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 주관, 객관 객관은 제 3자가 비교하여 판단한다. 주관은 내가 상대적인 감정으로 판단한다. 깨달음의 1인칭은 사건의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맥락으로 판단한다. 운을 맞추기 위해 편의상 일관으로 명명한다. 비교하여 판단하는 객관의 3인칭은 누구나 아는 것이다. 주관의 2인칭은 나의 감정이 중요하다.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가 근거가 된다. 느낌은 상대적이므로 2인칭이다. 영어문법과는 상관이 없다. 주관이라 하지만 객이 없으면 주도 없다. 주와 객의 상대적인 관계이므로 2인칭이다. 2인칭은 자기 감정을 따르는 것이며 감정은 보상이다. 보상심리를 판단의 근거로 삼는게 2인칭의 주관이다. 깨달음은 1인칭이다. 1인칭은 일의 기에 서서 기승전결로 이어갔는가, 일의 성공확률을 높였는가로 판단한다. 제 3자의 판단도 아니고, 나의 주관적 감정의 판단도 아니고 일의 흐름으로 판단한다. 경상도에서 무소속후보를 찍어봤자 어차피 당선되면 새누리당에 입당하므로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결과를 따지는 것이다. 혹은 객관적 평가나 보상을 바라는 것이다. 틀렸다. 그래도 무소속을 찍어야 한다. 중요한건 누가 당선되었느냐가 아니고 내가 올바른 선택을 했느냐다. 언제라도 내게 투표하지 미쳤다고 남에게 투표하는가? 바보인가? 자신이 평가되는 현장이다. 나 자신에게 바른 선택을 하는 관성의 법칙을 심어서 성공의 확률을 높여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투표가 후보자를 판단하는 객관적인 장치라고 믿는다. 아니다. 나 자신의 일을 이어가는 장치다. 일관으로 보아야 한다. 기승전결로 보아야 한다. 한 번 잘못되면 계속 잘못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누가 당선되든 상관없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고, 과정도 중요하지 않고 일의 시작이 중요하다.
◎ 3인칭 – 결과가 중요한 제 3자의 객관적 평가 영화를 본다면 객관적으로 흥행이 되었는가를 평가하는게 3인칭 객관이고, 보고 내가 기분이 좋고 흡족했는지는 2인칭 주관이고, 작가의 의도를 기승전결에 따라 잘 이어갔는지는 1인칭 일관이다.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이 그렇다.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잘 그린 그림이 아니다. 흥행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림값도 싸다. 심지어 원래 그림을 주문한 사람이 기분나쁘다고 취소해 버렸다. 최악이다. 주관적으로 평가하면 역시 불쾌하다. 많은 사람이 민망하다고 말한다. 나는 민망하지 않은데? 하고 잘난척 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미 남의 눈치를 본 거다. 전혀 배경설명없이 그림을 처음 보면? 당연히 성욕을 느낀다. 그걸 안 느끼면 이상한 사람이다. 단지 그 그림이 걸려있는 장소가 박물관이고, 박물관에서 초딩짓하면 개망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긴장해서 성욕을 못느끼는 거다. 예술을 이해하려면, 김기덕 영화를 이해하려면, 진짜배기를 이해하려면 객관적 평가는 곤란하며, 주관적 평가도 곤란하고, 일관적 평가를 해야한다. 김기덕 자신의 기승전결에 맞게 판단해야 한다. 고흐라면 인상주의 회화의 역사 100년의 기승전결에 맞추어 판단해야 한다. 사건의 맥락에 맞게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을 얻어야 한다. 아이가 젖먹는 쾌감과 엄마가 키우는 재미는 다르다. 엄마의 키우는 재미는 기승전결이 있다. 아이의 젖 먹는 쾌감에는 기승전결이 없다. 지금 이 순간의 달콤함만 있다. 주관적 평가는 이 순간만 보는 것이며, 특히 보상받으려 하고 의존하는 거다. 객관적 평가는 공간을 확장시켜 보는 것이다. 사건은 시간을 따라 일어난다. 평가는 시간이 하는 법이다. 세월이 흘러봐야 아는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세월이 흘러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엄마는 일의 기승전결을 알고 있으며 그 아기가 잘 자랄지 그러지 않을지 알고 있다. 농부는 떡잎만 보고 가을의 결과를 안다. 기승전결을 안다. 솎아낼 것은 솎아내고 북돋울 것은 북돋운다. 2인칭 주관은 아기의 관점이다. 3인칭 객관은 제 3자 관점이다. 그라운드의 선수는 2인칭 주관이다. 선수의 판단은 틀렸다. 관객의 판단도 틀렸다. 심판의 판단이 옳다. 왜? 내일시합 때문이다. 오심 했다가 심판 짤리면 내일 시합은 어쩌냐고? 심판은 오늘 하루만 심판하는게 아니다. 관객은 오늘 하루만 관객하고 내일부터 야구 안 볼 수도 있다. 야구장 직관을 매일매일 하겠느냐고? ◎ 일관 – 일의 기승전결을 한 줄에 꿰어 맥락을 따라 일관되게 판단한다. 매일매일 야구하는건 심판이다. 심판은 일관되게 일관으로 한 줄에 꿰어서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KBO 망한다. 심판이 오심을 해도 일관되게 하면 그 심판의 스트라잌존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 익숙해지면 그것이 깨달음이다. 그러나 대부분 본능적으로 자신을 아기의 위치에 포지셔닝한다. 보상을 바라고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로 판단한다. 혹은 관객으로 객관한다. 주관은 본능이며 대개 잘못된 것이다. 주관에 익숙해지면 노예처럼 점차 길들여진다. 객관은 타자와 소통하며 일치점을 발견하여 오류를 시정해간다. 일의 전개를 따라 일관되게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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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 원인 (동기) 주관
2인칭 - 과정 (진행) 감정
3인칭 - 결과 (업적) 객관
으로 인칭을 정리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일관성을 1인칭에 위치시켰으나 수준이 낮은 1인칭 즉 주관이 잘못되면 영원히 골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말은 원인 측에 잘못이 있으면 당연히 잘못된 결과로 가게 된다는 거죠.
문창극은 보나마나 1인칭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3인칭의 객관은 커녕 2인칭으로 넘어갈 수조차 없네요.
기승전결에서 기로 쳐줄수도 없는 건데 뭘 저리도 난리인지.
가득이나 개독교 소리를 듣는 판에.....
온누리 교회는 가만히 있거나 회개할 일이지
누가 그러더군요.
성공한 교회가 타락한 것이 아니라, 타락한 교회가 성공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