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팟캐스트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에 몇 자 첨언하자. 이 말을 두고 공자가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혹은 유교라는 종교가 대단히 훌륭한 종교로구나. 나도 얼른 집에 가서 조상 모시고 제사나 지내야겠다. 하고 초딩흉내를 낸다면 피곤한 거다. 이건 진지한 이야기다. 애들은 가라.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다. 우리가 흔히 유교라고 비판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봉건습속이다. 어느 나라든 봉건시대는 좋지 않았다. 섞여 있다. 서구의 폐단은 기독교와 섞여 있고 아랍의 폐단은 이슬람교와 섞여 있다. 모나리자도 사실은 베일을 쓰고 있다. 잘 살펴보면 보인다. 카츄샤의 스카프도 히잡이다. 기독교도 원래는 이슬람과 풍속이 유사했다. 아랍의 나쁜 습속은 과거 유럽에 다 있었다. 문명이 진보하면서 나쁜 것을 하나씩 버린 거다. 한국인들도 상투를 잘랐다. 그러므로 오늘날 문화상대주의 운운하며 아랍의 낡은 봉건습속을 정당화하려는건 고약한 거다. 대부분 미개한 풍속이 맞다. 유럽인들도 옛날에는 개고기를 먹었다. 지금은 안 먹는다. 왜? 이기려고. 먹으면 지는 거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이기는가 지는가 승부의 문제다. 이런 부분을 합리적으로 걸러내야 한다. 지금 유교권이 이기고 있다. 왜? 동원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동원을 잘하는 쪽이 이긴다. 평등한 쪽이 이기고 차별하는 쪽이 진다. 평등은 동원이고 차별은 불참이다. 구조론의 답은 질의 균일성이다. 왜 스승은 공자뿐인가? 소피스트들에게 있어 지식은 돈벌이 수단이었다. 철저하게 실용주의 관점에서 학문에 접근한 거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실용주의를 배제하고 합리주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러므로 위대한 것이다. 왜 실용주의는 고약한가? 패배하기 때문이다. 변론술을 배우면 재판에 이긴다. 누가 이기는가? 의뢰인이 이기는 거다. 지식인들은 의뢰인에게 고용되어 금화를 받는다. 먹고 떨어져. 이렇게 된다. 결국 돈에 무릎을 꿇은 거다. 지식이 패배하므로 소피스트의 지식은 가짜다. 소크라스테스는 패배했다. 소크라테스 역시 소피스트로 몰렸다. 아테네가 스파르타와의 싸움에 패배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패배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지식에 대한 사랑은 지는 거다. 아마추어다. 이기려면 프로가 되어야 한다. 노자의 지식은 개인의 안위와 생존을 꾀한다. 역시 지는 거다. 패자의 생존술이다. 틈새전략이다. 나대지 말고 시골로 낙향하여 귀퉁이에 숨어 살면 오래 살 수 있다는 식이다. 패배자의 철학이다. 당시에 지식은 어용이었다. 지식은 임금의 독점사업이고 지식인은 임금을 위해 봉사해야 했다. 아르키메데스도 임금을 위해 금관의 위조를 밝혀 겨우 밥 빌어먹었다. 거지였던 거다. 석가는 체질적으로 거지였으니 비구beggar는 거지를 의미한다. 석가의 깨달음은 자기만족적 행위에 불과하다. 그래서? 깨달아서? 어쩌라고? 별거 없다. 그게 다다. 일대사건이 일어났다. 상나라의 멸망이다. 주나라는 서쪽에서 왔다. 철기문명을 갖고 온 우수한 집단이다. 주와 상은 다른 문화권에 속한다. 무엇인가? 왕이 사라진 것이다. 발달한 프랑스 요리는 왕이 죽자 요리사들이 도망쳐서 만든 것이다. 한국의 요릿집도 왕이 망하자 궁중의 숙수들이 나와서 차렸기에 으리으리하다. 왕의 직업은 제사다. 제정일치 시대에 제사는 정치고 정치는 제사다. 공자는 직업이 제사업이다. 