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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860 vote 1 2017.06.08 (23:27:53)

     

    양자역학의 해석과 구조론


     ◎ 양자중첩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물리적 상태인가?

    ◎ '측정'이란 무엇인가? '측정' 자체에도 슈뢰딩거 방정식이 적용될 수 있는가? 측정기구와 파동함수는 어떤 상호작용으로 확률을 만드는가?
    ◎ 양자역학은 반드시 비결정론적인가?
    ◎ 특수 상대성 이론 등 다른 물리학 이론과 충돌하는 면모는 없는가?


    구조론은 여러모로 양자역학과 유사하다. 그런데 구조론이 먼저다. 필자가 구조론의 핵심 아이디어를 착상한 것이 1981년인데 반면 양자역학은 여전히 현재진형이다. 왜냐하면 ‘양자역학의 해석문제’ 때문이다. 나무위키를 참고하면 위에 예시한 양자역학의 해석문제가 걸려있음을 알 수 있다. 1950년대에 아인슈타인과 보어는 이 문제로 크게 격돌했다고.


    현재 학계에서는 되도록 이 문제는 건들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모양이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학계에서 매장당하는 수가 있다고. 이는 수학과 비슷하다. 공리야 어떻든 계산이 맞으면 맞는 걸로 친다. 왜 그런지 설명하지 않는다. 실험결과를 예측하고 예측대로 맞아떨어지는지만 판단한다. 분명히 한계가 있다. 구조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구조론의 대전제는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과 질량 따위를 미리 정해놓고 시작하면 반칙이다. 구조론은 의사결정 문제, 사건의 문제, 에너지의 문제, 공리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냥 그렇다치고 계산해보니까 맞더라가 아니라 원리적으로 왜 그런지를 설명한다. 간단하다. 답은 복제다. 원형이 복제되었으니까 그런 거다.


    아버지와 아들이 닮았다. 그렇다면 손자도 아들과 닮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과연 그런지는 손자를 낳아봐야 안다. 손자를 낳았더니 과연 닮았더라. 맞네! 답 나왔네. 알았네. 지식이네. 이런 거다. 현재 수학과 양자역학은 이 수준이다. 왜 닮았는지는 아직 설명하지 않았다. 복제했으니까 닮았다. 원리를 모르면 위태롭다. 우연히 닮은 사람을 만났다.


    혹시 어린 시절에 헤어진 형제가 아닐까? 아니다. 그냥 우연히 닮은 사람을 만난 것이다. 제대로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많은 사람은 양자역학이 제출하고 있는 여러 성과를 어렵게 생각한다. 쉬운 것인데 말이다.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왜 그게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적 직관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지? 경험적 직관이 되레 틀린 것이 아닌가?


    말했듯이 동양인들은 수천 년간 소실점을 몰랐다. 어색한 그림을 그려놓고도 그게 어색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민화를 보면 소실점이 맞지 않아 어색하다. 산수화도 어색함을 피하려고 그림을 작게 그려서 그림이 아니라 지도가 되었다. 크게 그리면 어색함이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어색한 것은 1초만에 느낀다. 어색한 것을 못느끼는게 더 이상한 거다.


    양자역학의 성과들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마치 소실점이 잘 맞는 서양화를 처음 본 사람이 동양화와 다르다고 해서 어색하게 생각하는 것과 같다. 동양의 악사가 화음이 있는 서양음악을 처음 들었다면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화음이 없는 게 더 이상하지 않는가? 환자만 오면 ‘귀신이 붙었네’ 한마디로 해결하는 무당이 서양의사를 처음 만났다면?


    역시 어색하게 느낄 것이다. 사람이 병에 걸리면 용한 스님을 불러 독경을 하거나 혹은 영험한 무당을 불러서 푸닥거리를 하는 게 맞지 주사기 같이 얄궂은 것을 들고 뭐하는 짓이야? 그러나 말이다. 세상은 조금 복잡해야 오히려 안심이 되는 거 아닌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면? 너무 썰렁하잖아. 마을에는 이장이 있고 도시에는 시장이 있는 거다.


