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론 질서秩序 개념이야말로 진리와 가깝다 할 것이다. 고대인들은 코스모스의 질서와 카오스의 무질서로부터 철학적 사유를 시작했다. 그런데 더 이상의 진전이 없다. 검색해봐도 나오는 텍스트가 없다. 인류는 그다지 질서를 사유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양철학에 형이상학이 있고 존재론이 있지만 거기에 질서론은 없더라. 구조론은 질서론이다. 구체적으로는 시간의 순서와 공간의 방향이 질서다. 질서는 둘이 나란히 가는 것이다. 어떤 하나가 있다면 있는 거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 씨앗은 싹이 트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도 둘이 만나지 않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만나서 나란해야 한다. 춘향과 몽룡이 나란하면 이야기가 싹튼다. 한쪽으로 기울면? 깨진다. 어떤 둘이 나란히 간다면 세 번째 사람이 등장한다. 사건이 연결된다. 1과 2가 나란하다면 그 간격을 보고 2와 3의 간격을 정할 수 있다. 1과 2 뒤에 3이 붙으면 4와 5가 따라오고 그다음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좌우가 나란하면 거기에 앞뒤를 붙이고 상하를 붙이고 중심과 주변을 붙일 수 있다. 경중이 저절로 따라붙는다. 앞뒤상하좌우가 발생하면 가운데 코어가 얻어지기 때문이다. 코어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원근이 성립한다. 완급, 강약, 대소, 본말, 수미, 심천, 애증, 우열, 유무 등으로 전개하여 나아가니 거의 모든 질서가 자동으로 세팅된다. 어부가 갈피를 잡아 그물을 당기듯이 하나를 얻었는데 전부 따라온다. 게임이 얼마든지 추가된다. 부부가 평등하면 형제도 평등하다. 부부가 차별하면 형제도 차별한다. 그런 식이다. 나란하면 복제되고 확장된다. 일은 커진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작가는 이 방법으로 플롯에 에피소드를 하나씩 결합시켜 간다. 아마추어는 최초 나란한 상태를 얻지 못하므로 소설가는 못 되는 것이다. 질서는 Order나 Law다. Law는 아래lower로 내려간다는 뜻이다. 법이라는 것은 언제나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오더Order를 내린다고 한다. 명령은 언제나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왜 올라가지 않고 내려갈까? 질서는 내려가는 것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아래로 내려가는 마이너스의 과정이다. 올라가려면 뭔가 에너지가 추가되어야 하지만 내려가려면 물이 하류로 흐르듯이 저절로 간다. 그것이 질서다. 저절로 흘러가므로 여러 에피소드가 무리없이 꾸려진다. 어색하지 않고 생뚱맞지 않아 자연스럽다. 나무의 기둥에서 큰 가지가 나오고 잔가지가 나온다. 나뭇가지의 끝단으로 가는 것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명령이 전달되는 과정도 내려가는 것이다. 자체 에너지에 의해 저절로 가는 것을 내려간다고 말한다. 행복이든 사랑이든 그것은 나란한 것이다. 환경과 나란하면 우리는 그것을 행복으로 느낀다. 파트너와 나란하면 우리는 그것을 사랑으로 느낀다. 나란하면 거기에 무엇을 추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트코스를 잡을 수 있다. 카톨릭은 보편이라는 뜻이다. 왜 사람들은 보편을 근사하게 여겼을까? 보편은 나란한 것이며 거기에 특수를 추가할 수 있다. 어떤 둘이 나란하면 보편되니 거기에 무엇인가를 추가할 수 있다. 확장할 수 있다. 보편을 얻은 왕은 영토를 넓힐 수 있고 보편을 잡은 포털은 상품을 출시할 수 있다. 보편을 장악한 백화점은 각종 브랜드를 입점시킬 수 있다. 보편을 장악한 구글은 인터넷을 거의 먹어치우고 있다. 특수는 그렇게 추가된 것이다. 보편이 백화점이라면 특수는 백화점에 입점시킨 특정한 브랜드다. 우리는 전방위적으로 나란하기를 바란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나란하기 바란다. 나란해야 뭐가 되는 것이다. 한미정상회담을 하더라도 테이블은 나란해야 한다. 아베는 얌체라서 외국 국회의장을 불러놓고 자기만 높은 의자에 앉는 결례를 저지르지만 말이다. 실제로는 나란하지 않다. 한국과 미국의 국력이 나란할 리가 없잖아. 그러나 찾아보면 나란한 부분이 조금 있고 우리는 그 부분만 합의할 수 있고 그만큼만 사랑할 수 있다. 그만큼만 행복할 수 있다. 나란하다면 점심 메뉴를 정할 수 있다. 나는 고픈데 너는 부르다? 나란하지 않다? 이래서야 짜장면이라도 배달시킬 수가 없잖아. 나란하면 사건은 다음 단계로 간다. 계가 있고 그 안에서 에너지가 나란하면 외력이 작용했을 때 평형을 유지하려는 복원력에 의해서 내부에 입자가 형성되는 것이다. 입자는 언제나 상대가 있다. 두 입자가 나란하면 복원력에 의해 힘이 형성된다. 두 힘이 나란하면 복원력에 의해 운동이 형성된다. 두 운동이 나란하면 복원력에 의해 량이 형성된다. 계 내부의 에너지 모순을 해소하여 나란한 상태를 복원하는 것이 질서다. 나란하지 않으면 진행을 멈춘다. 나란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면 그사이에 백지장이라도 추가할 수 있다. 남녀가 나란히 걸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 꼬맹이 하나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태초에 에너지의 나란함이 있었으니 계를 이루었다. 거기에 전후, 좌우, 상하, 원근, 경중, 고저, 장단, 심천, 미추, 곡직, 공사, 귀천들이 새끼를 쳐서 세상은 널리 이루어졌다. |
"나란하면 복제되고 확장된다. 일은 커진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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