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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537 vote 0 2010.11.09 (22:19:21)

21.JPG 


(위 사진은 편집을 위한 링크용, 아래 본문은 관련없음)



  어린이는 운동장이 있어야 마음대로 놀 수 있고, 밥을 든든히 먹어야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다. 축구선수는 축구경기가 열려야 마음껏 공을 찰 수 있고, 만족할만한 연봉을 받아야 즐기는 축구를 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는 공동체 안에서 일정한 자기 영역을 확보해야 가능하다. 막연한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자유의 크기는 의식의 크기에 비례한다. 자의식, 국가의식, 시민의식, 민족의식, 역사의식, 공동체의식을 막론하고 모든 의식이 그러하다. 의식이 없는 자에게는 자유도 없다. 왜냐하면 의식되어야 공동체에 의해 소집되기 때문이다. 소집되어야 자신에게 역할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구체적인 수단을 획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라는 대장이 나를 구성하는 몸 전체에 비상을 걸어 소집하듯이, 공동체 또한 상황이 발생하면 구성원들에게 비상을 걸어 소집한다. 역사의식이 없고 민주의식이 없고 민족의식이 없는 사람은 역사적 사건, 민주적 사건, 민족적 사건 앞에서 전혀 소집되지 않는다. 소외되고 만다.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상황이 자신에게는 전파되지 않는다. 고급정보가 유통되는 라인에서 배제되고 만다. 남들이 다 아는 것을 나만 모르게 된다. 대응할 수 없다. 실패하고 만다.


  거지라면 몸은 자유롭겠지만 국가적, 민족적, 역사적, 공동체적 사건 앞에서 전혀 소집되지 않기 때문에 사건이 일어났을 때 무방비로 당하게 된다. 거지는 자유롭지만 단지 몸이 자유로울 뿐 공동체적 사건 앞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다. 예부터 거지나 노예는 전쟁이 나도 징병하지 않는 것이 그 때문이다.


  마음이 주목하는 것은 사건이다. 사건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계절이 바뀌는 것이 나의 의지대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건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며, 나를 구속하고 억압한다. 거기에 대응할 수 있어야 자유다. 소집되어야 대응할 수 있다. 정보가 흐르고 에너지가 흐르는 라인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적극적으로 소집에 응해야 한다. 누가 불러주어야 소집에 응할 수 있다. 권리가 있는 자만 불러준다. 노예는 권리가 없기 때문에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다.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동네 사람이 다 아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게 된다.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는데 내게만 통보가 없다. 그것이 자유가 없는 거다. 자유가 없으면 권리도 없다. 소외되고 배척된다. 적극적으로 국가의 부름을 받아 소집될 수 있는 라인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의식, 시민의식, 국가의식, 공동체의식, 인문정신, 시대정신, 이데올로기, 이상주의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적극적으로 소집에 응하여 자기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정보가 전달되는 라인 안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고급정보가 전달되는 라인, 자본이 유통하는 라인, 권력이 작동하는 라인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의 마음, 역사의 마음, 진보의 마음이 그대로 나의 마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이 나와 상관없게 되지 말아야 한다.


  의식은 마음이 몸을 소집하여 장악하고 대비하는 것이며, 자유는 그 소집이 통보되는 라인 안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모든 고급정보가 나를 통하게 하고, 나를 거쳐가게 하는 것이다. 나를 거쳐가는 동안에 나의 결재를 받게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권리다. 권리와 자유는 동의어다. 세상과 내가 상관있게 되는 것이다.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자유라는 말은 freedom이나 liberty나 둘 다 노예의 관점에서 바라본 소극적인 의미일 수 있다. 주인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바라보면 자유는 권리다. 권리는 적극적으로 정보가 흐르고 에너지가 흐르는 라인 안으로 들어가서 일정한 역할을 하며 자기 몫을 챙기는 것이다. 일어난 상황 앞에서 대응할 구체적인 수단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무사라면 칼이 있어야 자유롭고, 문사라면 붓이 있어야 자유롭고, 농부라면 트랙터를 타야 자유롭고, 백화점에서는 돈이 있어야 자유롭고, 바다에서는 수영을 할 수 있어야 자유롭고, 정치인은 마이크가 있어야 자유롭고, 화가는 붓이 있어야 자유롭고, 연주자는 피아노가 있어야 자유롭고, 마라토너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어야 자유롭다. 하늘끝 땅끝까지 달려갈 수 있다.

