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좋은 선택은 선택이 아니고 나쁜 선택만 본인의 선택이다. 어차피 나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차선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이 차선인가다. 좋은 선택은 위로 올라가는 선택이다. 그러나 자연계에서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세상은 마이너스니까. 그렇다면 위에 있는 자들은 어떻게 그 자리로 올라갔을까? 그들은 사실 낙하산 타고 떨어진 것이다. 올라간게 아니고 내려왔다. 낙하산은 언제라도 외부에 있다. 그들은 뒤로 남의 도움을 받았다. 그 경우 자신의 결정이 아니라 도와준 사람의 결정이다. 그것을 자신의 의사결정으로 착각하는 데서 안철수들의 코미디가 시작된다. '나는 서울대를 가겠어.' 이는 부모에게 잘 보이려는 복종행동이다. 이 경우는 자녀를 세뇌시킨 부모의 의사결정이지 마마보이 안철수의 의사결정은 아니다. 평생 남의 도움만 받고 살아온 박근혜들은 당당하게 남의 도움을 요구하는 뻔뻔스러움을 발휘하여 기세를 올리기도 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벽을 만난다. 2등까지는 되는데 1등부터는 안 먹힌다. 2등은 남의 도움으로 가고 1등은 자력으로 가는 것이다. 자력으로 가려면 자신이 손해보는 나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으며 이왕 나쁜 결정을 할 것이면 반대급부를 생각해야 한다. 어차피 내가 손해볼 것이 틀림없다면 대가로 동료를 얻고 우정을 쌓고 팀을 이루어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현명한 사람들은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대신 손실을 줄이는 방법을 써 왔다. 어차피 볼 손실이라면 맥락을 따라가는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는 답이 없다.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다. 적절히 다른 사건으로 갈아타는 수밖에. 매를 잃었으면 꿩이라도 챙겨야 한다. 실익을 손해봤다면 명분이라도 얻어내야 한다. 종로를 잃었으면 대신 부산이라도 챙겨야 한다. 종로와 부산을 다 잃으면 대통령이라도 먹어야 한다. 노무현의 방법이다. 대통령 만들기는 사실 자신이 하는게 아니라 국민이 하는 것이다. 노무현은 언제나 나쁜 선택을 했다. 종로를 잃고 부산을 잃었다. 대신 국민이 벌인 대통령 게임의 대표 운전수가 되었다. 게임을 갈아탔다. 내가 세상을 다 먹는 일은 없다.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 세상의 게임에 내가 편승해야 한다. 그러려면 애초에 내 안에 큰 이야기를 갖추어야 한다. 천하의 울림과 공명해야 한다. 나라고 하는 한계를 넘어야 한다. 타인이 나의 다른 버전임을 깨달아야 한다. 너를 보았거든 곧 대립하지 말고 그를 나의 다른 모습으로 여겨야 한다. 세상에 너도 없고 나도 없으며 나와 복제된 나의 다른 버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훈련이 된 사람만이 부단히 게임을 갈아탈 수 있다. 천하의 게임을 읽어들여야 한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게임을 내가 설계할 때 내가 그 게임의 대표 운전수가 될 수 있다. 인생에 얻는 것은 없다. 단지 나의 다른 버전들을 대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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