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입자 힘 운동 량 사건은 닫힌계 안에서 5회에 걸쳐 단계적인 의사결정으로 진행된다. 의사결정은 대칭을 사용한다. 대칭은 축을 발생시킨다. 의사결정은 대칭과 비대칭을 반복하며 하나의 밸런스에서 또다른 밸런스로 옮겨간다. 균일한 계에 외력이 작용하면 내부는 모순상태다. 모순이 배출될 때 까지 사건은 진행된다. 계 내부가 균일하지 않으면 깨진다. 균일한 계는 외력과 내력의 균형을 도출한다.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이 코어를 만든다. 코어의 도출과정에서 관성력이 코어의 위치를 옮기는게 의사결정이다. 질은 결합하고, 입자는 독립하고, 힘은 교섭하고, 운동은 변화하고, 량은 침투한다. 질은 외력과 내력의 대칭으로 균일한 계를 만들고, 입자는 원심력과 구심력의 대칭으로 코어를 도출하며, 힘은 순방향과 역방향의 대칭으로 코어의 이동을 결정하고, 운동은 시간적 순서의 대칭으로 코어의 이동을 진행하며, 량은 겉과 속의 대칭으로 에너지를 외부로 배출하고 사건을 종결한다. 시스템 메커니즘 스트럭쳐 액션 코드 구조는 다섯 가지가 있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5단계를 모두 반영한 구조가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메커니즘에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을 더한 것이다. 시스템은 자체 엔진으로 에너지를 순환시킨다. 메커니즘은 에너지를 빼고 외부에서 에너지가 주어지면 작동하는 것이다. 시스템은 저절로 돌아가고 메커니즘은 모터를 연결하여 외부에서 돌려줘야 작동한다. 물레방아가 저절로 돌아가는 것은 시스템이다. 디딜방아는 인간이 작동시켜야 하므로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은 두 개의 움직이는 부분이 연결되어 있다. A의 변화를 B의 변화로 전달한다. 스트럭쳐는 메커니즘 안에서 에너지의 방향전환 부분이다. 핵심적인 의사결정이 일어난다. 바퀴축과 같다. 스트럭쳐는 움직이는 대칭 부분과 움직이게 하는 축이 갖추어져 있다. 액션은 움직이는 부분이다. 디딜방아라면 확을 때리는 방아공이다. 코드는 결과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방아확이다. A의 변화가 B의 변화를 이끌어낼 때 양자를 통일하는 C의 변화가 갖추어지면 시스템이고, C의 변화가 없이 외력이 작용하면 A의 변화가 B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메커니즘이다. A는 변하지 않고 B만 변하는게 스트럭쳐다. A없이 B의 변화만 논하는 것이 액션이다. 변화된 값만 보는 것이 코드다. 자연은 시스템으로 존재한다. 메커니즘, 스트럭쳐, 액션, 코드는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 단 메커니즘에 우연히 돌이 날아들어 일시적으로 시스템이 작동하거나, 인간이 스트럭쳐를 만들어 도구로 쓰거나, 인간이 특정한 부분만 주목하거나 할 수 있다. 반복적인 자동화 작업은 반드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며 자연에는 태풍이나 회오리바람과 같이 일시적으로 시스템이 만들어졌다가 깨지는 일이 흔하다. 복잡성 구조는 복잡의 반대말이다. 살을 제거하면 뼈가 남는다. 사건에서 복잡을 제거하면 구조가 남는다. 복잡의 복은 같은 것이 중복된 것이며, 잡은 이질적인 것이 섞여서 혼잡한 것이다. 닫힌계를 지정하여 복잡성을 걸러내고 단순화 하는 방법으로 우리는 사건의 전개과정을 추적하여 다음 단계의 전개를 예측할 수 있다. 사건은 방향성이 있으므로 점점 커지게 되며 사건이 커지면 단순화 된다. 초기의 복잡성은 저절로 사라지고 구조가 드러난다. 강체가 유체로 바뀌면 수학적 법칙에 지배된다. 초기의 각운동량이 수렴되어 방향성을 추적할 수 있게 된다. 초기의 다양성이 수렴되어 보편적인 원리를 따르게 된다. 에너지 물질 공간 시간 정보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수학적 모형화다. 자원들이 가진 고유한 각운동량이 닫힌계 안에서 간섭되고 수렴되어 대칭과 축과 균형만 남는다. 자원들은 유체의 성질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전진한다. 