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일본 해군이 최선을 다해 싸우지 않았다는 거다. 져도 납득이 되어야 하는데 납득되지 않는다. 영화 미드웨이에 나오듯이 승산이 제로인 상황에서 용감하게 카미카제식 공격을 가한 것은 미국 뇌격기 조종사들이었다. 승산은 없지만 하다 보면 뭔가 변수가 일어날 것이므로 알지 못하는 플러스알파를 믿고 모험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군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정해놓았다. 전략이 너무 복잡해서 함장 나구모도 이해를 못 했다. 헷갈려 하다가 의사결정을 못 하고 나구모가 30분간 꾸물대고 있었는데 운명의 5분 사이에 졌다. 일본해군을 지배하던 함대결전 사상 때문이다. 프랑스의 마지노선과 같다. 이것 하나만 하면 된다고 믿다가 망한다. 외통수로 가게 된다. 막상 현장에 가보면 예상대로 잘 안 되는데 말이다. 맹장 공손찬이 역경성에 갇혀서 망하는 원리다. 한 방에 끝내려다가 한 방에 간다. 일본은 사보해 해전이나 산호해 해전 등 초반의 주요전투에서 미국을 이길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함대를 아끼다가 망했다. 레이테만 해전의 구리다 턴이 유명하다. 막상 결전을 해야 할 상황에서는 망설인다. 왜? 배가 매우 비싸고 아깝기 때문이다. 미군은 배를 걱정하지 않는다. 배는 만들면 되니까. 일본군은 함대결전을 위해 함대를 아껴야 한다. 미드웨이에서도 주력함은 뒤로 빼놓았다. 미국함대가 겁먹고 도망칠까봐 전력을 숨긴 것이다. 결국 야마토는 한 발의 대포도 쏴보지 못하고 침몰했다. 이런 싸움은 마지노선의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마지노선에서 독일군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임기응변 못 하고 우왕좌왕한다. 마지노선을 버리고 후퇴해서 방어선을 쳐야 하는데 공들여 건설한 마지노선이 매우 아깝기 때문에 우물쭈물하며 결정을 못 한 것이다. 미리 전략과 전술을 복잡하게 정해놓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려는 생각의 위험성 말이다. 이는 원자론적 사고의 폐해다. 구조론은 에너지를 중시하고 프로세스를 강조한다. 프로세스는 과정의 예술이며 곧 임기응변이다. 원자론은 어떤 눈에 보이는 입자를 중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대상화한다. 적의 함대를 모두 끌어내서 야간 수뢰전으로 한 방에 끝내면 된다. 그러나 그 한 방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막상 기회가 왔을 때는 지금이 그때인지 몰라서 도망갔다. 진보가 항상 범하는 오류는 임기응변을 하지 않고 미리 답을 정해놓고 상황을 맞춰가려는 태도다. 진중권이 대중을 혐오하는 이유는 대중은 임기응변을 하기 때문이다. 촛불은 갑자기 일어난 사태다. 최순실이 태블릿을 잃어 먹었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우리는 돌발상황에 잘 대처해서 정권을 되찾았다. 엘리트 진보가 싫어하는 장면이다. 이렇게 해야만 이긴다고 답을 미리 정해서 딱 그렇게 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런데 밥통들은 왜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이긴다고 답을 정해놓을까? 자기편이 열세이기 때문이다. 자기편이 우세하면 답을 미리 정할 필요가 없다. 싸워보고 전장 안에서 답을 찾아내면 된다. 문제는 패배주의다. 이명박근혜 시절 축구장은 기울어져 있었다. 보수는 쪽수가 많고 진보는 열세다. 그럴수록 진보는 외통수로 가게 된다. 이렇게 해야 한다거니 저렇게 해야 한다거니 쓸데없는 이론만 난무하고 노선이 수십 개로 갈라진다. 진보의 분열공식이다. 왜 진보는 늘 분열할까? 원자론적 사고 때문이다. 진보는 열세이므로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며 한 가지 방법을 고집하므로 분열하게 된다. 적을 몰아붙일 때는 양쪽에서 공격하는게 상식이다. 역사의 맹장들은 아무리 병사가 적어도 유군을 따로 편성하여 배후를 습격하고 예비대를 따로 빼서 뒤에 받쳤는데 말이다. 