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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454 vote 0 2018.01.12 (19:20:26)

     

    무릇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의리를 배워야 인간이 된다. 의리는 인지의신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긴밀해지는 절차다. 예수는 사랑하라고 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며 막 들이대다가 뺨 맞기 다반사다. 사랑도 합당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긴밀해지는 것이 의리다.


    왜 긴밀해져야 하는가? 사회관계의 발전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민으로 태어난다. 배워서 근대인으로 바뀌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단위가 커졌기 때문이다. 일만 년 전만 해도 인류는 많아야 백 명 정도의 작은 무리를 이루고 들판에 흩어져 살았다. 인간이 의지하는 동굴의 면적이 그다지 넓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상임신을 말할 수 있다. 개 한 마리가 임신하면 호르몬 영향으로 다른 암컷들도 젖이 분비된다. 어미가 죽거나 새끼를 돌보지 못하면 이모들이 젖을 물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부족민은 내 자식 남의 자식 구분없이 키웠다. 일본만 해도 시골아이가 아침에 뛰쳐나가 저녁에 나타나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차피 한 동네는 다 한집안이나 마찬가지다. 어느 집에선가 저녁을 얻어먹고 있을 터이다. 심지어 부인과 남편까지 공유했다는 말도 있는데 이 경우는 아마 시골 중에서도 깡촌의 풍속이리라. 이것이 잘못된게 아니고 사실은 원래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이러하다. 이렇게 공동체로 살면 친함이 있지만 배타적이다.


    내부의 결속이 견고할수록 외부에 대해서는 닫아걸게 된다. 부자유친이니 부부유별이니 하는 소리 듣고 있으면 따분한 꼰대질로 들리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인류학을 배우지 못한 때문이다. 부족민은 부자관계가 없다. 부족집단 전체가 사실상 한가족인데 특별히 내 아버지라는게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거 없다.


    일단 소유가 없다. 토지는 마을 공동소유다. 집은 마을의 장정들이 와서 지어준다. 길쌈을 해도 그렇다. 솜씨 좋은 처녀는 보통사람의 몇 배 속도로 베를 짤 수 있다. 한두 사람의 실력자가 마을 전체의 수요를 모두 해결하므로 네것 내것 따지면 애초에 마을이 유지되지 않는다. 원시 공동체는 공산주의 시스템이다.


    마르크스가 원시 사회주의를 말한게 이유가 있다. 부족민은 부자관계도 없거나 희미하고 부부관계도 애매하다. 친부가 누구인지 모른다. 일부다처와 일처다부가 뒤섞여 있다. 마을 전체가 성적으로 터놓고 살기도 한다. 문제없다. 그러고도 다들 행복하게 잘 산다. 그러다가 외부인이 나타나면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핏케언제도 사건을 참고할 수 있다. 마을의 남성과 여성이 12살만 넘으면 그냥 터놓고 관계를 했는데 영국 경찰이 처벌하려고 하니 피해자들이 난 12살이지만 20살처럼 성숙했다고 주장하며 가해자를 두둔하는 판이었다. 모택동이 장정을 할 때만 해도 귀주성, 운남성 오지로 들어가면 마을 입구에 해골이 쌓여 있었다.


     특히 한족은 닥치는대로 죽였다. 청조의 지배권이 미치지 못한 거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른다. 그것은 선이나 악을 넘어선 세계다. 문명인의 잣대로는 판단할 수 없다. 그들은 부자관계도 부부관계도 아닌 자기네 방식대로 잘 산다. 70년대만 해도 근친혼으로 마을인구 반이 저능아가 된 마을이 흔했다.


    사람고기도 먹어가며 그들은 희희낙락 행복하다. 공자라면 기함할만 하다. 그것을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현대사회는 이미 커질대로 커져버렸다는 거다. 현대사회에 걸맞는 도덕규범을 갖추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최근에 Me Too운동이 각국에서 번지는 사실로 알 수 있다. 페미니즘은 예의 영역이다.