왕을 위해 봉사하는게 지식인의 본분인데 공자는 이를 뒤집어 스스로 왕 행세를 하고 다닌 사람이다. 석가는 깝치다가 나라가 망했고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지만, 공자의 무리는 제사를 잘 지내서 피둥피둥 살아남았다. 알아야 하는 것은 과연 지식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지식은 산업의 발전을 위해 실용적으로 봉사하는 하급실무직이 되어 있다. 이국종이 아는 척하고 나대다가 김종대에게 쿠사리 맞는게 지식인의 본분이다. 깝치는 이방이 사또에게 한 방 맞는 거다. 이방은 실무 일하는 지식인이고 사또는 제사업자다. 사또의 역할은 역시 제사를 잘 지내는 거다. 제사를 잘 지내면 풍년이 오고 백성들이 추앙하는 것이다. 실무일을 하는 지식인은 사또에게 혼나는게 일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과학자들은 대접받지 못했다. 우주 안에 가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복제다. 복제야말로 존재의 근본원리다. 인간은 무엇을 복제하는가? 자식을 낳는다. 인류가 수만 년간 해온 일은 딱 하나다. 아들낳기와 딸낳기다. 그 외에 한 게 없다. 무언가를 낳는 것만이 가치가 있다. 스승과 제자와 동료의 관계를 낳는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다. 농부는 밭에 파종한다. 취하는건 곡식이지 밭이 아니다. 필요한건 밭이다. 그렇다. 밭은 파종에 필요한 수단인 거다. 마찬가지다. 지식은 밭이다. 인간은 지식이라는 밭에 무엇을 파종하는가? 지식을 취해봤자 이방노릇을 할 뿐이다. 호방이 되면 푼돈깨나 만질 수 있다. 변호사나 의사가 되면 꽤 돈을 만질 수 있다. 그러나 변호사나 의사의 지식은 실무일을 하는 아전의 지식에 불과하다. 과학자가 명성을 떨쳐봤자 유명한 아전에 불과하다. 인간이 대접받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부모가 되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대접받는다. 사람의 할 일은 사람을 낳는 것이다. 그런데 다들 짐승을 낳고 있다. 혹은 개나 닭을 낳고 있다. 안철수 짐승, 홍준표 짐승 이런거 낳는다. 박근혜 닭, 김기춘 오리도 낳는다. 사람이 사람을 낳아야 대접받지 왜 짐승을 낳느냐 말이다. 공자는 사람을 낳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래서 왕보다 대접받았다. 필자가 공자를 거론하는 이유는 지식은 지식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밭은 농부의 목적이 아니다. 밭은 수단이고 목적은 수확이다. 지식은 수단이고 목적은 대접받는 거다. 소피스트는 대접받지 못한다. 어용은 대접받지 못한다. 아전도 대접받지 못한다. 원래 지식인은 다 어용이거나 아전이거나 소피스트다. 베토벤은 최초로 악보를 팔았다. 대접받았다. 원래 악사는 궁중에 전속되어 임금을 찬양하고 임금이 던져주는 쇠푼을 챙기는게 일이었는데 말이다. 살리에르는 충직한 노예처럼 임금을 찬양했는데 모짜르트는 잘난 척 개기다가 죽었다는게 영화 아마데우스 줄거리다. 개기면 죽는다. 그게 지식인의 운명이다. 팟캐스트에서 말했지만 원래 시인은 어용이었다. 계관시인이라고도 한다. 이백도 궁중에서 임금을 찬양해서 밥 빌어먹었다. 김삿갓도 양반집 행랑채에 머무르며 과객질 하는데 역시 본질은 양반의 체면을 세워주는 거였다. 당호를 써주거나 현판 글씨를 써주거나 해서 밥 빌어먹었다. 서당 훈장도 걸핏하면 양반집 도련님에게 매 맞는다. 서당은 보통 양반집 행랑채에 차려진다. 양반이 숙식을 제공하면 도련님의 친구들이 학동이 되어 행랑채에 모인다. 도련님이 훈장의 상투를 쥐어뜯고 쪼인트를 까는건 예사다. 훈장이 도련님 비위를 못 맞추면 바로 쫓겨난다. 조선시대 2류 지식인의 참담한 모습이다. 요즘도 교사가 제일 만만하다. 어용 아니고 아전 아니고 소피스트 아닌 참 지식인이 있는가? 