한신이 배수진을 칠 때도 그 적은 병력에서 일부를 쪼개 적의 배후를 친 것이 그러하다. 특히 전쟁 초기에는 항상 돌발상황이 일어나므로 답은 전장 안에 있다. 물론 답이 딱 보일 때도 있다. 그것은 보통 전쟁 후반이다.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 한 방으로 끝났다. 일본군의 함대결전 사상은 진주만부터 줄곧 따라다니며 일본해군을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현장에서 먹히는걸 선택하는게 맞다. 그러나 현장을 무시하고 대본영에서 짜놓은 공식을 학습하고 있었으니 지는 거다. 미리 답을 정해놓고 이게 안 먹히면 진다는 생각이 패배주의다. 진보가 항상 범하는 오류다. 물론 지금은 황교안이 그 삽질을 하고 있다. 황교안은 자한당이 도발을 계속하면 화가 난 문재인이 무리수를 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론이 순식간에 바뀌어 야당을 지지할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실제 일본군도 황교안의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점감요격작전이 그것이다. 잠수함을 보내서 깔짝거리며 미군 전함을 하나씩 깨뜨리면 미군이 화가 머리꼭지까지 나서 모든 함대를 끌고 태평양으로 나올 것이고 그때 일본군이 잘하는 야간 수뢰전으로 건곤일척의 일대결전을 하면 이긴다는 생각이다. 황교안은 단식과 집회로 문재인 정부를 피로하게 만들어 지지율을 낮추는 전술을 쓴다. 조국대전에 지지율이 떨어진 문재인 정부가 오버행동을 하면 단숨에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만 문재인 지지율은 요지부동이고 검찰의 패스트트랙 기소로 거꾸로 점감요격된 것은 황교안과 자한당이다. 불리할수록 여유를 부리며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보통은 그렇게 못한다. 불리하면 단결한다. 단결하면 뭉친다. 몰살당한다. 믿음이 있어야 한다. 불안을 극복해야 한다. 불안하므로 자기편을 안심하게 하는 전술이 필요하다. 함대결전이라면 안심이 된다. 함대결전만 믿자. 함대결전이 일본을 구할 것이야. 태평양 한가운데서 야간수뢰전이면 무조건 이겨. 언젠가 있을 함대결전을 위해 전함을 아껴야 해. 그러면서 소극적으로 변해서 망한다. 결국 믿다가 망한다. 진정한 믿음은 충분한 상호작용에서 오는 것이다. 믿는 대상을 만들면 진다. 믿는 대상이 있으면 그것이 우상이다. 신은 상호작용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상호작용은 내 안에서 호르몬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며 내 바깥에 어떤 대상을 세우면 그것이 신이든 무엇이든 우상이다. 법이든 제도든 민주주의든 원리원칙이든 우상이다. 이게 정답이야! 내 노선의 옳아! 하는 엘리트주의가 우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왜 진보는 노선이 수십 개로 갈리는가? 엘리트들이 이게 정답이라니깐 하고 각자 우상을 세우기 때문이다. 통일은 통일방안 때문에 통일이 안 된다. 방안 만들고 아이디어 내고 노선 만들면 진다. 상황에 맞게 대응하여 부단히 이겨갈 뿐 고정된 궤도를 타지마라. 이것이 민중과 엘리트의 근본적인 충돌지점임을 알아야 한다. 트럼프의 임기응변에 미국 유권자가 열광하는게 그러하다. 민중의 창의성과 즉흥성과 긴밀한 대응능력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엘리트의 오만과 독선이 진보의 병폐임을 알아야 한다. 왜 엘리트 진보는 언제나 대중을 적으로 만드는가? 왜 대중을 트럼프 지지자로 만들어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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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창의성과 즉흥성과 긴밀한 대응능력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엘리트의 오만과 독선이 진보의 병폐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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