우주는 에너지, 물질, 공간, 시간, 정보로 구성된다. 사건 초기의 자원들이 가진 각운동량은 방향성이 없으므로 확산방향의 척력이다. 일정한 조건에서 수렴방향의 인력으로 바뀐 것이 물질이다. 에너지라는 말은 궁극적인 단계에 이르면 물질의 고유한 속성이 없고 우로지 수학적 모형만 존재한다는 사건 추적의 대전제다. 자원들의 각운동량이 에너지로 수렴되어 물질을 이루고 물질의 공간적 변화와 시간적 변화가 인간에 인식되는 정보가 된다. 확산 수렴 우리는 물질을 쪼개서 가장 단순한 것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지만 의미가 없다. 가장 단순한 것은 성질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성질은 외력의 작용에 반응하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것은 반응하지 않는다.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력을 이기는 것이 반응이다. 관측대상이 관측자를 이길 때 우리는 거기에 무엇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관측자의 작용보다 작은 것은 관측될 수 없다. 관측자는 객체보다 클 수 밖에 없다. 관측행위가 관측수단에 에너지를 더하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관측하든 무엇과 무엇을 밀어보내는 에너지를 더한 크기가 작용한다. 결국 인간은 객체 자신이 자신을 관측하기를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려면 최소 객체 2가 있어야 한다. 이때 객체 1은 각운동량을 가져야 한다. 각운동량을 가지면 이미 최소화된 것이 아니다. 최소보다 약간 크다. 각운동량을 가진 객체 2가 간섭하여 각운동량을 수렴하는 것을 우리는 최소단위로 관측할 수 있다. 이때 관측조건으로 주어지는 각운동량을 가진 객체 2의 집합을 에너지라고 하고 객체 2가 간섭하여 수렴된 것을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은 직접 관측되고 에너지는 간접 추론된다.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자체적인 변화는 각운동량을 가진 확산상태의 에너지가 수렴되어 물질로 바뀌어 형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는 5회의 대칭과 밸런스의 이동에 의한 수렴이 일어난다. 마이너스 플러스 외력의 개입이 없이 닫힌계 안에서 자체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는 에너지의 확산에서 수렴으로 바뀌며 각운동량을 잃어먹는 마이너스다. 마이너스는 다른 곳에서 플러스로 결과한다. 우리는 화살이 활을 이탈하는 마이너스를 보지 못하고 과녁에 꽂히는 플러스에 주목한다. 플러스가 사건의 원인이라고 착각한다. 플러스를 늘려서 이득을 취하려고 한다. 그러나 플러스는 각운동량을 상실한 상태이므로 통제할 수 없다. 플러스의 수렴은 물질의 형태를 획득하는 대신 에너지가 없다. 뭐든 얻으려고 하면 잃을 것이요, 어차피 잃게 되는 부분을 잘 관리하면 얻을 것이다. 마이너스와 플러스는 세트로 움직이지만 마이너스측이 더 크고 사건의 원인측을 구성한다. 우리는 사건의 마이너스측에 개입하여 사건을 핸들링할 수 있다. 플러스를 추구하면 우연한 행운에 기대게 되거나 에너지를 가진 다른 사람에 의존하다가 종속되고 만다. 위치에너지 운동에너지 자원들이 각운동량을 보존한 상태가 위치에너지라면 각운동량이 수렴된 상태가 운동에너지다. 우리는 위치에너지를 수렴하여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방법으로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다. 운동에너지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운동에너지는 방향전환이 불가능하므로 결이 맞아야 한다. 시스템과 메커니즘은 위치에너지를 가지고 스트럭쳐와 액션은 운동에너지를 가진다. 질과 입자는 위치에너지를 가지고 힘과 운동은 운동에너지를 가진다. 량은 에너지가 없다. 수력발전은 위치에너지를 쓴다. 직접 모터를 돌리는 것은 운동에너지다. 