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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047 vote 0 2010.11.11 (15:14:33)

 

 

  권투선수가 일초 안에 몇 번의 주먹을 내밀지만, 그 순간순간에도 뇌는 분명하게 판단하고 있다. 상대의 주먹을 피하고 나의 주먹을 휘두르며 근육에 수백가지의 명령을 내려보낸다. 학계에서는 ‘자동적 사고’라 해서 무의식 상태에서 생각이 진행된다고 말하지만 이는 생각을 읽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의식의 작동을 모르는 이유는 의식은 한번 바운더리를 정해놓고 의도나 생각이나 감정이 그 바깥으로 빠져나가는지만을 감시하기 때문이다. 선을 넘었을 때만 브레이크를 걸기 때문에, 선을 넘기 전까지는 의식이라는 감시자가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는 경기에 몰입한 나머지 뒤에서 감독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때가 많다. 그러나 하면 안 되는 뻘짓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는 문득 감독의 차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관객의 함성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므로 하지 말아야 할 미친 짓은 하지 않는다.


  물론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은 타이슨은 예외다. 그는 확실히 정신이 나갔다. 흥분해서 의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면 그 순간에 타이슨의 의식이 제동을 걸었지만 흥분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제동에 실패한 것이다. 이는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이슨의 의식이 제동을 걸지 못한 이유는 이전에도 선을 넘어가 본 경험이 타이슨에게 있기 때문이다. 항상 경험이 바른 판단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훈련하여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의식의 브레이크를 무시하고 폭주한 경험 때문에 미친 짓을 한다면, 거꾸로 의식의 브레이크 때문에 폭주하려다가 딱 멈춘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것이 훈련이다.


  한번 실수를 저지른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여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연주자가 여러번 지적을 받았는데도 같은 음을 계속 틀리는 때가 있다. 역시 경험 때문이다. 이전에 틀렸던 경험이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그 지점에만 가면 의식이 ‘여기야!’ 하고 찔러준다. 그렇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지점을 잘 연주해야 할 것인데 실제로는 그 반대로 된다. 긴장이 풀려서 ‘여기구나!’하고 무의식적으로 과거에 틀리게 한 데로 반복해 버리는 것이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고도의 긴장이 필요하다. 선생님의 불벼락이 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는 의식이 어떤 문제의 지점만 알려주지 그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충분히 생각을 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의식이 ‘여기야’ 하고 찔러주면 ‘여기구나’하고 판단하는 사이에 곡의 흐름을 놓쳐버린다. 흐름을 놓쳤으므로 판단이 서지 않고, 판단이 서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판단을 재탕하게 된다. 그러므로 또 틀리고 마는 것이다.


  자동차 후진을 한다면 어떨까? 좌우구분이 잘 안 되는 사람이 있다. 후진할 때는 핸들을 잘못 꺾는 것이다. 눈감고 아무렇게나 꺾어도 50프로는 맞는건데 매번 완벽하게 틀리는 사람이 있다. 과거에 잘못 꺾었던 경험 때문에 벌써부터 긴장한다. 의식이 ‘조심해’하고 신호를 보내주면 거기에 신경쓰다가 또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좌우가 아니라 흐름이다. 핸들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꺾는 것이 아니라 전진이든 후진이든 상관없이 자동차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몸을 꼬는 것이다. 몸을 꼬면 저절로 핸들이 꺾어진다.



24.jpg 


  후진하여 ↙ 방향으로 꺾어야 한다면 핸들을 왼쪽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와 자신의 몸과 손을 전부 ‘)’자 모양의 곡선을 만드는 것이다. 이 원리는 전진이든 후진이든 똑같다. 그러면 저절로 맞게 된다. 핸들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몸을 꼬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식이 개입하여 판단을 요구하면 뇌가 오른쪽, 왼쪽을 결정하려 하고 앞을 바라볼 때의 오른쪽과, 뒤를 바라볼 때의 오른쪽은 방향이 반대이므로 혼란에 빠져버린다. 그러므로 눈감고 해도 50프로 맞는 것을 매번 틀릴 수 밖에 없다. 몸이 결정해야 하는 것을 의식이 개입하여 뇌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의식이 개입하면 개입할수록 도리어 손해이기 때문에, 의식은 그냥 바운더리만 정해주고, 타이밍만 찍어주고, 신호만 내려준다. 그러므로 바운더리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의식이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러므로 심리학자들이 이 단계를 무의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타이슨도 분명히 그 순간에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의식의 경고를 가볍게 무시하고 선을 넘어버렸던 과거의 경험 때문에 혼란해진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도리어 저질러버리는 실수는 흔히 있다.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특히 그러하다.


