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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9627 vote 0 2014.09.18 (11:43:42)

 


    하드보일드식 글쓰기


    현대인의 글쓰기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이어야 한다. 하드보일드라 하면 느와르풍의 냉혹한 추리소설이나 비정한 범죄소설을 떠올리기 쉬운데 여기서 말하는건 ‘게임의 법칙’이다. 현대는 ‘이야기의 시대’가 아니라 ‘게임의 시대’이다. 게임의 룰은 단순해야 한다. 그래서 하드보일드다.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서 ‘내 이야기 한 번 들어볼래?’가 아니라 ‘나와 게임 한 판 할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문명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봉건적 글쓰기는 TV와 영화가 없던 시절의 글쓰기다.


    신분상승의 열망에 들뜬 부르주아 신분의 독자들은 사치스런 귀족들의 거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몹시 궁금했다. 궁정무도회의 분위기가 어떤 건지도 알고 싶었다. '아 TV 보라고.' '아 그때는 TV가 없었다고.'


    아직도 옛날식 글쓰기에 얽매여 낡은 방식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다. 부자들의 안방을 엿보는 김수현 드라마도 그렇다. 저급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똥이다. 근대의 글쓰기는 한 마디로 인상주의다.


    인상주의는 내용과 형식에서의 대칭구조를 추적한다. 대칭은 전방위로 존재하고 그 대칭의 정점에는 작가와 독자의 대결구도가 있다. 인상주의는 작가와 독자가 벌이는 한 판의 정직한 게임이다.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룰이다. 반칙은 안 된다. 독자를 가르치겠다는 계몽주의는 반칙이다. 독자를 감동시키겠다는 찌질주의도 반칙이다. 하드보일드라 하면 추리소설이고 이는 범죄자와 형사 사이의 게임이다.


    그게 사실은 독자와 작가 간의 두뇌싸움이다. 추리소설을 읽은 독자는 ‘야 작가양반 머리 좋네.’ 하고 감탄한다. 실패다. 아주 재롱을 피워라. 교묘한 트릭이나 극적인 반전은 하드보일드가 아니다.


    셜록 홈즈나 괴도 루팡은 저급한 재롱잔치에 지나지 않는다. 독자를 희롱하려 하면 안 된다. 그건 정직하지 않다. 하드보일드는 굵은 고딕체다. 원래는 완숙한 달걀을 의미하는데 굵고 무뚝뚝하다.


    선이 굵고 무뚝뚝해야 대칭구조가 드러난다. 만화로 치면 '고르고 13'이다. 007의 제임스 본드처럼 미녀에 빠져 헤헤거리면 추태다. 박희태 아저씨 본심 들키면 곤란하다. 식스 센스급 극적인 반전은 없어야 한다.


    넌센스 퀴즈내듯이 독자와 두뇌싸움을 벌이자고 덤비면 피곤하다. 진정한 하드보일드는 첫째 작가와 독자 사이의 게임이며, 둘째 등장인물 간의 게임이며, 셋째 설정된 상황 속에서의 게임이다.


    하드보일드는 결코 독자를 이기지 않는다. 다만 계속 다음 단계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계속 가는 거다. '고르고 13'이 악당을 해치워도 사건은 종결되지 않는다. 세상이 거대한 게임판임을 보여준다.


    갈림길에서 주인공은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에는 댓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또다른 갈림길 앞에 선다. 주인공의 선택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독자가 납득할만한 선택이어야 한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옳은 선택일 필요가 없다. 주인공은 그다지 착하지 않다. 감동적인 선택일 이유도 없다. 단 어떤 경우에도 책임은 진다. SNS에서의 글쓰기도 이와 같은 게임의 형태로 가야 한다.


    눈물 쥐어짜는 감상주의나 혹은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훈계조라면 곤란하다. 개인의 감상은 일기장에 적어라. 독자를 가르치려들지 말라. 그렇다면 남는건 게임 뿐. 그러나 피곤하게 머리싸움은 하지 마라.