배는 돛과 키로 방향전환을 하고 비행기는 엔진과 꼬리날개로 방향을 전환한다. 인간은 두 다리를 교차시키는 방법을 쓴다. 무한동력의 오류는 운동에너지를 위치에너지로 착각한 것이다. 에너지는 확산을 수렴으로 바꾸는 방법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 구조손실 계는 연결이다. 사건은 연결된 계에서 에너지의 방향전환으로 일어난다. 방향전환은 연결을 단절로 바꾼다. 의사결정은 각운동량을 수렴한다. 단절되면 로켓이 1단분리로 떨어져 나간 것과 같아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 기존의 의사결정이 새로운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것이다. 닫힌계 안에서 방해받지 않고 의사결정을 지속하려면 국소화 시켜야 한다. 의사결정은 대칭을 쓰며 대칭은 절반이다. 전체에서 절반이 이탈하고 나머지 절반에서 또 절반이 이탈하는 식으로 원인에서 결과로 갈수록 의사결정이 국소화 된다. 활을 쏜다면 궁수가 빠지고, 활몸이 빠지고, 활시위가 빠지고, 화살이 빠지고 과녁에 최종적으로 에너지가 수렴된다. 인간이 만든 기계는 외부에서 동력이 제공되지만 자연은 스스로 작동하므로 구조손실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의 행위도 처음에는 투자, 광고, 부모의 지원, 선배의 도움, 관객의 응원 형태로 외부지원이 있지만 사건이 커지면 결국 혼자가 된다. 외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TV토론에서는, 첫날 밤에는, 면접장에서는, 시합 중에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처음에는 작위적인 수단이 먹히지만 나중에는 본실력이 나온다. 통제가능성 에너지는 계의 통제가능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 날아가는 화살에 방향성이 있다면 활을 쏘는 궁수에게는 통제가능성이 있다. 통제가능성은 다른 말로 권력이다. 권력은 사장에서 이사로, 부장으로, 과장으로, 말단으로 한 방향으로 작용한다. 통제가능성은 계를 대칭이 작동하도록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방법으로 얻어진다. 어떤 사람에게 권력이 있는 이유는 그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갤리선의 노는 여러 노잡이가 북소리에 맞춰서 어렵게 방향을 틀지만 범선의 키는 하나만 움직여서 방향을 튼다. 바퀴는 네개지만 핸들은 한 개다. 네개의 바퀴가 각각 움직여서 방향을 트는 것보다 핸들 한개로 방향을 트는게 효율적이다. 이러한 구조적 효율성에 의해 권력이 형성되며 그것이 통제가능성이고 반대편에 방향성이 있다. 에너지의 확산방향을 수렴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축과 대칭의 형태로 배치하는 것이 통제가능성이다. 방향성 결정론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세상은 상호작용이다. 인생은 게임이고 게임은 확률이다. 세부적인 것을 일일이 판단해봤자 에너지 낭비다. 큰 틀에서의 전략이 중요하고, 방향판단이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방향을 올바로 판단한 다음 큰 사건에 작은 사건을 연동시켜야 한다. 사건을 연결시켜 강체를 유체로 바꿔야 한다. 판돈을 올려서 큰 수의 법칙을 작동시켜야 한다. 장기전, 전면전, 총력전으로 밀어야 한다.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고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간다. 기와 승에서 잘하고 최종결과는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고 전체의 확률을 올렸기 때문이다. 내가 좋은 일을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면 내 후손이 보답을 받거나 내 동료가 그 이익을 가져간 것이다. 나의 이익도 동료가 잘한 일이 혹은 내 부모가 잘한 일이 내게 귀결된 것이다. 그러므로 결과와 상관없이 내가 떳떳하다면 된 것이다. 그것이 의리다. 변화는 방향을 정해야 한다. 