노자는 아전도 못 되는 성문지기다. 한비자는 임금 눈 밖에 나서 죽었다. 선비들은 초야에 묻힌 척 입소문 내며 임금의 부름을 기다리다 쪽팔려서 죽었다. 정여립처럼 나 여기있는디를 과하게 외치다가 역적으로 몰려죽기도 했다. 한경오가 왜 삐딱선을 타는가? 그게 다 인맥놀음이다. 문까 후미에를 해야 그들의 배타적인 이너서클에 들 수 있다. 인간이 죽는 것은 맥락을 잃기 때문이고 인간이 사는 것은 스승과 제자와 동료와 의리로 엮어진 구조 안에서 대접받기 때문이다. 이념이란 것은 야 가자! 하고 부르러 오는 것이다. 불러주는 것이 대접이다. 개는 불러주지도 않는다. 소도 불러주지 않는다. 사람은 이름이 있다. 불러주라고 있는 이름이다. 부름을 받아야 한다. 서열정리가 되어야 한다. 인간이 되어야 한다. 한경오처럼 인맥에서 밀려날까봐 아등바등하며 기생충 서민의 후미에짓 비참한 거다. 나 잡놈이야 김훈, 나 사악해 장정일도 마찬가지. 이외수도 외롭다. 혼자 화천에서 그러고 있으면 문단권력의 지배자들이 비웃는다. 공자가 위대한 인물인 것은 지식인의 신분을 높였기 때문이다. 이국종은 떠봤자 아전이다. 아전도 아니고 소피스트도 아니고 어용도 아니고 지식인의 참된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류의 의사결정그룹에 드는 것이다. 인류문명의 두뇌로 활동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의리다. 의리를 조직하는 방법은? 인지의신예다.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다. 불을 질러야 한다. 이기는 팀에 들어야 한다. 머릿속에 잡다하게 집어넣는 것은 아전이나 할 일이요 선비가 할 일은 뜻을 세우고 뜻을 일으켜 이기는 팀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쳐들어가서 벼슬하라고 했다.
어용지식인 - 문화 쪽에 있으면 일단 어용이라고 보면 된다. 옛날에는 임금의 비위를 맞추는게 어용이지만 요즘은 대중의 비위를 맞추는게 어용이다. 시장원리다. 임금이 돈을 주고 시장이 돈을 준다. 책장사하는 류시화나 강신주나 법륜의 패거리들이 대표적인 어용이다. 노자 패거리도 기발한 궤변을 연구해서 밥 먹는 소피스트다. 문과출신은 다 소피스트고 이과출신은 아전이다. 한때는 한국인 중에 존경할만한 스승이 있을까 해서 살펴봤는데 없더라. 강준만? 풉! 최장집? 풉! 송두율? 헐! 백낭청? 헐! 없다. 그들은 모두 배타적인 이너서클에 매여 전전긍긍하는 노인네에 불과하다. 천하를 논할 담대함이 그들에게 없다. 꼰대짓이나 하고 앉아있다. 민중이 사자후를 필요로 할 때 그들은 침묵했다. 왜? 졸장부가 겁이 나서 숨어 있었던 거다. 진중권, 홍세화, 김용옥 부류 양아치떼는 거론할 것도 없고. 글자 안다고 지식인이겠는가? 그들은 공자가 혐오한 시골텃세 향원에 불과하다. 강호의 의리를 일으켜야 한다. 불을 질러야 한다. 변방에 숨어 시샘내지 말고 몸을 일으켜 중앙으로 쳐들어가야 한다. 천하인이 그립다. |
저는 동렬님의 영향을 받아 공자파인데, 어제 도교 서적과 도덕경 원전을 집에 쌓아두고 읽으시는 노자파 선생님을 만나 한참을 이야기 나눴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어떤 깨달음의 알맹이를 찾으려 하는 게, 전제가 달라 대화자체가 안 되더라구요. 공자를 예만 강조한 껍데기로 몰아붙이면서 예만 가지고는 안된다 그러시는데, 연배가 저보다 한참 높아서 반박도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전에 쓰신 글대로 예는 공자의 직업이고, 공자의 본질은 그런게 아니라, 3000 제자를 조직하고, 제나라의 칼군무에 제압당하지 않고, 세종이 집현전을 만든것처럼 학문의 체계와 세력을 만든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여튼 평생 노자 연구한 강력 노자파 만나면 정말 대화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