    인생은 갈림길의 연속이다. 새로운 상황이 주어진다. 거기에 경우의 수가 있다. 주인공은 선택해야 하며 선택에는 댓가가 따른다. 그리고 계속 가는 거다. 하드보일드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미션을 수행한다.


    술주정뱅이 부코스키에게는 우편배달이 험난한 미션이었다. 배달경로에는 사나운 개, 시비 거는 창녀, 골목의 양아치, 한 잔의 유혹이라는 부비트랩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돌파해서 만렙을 채워야 한다.


    인생은 부비트랩은 술과 여자와 도박과 마약과 게으름과 욱하는 기질과 친구의 배신과 나쁜 상사다. 주인공은 동맹을 결성하거나 혹은 퀘스트를 수행하고 아이템을 모아서 난관을 돌파할 수 있다.


    ‘야 너희들 이거 할 수 있어?’ 하는 느낌이다. SNS에서의 미션은 정치적으로 까는 거다. 하수의 방법은 곤란하다. 절대 깔 수 없는 것을 까야 한다. 그것도 아주 점잖게 그리고 독하게 까야 한다.


    절대 까면 안 되는 인물이 있다. 기독교도라면 예수 형을 깔 수 없다. 예수를 깐다면 그게 하드보일드다. 어떻게 예수를 까지? 역시 게임의 규칙 흔들기다. 만화가 조석은 종종 예수를 등장시킨다.


    이말년은 석가 형님을 불러오는 방법을 쓴다. 나이로 보나 뭐로 보나 석형이 예수보다 선배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상황 안에서 납득할만한 논리를 제시하는가다. 누가 이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론을 내리자. 인간의 뇌를 긴장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선과 악의 대립구도를 열어 '누가 우리편이냐'고 질문하는 잔인한 방법이 있다. 고수와 하수의 대결로 가면 이 질문을 피할 수 있다.


    선악구도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알아채야 한다. 변사또만 해도 도움을 줄 변호인이 없었던 거다. 관행대로 했을 뿐인데. 관습헌법 좋잖아. 새누리는 다 그렇게 하는데. 박희태도 멀쩡한 판에.


    계몽주의 곤란하다. 누구를 중 2로 아냐고. 감동주의 찌질하다. 울려고 극장 가냐고. 허무주의 찌질하다. 하루키 따위 던져버려라. 기형도는 짜증난다. 강박증에 빠진 10대를 위무하는 글쓰기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노래하던 민주화 시절 니들만 고생했냐? 데모 안한 애들도 나름대로 맘고생 했다고 스스로를 위무하는 소년의 글쓰기다. 수행해야 할 다음 단계의 미션이 태산인데 말이다.


    인류가 공유하는 토대를 드러내지 못하는 문학은 가짜다. 김수현 드라마는 문학이 아니다. TV가 없던 시절의 봉건주의 프레임을 버려야 한다. 정밀묘사는 필요없다. 교훈, 감동, 눈물 따위 필요없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세 단어로 끝내야 하드보일드다. ‘Veni Vidi Vici’ 이 안에 대칭도 있고 라임도 있고 토대의 공유도 있다. 왔다는 것은 카이사르다. 보았다는 것은 게르만족이다.


    이미 대칭을 이루었다. 이겼다는 것은 모든 로마 시민의 승리다. 이는 토대의 공유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V와 I의 반복이 라임을 이룬다. 이는 독자와의 게임이며 충분히 독자를 배려한 것이다.


