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전에 나는 교사인가 상담가인가 고민했다.결론은 나는 교사이지 상담가가 아니라는 것. 그렇다고 교사가 상담에 대해서 몰라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이 상담이라는게 남을 상담하다가 자신을 발견한다. 결국 상담은 자기상담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심각한 아이의 문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게 다 학교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학부모에게 용기를 내어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부모 영향력이 7~80%입니다'라고 교사가 직언하지만 학부모님는 그리 인정하지 않는 눈치. 교사는 학교만 탓하는 부모의 말에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든다. 상담을 괜히 했다는 생각까지 든다. 차라리 안했으면 학부모와 관계도 더 나빠지진 않았을 거란 후회의 판단이다. 학부모가 인정하지 않으니 앞으로 부모의 협력을 기대할 수 없다. 이제 교사도 애가 걱정이 되고,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가르칠지 막막하다.
그렇게 불편했던 학부모상담을 마치고,
퇴근후 소파에 앉아서 쉬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그럼 나는?'
만약 학부모에게 내가 한 말이 맞다면, 나도 나의 부모님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어느새 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아이에 대한 이해가 교사에 대한 이해, 아니 교사 이전에 자연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탐색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피하고 싶다. 참 인정하고 싶지 않다. 고통스럽다. 그동안 나의 생존을 위해 사용했던 방어기제를 하나 하나 벗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문득 학부모 마음도 이랬겠구나 하는 묘한 공감이 든다. 학부모에겐 표현하지 못했던..
처음엔 아이에서 시작한 관심이 나의 모습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순간 내가 보았던 그 학부모가 다르게 보인다. 그 학부모도 자신의 부모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 아닌가? 아, 마찬가지로 나의 부모도 조부모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 아닌가? 그 뿐인가? 부모 외에 내게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의식 수준에서는 가능하나 무의식 수준에서 내게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이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나는 그저 독립성없는 가계에 흐르는 집단 의식의 전도체란 말인가?
지금 나는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고 그로 인해 어떤 삶을 사는가? 특히 교사는 자신의 부모와 학창시절 경험한 교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교사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끝까지 치밀었을 때 사용하는 훈육방법은 본인이 그토록 싫어했던 교사의 체벌과 비교육적인 방법들이다. 본인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아이에 대한 이해가 교사에 대한 이해, 부모와 자식간의 이해, 자신이 중요한 사람들로 인해 받은 영향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지다가 종국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곧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문화적 공간과 구석기 70만년 전부터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때문에 교사에게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고, 특히 인간 심리에 대한 지식, 상담의 이론과 상담기술이 요구된다. 교육활동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한 기반 중 하나가 상담인 것이다. 교사가 상담가는 아니지만 인간존재와 관계, 성장을 돕는 상담에 대한 안목과 지식이 필요하다.
특히 요즘 처럼 대학교육이 보편화되고 사회가 급변하며 가정 형태가 다양하고 불안정 상황에서는 교사가 아이나 학부모보다 월등히 깊이있는 전문가적 입장으로 만나야 한다. 단순히 문제행동 유형에 대한 방법론적 접근에 머물러서는 답이 안나온다. 나를 빼고 아이를 타자화하며 문제의 대상으로 삼을 때 교사 자신도 문제의 수렁에 갖힌다. 문제와 함께 교사도 문제행동을 하게 되는 비극과 좌절에 빠진다.
그렇다면 답은 인간심리와 상담을 포함한 폭넓은 지식쌓기와 자기탐색이 전부인가? 이것도 너무 부담스러운데, 혹시 이거 말고 더 해야 되는 무슨 과정이 있는건 아닐까?
그에 대한 해답은 이미 발견되었다. 공교육의 혁신학교 모델이 몇 명의 교사들이 모여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려내기 위한 과정에서 시작되었듯이, 이제는 교사가 성공의 팀체제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 팀의 역할을 아직 교육대학, 교육부, 교육청에서는 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청의 경우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교육청이라는 포지션 때문에 운신의 폭과 역할에 한계가 있다. 방법적 실마리는 혁신학교모델에도 약간 들어 있다.
