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긴장을 원한다. 긴장이 집단을 결속시키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남북한 이념대결, 영호남 지역대결로 긴장을 조달했는데 지금은 성별대결이다. 인간은 긴장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집단이 환경변화에 즉각 반응할 수 있는 민감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갈등은 한국처럼 좁은 바닥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채찍이 가느다란 끝으로 갈수록 가속되는 효과다. 쓰나미가 좁은 협만을 덮치듯이 좁은 공간이 긴 파동을 짧은 파동으로 바꾸어 에너지를 증폭시킨다. 중국이라면 인구 물타기가 되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영토가 넓으면 환경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으므로 다들 여유롭게 사는 것이다. 근래에 페미니즘이 대두된 것은 시대가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성별의 관점으로 좁혀서 보면 곤란하다. 본질은 권력이다. 집단의 의사결정구조 불균형의 문제다. 여혐이라고 이름이 붙었지만 본질은 주도권 다툼이다. 페미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혐'짜를 쓰는 것이다. 미국은 백인권력과 흑인권력이 대결한다. 골수 공화당이라도 개인적으로는 흑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낸다. 그들은 흑인을 혐오하지 않는다. 그런데 혐오다. 절대 백인권력을 흑인에게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백인권력을 목적으로 종교권력, 지방권력, 가부장권력 기타 변두리 권력을 총동원하여 연환계를 펼친다. 백인집단의 권력유지를 위해 적절히 전쟁을 일으켜 필요한 긴장을 조달한다. ‘지금은 전시니까 닥쳐!’ 이런다. 그게 사람을 제압하는 기술이다. 반대로 흑인 친구가 없이 완벽하게 백인사회에 속해 있지만 정치적 판단은 평등을 지향하는 사람도 있다. 흑인과 친한 인종주의자보다 흑인과 친하지 않은 평등주의자가 낫다. 인류문명 차원에서 걸맞는 역할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인류 차원의 팀플레이에 충실하면 일상에서는 문제가 있어도 용납된다. 성격이 괴팍한 사람이 흑인이나 여성에게 불친절해도 인류문명의 진보 편에 선다면 문제삼을 일이 아니다. 일본에도 한국을 좋아하는 혐한이 많다. 근본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집단이 균형을 이루고 외부 환경변화에 맞서 의사결정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문제다. 좋고 싫은 것은 개인의 성격이고 중요한 것은 피아구분이다. 우리편이냐 적군이냐다. 신분이 중요하다. 무의식 영역에서 일어나는 소인배의 기싸움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선단의 항해를 책임지는 선장이기 때문이다. 만약 화가 난다면? 무의식이 집단의 결속이 약해졌다고 보고 강하게 결속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일진이 약자를 왕따시키는 것은 집단을 결속시키려는 무의식이 작용한 때문이다. 문제는 그게 신분이 낮은 사람의 특징이라는 거다. 적절히 화풀이 하는게 건강에 좋을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화가 난다고 화를 내면 지는 거다. 신분이 낮을수록 집단 속에서 자신의 기능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공주님이 모욕당하면 시녀가 울분을 토하는 법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은 언제나 외부로의 출구가 있으므로 화가 나지 않는다. 누가 해코지를 하면 공주님은 외교술을 구사하여 만회하면 된다. 하녀는 자신이 몰렸다고 생각하므로 발악할 수밖에. 화가 난다면 자신의 무의식이 자신의 신분을 낮게 잡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이 사고를 쳐놓고 적반하장으로 국민에게 화를 내는 것이 그렇다. 지식인은 세상을 넓게 보고 미래를 예측하고 다가오는 파도를 타고 넘는 방법으로 심리적인 결속을 조달한다. 신과 우주와 자연과 문명과 내가 긴밀하게 결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불안하고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살 수가 없다. 제왕은 무치라는 말이 있듯이 높은 그룹에 속하여 자신에게 미션을 부여한 사람은 세속의 자질구레한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 독수리가 거미줄에 걸리지 않듯이, 연꽃이 진흙에 오염되지 않듯이. 문제를 피하지 않고 즐긴다. ‘싸워라. 인간들아. 내가 점수를 매겨줄게.’ 이런 마음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별수 없는 동물이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천박해진다. 수시로 마음을 리셋해서 호연지기를 조달하고 천하인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 신이 지구로 파견한 인류문명의 책임자라는 마음을 가져야 암 걸리지 않고 난세를 살아낸다. 사회가 변하는 이유는 시스템 내부의 구조적 불균형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균형을 회복하는 복원력은 균형에서 멈추는게 아니고 중심을 지나쳐서 반대쪽으로 넘어간다. 다시 반동을 일으키고 그 반동에 대한 반동으로 왔다갔다 하다가 균형점으로 수렴된다. 페미도 선을 넘다가 반발력에 의해 뒤집어졌다가를 반복하다가 30년 걸려서 해결된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른 나라는 수십 년 전에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일이다. 인간은 태어난 바탕대로 살아야 한다.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장애인이든 흑인이든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신체에 적응하고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트러블이 있고 신고식이 있고 부대끼다가 점차 제자리를 찾아간다. 적절히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구조론사람이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이므로 초연해야 한다. 아는 사람은 옛날부터 피부색을 가리지 않고 성별을 가리지 않고 종교를 가리지 않고 장애여부를 가리지 않고 널리 사귐을 얻었다. 다르다고 마찰한다면 보통사람인 게다. 보통사람은 입지가 위태로우므로 방어모드로 들어가서 예민해진다. 우리가 특별한 엘리트이며 인류를 이끌어가야 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이라는 선민의식이 필요하다. 화가 난다면 천성이 그렇거나, 주변환경이 좋지 않거나, 수준이 낮은 그룹에 속해 있는 경우다. 타고난 부분은 적응해야 하고, 낮은 그룹에 속해 있다면 높은 그룹으로 올라서야 하고, 무의식이 자신에게 낮은 역할을 주고 있다면 그 역할을 바꿔야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집단 안에서 포지션을 차지하려고 하며 그럴수록 기능에 집착하여 수준이 낮아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