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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565 vote 0 2014.09.21 (17:36:05)

 

    캐릭터 위주의 글쓰기


    현대인의 글쓰기라면 캐릭터의 비중이 9할을 차지한다고 보아도 좋다. 이는 소설이든 만화이든 드라마든 칼럼이든 영화든 상관없다. 논객이 정치칼럼을 쓰더라도 캐릭터 구축에 주의해야 한다. 


    어떤 시시콜콜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은 신문기자의 역할이고, 논객의 역할은 거시적으로 흐름을 짚어주는 것이다. 논객의 캐릭터에서 단기전이냐 장기전이냐, 제한전이냐 전면전이냐, 생존전이냐 세력전이냐가 갈리고 사건을 판단하는 방법은 이러한 전략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논객이 큰 틀에서의 방향을 판단하고 구체적인 사실은 독자가 판단한다. 선장은 항해의 목표를 일러주고 나머지는 선원들에게 맡긴다. 이것이 쌍방향 의사소통 시대의 방법이다. 바로 현대-스마트시대의 특징이다.


    예컨대 이런 거다. 말 못하는 벙어리가 있다고 치자. 말싸움을 하면 벙어리가 불리하다. 불만이 있으면 어떻게 할까? 조용히 뒤로 물러난다.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서 두꺼비집을 내린다. 모두를 일시에 침묵시키는 방법이다. 


    그래도 안 되면? 아예 집을 폭파해 버린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입씨름으로 이기려 하지만 말솜씨가 없는 사람은 밥상을 던지는 방법을 쓴다. 이런 현상은 현실에서도 종종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캐릭터다.


    주인공을 벙어리로 설정하거나 혹은 주인공에게 대사를 주지 않는 방법을 쓰는 작가도 많다. 고르고 13만 해도 원래 주인공이 해설을 겸하느라 말이 많았는데 어느날 작가가 방침을 바꾸어 주인공의 대사를 크게 줄였다고 한다. 


    나중에는 아예 주인공의 대사가 한 마디도 없는 편이 나올 정도. 아멜리 노통브의 ‘오후 4시’에서도 과묵한 베르나르댕은 대사를 거의 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웃을 고문한다. 주인공이 침묵해야 독자가 발언하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구축될 때 작품은 독자와의 쌍방향 대화가 된다. 예컨대 고르고 13이라고 하자. 그는 세계 최고의 스나이퍼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라면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공식이 등장한다. 고르고 13의 특징은 운으로 이기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은 악당이 강하고 주인공이 약한데 악당이 다 이겨놓고 죽어가는 주인공 앞에서 쓸데없는 일장연설을 하다가 되치기를 당한다. 주인공이 승리하긴 했지만 사실은 주인공이 패배한 싸움이다. 


    최근에 개봉한 타짜 2만 해도 주인공 대길이 도박실력이 아귀에게 미치지 못한다. 삼촌의 방법으로 겨우 이겼으나 사실 납득하기 어렵다. 흥행은 했지만 평이 안 좋은 이유다. 군도는 더하다. 하정우는 사실 강동원에게 졌다. 칼솜씨가 딸린다. 우연히 습득한 기관총으로 장고 흉내를 내본건 웃겼다. 이건 아니잖아.


    최고의 스나이퍼라면 주인공이 패배할 확률을 0으로 만들어놓고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저렇게 될 수도 있는 선택의 여지를 차단해야 한다. 고르고 시리즈가 최장을 기록하는 이유다. 우려먹고 또 우려먹고 또 재탕하고 삼탕해도 더 우려먹을 건덕지가 남는 이유는 캐릭터의 힘에 의한 쌍방향성 때문이다. 주인공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을 때 그것은 가능하다.


    슬램덩크의 인물이나 무한도전의 7인도 각자 자기 캐릭터를 만들어놓고 자기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지만 캐릭터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 방법으로 해야한다는 그런게 있다. 그 과정에서 독자가 참견한다. 독자에게 발언권을 주는 방법으로 생명력을 이어가는 것이다.


    아래는 엔하위키 검색이다.


    “캐릭터는 한번 만들어놓으면 창작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제 갈 길을 가기 때문에', 만들 때부터 치밀한 설정을 가져야 하며 그러고 나서도 정교하게 이야기를 진행시켜야 한다. 잘 만든 캐릭터는 알아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므로 창작자 입장에서는 편할 뿐만 아니라 부가가치성도 가져 캐릭터 관련 상품으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반면 대충 만들고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전개할 경우 나중에 창작자가 제어하려 해도 자기 멋대로 가기 때문에 작품이 망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수많은 창작자들에게서 들을 수 있다."(중략)


    파울료 코엘료는 '오, 자히르'에서 '소설은 작가가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라 받아쓰는 것 뿐'이라 했고 덴마의 양영순은 '마지막 장면을 구상해 두니 알아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했다. 조앤 롤링 또한 마지막 장면을 구상해 둔 것이 해리포터 시리즈를 완결낸 것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전민희 작가도 캐릭터가 확고하게 잡히면 스토리는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밝힌 바 있다.(엔하위키)


    캐릭터는 자체의 논리를 가진다. 그 논리는 모두에 의해 공유되므로 작가가 임의로 변개할 수 없다. 예컨대 지구를 지키는 슈퍼맨이라면 어떨까? 실수로 슈퍼맨이 방귀를 뀌었는데 방귀폭풍에 백악관이 대기권 밖으로 날아가 버리는 수 있다. 