이제는 1회성 특강이나 2박 3일 집중연수가 아닌, 1년 코스이상으로 진행되는 교사중심 연수 모델에 답이 있다. 단순히 교사의 관심사인 수업, 놀이, 생활지도, 상담에 대한 1가지 주제의 연구가 아니라 1년 동안 교사가 하는 핵심적인 교육활동을 포함하는 종합적인 연수 시스템이 필요한 때다. 이렇게 1년의 과정을 마치고 팀 차원에서 2~3년 동안 시행착오와 오류수정의 수련과정을 통해 끝까지 버티는 교사는 질적으로 수준높은 교사로 성장할 수 있다.
결국 교사의 성공과 실패는 일개 교사의 문제가 아닌, 교사 성숙 시스템의 부재와 시스템 운영 노하우의 무지에 있는 것이다. 성공의 팀에 들어가면 교육적 에너지를 공급받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동료교사와 진정한 상호작용을 한다.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효과적이고 실제적인 활동을 먼저 경험하고, 자신의 교육현장에서 구현할 수 있다. 구현에 실패해도 좋다. 실패한 내용은 의미있는 데이터가 되어 다시 팀안에서 다뤄지고 그 이유를 찾아내어 해결할 수 있다. 이미 그렇게 했을 때 실패하거나 성공한 교사들의 데이터가 쌓여있다. 그렇게 의미있는 데이터는 쌓이고 있고 교사운영시스템(학급을 넘어선 팀체제 중심의 교육 운영구조)은 진보하게 된다.
교육은 그 자체가 관계이고 집단의 문제이고, 공동체의 문제이며 개인의 역량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어쭙잖은 개별성 다양성 존중이 교육을 망친다. 물론 일부 지역의 상명하복식 집단주의 교육체제는 교사의 독립성 침해와 협력문화 부재, 공사의 경계실종, 외적인 실적주의, 장기적인 안목없는 졸속적인 임시처방으로 논할 가치가 없다. 이것은 교육이 아닌거다. 원래 고립되면 그렇게 된다. 지금까지 개인교사가, 일개 학교가 특정 지역이, 박근혜 정부가 그랬다. 교육은 공동체의 심리적 안전을 바탕으로 한 검증된 교사교육체제로만 가능하다.
#현재 행복교실이 그 모델을 만들고 있다. 교사 정유진의 것이 완벽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가 십수년간 이론적 체계를 잡고 부단한 실천과 나눔, 피드백의 과정을 통해 정립한 체계적 방식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 체제를 1이상 실천한 교사들이 수백명이고, 올해에 5백명 이상, 내년이면 수천명 이상이 될 것이다. 교사들이 믿고 끝까지 하면 자신들은 성장한다. 교사 정유진이 만든 학급운영시스템이 수정과정을 거쳐 더욱 정련화된다. 그리고 학급운영시스템의 각 영역에서 정유진을 능가하는 실력자들이 나온다. 그리고 행복교실에 참여하는 그 누군가는 세부 영역에서 그 실력자를 능가한다. 참여하는 선생님들은 행복교실 철학이 반영되어 검증된 양질의 교육 각론과 방법을 접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기존에 없던 방식이다. 행복교실안에는 다양한 배경 - PDC, TET, 회복적 생활교육, 123매직, 비폭력대화, 감정코칭, 심리극, 놀이, 상담, 수업연구, 교과교육, 미술 콘텐츠, 음악창작 외 -을 가진 교사들이 존재한다. 앞으로 이것이 또 어떤 팀케미스트리를 이뤄나갈지, 다양한 조합과 변주를 만들어갈 지 기대가 된다. 이제는 팀이다. 팀 이외의 교육방식은 일개 교사의 자의적인 성공과 실패이다. 그것은 대한민국 교육의 실패이자 담임 잘만나는 게 운빨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행복교실의 모델이 복제되기를, 널리 복제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교육의 달성가능한 희망이다.