계 내부를 50 대 50으로 대칭시킨 다음 축이 한 쪽을 선택한다. 하나의 사건에 의사결정이 5회 일어난다. 축이 이동한 상태에서 다시 50 대 50이 만들어진다. 다음 단계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영역이 작아진다. 축이 가운데 50에서 40으로 이동하여 새로 대칭을 만든다면 40 대 40이 대칭을 이루고 20은 빠진다. 이를 5회 반복하면 국소화 된다. 축구선수가 공을 찬다면 먼저 상체와 하체를 대칭시켜 인체의 힘을 하체에 몰아주고, 다시 무릎을 대칭시켜 종아리에 몰아주고, 다시 발목을 대칭시켜 축구공에 몰아넣는다.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범위는 단계적으로 축소된다. 계 안에 다시 계를 만드는 것이며 두 번째 계는 처음보다 작다. 이런 현상은 사건 초기에는 외력의 개입 때문에 희미하다가 변화가 확실히 형태를 드러낸 시점에 분명해진다. 바람이 회오리를 만들고 물이 소용돌이를 만들면서 방향성이 뚜렷해진다. 처음에는 운 좋은 사람이 이기지만 막판에는 이길 사람이 이긴다. 게임은 결국 계를 통합하여 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그 방향은 마이너스다. 대칭 자연의 모습은 대칭을 따른다. 에너지의 작용은 변화를 일으키고 변화는 에너지의 방향을 확산에서 수렴으로 바꾼다. 확산되면 깨지고 수렴되면 대칭된다. 몽돌해변의 돌이 둥근 것은 모서리가 깨졌기 때문이다. 비대칭은 깨지고 대칭만 남아서 같은 크기로 균일화 된다. 큰 것은 더 많이 타격되고 작은 것은 틈새로 빠지므로 계는 균일해진다. 사건은 균일한 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대칭은 내부에 코어를 형성하고 의사결정은 코어를 움직여서 하나의 밸런스에서 다른 밸런스로 갈아타는 것이다. 둘이 대칭되어 토대를 공유하면 2가 1로 행세하므로 보다 효율적이다. 효율적인 것이 이기고 이긴 것이 남는다. 사건은 대칭이면서 동시에 비대칭이어야 한다. 외력의 작용을 대칭으로 막는 과정에 코어가 만들어지고 그 코어에 의해 다시 비대칭이 된다. 코어를 움직여서 또다시 대칭을 만들지만 관성력에 의해 다시 비대칭이 만들어지기를 5회 반복하며 최종적으로 비대칭을 만드는 관성력을 외부로 배출한다. 사건은 질의 대칭, 입자대칭, 힘대칭, 운동대칭, 량대칭의 순서를 거친다. 보통은 량대칭에서 빛의 복사나 열의 전도로 너지의 최종배출이 일어난다. 혹은 모서리나 표면이 닳는 마찰력 형태로 계 내부의 모순을 해소한다. 질이 축이 되어 입자를 대칭시키고, 입자가 축이 되어 힘을 대칭시키고, 힘이 축이 되어 운동을 대칭시키고, 운동이 축이 되어 량을 대칭시키나 그 역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엔트로피다. 이동시킬 축이 없기 때문이다. 효율성 의사결정은 균일한 계 내부를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대칭시키고 둘이 공유하는 코어를 도출하여 외력의 작용에 맞서 새로운 밸런스를 찾아 적절히 축을 이동시켜서 변화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이때 최단거리에 최소비용을 따른다. 계는 의사결정과정에 드는 비용을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다 효율적인 배치를 도출한 쪽이 이겨서 그쪽으로 움직인다. 타자의 배트가 투수의 공을 이겨야 안타가 나오는 것이다. 효율적인 배치는 상부구조에 하부구조를 종속시켜서 한 묶음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큰 것에 작은 것을 연동시키고 앞선 것에 뒤따르는 것을 연동시킨다. 량 2를 운동 1이, 운동 2를 힘 1이, 힘 2를 입자 1이, 입자 2를 질 1이 해결하므로 상부구조가 움직이는 것이 더 적은 숫자의 의사결정이라는 점에서 효율적이다. 힘으로 이기는게 운동으로 이기는 것보다 더 의사결정에 드는 비용을 절약한다. 1회의 강한 펀치가 2회의 빠른 펀치보다 낫다. 플러스알파 효율 관성 권력 이윤 기세 에너지의 효율성이 자연에서는 관성력으로, 사회에서는 권력으로, 시장에서는 이윤으로, 행동에서는 기세로 나타난다. 그것이 승부를 결정하는 숨은 플러스 알파가 된다. 