    그걸로 끝인가? 아니다. 국가에는 정부가 있다. 정부에는 대통령이 있다. 뿐이랴? 의회도 있고 사법부도 있다. 외국도 있고 유엔도 있고 각종 국제기구도 있다. 뭔가 잔뜩 있는 거다. 스크린에 영상이 있으면 배후에 필름이 있다. 뿐이랴. 그 배후에 배우도 있고 감독도 있고 영화사도 있고 배급사도 있고 극장도 있고 뭔가 잔뜩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양자역학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스크린에 영상만 있고 그 배후에 필름이나 배우나 감독이나 극장이나 이런 게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당연히 뭔가 있어야 한다.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면 보이지 않아도 그 화살을 날려보낸 활도 있고 그 활을 쏜 궁수도 있다. 반드시 몇 단계가 더 있다. 그것이 우리의 경험적 직관이다. 양자역학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으로 끝난다면 너무 썰렁하잖아. 세상이 그리 간단해? 말이나 돼? 이쯤되면 우리가 알고있는 지식영역 너머에 벗겨야 할 양파껍질이 한 겹 더 있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구조론이 없는 세상이란 너무 썰렁하지 않은가? 라디오는 있는데 방송국이 없다면 그게 믿어져? 분명 질병이 있는데 병원체가 없다면 그게 믿어져?


    음양의 조화가 깨져서 병이 났다고라고라? 이건 너무 썰렁한 이야기다. 허무하잖아. 느낌 와주잖아. 직관적으로 이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직관적으로 뉴턴적 기계론적 세계관 이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상이 톱니바퀴로 가득한 시계 비슷하다고? 말이나 돼? 탈레스가 2500년 전에 이미 세상은 물렁한 것이라고 설파했다.


    2500년 전에 이미 확립된 음양의 조화개념이나 변화를 뜻하는 주역의 역易 개념에 양자역학의 대칭개념이 들어가 있다. 이 세계는 물렁하고 부드럽고 애매한 세계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이와 같은 개념이 나온다. 시간이 느려진다는 이야기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설화에 나와 있다. 고대인들도 세상의 근본을 어렷품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뒤늦게 나타난 뉴턴이 이 모든 것을 뒤집고 시간과 공간이 규격화된 딱딱한 우주론을 들고나왔다면 터무니없는 거다. 뉴턴의 세계야말로 우리의 경험적 직관과 어긋나는 세계가 아니던가? ‘미리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이게 맞는 세계관이지 시간과 공간을 미리 정해놓는다면 이거야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던가? 이건 뭐 야바위 짓이다.


    양자역학이야말로 탈레스의 물 일원론과 맞고, 동양의 음양론과 맞고, 주역의 역易 사상과 맞고, 불교의 연기사상과 맞고, 노자 도덕경의 세계관과 맞고,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설화와 맞고, 장자의 나비와 맞다. 양자역학이 어렵게 생각되는 것은 그것을 표현할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이 휘어지고 혹은 느려진다는 식은 부적절한 언어표현이다.


    첨단과학과 일상언어가 만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일상언어는 귀납어고 과학의 본질은 연역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인간의 언어가 문제투성이다. 작용과 반작용에서 반작용측에 주목할 뿐 작용측에 주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인간의 눈과 귀와 코와 몸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모두 반작용이기 때문이다. 질병은 몸으로 느끼지만 병원체인 세균은 볼 수 없다.


    추론해야 한다. 그것을 논한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 사건은 복제된다. 추론은 사건의 복제를 되짚는다. 방송국에서 라디오 찾기는 쉽다. 방송을 끄면 라디오가 꺼지니깐. 곧 반응하는 것이다. 라디오가 방송국을 찾기는 어렵다. 라디오를 꺼도 방송은 꺼지지 않으니깐. 즉 반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금까지의 과학은 라디오가 방송국을 찾는 방법이었다.


    구조론은 방송국이 라디오를 찾는다. 즉시 반응한다. 무엇을 켜고 끄는가? 사건을 켜고 끈다. 의사결정을 끄고 켠다. 에너지를 켜고 끈다. 결론적으로 과학은 근본문제인 의사결정의 문제, 사건의 문제, 에너지의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나는 묻는다. 사건이란 무엇인가? 에너지란 무엇인가? 의사결정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해 답을 시도한 사람은 없다.