이제는 팀교육안에서 함께하자 나와 당신이!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심각한 아이의 문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게 다 학교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학부모에게 용기를 내어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부모 영향력이 7~80%입니다'라고 교사가 직언하지만 학부모님는 그리 인정하지 않는 눈치. 교사는 학교만 탓하는 부모의 말에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든다. 상담을 괜히 했다는 생각까지 든다. 차라리 안했으면 학부모와 관계도 더 나빠지진 않았을 거란 후회의 판단이다. 학부모가 인정하지 않으니 앞으로 부모의 협력을 기대할 수 없다. 이제 교사도 애가 걱정이 되고,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가르칠지 막막하다.
그렇게 불편했던 학부모상담을 마치고,
퇴근후 소파에 앉아서 쉬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그럼 나는?'
만약 학부모에게 내가 한 말이 맞다면, 나도 나의 부모님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어느새 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아이에 대한 이해가 교사에 대한 이해, 아니 교사 이전에 자연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탐색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피하고 싶다. 참 인정하고 싶지 않다. 고통스럽다. 그동안 나의 생존을 위해 사용했던 방어기제를 하나 하나 벗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문득 학부모 마음도 이랬겠구나 하는 묘한 공감이 든다. 학부모에겐 표현하지 못했던..
처음엔 아이에서 시작한 관심이 나의 모습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순간 내가 보았던 그 학부모가 다르게 보인다. 그 학부모도 자신의 부모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 아닌가? 아, 마찬가지로 나의 부모도 조부모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 아닌가? 그 뿐인가? 부모 외에 내게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의식 수준에서는 가능하나 무의식 수준에서 내게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이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나는 그저 독립성없는 가계에 흐르는 집단 의식의 전도체란 말인가?
지금 나는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고 그로 인해 어떤 삶을 사는가? 특히 교사는 자신의 부모와 학창시절 경험한 교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교사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끝까지 치밀었을 때 사용하는 훈육방법은 본인이 그토록 싫어했던 교사의 체벌과 비교육적인 방법들이다. 본인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아이에 대한 이해가 교사에 대한 이해, 부모와 자식간의 이해, 자신이 중요한 사람들로 인해 받은 영향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지다가 종국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곧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문화적 공간과 구석기 70만년 전부터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때문에 교사에게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고, 특히 인간 심리에 대한 지식, 상담의 이론과 상담기술이 요구된다. 교육활동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한 기반 중 하나가 상담인 것이다. 교사가 상담가는 아니지만 인간존재와 관계, 성장을 돕는 상담에 대한 안목과 지식이 필요하다.
특히 요즘 처럼 대학교육이 보편화되고 사회가 급변하며 가정 형태가 다양하고 불안정 상황에서는 교사가 아이나 학부모보다 월등히 깊이있는 전문가적 입장으로 만나야 한다. 단순히 문제행동 유형에 대한 방법론적 접근에 머물러서는 답이 안나온다. 나를 빼고 아이를 타자화하며 문제의 대상으로 삼을 때 교사 자신도 문제의 수렁에 갖힌다. 문제와 함께 교사도 문제행동을 하게 되는 비극과 좌절에 빠진다.
그렇다면 답은 인간심리와 상담을 포함한 폭넓은 지식쌓기와 자기탐색이 전부인가? 이것도 너무 부담스러운데, 혹시 이거 말고 더 해야 되는 무슨 과정이 있는건 아닐까?
그에 대한 해답은 이미 발견되었다. 공교육의 혁신학교 모델이 몇 명의 교사들이 모여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려내기 위한 과정에서 시작되었듯이, 이제는 교사가 성공의 팀체제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 팀의 역할을 아직 교육대학, 교육부, 교육청에서는 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청의 경우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교육청이라는 포지션 때문에 운신의 폭과 역할에 한계가 있다. 방법적 실마리는 혁신학교모델에도 약간 들어 있다.