효율, 관성, 권력, 이윤, 기세는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에서 답을 찾아 자유, 정의, 평등, 평화, 행복, 사랑, 이성과 같이 막연한 관념을 추구하거나 혹은 동기, 목적, 의도, 야망, 보상, 욕망, 탐욕, 쾌락과 같은 심리적인 것에서 답을 찾지만 거짓이다. 심리는 가짜고 물리가 진짜다. 플러스알파는 상대방의 눈에 띄지 않게 감출 수 있으므로 승리의 원동력이 된다. 량을 속도에 감추고, 속도를 힘에 감추고, 힘을 입자에 감추고, 입자는 질에 감춘다. 로켓이 연료를 산소와 케로신으로 분리하여 각각 저장용기에 따로 담았다가 다시 합쳐서 연소시키는 방법으로 추진력의 힘을 얻는 것은 힘을 입자에 감춘 것이다. 입자들 간에 차이가 나면 실력을 들키므로 균일한 계에 감춰야 한다. 의미 가치 사건을 연결하는 것이 의미다. 갈림길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 가치다. 인간은 보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며 오직 의미를 추구한다.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본능과 무의식이 전면에 나서서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의미가 연결되면 전율한다. 첫 만남처럼 설레이고 첫 키스처럼 흥분된다. 열정을 끌어내는 것은 의미다. 보상은 다른 사람에게 증명하려는 것이며 이는 열등의식을 들키는 행동이다. 어른에게 인정받으려는 어린이의 행동이거나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행동이다. 인간의 행위하는 목적은 자연의 큰 흐름에 올라타고 눈앞의 이득과 나중의 권력 사이에서 바꿔치기를 계속하여 사건을 다음 게임으로 연결시켜 가는 것이다. 바꿔치기 할 눈앞의 전술적 이득과 장래의 전략적 권력 사이에 가중치를 판단하는게 가치다. 의사결정을 잘해서 사건을 다음 단계로 이어가는게 의미다. 의사결정 하나의 사건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에 걸쳐 5회의 세부적인 의사결정이 일어나지만 사건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의사결정은 힘에서 일어난다. 질과 입자는 힘을 조직하는 절차다. 운동과 량은 힘을 실행하는 절차다.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힘이다. 힘은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어 속도를 끌어올린다. 강체에 유체의 성격을 부여하여 힘을 몰아주는 것이다. 각운동량을 수렴하여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힘에서 천칭의 대칭을 만들고 축을 이동시켜서 천칭의 두 날개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 의사결정을 ( T )로 나타낼 수 있다. ( 괄호 )는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이다. 질이 입력하고 량이 출혁한다. 가운데 T는 천칭저울 모양의 축과 대칭이다. 힘과 운동의 대칭을 입자가 장악한다. 자연의 모든 존재에는 ( T )가 숨어 있다. 돌멩이라 해도 중력과 질량이 작용한다. 칼날의 날과 같고 볼펜의 촉과 같고 전축의 바늘과 같과 총의 뇌관을 때리는 공이와 같은 접점이 반드시 있다. 화살과 시위가 만나는 부분이 있다. 요凹와 철凸이 만나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을 제어하여 운동과 힘을 교환한다. 운동을 내주고 힘을 받으면 이긴다. 단기전을 내주고 장기전을 받는다. 국지전을 내주고 전면전을 받는다. 제한전을 내주고 총력전을 받는다. 전술적 승리를 내주고 내가 이기는 지점에서 싸우는 전략적 승리를 얻는다. 명분과 실리의 교환이다. 당장의 이익과 나중의 권력을 교환한다. 노자의 실용을 내주고 공자의 합리를 얻어야 한다. 그 반대가 되면 주도권을 잃고 당한다. 당하면 진다. 의사결정권을 상대방에게 뺏기는 것이 당하는 것이다. 관측 관측은 관측자와 관측대상의 대칭을 도구로 쓴다. 이때 판단기준이 되는 가늠자가 있다. 관측자 자신이 판단기준이 되는게 관측의 오류다. 