    굉장히 많은 사람이 잔소리를 하며 개입하는 것이다. 슈퍼맨은 공인이다. 쌍방향 의사소통이 시작된다. 독자의 잔소리에 의해 슈퍼맨의 행동이 묶인다. 거기서 극을 이끌어가는 힘이 나온다.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한쪽 팔이 없는 외팔이 검객이라든가 혹은 장님무사 ‘자토이치’라든가 심지어 ‘아기를 동반한 무사子連れ狼’가 캐릭터의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주인공에게 핸디캡을 준다.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작가의 행패에 아이큐를 도둑맞은 예와 같다. PD의 횡포에 의해 졸지에 바보된 바보형 정준하도 마찬가지다. 다만 노홍철의 음치 핸디캡은 진짜라고 한다. 보통은 불청객 구영탄처럼 어떤 이유로 여자에게만은 꼼짝못한다는 설정으로 간다.


    캐릭터는 고르고 13이나 슈퍼맨처럼 너무 강해서 제약을 당하거나 혹은 외팔이 검객처럼 작가의 무리한 설정 때문에 팔이나 눈을 도둑맞는 식으로 행동반경에 제약을 당하며 그 때문에 독자는 주인공의 행동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와 독자의 게임이 된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일관성을 부여함으로써 독자를 납득시켜야 한다. 슈퍼맨이 비열한 속임수를 쓴다거나 혹은 고르고 13이 졌는데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났다거나 하는 식의 전개는 불능이다. 그것은 흥부가 도둑질을 하거나 놀부가 자선사업을 하는 이상으로 말이 안 된다.


    현대인의 글쓰기는 캐릭터를 앞세우는 것이어야 하며 논객은 사실규명보다 방향제시에 주력해야 하고, 작가는 의외성을 줄여야 한다. 뻔한 이야기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만화든 소설이든 장기연재하는건 대개 뻔한 이야기다. 


    도박만화라면 절대로 고수가 하수를 이겨야 한다. 검객이 등장한다면 주인공의 실력이 더 뛰어나야 한다. 그러나 한국영화는 거의 대부분 주인공의 실력이 한참 미치지 못한다. 언제까지 슈퍼스타 감사용으로 만족할 것인가?


    주인공의 실력이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작가의 실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이기려면 주인공이 천재여야 한다. 주인공이 천재이려면 작가도 천재라야 한다. 작가의 무식이 진짜 문제인 것이다. 명량의 감독은 활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는데 정작 활을 모른다. 명량을 만들었는데 정작 해전을 모른다. 거의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니 영화가 될 리가 없다.


    캐릭터는 간단히 주인공을 궁지에 몰아 주인공의 행동반경을 극도로 제약해놓고 그걸로 독자를 낚는 것이다. 인물을 계속 막다른 길로 몰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외팔이, 외눈박이 등 신체적 핸디캡을 주거나 혹은 아이큐를 떨어뜨리거나 혹은 사랑에 빠지거나 혹은 너무 유명한 공인이 되거나 너무 강해서 탈이거나 혹은 결벽증, 강박증 따위로 핸디캡을 가지거나 혹은 악당이 설계한 함정에 빠지거나 하는 식이다. 어떻게 하든 주인공의 길은 외통수여야 한다. 


    이때 주인공은 강한데 약하거나, 천재인데 바보거나, 유능한데 무능하거나 하는 이중성을 가지게 된다. 일은 잘 하는데 여자 앞에서만 쑥맥이 되는 식이다. 이러한 복합적 성격이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무한도전의 길은 그러한 이중성이 없어서 캐릭터가 망한 예다. 불평불만 많은 투덜이인데 알고보니 잔꾀가 많더라는 식의 이중성을 가져야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가 있다. 


    주인공이 뒤뚱대며 의사결정하는 지점을 노출하는 것이다. 정답은 토대의 공유다. 주인공이 핸디캡을 가지면 모두가 공유하는 토대를 건드리게 된다. 토대를 건드릴 때 독자는 전율한다. 


[레벨:3]파워구조

2014.09.25 (01:54:01)

제가 평소 고민하던 지점이라 그런지, 구조론 싸이트 들어온 이래 최대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날입니다.

한니발, 타일러 더든, 디스트릭트 9, 택시 드라이버, 등등 모든 캐릭터에 대한 비밀이 드디어 풀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해요 김동렬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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