이제는 1회성 특강이나 2박 3일 집중연수가 아닌, 1년 코스이상으로 진행되는 교사중심 연수 모델에 답이 있다. 단순히 교사의 관심사인 수업, 놀이, 생활지도, 상담에 대한 1가지 주제의 연구가 아니라 1년 동안 교사가 하는 핵심적인 교육활동을 포함하는 종합적인 연수 시스템이 필요한 때다. 이렇게 1년의 과정을 마치고 팀 차원에서 2~3년 동안 시행착오와 오류수정의 수련과정을 통해 끝까지 버티는 교사는 질적으로 수준높은 교사로 성장할 수 있다.
결국 교사의 성공과 실패는 일개 교사의 문제가 아닌, 교사 성숙 시스템의 부재와 시스템 운영 노하우의 무지에 있는 것이다. 성공의 팀에 들어가면 교육적 에너지를 공급받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동료교사와 진정한 상호작용을 한다.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효과적이고 실제적인 활동을 먼저 경험하고, 자신의 교육현장에서 구현할 수 있다. 구현에 실패해도 좋다. 실패한 내용은 의미있는 데이터가 되어 다시 팀안에서 다뤄지고 그 이유를 찾아내어 해결할 수 있다. 이미 그렇게 했을 때 실패하거나 성공한 교사들의 데이터가 쌓여있다. 그렇게 의미있는 데이터는 쌓이고 있고 교사운영시스템(학급을 넘어선 팀체제 중심의 교육 운영구조)은 진보하게 된다.
교육은 그 자체가 관계이고 집단의 문제이고, 공동체의 문제이며 개인의 역량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어쭙잖은 개별성 다양성 존중이 교육을 망친다. 물론 일부 지역의 상명하복식 집단주의 교육체제는 교사의 독립성 침해와 협력문화 부재, 공사의 경계실종, 외적인 실적주의, 장기적인 안목없는 졸속적인 임시처방으로 논할 가치가 없다. 이것은 교육이 아닌거다. 원래 고립되면 그렇게 된다. 지금까지 개인교사가, 일개 학교가 특정 지역이, 박근혜 정부가 그랬다. 교육은 공동체의 심리적 안전을 바탕으로 한 검증된 교사교육체제로만 가능하다.
#현재 행복교실이 그 모델을 만들고 있다. 교사 정유진의 것이 완벽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가 십수년간 이론적 체계를 잡고 부단한 실천과 나눔, 피드백의 과정을 통해 정립한 체계적 방식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 체제를 1이상 실천한 교사들이 수백명이고, 올해에 5백명 이상, 내년이면 수천명 이상이 될 것이다. 교사들이 믿고 끝까지 하면 자신들은 성장한다. 교사 정유진이 만든 학급운영시스템이 수정과정을 거쳐 더욱 정련화된다. 그리고 학급운영시스템의 각 영역에서 정유진을 능가하는 실력자들이 나온다. 그리고 행복교실에 참여하는 그 누군가는 세부 영역에서 그 실력자를 능가한다. 참여하는 선생님들은 행복교실 철학이 반영되어 검증된 양질의 교육 각론과 방법을 접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기존에 없던 방식이다. 행복교실안에는 다양한 배경 - PDC, TET, 회복적 생활교육, 123매직, 비폭력대화, 감정코칭, 심리극, 놀이, 상담, 수업연구, 교과교육, 미술 콘텐츠, 음악창작 외 -을 가진 교사들이 존재한다. 앞으로 이것이 또 어떤 팀케미스트리를 이뤄나갈지, 다양한 조합과 변주를 만들어갈 지 기대가 된다. 이제는 팀이다. 팀 이외의 교육방식은 일개 교사의 자의적인 성공과 실패이다. 그것은 대한민국 교육의 실패이자 담임 잘만나는 게 운빨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행복교실의 모델이 복제되기를, 널리 복제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교육의 달성가능한 희망이다.
이제는 팀교육안에서 함께하자 나와 당신이!
취지와 방법은 좀더 살펴 봐야 알 것 같지만
'행복교실' 이라는 제목이 좀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