    ◎ 헤밍웨이식 쓰기
    헤밍웨이야말로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개척자라 하겠다. 그는 의도적으로 새로운 문장 스타일을 실험했다. 문학을 넘은 과학의 경지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탐구되지 않으면 가짜다. 노인과 바다는 간결한 문체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노인은 바다와 대결한다. 대칭이다. 노인은 참치와 대결하고 또 상어와도 대결한다. 라임과 같다. 노인은 패배했다. 자연스럽게 소년에게로 미션은 옮겨갔다. 그러면서 노인과 바다의 경계는 허물어졌다. 노인의 주름은 위대한 바다처럼 보인다. 자연과 인간은 크게 연동되어 있다. 세상은 선과 악의 대결처럼 무수히 대칭되어 있지만 그러한 대칭을 추적해 가다보면 세상 전체와 연결되어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노인과 바다를 두고 인간의 의지에 대한 찬양이나 자연에 대한 동경이라는 식의 계몽주의로 접근한다면 똥이다. 빌어먹을. 감동하지 말란 말이다. 이딴거 읽고 감동하는 자는 글 읽을 자격이 없다. 단 추임새는 넣어라. 왜냐하면 미션을 수행할 다음 타자는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 아멜리노통브식 쓰기
    아멜리 노통브는 단번에 사람을 죽이다. 그의 글쓰기는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을 초월해 있다. 그는 미묘한 공기의 떨림에 집착한다. 그는 어색하고 부조화스런 세상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그의 글에서 재미있는 것은 언제나 작가 자신이 곤경에 처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불쌍하다든가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멜리 노통브는 터무니없이 일을 벌여놓고 그럭저럭 위기를 잘 수습해낸다. 그의 출세작 ‘살인자의 건강법’은 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거대한 주제다. 무명의 신인작가가 단번에 프랑스 문학을 때려죽였다. 이거 수습되나? 사실 문학은 오래 전에 죽었다. 오늘날 문학은 작가의 펜끝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서랍 속을 뒤져서 나오는 먼지 투성이 신세다. 이런 식의 대담한 은유로 한 권을 채운다는건 사실이지 아슬아슬한 모험이다. 이야기를 잘못 써서 주인공을 살릴 수 없게 된 만화 작가의 처지다. 주인공이 죽어버린 영화의 속편을 찍어야 하는 감독의 처지다. 어쨌든 노통브는 용케 빠져 나온다. 대담한 게임이다. 핵심은 캐릭터 소개로 단행본 한 권을 채우고 내용은 없다는 거다. 굉장한 인물이 있는데 소개하고 나면 끝이다. 등장하자마자 죽는다.


    ◎ 발자크식 쓰기
    발자크는 리얼리즘 문학의 선구자다. 천성이 보수주의자인 그가 시대를 앞질러 진보적인 문학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은 살바드로 달리를 연상시킨다. 발자크는 19세기 파리를 정밀묘사한다. 인간희극은 썩은 파리의 뒷골목에서 감추어진 도시의 활기를 드러내다. 선악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상호작용의 증가에 주목한다. 그래도 용기백배한 시골 젊은이는 파리로 온다는 식이다. 그 자신이 도박광에 대식가에 탐욕에 빠진 속물이었기 때문인지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허영심에 빠진 자, 어리석은 자, 교활한 자들 사이에서 자기만의 게임을 설계한다. 문학이 가치를 주장해야 한다고 믿는 순간 에너지를 손실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아챘던 거다. 인간희극은 등장인물이 2천명이 넘는 거대한 체스게임판이다. 그는 '아프리카 TV'의 VJ처럼 게임을 중계한다. 인물들은 실패하고 좌절하지만 그 전체가 모이면 거대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적어도 문학에서 그는 진정한 근대인이었다. 오늘밤도 술집으로 손님을 이끌어야 하는 삐끼의 마음으로 길 가는 행인과 대결한다. 어쨌든 그의 승률은 상당히 높다.



    약간 핀트가 다르지만 하드보일드는 사실이지 발자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본질은 근대냐 봉건이냐, 아카데미즘이냐 인상주의냐다. 회화가 인상주의로 바뀌었듯이 문학도 인상주의로 바뀐다.


    이는 독자의 권력이다. 예전에는 리플같은게 없었다. 작가는 씨부리고 독자는 들었다. 이제는 독자의 추임새가 중요하다. 다수의 개드립을 끌어낼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 상호작용의 증대가 정답이다.


    옛날 그림은 초상화나 기록화나 종교화처럼 인간에게 기여하는 목적이 있었는데 카메라의 등장 이후 그 목적이 사라졌다. 이제는 그림 안에서 자체적인 목적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것은? 게임이다.


