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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387 vote 0 2020.01.22 (19:10:25)

    나는 환경을 장악한다


    나무위키로 보면 형이상학에 대한 텍스트가 대체로 빈곤한 중에 자유의지 항목이 특별히 방대하다. 내용은 허접하다.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대립시켜 놓았는데 과학자와 철학자들은 대체로 결정론을 지지하며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있다. 황당하다. 자유의지를 지지하는 경우에도 체면 때문에. 왠지 자유의지가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이런 식으로 수준 이하의 내용을 써놓았다.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자유의지를 믿는 척할 수밖에. 자유의지가 없으면 자유의지를 논하는 것도 무의미하기 때문에 하는 식의 3류개그도 있다. 자유의지가 없으면 범죄자를 처벌할 논리가 없는데 어쩔거냐는 둥 개소리를 써놨다. 사실 이 문제는 불교철학에서 방대하게 토론하고 있다. 


    서양철학이 불교철학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프로이드가 한 번 언급했을 뿐 서양철학사에 자아개념이 통째로 없으니 의미있는 토론은 불성립이다. 밥통들과 무슨 대화를 하겠는가? 자유의지 이전에 자아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알파고는 자아가 없다. 나와 타자를 분별하는 대칭관계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자아가 있다. 


    그런데 불교는 그 자아를 부정한다. 아니다. 그 자아를 크게 확장시킨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너와 나를 가르는 경계가 사전에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게임 안에서 내가 주도권을 쥐기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정해진다는 것이 불교의 입장이다. 나를 나로 규정하는 것이 자아다. 자아를 규정하는 것은 권력 곧 나의 의사결정영역이다.


    그것은 나의 내부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게임에서 상대적으로 정해진다. 내가 무엇이든 의사결정하면 그것이 나다. 내가 아무런 결정을 못 하면 나는 증발하고 없다. 그럴 때 자아는 희미해진다. 아기는 자아가 박약하다.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세력을 이루고 환경을 장악하는 만큼 자아가 뚜렷해지는 것이다.


    인간은 게임하는 동물이다. 게임의 룰을 장악하여 이기는 것이 자유의지다. 자아는 게임을 거치며 나와 나의 소유와 나의 동료와 나의 가족과 나의 국가와 인류와 문명과 세계로 확대된다. 나와 한편에 서는 것이 나다.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다. 그것은 임의로 정하는게 아니라 나의 세력이 성장해 가는 것이다. 자아의 성숙이다.


    게임은 나의 의지로 하는게 아니라 상대방의 행동을 고려하여 행동한다. 바둑을 두는 기사는 내가 두고 싶은 자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대응에 따라 결정한다. 이때 일부러 져주고 이길 수 있으므로 자유의지가 있는 것이다. 장기전과 단기전, 전면전과 국지전 중에서 전략을 결정해야 하므로 자유의지가 성립하는 것이다. 


    여기에 결정론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판단하기를 기다려야 하므로 미리 결정될 수 없다. 결정론은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것인데 미리 결정하면 당연히 게임에 진다. 패스를 랜덤으로 해야 축구를 해도 빌드업이 되는 것이다. 가장 효율적인 코스로 패스를 하면 상대가 그 길목을 지키고 있으므로 진다.


    결정론은 인간이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채택한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사실 자연은 가장 효율적인 코스를 잡는다. 빛은 가장 빠른 길로 간다. 효율적인 코스를 잡은 쪽이 승리하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으로 보면 확률이 담보하는 모든 코스로 다 가지만 가장 효율적인 코스가 이겨서 그 코스로 수렴된다. 그런데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일부러 함정을 판다. 첫 게임을 져주고 그 과정에 적의 기술을 간파하여 큰 게임을 이기는 수법을 쓴다. 살을 내주고 뼈를 벤다. 그러므로 랜덤하게 결정하는게 유리하다. 상대가 나의 의도를 알아채면 안 되기 때문이다. 거듭 져주고 거듭 패배함으로써 천하를 얻는 것이 노무현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상대는 모두 낚인다. 


    일부러 지는 길로 가는 내 의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는 자아확대다. 내 세력이 이기면 내가 이긴 걸로 간주하는 것이다. 자유의지가 있는가는 내게 의사결정권이 있느냐다. 의사결정권은 환경과 싸워서 얻어내는 것이며 그러려면 나의 영역을 키워야 한다. 내 몸뚱이만 나로 쳐주는 작은 나를 버리고 큰 나를 얻어야 한다.


    나의 소유와 동료와 친구와 가족과 팀과 집단을 나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것이 자유의지다. 나를 버려서 나를 얻는다. 나를 비워서 나를 이룬다. 내가 없으므로 내가 커진다. 나를 떠남으로써 진정한 나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는 당연히 있고 결정론적 사유는 틀린 생각이다. 게임은 결정되지 않았으므로 게임이 된다.


    결정론이 옳다면 범죄자는 처벌될 수 없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논리가 없다. 범죄자도 뇌세포와 호르몬이 시켜서 한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는 내가 아니고 사실은 뇌세포 중에서 측두엽 밑에 요 부분인데요.' 이러면 곤란하다. 왜 범죄자를 처벌하는가? 범죄자가 주변을 장악하기 때문이다. 세력을 이루고 나를 확장시킨다.


    범죄자는 범죄자 무리의 기세를 이룬다. 패거리를 만든다. 그리고 사회에 대항한다. 범죄자가 자아를 확장시켰기 때문에 맞대응하여 그만큼 범죄자의 자아를 좁힌다. 중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 허용되는 자아는 감옥의 징벌방 0.7평이다. 0.7평만큼 남겨두고 더 확장된 자아를 회수한다. 범죄가 악의 자아를 확장하므로 징벌한다.


    선한 사람은 동료가 따른다. 자아의 확장이다. 거기에 권력이 있다. 악인도 추종자가 따른다. 선의 확장은 받아들이고 악의 확장은 무너뜨린다. 맞대응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게임의 세계다. 모두가 자아를 확장하면 서로 충돌한다. 그러므로 인류에게 전쟁은 필연이다. 말로 싸우느냐 몽둥이로 싸우느냐의 차이뿐 전쟁은 있다.


    좋은 방법은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큰 나무의 가지가 뻗어가도 서로 충돌하지 않는 것은 일제히 한 방향으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자아의 확장은 한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며 그럴 때 서로 충돌하지 않고 전쟁하지 않는다. 자아는 확장되거나 혹은 축소된다. 자유의지는 자아의 확장이다. 권력의 확장이다. 자유의지는 있다.


    그런데 자한당은 자유의지가 없다. 그들은 기계적으로 행동한다. 자한당이 어떻게 나올지는 뻔하다. 극기복례라 했다. 노무현은 의도적으로 자신이 손해보는 행동을 한다. 개인을 넘어 집단으로 자아를 확장하는 것이 공자의 극기복례다. 나를 확장한 만큼 그 확장에 맞대응의 형태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 자유의지의 핵심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20.01.23 (09:58:28)

"나를 버려서 나를 얻는다. 나를 비워서 나를 이룬다. 내가 없으므로 내가 커진다. 나를 떠남으로써 진정한 나에 도달한다."

http://gujoron.com/xe/1160449

[레벨:3]파워구조

2020.02.13 (06:36:02)

자아의 개념을 확장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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