보통은 관측대상이 정지해 있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그런데 관측대상이 움직인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관측은 정지해 있는 객체의 외부를 조사할 때만 유효하다. 특별한 방법을 쓰지 않으면 자연의 일부만 관측할 수 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된다. 죽은 것을 관측하되 산것을 관측하지 못하고, 사물을 관측하되 사건을 관측하지 못하고, 정지한 것을 관측하되 움직이는 것을 관측하지 못하고, 표면을 관측하되 내부를 관측하지 못하고, 결과를 관측하되 원인을 관측하지 못한다. 관측자가 움직이거나 혹은 관측대상이 움직이면 관측은 곤란해진다. 사건을 관측하고, 움직이는 것을 관측하고, 산 것을 관측하고, 내부를 관측하고, 원인을 관측하려면 특별한 관측도구를 써야 한다. 그것이 구조론이다. 구조론은 수학적 방법으로 관측한다. 사물을 사건으로 바꾸고 강체를 유체로 바꾸고, 실체를 관계로 바꾸어 관측한다. 구조론은 객체를 보는게 아니라 A와 B의 관계를 본다. A가 움직였을 때 B가 어떻게 맞서는지를 보는 것이다. 구조론은 수학에 근거한 관측도구다. 수학은 서로 연동된다. 구조론은 복수의 사물을 서로 연동시켜서 사건화 하는 방법으로 관측한다. 이때 객체 내부의 A와 B는 대칭을 이루고 나란하므로 A가 변해도 B가 따라붙는다. 상대성을 절대성으로 바꾸므로 객관적인 관측이 가능하다. 존재론 인식론 인식은 자연의 모습이 뇌의 스크린에 비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데 거울의 상이 앞뒤가 바뀌어 보이듯이 왜곡된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자연의 있는 그대로를 보는 관측이 존재론이다. 자연이 스스로 움직여서 인간의 뇌에 비치는 것이 인식론이다. 자연은 전체에서 부분으로 가고 인간은 부분에서 전체로 간다. 자연은 원인에서 결과로 가고 인간은 결과에서 원인으로 간다. 자연은 연역하고 인간은 귀납한다. 화살은 활에서 과녁으로 간다. 인간은 과녁에 꽂힌 화살을 보고 추론하여 활을 찾아내야 한다. 이 방법으로는 올바른 인식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활을 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것은 넘겨짚기다. 엄밀한 지식은 아니다. 과녁에 꽂힌 화살을 보고 누군가 활을 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나 그것은 증명되지 않은 것이며 반드시 재현해야 한다. 현장에 가서 실제로 활을 쏴봐야 한다. 그런데 활이 과녁을 맞추는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라면 총을 봐도 알고 돌팔매질을 봐도 안다. 구조가 같기 때문이다. 하나의 명확한 지식을 알아내서 대량으로 복제할 수 있다. 존재론의 연역은 복제한다. - 배경 실체 연관 이행 귀결 인식론의 귀납은 추측한다. - 지각 수용 분석 종합 응용 존재론은 확실한 지식이지만 원형이 필요하고, 인식론은 엉터리지만 선택지가 많지 않을 때 넘겨짚기로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 존재론은 올바른 지식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인식론은 일상의 사소한 부분을 제외하고 깊이 들어가면 거의 가짜다. 각종 음모론에 괴력난신, 초능력, 텔레파시, UFO, 천국, 귀신 따위는 인식론의 귀납에 따른 오류다. 자유, 평등, 정의, 평화, 행복, 사랑과 같은 관념어에 심리적 동기, 욕망, 의지, 의도, 목적, 탐욕, 야망 따위는 모두 인식론의 귀납에 따른 오류다. 택도 없는 헛소리다. 인간의 지적 활동은 뇌의 스크린에 자연의 그림자가 비치는 것에서 촉발된다. 그림자를 곧 지식으로 간주하면 인식론의 오류다. 그림자를 단서로 삼아 자연의 지식이 인간의 뇌에 비치는 과정을 거꾸로 재현해야 한다. 광원과 빛과 피사체와 스크린과 그림자를 일직선으로 연결하여 전개과정을 봐야 한다. 모든 지식은 어쩔 수 없이 인식론으로 출발하되 그것은 잠정적인 지식으로 간주해야 하며 반드시 존재론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추측은 실험과 재현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연역 귀납 존재론은 연역이고 인식론은 귀납이다. 