  술에 취한 사람은 의식의 감시선을 넘어 미친 짓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의식은 분명히 작동하고 있다. 취기를 빌어 무절제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거기에도 의도가 작동하고 있다. 술김에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는 이유는 술 때문이 아니고, 술김에 잘못을 저지른 경험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아주 혼을 내서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


  인사불성으로 취한 사람도 순간순간 의식이 들어온다. 그러나 그 의식이 유지되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그다지 효과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취한 사람도 아주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스스로 정신을 차리고 멀쩡해지기도 한다.


  교실에서 떠드는 학생은 선생님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떠들다가 흥분해서 목청을 높이려 하다가도 본능적으로 선생님의 시선을 의식하고 목청을 낮추게 된다. 넘어가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려 하는 순간 의식이 분명하게 개입하여 행동을 제지한다. 그 순간을 포착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강아지는 낯선 사람이 부르면 잘 따라간다. 그러나 자기 집에서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지면 곧 뒤돌아선다. 들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도 그러하다. 무언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한 어색한 느낌이 들고, 정신을 차려보면 자신이 너무 멀리까지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문득 무서워져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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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마음의 작동과정을 모르는 이유는 교양을 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식이나 의도는 포메이션 구도 안에서 어떤 느낌으로 작동하므로 거기에다 걸맞는 이름을 붙여주지 않으면 자각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심리학자들이 거기에 맞는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느낌을 읽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머리에 뭔가 스쳐지나간다면 의식이 경고를 보내는 것이며 의도가 포지션을 획득하는 것이다. 뭔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의식이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스쳐지나가는게 의도다. 그 순간 여기에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하는구나 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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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신차리기는 오로지 외부충격으로만 가능하다. 욕망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가도 갑자기 외부에서 강도가 침입했다거나 하는 상황에서는 재빨리 정신을 차린다. 당쟁을 일삼던 관료들도 외부에서 적군이 침략하였다면 문득 정신을 차린다. 게으럼뱅이도 외부에서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정신을 차려 의관을 갖춘다. 하던 게임을 멈추고, 하던 식탐을 멈추고, 하던 도박을 멈추고 정색하여 맞이하게 된다. 외부에서 뭔가 플러스 되어야 마음은 다스려진다.


  엄마 말을 지독하게 안 듣는 어린이도 외부에서 선생님이나 전문가가 개입하면 바로 달라진다. 말을 안 듣는 이유는 가정 안에서 말썽을 부리는 포지션으로 자기 위치를 설정했기 때문이다. 가정이라는 하나의 세계 안에서 자신의 영역을 최대화 하려하며 그 영역한계를 탐사하는 임무를 자신에게 부여하고, 그 한계 끝까지 엄마를 몰여붙여 보는 것이다. 엄마의 인내심 한계를 탐구하고 다시 그 한계선을 가능한 극한까지 넓혀보려는 임무를 자신에게 부여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의 개입은 그러한 포지션 구조를 해체한다. 자신에게 다른 임무가 부여되고 이전의 임무는 끝나버린다. 그러므로 문제아를 통제하려면 반드시 제 3자를 개입시키고 외부의 다른 룰을 들고와야 한다. 교실에서 말썽을 피우는 녀석은 선생님과의 대결구도를 상정하고 교실의 법칙을 설정하려 한다. 원시의 수렵본능을 발동시켜 환경이 인간에게 허용하는 한계선의 극한을 탐구하려 한다.


  가능한 말썽의 최대한을 모험하는 임무를 자신에게 부여한 것이다. 그러므로 체벌이라든가 꾸중이라든가 따위 내부에서의 교정은 실패로 돌아간다. 학부모를 호출하고, 교장이 개입해서, 교사와 학생간의 사적인 대결구도를 해체하고, 학생이 임의로 설정한 교실의 법칙을 해체하고 공적인 상황으로 전개시켜 가야 한다.


  룰을 건드리면 외부에서 굉장히 많은 것들이 연동되어 줄줄이 개입하며 사건이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신문기자가 취재를 나서고 지역 경찰서에서 출동하는 일이 벌어지고 지역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확대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교실문을 닫으면 끝이고 모든 문제는 교실 안에서 처리되어야 한다는 식의 심리적 안전장치를 해제해 버리는 것이다.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려면 사건이 내부에서 심각해져서 안 되고 외부로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야 한다. 수구꼴통들의 망동도 그러하다. 국경이 그어져 있고 외부에서 개입하지 않으며 사건은 내부에서 처리된다는 확신 때문에 그들은 말썽을 부리는 것이다. 가스통 하나가 그것이 동북아 질서를 흔드는 외교문제로 비화되고,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려 경제에 타격을 가하며, 전 세계 차원의 문제로 확대된다는 점을 주지시키면 그들은 망동을 멈추게 된다. 


  놀부가 흥부를 괴롭히는 이유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쳐 놓고 사건은 그 담장 안에서 일어나며 담장 밖으로 비화되지 않는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 담장을 해체해 버려야 한다. 마을사람들이 몰려와서 멍썩말이를 해야 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반드시 외부로 활로를 열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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