 

 

 

 

자아존중감


  어떻게 자신을 존중하느냐가 중요하다. 할아버지가 손주 어르듯 무턱대고 오냐오냐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밖으로 나가서 크게 세력을 이루어야 하고, 그 세력이 점차 발전해야 하고, 그 세력 안에서 자기 위치를 차지해야 하고, 그 세력이 진보하여 나아가는 방향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 세력의 움직임과 자신의 행동이 승마장의 기수와 말처럼 호흡이 척척 맞아야 한다.


  그 세력화의 의미를 우주 전체까지 확장시켜 이해해야 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칠 것이 아니라 그 세력화의 방법으로 천상천하를 내 안에 품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담하게 진보에 나서야 한다.


  그러한 본질을 모르면서 그저 자기만을 존중하고자 하여 우쭐대면 자기는 작아지고 만다. 내 몸뚱이 하나만 존중하게 되고 타인을 차별하게 된다. 그 경우 더 많은 것들이 점점 나에게서 이탈하여 떨어져 나간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세력이 육지에 상륙한 태풍처럼 한 순간에 소멸하고 만다. 그 결과는 결국 자신을 차별한 셈으로 된다. 타인을 차별하는 행동은 타인에 의해 그대로 자신에게로 반사되기 때문이다.


  구조원리상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자기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 존중받지 못하는 것 사이에 자기를 위치시켰기 때문이다. 똥밭에 머무르면 자연히 똥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주변의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자기를 비난하는 것과 같다. 격이 떨어지는 행동이다.


  진정으로 자신을 존중한다는 것은 축구팀이 시합을 하되 나도 이기고 상대팀도 이기고 관객도 이기고 심판도 이기고 그 자리에 모인 모두 이기는 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 그만큼이나 어렵다. 모두가 이기는 경기를 하려면 최고의 기량을 선보여야 한다. 최고의 플레이를 해서 챔피언의 면모를 과시함으로써 만인에게 정상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형태로 영감을 던져주어야 한다.


  적어도 지난해보다 더 진보한 무엇인가를 그 현장에 남겨놓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 남는 것이 없이 그냥 승자는 축제를 벌이고 패자는 울고 있다면 허망한 것이다. 그냥 막연히 남을 존중하겠다는 것은 허망한 것이다. 진보하여야 하고 혁신하여야 하고 우일신하여야 한다.


  더 나아지는 것이 존중하는 것이다. 그 나아짐에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그 방법으로 참여한 각자에게 역할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모든 구성원들이 자기 가치를 알게 하는 방법은 모두가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뿐이며 그것은 오직 진보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가장 크게 한국인을 존중한 사람은 세종대왕이다. 당신의 한글은 한국인 모두를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막연한 존중의 강조는 허무하다. 중요한 것은 반응하는가이다. 대통령이 농민이나 노동자와 만나 대화한다지만 쇼에 불과하다. 입으로는 노동자, 농민과 대화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반응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자, 농민도 대통령과 악수하는 이미지 하나는 건졌으므로 그것도 반응이라면 반응이지만 약하다.


  반응을 끌어내려면 농민의 대표자, 노동자의 대표자를 만나야 한다. 그러나 그런 진짜배기 존중은 안 하는게 약은 정치인이다. 대표자를 만난다면 반응할 수 밖에 없다. 대표자는 격식을 요구하고, 의전을 요구하고, 협상을 요구하고, 뭔가 반대급부를 내놓으라고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뭔가 내놓아야 한다. 응당 치러야 할 댓가를 내놓는 것이 반응이다. 

 

  반응하기 위해서는 중간단계를 빼고 직결로 만나야 한다. 중간에 대리인도 필요없고, 심부름꾼도 필요없고, 통역도 필요없다. 내가 신을 만나되 먼저 성경을 봐야 하고, 다음 십일조를 내야 하고, 다음 세례를 받아야 하고, 다음 성직자를 통해야 한다면 이렇게 절차가 복잡해서야 반응할 수 없다. 중간에서 구실하는 브로커 빼고 신과 내가 다이렉트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것이 자존이다.


  신과 내가 직결로 연결된다는 것, 신과 나 사이에 가로막고 통행세 요구하는 장벽이 아무 것도 없는 것,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가는 첨단과 직접 연결된다는 것, 가장 빠른 뉴스가 바로 내게 통보된다는 것, 나의 결재를 통하고서야 세상의 일이 처리된다는 것, 신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된다는 것이 자아존중감이다.