연역은 전체에서 부분으로 가고 원인에서 결과로 간다. 귀납은 부분에서 전체로 가고 결과에서 원인으로 간다. 연역이 올바른 추론이지만 많은 경우 연역은 불가능하다. 단서가 없기 때문에 추론을 시작할 수도 없다. 인간이 사건을 목격했을 때는 범인이 현장을 이탈하고 난 다음이기 때문이다. 귀납할 수 밖에 없으므로 귀납의 오류를 인정하고 연역으로 재구성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연역은 수학이다. 하나의 지식을 알아낸 다음 이를 대량으로 복제한다. 인간의 귀납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연역의 집합이다. 뇌 안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게 연역이다. 대부분 경험이 떠오르는 것이다. 귀납은 학습에 쓰인다. 연애를 책으로 배웠다거나 핸들 한 번 잡아보지 않고 운전할줄 안다고 믿는게 귀납의 오류다. 자전거를 배우되 먼저 균형을 잡고 페달을 밟아 전진한다거나, 수영을 배우되 먼저 물에 뜨고 헤엄친다거나, 비행기를 날리되 먼저 공중에 뜨고 그 다음에 비행한다는게 귀납의 오류다. 실제로는 항상 전체가 먼저다. 헤엄을 쳐야 물에 뜨고, 페달을 밟아서 전진해야 균형이 잡히고, 비행기가 날아야 공중에 뜬다. 인간은 언제나 귀납의 덫에 걸리는 실패를 저지르므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을 절차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역설 이중의 역설 사물은 인간이 다루는 대로 되지만 사건은 계에 에너지가 걸려 있으므로 대칭의 축에 걸려서 의도와 반대로 된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이기려고 하면 지고 지려고 하면 이긴다. 두 사람이 한 배를 타고 있는 셈이다. 이물에 앉아서 고물에 있는 사람을 쓰러뜨리려면 반대로 움직여야 한다. 상대를 밀어서 넘어뜨리려다가 반대로 내가 넘어지는게 역설이다. 축을 장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중의 역설은 축을 장악하면 다시 그 반대로 되는 것이다. 축을 장악하지 못하면 량은 운동에 걸려 반대로 되고, 운동은 힘에 걸려 반대로 되고, 힘은 입자에, 입자는 질에 걸려 반대로 된다. 숨은 플러스 알파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기세와 이윤과 권력과 관성과 효율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대쪽에 먼저 조치해야 한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줘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조치해도 역시 실패한다. 오히려 정면승부로 밀어붙여야 한다. 단 이번에는 세게 해야 한다. 질 입자 힘의 상부구조와 힘 운동량의 하부구조가 있다. 하부구조를 잘해봤자 상부구조에서 틀어버리는게 이중의 역설이다. 정치인이 내가 잘하기보다 상대편의 실수에 편승하는게 역설이다. 상대편의 실수만 기다리다가 주도권을 잃어버리는게 이중의 역설이다. 세상은 상호작용이고 상호작용은 항상 상대편이 있다. 이창호가 상대의 실수를 추궁하여 이기는게 역설이라면 이세돌이 거침없는 공격으로 이기는 것은 이중의 역설이다. 작은 게임은 역설이 작용하고 큰 게임은 이중의 역설이 작용한다. 역설은 상대당의 실수를 응징해서 이기고, 이중의 역설은 그 과정에 국민이 똑똑해져서 이긴다. 역설은 꼼수로 이기고 이중의 역설은 주최측이 룰을 개정하여 꼼수를 쓰는 팀을 엿먹이는 방법으로 이긴다. 사건에는 방향성이 있다. 배는 키가 있다. 키를 장악하면 정공법으로 이기고 키를 장악하지 못하면 속임수로 이긴다. 노는 반대쪽으로 움직인다. 앞으로 가려면 뒤로 밀어야 한다. 역설이다. 키는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불든 무조건 배를 앞으로 가게 한다. 이중의 역설이다. 키가 주도권이다. 기세요 이윤이요 권력이요 관성력이요 효율성이다. 키를 잡지 못했으면 의도와 반대쪽으로 움직이고 키를 장악했으면 정공법으로 돌아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