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전제 외국인이 한국인을 설득하기는 쉽다. 일단 한국말을 몇 단어 뱉어주면 거의 넘어온다. 피부색깔이 흰 사람이라면 더욱 쉽다. 모르몬교 선교사가 이 수법을 쓴다. 젊고 잘생긴 백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서 있다. 옷도 말쑥하게 차려입었다. 어떻게 한국어를 배웠는지 제법 유창하다. 최근에는 한국어 실력이 떨어졌다는 설도 있다. 한국인이 한국인을 설득하려면? 보통은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고 '동향이네!' 하며 호들갑스러운 감탄사를 넣거나 출신학교를 물어보고 '동문이네!' 하고 감탄하는 수법을 쓴다. 서로 같은 점을 찾아내서 죽이 맞는다는 점을 보여주면 잘 넘어온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먹는다. 이회창도 흙 묻은 오이를 씹었다. 로봇이 아니고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려고 한 것이다. 통기타를 연주하고 하모니카를 부는 정치인도 있다. 안철수는 뜬금없이 자기는 사람이 아니라 아바타라고 주장했다가 물을 먹었다. 사실은 성의가 없었던 거다. 이회창의 병역구설이나 나경원의 피부과 구설이나 안철수의 아바타나 사실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성의가 없었던 것이다. 상대가 말로 공격한다고 해서 말로 받아친다는게 말이나 되나? 말로 말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면 안이한 거다. 말로 해결될 거라면 누구는 뭣하러 통기타를 치고, 하모니카를 불고, 시장에서 오뎅을 먹겠는가? 너와 내가 같다는 점이 출발점이다. 말로 나도 같은 사람이라고 선언한다고 같아지겠는가?
중요한 것은 상호작용이 되는가다. 계는 균일해야 한다. 내가 느끼는 것을 상대방도 느껴야 한다. 설득의 기술은 중요하지 않다. 그 전에 어떻게 상대방에게 접근하느냐가 중요하다. 안철수는 상대를 설득하기 이전에 유권자와 평등한 위치에 마주 앉아보지도 못한 것이다. 외판원이라면 상대방이 대문을 열어주도록 만들어야 한다. 소파에 앉으면 성공이다. 아파트 현관에서 소파까지 5미터를 뚫으면 만사형통이다. 문도 열어주지 않았는데 대문 밖에서 '제가 아바타가 아니걸랑요.' 해봤자 씨도 먹히지 않는다. 유권자가 등을 돌리고 앉았을 때는 돌아앉게 만들어야 한다. 상대가 돌아앉지 않으면 내가 그쪽으로 가야 한다. 안철수는 가지 않았다. 성의가 없었다.
흔한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소개를 받는 것이다. 학습지 확장은 일단 교실의 반장이 사는 집을 찾아야 한다. 반장을 앉혀놓고 캐물어서 급우들의 정보를 빼낸 다음 대문간에서 큰 소리로 꼬맹이 이름을 부르며 반장이 소개해서 왔다고 허풍을 친다. 공부 잘하는 반장 아무개도 이 학습지를 하는데. 여기까지 말하면 거진 넘어온다. 요즘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만 옛날에 그랬다. 질의 균일화다. 남이 한다면 한다. 누구든 남과 같아지려고 하는 것이다. 남과 장단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다. 집단의 에너지 흐름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을 움직이는 에너지 원천이다. 보상이나 칭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딴건 애견 훈련에나 쓴다. 일단 상대방 근처까지 가야 한다. 그다음은 권력이다. 학습지 확장이라면 반장의 권력으로 초딩을 지배하는 것이다. 금력이나 매력도 도움이 된다. 여성이라면 매력이 먹힌다. 생동감이나 활기가 중요하다. 어쨌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에토스는 품성이고, 파토스는 신파고, 로고스는 팩트다. 이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보통은 로고스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데 이때 상대와 자신이 같다는 전제가 들어간다. 문제는 시청자와 같지 않은 것이다. 같은 엘리트들끼리 모여있다면 다 필요없고 그냥 팩트로 조진다. 그러나 정치의 현장은 다른 사람을 아우르는게 기술이다. 같은 사람 모이면 정치가 없다. 같은 백인, 같은 남자, 같은 신분이면 정치는 없다. - 질은 균일한 계의 상호작용 - 힘의 에토스는 먼저 희생하는 품성 - 운동의 파토스는 감성에 호소하는 신파 - 량의 로고스는 사실관계를 따지는 팩트
서로 입장이 다르고 신분이 다르므로 정치의 다스림이 소용되는 것이다. 팩트로 조질 상황까지 가면 정치는 필요가 없다. 설득도 필요없다. 수학자들끼리 모였다면 설득은 필요없고 그냥 문제를 먼저 풀어서 답을 맞추면 이긴다. 축구경기라면 다 필요 없고 골을 넣으면 이긴다. 문제는 적과의 대화다. 적을 설득하는게 설득이다.