    인간에게 봉사한다는 관점을 떠나 그림 자체의 내재적인 질서다. 그것이 인상주의다.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쓸 때만 해도 사람들이 제대로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문학은 일종의 교과서였다.


    그때는 소설만 읽어도 유식해졌다. 재미도 주고 공부도 시켜주고 얼마나 좋냐? 바른생활 위고는 빵 한 조각 가져와서 도덕교육부터 시작한다. 따분하다. 그럴 때 뒤마의 삼총사는 즐거운 소풍이다. 실패다.


    의도가 들어가면 근대문학 아니다. 하긴 발자크만 해도 19세기 인물이다. 말하자면 19세기 하드보일드다. 헤밍웨이는 20세기 하드보일드다. 아멜리 노통브는 조금 더 진도나가서 21세기를 모색했다.


    발자크는 인물들 간의 게임을 중계한다. 헤밍웨이는 다 읽고 나서야 이것이 독자와의 게임이었음을 알게 된다. 노통브는 대놓고 독자와의 게임을 시작한다. 노통브 소설에는 조석이나 이말년 느낌이 난다.


    독자들이 작가를 동정하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너 어쩌려고 그래?’ 하드보일드는 게임이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그냥 게임하기 위한 게임일 뿐이다.


    세상이 게임판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진짜다. SNS라면 더욱 그렇다. 독자는 작가에게 ‘야 3초 안에 날 웃겨봐.’ 하는 식의 삐딱한 태도가 된다. 조석과 이말년은 병맛전략을 써서 3초 안에 웃긴다.


    병맛은 사실 발자크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독자를 의식하고 글을 써야 한다. 리플로 개드립 칠 소스를 군데군데 삽입해야 한다. 그게 패러디다. 패러디 해설전문으로 베댓 되겠다는 업자도 나타난다.


    주제넘게 감동을 주려고 하거나 독자를 계몽시키려 하거나 혹은 아예 공부시켜주려고 한다면 그것은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독자가 호구냐? 작가는 미션을 개척하고 그 미션을 독자에게 넘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8]부둘

2014.09.18 (12:28:18)

감히 평하자면 글쓰기에 관한 가장
진보된 방법론이 아닌가 싶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8]부둘

2014.09.18 (13:58:19)

영화의 흐름도 감정이입을 지나
감각이입의 시대에 왔습니다.
그래비티처럼 마이너스 방법으로 뒤뚱거려서
감각을 이입시켜 상호작용밀도를 극대화합니다.
스토리(계몽)는 감정이입(감동)의 도구이고 감정이입은 감각이입(게임)의 수단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9.18 (13:59:34)

감각이입 좋네요. 

[레벨:3]파워구조

2014.09.21 (08:31:59)

부둘님, 그래비티의 마이너스 전략이란 무엇일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8]부둘

2014.09.21 (16:24:52)

글이 길어져 자유게시판에 썼어요~^^

[레벨:2]펄젬

2014.09.18 (16:56:10)

SNS: 까는걸  '관종' 으로 보기도하죠.

한잔의 아메리카노를 마신듯한, 글쓰기 기법에 대한 소개 너무 잘 봤습니다. 지적지적:)

인물들은 실패하고 좌절하지만 그 전체가 모이면 거대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다수의 개드립을 끌어낼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 상호작용의 증대가 정답이다.  이런표현 알면서도 정리하기 귀찮은데 다 해주시고. 좋네요ㅠㅠㅠ ^^



[레벨:3]파워구조

2014.09.21 (08:53:26)

뇌가 오르가즘을 느끼고 말았습니다.

21세기 문학이란 마치 섹스같군요.
작가의 펜과 키보드 애무와, 독자의 댓글 신음소리. 그 양 대칭을 오고가는 수많은 승과 패.

한 수 가르치려드는 봉건적 남자와의 섹스는 짜증 그 자체.
성감대 근처를 은근히 맴돌다가 한 갈음 뒤로 빠지는, 그래서 여자로 하여금 더욱 달려들게 만드는,

체스의 룰을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섹스.
하드보일드 섹스.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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