  자아존중감은 타인과의 비교에 따른 비교우위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전체과정을 체험함에 따라 얻어진다. 신과 나 사이에 차단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은 일의 전체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내 맡은 일만 하는 가운데 내가 기계의 부속품처럼 기능하며 다른 것에 의해 차단되고 통제되기 때문이다.


  보통은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아이는 아이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농민은 농민답게, 보스는 보스답게, 무수한 ‘답게’로 차단하고 가로막고 구분짓는 장벽을 설치하고 각자 자기 전문분야에 빠져 전체과정을 모르게 한다. 또 사회에서 그것을 권장한다. 사람을 아주 쓸모없는 반쪽짜리로 만들어 놓자는 계략이다. 역할게임에 중독시켜 말려죽이는 것이다.


  남자는 자기 양말이 어느 서랍에 들어있는지 몰라야 하고, 여자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야 한다는 식이다. 판이 돌아가는 전체과정을 모를 때 인간은 불안해진다. 그 중간 차단벽을 지배하는 브로커에게 의존하게 된다.


  언론이라는 브로커에 놀아나고, 변호사라는 브로커에 놀아나고, 정치라는 브로커에 놀아나고, 지식인 집단이라는 브로커의 농간에 놀아난다. 진정한 자존감은 전체과정의 체험에 따라, 언론이라는, 전문직 종사자라는, 정치라는, 지식인 집단이라는 브로커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자신감에서 얻어진다. 누구의 말에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이성으로 모두 판단하는 당당하고 떳떳한 태도 말이다.


  마음 안에도 그러한 브로커들이 있다. 무의식의 브로커들이다. 가장 높은 단계의 정신과 가장 낮은 단계의 감정 사이, 중간에서 기능하는 의식, 의도, 생각이라는 브로커들이다. 중간에서 샛길로 빠지지 말고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을 직결로 연결함으로써 제압이 가능하다.


  그럴 때 나의 직관이 곧 자연의 완전성과 통하고 신의 완전성과 통한다. 가장 감각적인 판단이 가장 이성적인 판단이 된다. 1초만에 판단한 내용이 백날 고민하여 판단한 것보다 오히려 더 정확하다. 마음의 공식을 사전에 세팅해 둠으로써 가능하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머리를 쥐어짜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나의 대결구도가 만들어 내는 포지션 구조에서 좌표를 읽어 판단하기 때문에 판단에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타인에게 설명하기 위하여 언어로 옮기는데 애를 먹을 뿐이다.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6]지여

2010.11.10 (00:09:50)

  고후타마 싯탈타(불교)  이전의 힌두(인도사상) 에 
세상의 부 명예 지위를 다 가져 본 자만이  출가 자격이 있었오

싯탈타는 그런 면에서 세속의 왕자로서 돈 지위 명예 배우자 다 가졌기 때문에 출가자격이 주어졌고 .. 그 후 깨달음

가진 것을 또는 가질 수 있음에도 " 버린다 "     " 출가한다 "   는
.........격이,  수준이 , 차원이 되어야  님이 이야기한  - 자유 - 이겠지요
 ( 결국 ㅡ 노장자 의  -허-  역시  매한가지............... 용어만 다를 뿐)
성철스님 법어집 책제목이 "영원한 자유" 인 것도.... 같은 맥락인 듯

화담 서경덕과 황진이의 설화(사실관계는 내가 확인 한바 없지만)도 미인을 앞에 두고 품을 수 있고, 또  품고도 싶지만 나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닐가 싶소,  

가져 본 적도..... 가질 그릇도 못 되는 인격에....    호연지기를 느껴보지도 못한 세속의 졸부(수꼴/먹물)들이..... 자유 운운

무릇 그릇을 키워야....  

  DJ 가 비난을 무릅쓰고 국제투기꾼인 소로소(수단=돈) 를 만난 것이나...  뭇  세인들이 부러워한 변호사직을 버린 노무현의
가진 것 가질 수 있는 것을 버린 대인기질 ... 그러면서도 겉보기엔 지극히 평범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긴적이었던,,,,

오늘 김대중 도서관에서 노무현 죽음 추도사를 쓰려고 메모한  노트 글씨와 내용을  보며
 
그조차 명박 반대로 추도사조차 못한 현실에  

울컥...........     

자유로워지고자 노력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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