먼저 상호작용을 통해 북한에도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머리에 뿔 난 도깨비가 아니다. 남과 북이 같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다음은 남한의 권력, 매력,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남한이 빌빌대고 있으면서 북한을 설득할 수는 없다. 김정은이 넘어오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자한당에 정권을 뺏길 우려 때문이다. 북한 입장에서 김대중, 노무현과 대화해봤자 부시에게 얻어맞고 이명박근혜에게 얻어맞는데 무슨 회담? 이렇게 된다. 김대중은 부시에게 밀렸고 노무현은 이명박에게 밀려서 북한 앞에서 매력과 권력과 능력을 잃은 것이다. 그다음은 자기희생이다. 사실 에토스에는 상호작용과 권력이 포함된다. 카리스마에 그것이 숨어 있다. 구조론은 다섯으로 세분하므로 에토스를 품성으로 좁게 해석하는 것이다. 자기희생이 없으면 절대 상대는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 안철수가 아바탑니꽈 하면서 시청자에게 얕보인 것은 자신이 어떻게 의리를 지켜 희생했는지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을 창당하여 알맹이를 빼먹었기 때문에 의리없음을 들킨 것이다. 반드시 희생해야 한다. 이해찬이 이번에 공을 세운 것도 민주당이 의석을 손해보고 희생하기로 맘먹었기 때문에 된 것이다. 아무도 손해보지 않겠다고 하면 그 조직은 백퍼센트 망한다. 이명박 아바타라는 말은 직계부하로 충성파를 거느리지 않고 있다는 말이고 충성파가 없는 이유는 희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게 본질이다. 노무현은 노빠가 있으므로 누구 아바타가 될 수 없고, 문재인은 문빠가 있으므로 누구 아바타가 될 수 없고 안철수는 안빠가 없어서 이명박 아바타가 된 것이다. 안빠는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물었다. 안철수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안빠를 지배하는 권력을 보여달라는 말이다. 이명박 아바타는 그 권력이 없다는 말이다. 그게 카리스마다. 같은 사람이라서 상호작용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충성파를 만들어서 권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자신이 먼저 희생하면 유권자는 진지하게 맞은 편 자리에 앉는다. 그럴 때 대화는 준비가 된 것이다. 여기까지가 에토스다. 여기까지 가는게 어렵다. 김어준은 해외에서 놀다가 보스 양복 빼입었더니 해결되었다. 어쨌든 양복 한 벌이 있었다. 그게 있어야 한다. 보여줄 것이 있어야 한다. 유권자는 팩트에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유권자의 목적은 잘난 사람을 뽑는게 아니라 자기를 뽑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바보 유권자가 남에게 표를 주겠는가? 유권자는 자기에게 표를 준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안쪽 공간을 만들어주는 사람을 찍는다. |
"유권자는 팩트에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유권자의 목적은 잘난 사람을 뽑는게 아니라 자기를 뽑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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