 균형이 평형에 이를 때 대지가 개입하고 인체와 대지가 평형을 이룰 때 온 우주가 받쳐준다. 온통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지를 두고 파울로 코엘료는 ‘온 우주가 돕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완벽한 밸런스는 완벽한 힘의 배분이다. 어느 한 부분에 힘이 들어갔을 때는 호흡도 리듬도 타이밍도 밸런스도 느껴지지 않는다. 지방이 중앙을 쳐다보고 있기 때문에 지방에서 입수된 정보가 중앙에까지 도달하지 않는다.

완벽한 릴렉스에 도달하여 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제가 해제될 때 지방에서 피드백된 정보가 중앙에 전달된다. 하체의 정보가 오고 대지의 정보가 온다. 비로소 대지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릴렉스는 막연하게 긴장을 풀고 힘을 빼는 것이 아니다. 고도의 긴장에서 인체의 각 부분을 통제하여 완벽한 밸런스의 지점을 통과한 다음에 얻어지는 릴렉스다. 긴장이 긴장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밸런스인 것이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른 밸런스 원리가 있다. 어떤 계에 밀도가 걸려 있다면 부분과 전체가 직결로 맞물리기 때문에 계는 밸런스를 유지하려고 한다. 지방에서의 미세한 변화에 대한 정보가 바로 중앙에 전달되는 것이다.

스윙을 한 후 팔로우스루 동작이 완전하지 않으면 인체와 대지 사이의 불균형이 미세한 진동을 일으켜 임팩트 순간에 떨림을 낳는다. 공을 친 다음의 동작이 공을 치는 순간에 영향을 미친다.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환원논리는 힘의 크기를 판단할 뿐 맞물림을 판단하지 않는다. 풀잎에 매달린 물방울이 떨어진 다음 풀잎에 남은 물의 응집이 물방울의 낙하를 결정한다. 미래가 현재를 결정한다.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자동변속기 차량은 수동에 비해 연비가 나쁘다. 그런데 특정 기어비에서는 록업클러치 기능에 의해 엔진구동축과 추진축이 직결로 연결되면 유압에 의한 힘의 전달이 아닌 기계적인 맞물림이 일어나 연비가 좋아지는 특성이 있다.

최고의 투구, 최고의 펀치, 최고의 스윙은 완벽한 힘의 배분에서 얻어진다. 공과 손가락, 손목, 팔, 어깨, 상체, 하체, 대지, 지구 중심축이 록업클러치 기능에 의해 직결로 연결될 때 그러하다. 그 순간 온 우주가 돕는다.

경기장의 스포츠맨과 무대 위의 배우와 산사의 스님들은 공통점이 있다. ‘relax’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relax’의 진정한 의미는 고도의 집중상태에서 얻어진 완벽한 힘의 배분이다. 곧 밸런스인 것이다.

모든 존재는 맞물려 있다. 서로 간섭한다. 그러므로 실패한다. 완벽한 릴렉스에 의해 간섭은 해제된다. 그 순간 산은 산이 되고 물은 물이 된다. 한 그루 뜰 앞의 잣나무가 우주와 소통한다. 노랑제비꽃 한 송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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