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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402 vote 1 2020.01.30 (17:49:14)

      

    결정론과 비결정론


    우주의 절대원리는 게임의 원리다. 맞대응의 원리다. 전략의 원리다. 이 관점의 의미는 주체의 문제를 논한다는데 있다. 그 반대편에는 대상의 문제가 있다. 주체냐 대상이냐다. 관측자인 인간이 주체적으로 관측의 대상인 자연을 바라보고 판단한다.


    여기서 함정은 그것을 누가 보느냐다. 보통은 내가 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누구지? 내가 누군지를 확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누가 무엇을 본다는 개념이 성립하는가? 주체의 사유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 반대편에 선 대상의 사유는 결정론이다.


    결정론적 사유는 뉴턴과 라플라스가 말하기 전에 데모크리토스로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근래 양자역학의 성과에 의해 타격받았지만 확률론적 결정론 형태로 여전히 버티고 있다. 확률론이 결정론을 대체한 것은 아니고 도리어 흡수되었다는 말이다.


    결정론을 떠받치는 것은 합리론이다. 자연은 법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움직인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그러나 인간은 매우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 합리적인 것은 효율적인 것이다. 인간은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다. 합리적인 동물은 죄다 죽었다.


    비합리적인 인간이 살아남았다. 실용주의를 주장한 동양은 망했고 공리공론을 주장한 서양이 그 형이상학으로 동양을 이겼다. 왜 항상 비합리적인 것이 합리적인 것을 이길까? 가장 비합리적인 동물은 인간이다. 에너지의 25퍼센트를 뇌가 낭비한다.


    대부분 동물의 뇌가 작은 것은 에너지 과소비를 막기 위한 합리적인 장치다. 인간은 에너지 과소비로 한때 1천 개체로 줄어들어 멸종 직전에 몰렸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에너지를 과소비한다. 동물원의 뱀은 닭을 먹고 한 달 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면 에너지 손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닭은 회수율이 최대 70퍼센트다. 사료의 70퍼센트가 고기로 돌아온다. 그만큼 효율적이다. 인간은 먹어도 살이 안 찐다. 자연의 진실은 게임이다. 게임에서 이긴 것이 살아남는다. 효율적인 구조가 이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환경변화가 일어나면 작은 것이 살아남는다. 개체의 몸집을 키울 것인가 아니면 작은 것이 연합하여 세력을 이룰 것인가다. 몸집을 키운 공룡은 죽었고 몸집을 줄여 땅굴에 숨은 포유류와 조류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주체가 누구냐다. 쥐가 살아남은 것인가 아니면 쥐와 동굴의 연합군이 살아남은 것인가? 우리는 쥐를 분리해낼 수 있다. 이것이 쥐다 하고 선언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몸에는 무수히 많은 인간이 아닌 세포들이 살고 있다.


    인간과 다양한 박테리아의 연합군이다. 인간의 몸에는 1.5킬로 정도의 인간이 아닌 세포들이 포함되어 있다. 즉 우리는 존재를 지목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환경과 뗄 수 없는 것이다. 인간과 박테리아와 인간의 생존환경을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


    우리는 어떤 개체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지만 그 전제가 부실하다. 어떤 것은 애매하다. 인간은 환경과 박테리아와 공생하며 딱 분리할 수 없다. 라플라스의 악마도 그것을 딱 지목할 수 없다. 그것은 확률로도 판단할 수 없다. 주체가 희미하다.


    주사위를 던져서 확률을 구할 수 있지만 주사위가 희미하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주사위인지 확정할 수 없다. 그것은 과학의 한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원리적으로 없다. 라플라스의 악마가 와도 그것을 지목할 수 없다. 우주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게임은 맞대응에 지배되며 맞대응하려면 50 대 50이 되어야 하며 이렇게 될 때까지 시간을 끈다. 그리고 피드백이 일어난다. 즉 일부러 애매하게 하는 것이다. 이기려면 랜덤하게 행동해야 한다. 규칙대로 해야 이기지만 규칙대로 하면 진다.


    져주고 이겨야 한다. 효율적이어야 이기지만 효율적이면 진다. 확률적으로 대응해야 이기지만 확률적으로 대응하면 진다. 역사의 승자들은 강자가 아니라 주변을 끌어들인 자였다. 그들은 일부러 지는 방법으로 주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곤 했다.


    아기들은 울어버리는 방법을 쓴다. 울면 맹수가 찾아온다. 무모한 도박을 하는 것이다. 세상은 게임과 맞대응과 전략에 지배되며 그것은 적을 이기는게 아니라 자기편을 늘리는 것이다. 자아를 확대하는 것이다. 도리어 비효율을 추구하는 것이다.


    결정론은 오래전부터 인류를 지배해 왔다. 반대편의 비결정론은 이름조차 없다. 확률론을 말할 수 있지만 확률론적 결정론이라는 형태로 결정론에 흡수되었다. 양자역학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학계는 결정론의 수렁을 탈출하지 못했다.


    반대편의 그것은 게임론, 맞대응론, 전략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주체의 관점이다. 대상의 관점을 유지하는 한 결정론적 사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상은 게임이다. 선수는 누구인가? 실제로는 뒤에서 돈을 대는 물주가 따로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선수가 싸운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물주와 돈을 건 내기꾼들이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싸움이 아니라 공화당과 민주당 혹은 전 지구적인 비엘리트와 엘리트의 싸움이다. 싸움판은 지구 전체에 걸쳐져 있다. 주체를 임의로 정할 수 있다.


    팔씨름에 진 사람은 내가 진 것이 아니라 오른팔이 졌을 뿐 왼팔은 건재하다고 둘러댈 수 있다. 대마가 죽으면 사석작전이라고 변명할 수 있다. 내가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고 둘러대면 된다. 우주는 미리 결정될 수 없다.


    결정되면 지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기계론은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간다는 것이다.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면 부분의 실패가 전체의 붕괴로 이어진다. 부분의 고장은 피해가 부분에 한정되어야 한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은 리스크가 크다.


    전략은 상대를 속이고 자기도 속여야 하므로 미리 결정하면 안 된다.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면 안 된다. 일부러 불확실성을 내포해야 한다. 큰 방향은 정해져 있다. 그러나 세부는 전혀 정해져 있지 않다. 정해지면 지므로 일부러 희미하게 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그 희미함에 의지한다. 내가 누구인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내 몸, 내 가족, 내 나라, 내 환경, 내 우주 중에서 어디까지가 나인지는 상대의 행동을 보고 대응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미리 정하지 않으므로 우주는 결정될 수 없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이금재.

2020.01.30 (19:18:52)

비결정론이어야 판짜기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고 반대로 결정론은 판이 불성립하는 것 같네요.

즉 시작도 끝도 바깥도 안도 암것도 없는 무가 되어버리는듯 하네요.

[레벨:4]고향은

2020.01.30 (21:27:54)

본질적인 것은 역시 서로 다 연결이 되나 봅니다.

 E. 프롬도 같은 말을 했네요~  ^ - ^



" 인간의 본성에 대한 만족할 만한 정의는 목표이지.

  전제는 결코 아니다 (비결정)

  인간의 본성은 잠정적 서술이 가능한 것이다 "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20.01.31 (04:13:10)

"전략은 상대를 속이고 자기도 속여야 하므로 미리 결정하면 안 된다.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면 안 된다. 일부러 불확실성을 내포해야 한다."

http://gujoron.com/xe/116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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