    의식이 족하면 예절을 찾는다 했다. 그런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신세계로 넘어와 버렸다. 인지의신예가 아니면 살 수 없는 다른 세계로 와버렸다. 그것이 모더니즘 정신이자 한편으로 마르크스주의 관점이기도 하다. 양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지성들은 전쟁과 혁명의 광기를 반성하게 되었다.


    원시 때가 차라리 좋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안운동 하는 사람은 다들 터놓고 사는 원시사회주의 공동체를 모방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히피가 되었다. 히피를 몰락시킨 찰스 맨슨의 폭주가 어떻게 보면 인간의 본래 모습이다. 공동체운동은 보통 그 모양으로 실패한다. 왜? 인간들이 도무지 통제가 안 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영국인들에게 잊혀져 있던 핏케언제도의 남자들은 영국법에 따라 감옥에 잡혀갔다. 그들은 불행해졌다. 차라리 모른 척했더라면 그들은 아동성폭행(?)을 하고 근친상간을 하면서 잘 살았을텐데. 딜레마다. 탈근대 또라이들은 그들이 성폭행을 하며 행복하게 잘 살도록 놔둬라는 식이다. 놔둬볼까?


    물론 이건 극단적인 예다. 노자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 자연스럽게 놔두면 행복하게 아동성폭행을 저지르고, 행복하게 피해자가 가해자를 두둔하고, 때로는 행복하게 사람을 잡아먹으며 피둥피둥 잘 산다. 그게 인간의 본래 모습이다. 문명이 오히려 생뚱맞은 거다. 어쨌든 인간은 어쩌다 위태로운 길로 들어서 버렸다. 


    노자가 한사코 말렸던 그 위험한 길을. 그래서? 에너지다. 폭주하는 버스에 인류는 올라타 버렸다. 중간에 내릴 수 없다. 불행일 수도 있지만 버스에 탄 이상 운전기사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인지의신예를 구사하여 승객들은 결속을 다져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노자교육이 행복교육이면 공자교육은 에너지 교육이다. 


    어느 쪽이 옳은가? 행복은 결과의 행복이고 에너지는 원인의 에너지다. 에너지는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 각별하다. 결과는 통제할 수 없지만 원인은 통제된다. 버스는 운전할 수 있다. 대안교육을 주장하는 사람이 많으나 대개 행복교육을 주장할 뿐 에너지교육을 말하지는 않더라. 통제가능성에서 에너지가 발생한다.


    남자든 여자든 서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남자는 실력으로 여자는 매력으로 상대방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다. 부족민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상대방을 통제할 수 없다. 그래서? 초식남이 된다. 히키코모리가 된다. 일본은 부부가 각방을 쓴다. 여중생은 원조교제를 한다. 원조교제 이유는 엄마를 적대하기 때문이다.


    부자유친이 깨져서 원조교제를 한다. 스무 살이면 성인식을 하고 독립하거나 엄마에게 월세를 갖다바쳐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 물론 이것도 옛날 말이고 요즘은 캥거루족이 되어 뻔뻔스럽게 월세도 안 내고 버틴다지만. 결론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부족민으로 태어나며 그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이미 다리를 건너고 돌아갈 잔도를 불태워버렸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다. 좋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행복인가 에너지인가? 인간은 어떻든 권력을 추구한다. 상황을 적절히 통제하려는 거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스스로 에너지를 조직하는 것이다. 하나는 통제대상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남자는 힘을 길러 큰 개를 제압한다. 여자는 작은 개를 키운다. 힘을 기르는 방법이 공자의 방법이라면 작은 개를 키우는 방법이 노자의 방법이다. 늑대는 크다. 개는 작다. 개들의 조상이라 할 바센지도 체중 10킬로 정도의 중형견이다. 인간이 늑대 품종을 개량하여 작은 개를 만들어낸 이유는 작아야 만만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쉽게 작고 만만한 파트너를 선택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노자의 방법은 자신을 강화시키지 않고 상대방을 잘게 쪼개는 방법이다. 일본 열도는 300명의 다이묘로 쪼개졌다. 면 정도만 되어도 국가를 참칭한다. 잘게 쪼개놓으니 말을 잘 듣는다. 이 수법으로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덩치 키워야 한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뭐든 놔두면 퇴행적인 방향으로 치닫는다. 대안교육 하는 사람들이 노자로 몰려가는 것은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므로 자연스럽게 몰락한다. 원리가 그렇다. 지구는 작은데 인간이 커지면 답이 안 나온다. 제멋대로 커져버린건 히틀러와 일본 제국주의와 스탈린과 모택동의 공산주의다.