    이 문제를 파고드는 과학은 없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얻는 데이터는 사건의 결과다. 누구도 사건의 원인측은 바라보지 않았다. 왜? 그것은 작용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심은 반작용측에 맞추어져 있다. 과학이 에너지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 의미는 모호하다. 에너지는 ‘일의 원인’이다. 그 원인이 뭔데? 과학은 이 부분을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일은 눈에 보인다. 물체를 어느 만큼 이동시키면 일이다. 그 원인은? 모른다. 걍 에너지라고 명명한다. ‘거시기’와 유사하다. 과학에서 에너지라는 단어를 지우고 거시기를 넣어도 그럭저럭 의미가 통한다. ‘알 수 없는 어떤 그것.’ 정도의 의미다. 구조론으로는 의사결정단위총량이다. 구체적으로는 방향을 바꾸는 횟수다. 질량은 방향을 바꿀 때 저항값이다.


    방향을 바꾸려면 그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그것을 결정하는데 관성을 깨뜨릴 정도의 비용이 소모된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여 있다는 거짓말로 이 문제를 쉽게 비켜간다. 그러나 미시세계에서는 시공간이 무시되므로 곤란해졌다. 시간과 공간은 제 3자가 개입했을 때 유의미하다. 거시세계는 언제나 제 3자가 있다. 관측자가 개입하여 있는 것이다.


    구조론은 닫힌계를 쓴다. 곧 질이다. 닫힌계는 외부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전제를 가진다. 우리가 가족이니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닫혀 있다는 전제를 까는 것이다. 그런 거 없다. 비행기 타고 외국 나가면 그만이다. 이민 가면 된다. 가족은 헤어지면 그만이다. 원리적으로는 그게 없다. 그딴 것들은 자의적이고 암묵적인 합의에 불과하다.


    어쨌든 의사결정에는 선을 긋는 작업이 필요하다. 친하지 않아도 부부가 되면 약속을 지키는 걸로 치고, 가족으로 치고 그런 척한다. 그게 편하니깐. 인간 사회에서는 그런 어설픈 규칙이 통하지만 자연은 그런 식으로 봐주는거 없다. 어설픈 규칙은 판판이 다 깨진다. 미시세계로 들어가면 모든 것을 엄격하게 따져 묻는다. 드러나는 것은 규칙의 부재다.


    시간과 공간은 대칭과 호응을 통해 정하는 2차적인 것이다. 최초에 2가 있었다. 1은 있을 수 없다. 1로는 사건이 되지를 않기 때문이다. 2차 충돌해서 사건을 만든다. 여기서 공간과 시간은 없다. A가 B를 때렸는지 B가 A를 때렸는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둘은 멀어지든가 혹은 충돌하든가 뿐이다. 전후도 없고 좌우도 없다. 먼저와 나중도 없다.


    그것들은 기승전결의 기에서 승으로 넘어가면서 발생한다. 축이 움직여야 방향이 생긴다. 처음은 양떼만 있다. 동서남북은 없다. 일정한 조건에서 양치기가 발생한다. 이때 중앙과 주변이 확정된다. 양치기가 움직이면 좌우가 성립한다. 여기까지에서 순서는 있지만 시간은 없다. 거의 동시에 성립한다. 축의 이동이 반복되면서 시간성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 구조가 에너지를 처리하면서 거기서 빠져나온 것들을 통해 우리의 눈에 보이는 데이터가 성립된다. 최초에는 좌우대칭이 있을 수 없고 오직 균일과 불균일만 존재한다. 최초에는 균일상태다. 어떤 이유로 불균일이 주어지면 그 불균일이 처리된다. 그리고 다시 균일해진다. 일정한 조건에서 그 불균일이 내부에 갇히면 외부와 구분해 닫힌 계가 성립된다.


    이러한 과정은 디지털적이다. 우리는 아날로그의 세계 곧 제 3자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나 어떤 중요한 의사결정의 현장에서는 언제나 디지털적으로 변한다. 연애를 해도 그렇다. 결혼이냐 비혼이냐 둘만 존재할 뿐 0.1의 결혼은 없다. 디지털의 세계는 언제나 양자택일이다. 현역과 예비역 중에 반현역이나 사망과 생존 중에 반죽음이나 이런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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