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한 사건의 기승전결을 체험하기 전까지는 다음 단계를 예측하기 힘들다. 공간에서 크기는 잘 비교하는데 시간에서
방향성을 보지 못한다. 더욱이 공간에서의 소실점이 시간에서도 존재함을 알아채기 어렵다.
포토샵의 레이어 개념을 들 수 있다. 보이지 않아도 그것은 있다. 기가 승을 제한하고 승이 전을 제한하다.
전이 후를 제한하고, 질이 입자를 제한한다. 질이 부실한데 입자가 알찰 수는 없다. 복제되기 때문이다.
역으로 질을 보고 입자를 예측할수 있다. 다음 단계는 이미 확률의 형태로 존재하여있다.
다음단계가 나타나는데 시간이 소요될뿐 구조체 내에서는 이미 결정되 있다.
시민의 정치적 각성이 안됬는데 민주적인 대통령이 나올 수 없다.
공간의 좌우가 소실점으로 연동되듯이 시간에서 질과 입자, 원인과 결과는 호응으로 연동된다.
빛과 어둠이 대칭이지만 에너지원은 빛에만 있듯이 질과 입자는 호응이지만 에너지원은 질에만 있다.
완전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공간의 완전이 아니라 시간의 순환을 이해하는 것이다.
김태희가 최고로 예뻐보았자 사귈 수 없고, 애플의 최고의 회사라도 내 회사가 아니다. 공간의 완전은
내 것이 아니므로 상관없다. 통제가능성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오로지 시간속에서
에너지릉 운용함으로써만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무엇인가?
잡스가 차고에 있을때 누구나 창업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시간속에서 기에서는 것이 중요하다. 기에 승이 연동되고 승에 전이 연동되고 전에 결이 연동되기때문이다.
기가 낳는다. 낳을수 있는 것이 완전한 것이다. 질이 완전하다.
질이 완전한 것은 좋은 질만 차지하면 된다는 말이 아니다. 좋은 질에서 좋은 입자를 꺼내고
좋은 입자에서 좋은 힘을 꺼내고 좋은 힘에서 좋은 운동을 좋은 운동에서 좋은 량을 꺼내야 한다.
그렇게 단계별로 낳아내기에 성공하는 것이다. 최종 결과는 량이다. 그러나 량은 이미 꺼내지기 전에 결정되어
있다. 질에서 확률로 결정되어 있다. 그래서 질이 중요하다.
시간을 공간으로 전환시키기다. 보이지 않는 량을 질만 보고 볼수 있기다. 다음 단계를 예측할 수 있다.
현대성은 구조에 걸린 시간의 압박을 이해하는 것이다. 에너지의 중첩이라는 모순을 외력에 대항하기로
풀어내는 것는다. 주식도 타이밍이고, 연애도 타이밍이고, 인생도 타이밍이다. 말 안해도 안다.
버스 떠나고 눈물 흘려봐야 아무소용 없다. 영원불변한 완전성은 없어도, 다음단계를 낳아내는
지금 이순간의 완전성은 있다. 데이트를 잘해야 결혼을 할 수있다. 프로포즈할 생각은 나중으로 넣어두고
지금 이순간의 두근거림을 먼저 완성하기다.
변할수 있는 것이 아름답다. 낳아낼수 있는 것이 아름답다.
시간의 타이밍에서 지금 이순간을 완성하기다. 그렇게 맥놀이를 이어가기다.
달리는 자동차는 무게 중심을 앞에둬야하고, 복서는 온몸을 흔들어 줘야한다. 역시 시간성 때문이다.
공간의 교착된 대칭이 아니라, 시간의 흔들리는 대칭이어야 한다. 시간속에서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대칭은 공간에서 비대칭으로 보인다. 골프공을 쳐도 골프채를 골프공 타격점의 반대방향으로 휘둘럿다가
골프공을 치고 팔로 스루한다. 골프공 타격 전과 후는 시간속에서 대칭되지만, 공간상에서 보면 몸은 한쪽으로
쏠려 있다. 비대칭이다.
전체적으로도 좋은 글이지만, 이 구절이 특별하게 느껴지는군요.
"지금 이순간의 두근거림을 먼저 완성하기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