    통제불가능이다. 그중에서 지독한 강적은 미국이다. 인구 1억 이상 되는 국가의 출현은 금지시켜야 인류가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돌이킬 수 없다. 미국에게 작아져라고 요구해봤자 따르지 않는다. 중국을 다섯 개 정도로 쪼갰으면 좋겠지만 중국인들이 말을 듣겠는가? 커진 덩치에 맞게 우리 자신을 키워야 한다.


    에너지가 답이다. 인간은 어떻게 에너지를 얻는가? 어리광이다. 아기는 에너지가 넘친다. 엄마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켜보는 엄마 시선 안에서 아기는 얼마든지 뛰어놀 수 있다. 엄마가 없다면? 아기는 제자리에서 꼼짝도 못한다. 에너지를 잃고 매사에 의심하고 불안하여 소극적으로 된다. 방어모드로 들어간다.


    스트레스 때문이다.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에너지가 있다. 부모와 유대가 깊기 때문이다. 벤처하다가 안 되면 부모돈 뜯어내면 된다. 한국이라면 말만한 처자가 부모가 30분간 애걸해도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버틴다. 그래야 된다. 제시간에 딱딱 일어나서 방청소도 잘하는 모범 어린이는 부모와 유대가 약하다.


    물론 이건 비유로 하는 말이다. 심리적 의존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언제나 그 상태로 머무르면 당연히 망한다. 계속 어리광 부리면 마마보이 안철수다. 그렇게 의지하다가 바깥세계로 나갈 때 인간은 강해지는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는 보험에 들어놓는 것과 같다. 자동차 보험에 들면 걱정없이 차량을 운전할 수 있다.


    구조론으로는 질의 결합이다. 부모와 결합하고 동료와도 결합해야 한다. 그것이 의리다. 비유하면 이런 거다. 두 사람이 동업을 했다. 한 사람이 배신하면? 의리의 한국인들 배신한 상대가 나쁜 것이며 나는 잘못한게 없다고 말한다. 표정이 당당하다. 중국인과 일본인은 어떨까? 내가 먼저 배신해야 했는데 하고 자책한다.


    동업을 시작할 때부터 상대를 의심하고 감시하며 배반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대신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이 발달해 있다. 중고차를 사건 부동산을 팔건 직거래를 하지 않고 반드시 딜러나 업자를 끼워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둘 다 장단점이 있지만 에너지로 보면 한국이 이긴다. 의리게임이냐 배신게임이냐?


    공자의 가르침은 부족민에서 근대인으로 갈아타라는 거다. 배신게임에서 의리게임으로 갈아타라는 거다. 의사결정단위가 너무 크면 안 된다. 배신할 수밖에 없다. 평판공격 들어오면 살아내기가 힘들어진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시댁눈치를 본다는 것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거다. 소규모의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인지의신예는 단계적으로 범위를 좁혀가며 에너지를 유도하는 방법이다. 인은 천하와의 의리, 지는 집단과의 의리, 의는 동료와의 의리, 신은 가족과의 의리, 예는 일대일 관계에서의 의리다. 처음 크게 시작하고 점차 범위를 좁혀가는 방법으로 인간은 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역방향은 망한다.


    문제는 현대사회의 부족민들이다. 끼리끼리 편 먹고 배 맞추며 뒷구멍으로 발호한다. 그중에도 악질은 기레기족이다. 기레기족 중에 조중동족이 유명한데 한경오족이 새로 가담하고 있다. 전통의 씨방새족, 엠빙쉰족, 개비시족 횡포에 근래에 들어서는 종편족이 득세하고 있다. 의리를 세워 이들을 제압해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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