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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635 vote 1 2015.07.16 (00:25:36)

     

    유교가 뭐냐? 옳게 아는 사람이 지구에 한 명도 없다면 터무니 없다. 적어도 한국사람은 유교가 뭔지 정체를 알고 있어야 한다. 공자, 맹자, 주자에게서 유교를 찾을 일이 없다.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거다. ‘야 이 인간아. 제발 인간이 되어라.’ 늘 듣던 그 이야기다.


    신토에 빠져 있던 일본이 퇴계 유교를 배우자 단번에 강국이 되었다. 전쟁으로 패망하자 일본 지식인들은 패배의 책임을 유교에 돌렸다. 그리고 지금 동북아가 일제히 뜨는 시기에 일본은 도리어 약해지고 있다. 그 잘나가던 시절에 일본인은 유교에서 무엇을 배웠고 지금은 배우지 못했나?


    기독교 문화권이 한 때 잘 나가다가 정체되고, 아랍권이 석유로 살아나다가 좌초한 지금, 유교문화권이 잘 나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분명히 이유가 있다. 그러나 공자왈 맹자왈 백날 해도 알 수가 없다. 껍데기 예절이나 배울 뿐 그대의 영혼을 뜨겁게 만든 유교의 진짜 본질을 배울 수 없다.


    예컨대 이런 거다. 도교가 뭘까?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이런거 백날해도 모른다. 도올 김용옥 따위가 알 리가 없잖은가? 어떤 서양인이 한 단어로 정의했다. ‘부정적 사고의 힘.’ 이게 책 제목이다. '아 이 양반 제법 아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도교의 나라 중국인도 모르는걸 말이다.


    그런데 부정은 긍정에서 나온다. 유교가 긍정하므로 도교가 부정한다. 무엇을 긍정하고 부정하는가? 팀플레이다. ‘유교=팀플레이’ 이걸 모르는 사람은 백날 공자왈 맹자왈 해도 헛일이다. 확실히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는 잘 뭉친다. 일본인이 잘 뭉치고 한국인은 늘 분열된다는 말도 있다.


    틀렸다. 일본은 수직으로 잘 뭉치고, 한국은 수평으로 잘 뭉친다. 뭉치는 방법이 다를 뿐 뭉친다는 본질은 같다. 물론 너무 잘 뭉쳐도 곤란한게 뭉치는 방법은 꼴등이 2등까지 올라가는 방법이지 1등의 방법은 아니다. 1등은 창의를 해야하고 창의는 뭉친다고 되는게 아니다. 뭉친다 = 복제한다.


    잘 뭉친다는건 잘 복제한다는 것이다. 신경숙이 표절하는데 문학동네 애들이 알면서 모르는척 봐주는건 자기네끼리 너무 잘 뭉친 부작용이다. 일본 역시 잘 나가다가 멈추는 이유는 한때 모방대국 일본으로 불렸을만큼 뭉쳐서 복제하는데 이력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창의하는 시대다.


    한국도 유교의 뭉치기=복제로 떴고 지금 중국도 그렇다. 계속 이렇게 한 곳에 뭉쳐서 마른 논에 올챙이처럼 오골오골 하다가 한 방에 죽는다. 진도나가야 한다. 뭉치는게 능사는 아니다. 유교의 지나친 뭉치기를 도교가 비판하고 있다. 유교의 근본을 봐야 한다. 공자도 맹자도 근본은 아니다.


    주역과 중용이 정답이다. 공자의 인은 수직적으로 뭉치기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돌봐주는 것이다. 의는 수평적으로 뭉치기다. 친구와 약속을 지키는건 의다. 충은 아랫사람이 위사람과 뭉치는 것이요, 서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다. 역시 충이 수직적 뭉치기라면, 서는 수평적인 뭉치기다.


    인의와 충서를 배웠으면 유교는 다 배운 거다. 예절 따위는 종교적 편의일 뿐 유교의 본질은 아니다. 고급반은 별도로 있다. 주역과 중용은 공자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도교에도 반영이 되어 있다. 선종불교에도 들어 있다. 그러므로 동양정신은 도교=불교=유교에 공통된다.


    일본이 유교를 조금 배웠지만 불교에 섞여있기 때문에 통한다. 중용은 밸런스 감각을 키우라는 것이다. 중은 가운데가 아니라 코어다. 수레의 바퀴살이 바퀴축와 연동되는 것이 중용이다. 코어에 의존하면 중앙집권이고 바퀴살에 의존하면 지방분권이다. 중용은 둘의 적절한 균형을 요구한다.


    임금에게 충성하라는 압박은 중용과 어긋난다. 중앙과 지방이, 국민과 정치권, 민주주의 합리성과 자본주의 효율성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그것이 중용이다. 균형감각을 키우기로 작정하면 중용은 이미 다 배웠다. 수업 끝. 또 진도 나가주자. 주역은 첫줄인 원형이정만 배우면 된다.


    원형이정이 구조론과 유사하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음양오행이 다 개소리지만 쓰임새가 있는 이유는 해석을 잘 하면 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주역은 점 치는 건데 점을 칠 필요는 없고 해석을 잘 하면 된다. 필자도 강희자전에서 배웠다. 독일사신들이 첨단시계를 들고 황제를 알현했다.


    독일에서 만든 고급시계를 선물하면 황제가 꺼벅 죽을줄 알았다. 그런데 황제는 “내 시계방을 보여줘?” 하며 시계방으로 안내했는데 거기엔 독일시계보다 뛰어난 시계가 40개나 전시되어 있었다. 음악상자도 잘만 돌아가고 있었다. 강희제는 중국기술자를 시켜 곧장 서구의 시계를 카피했다.


    쉽잖아. 서구의 뛰어난 기술 별거 아니네. 거기서 끝. 여기서 강희제의 고민을 알아챌 수 있다. 분명 유럽기술은 앞서있다. 강희제도 인정했다. 그런데 배우자니 걸리는게 있다. 시스템을 전부 갈아야 한다.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강희제는 계몽군주가 되지 못했다. 왜? 그에게는 주역이 있었다.


    강희제는 '서양의 기술이냐 동양의 균형감각이냐'에서 동양의 균형감각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군주와 선비가 주역을 배워 균형감각을 몸에 익히면 서양기술 없어도 백성은 잘 산다고 생각한 것이다. 근데 말이다. 강희제는 사실 변명하고 있다. 그도 사실 중국의 몰락을 예감한 거다.


    변명을 써놓은 사실 자체가 졸라리 고민한 증거다. 유럽의 기술에 당황해서 나름대로 고민하고 변명조로 써놓은 거다. 단 그 시기 유럽이 경제적으로 중국을 앞서있지 않았다. 중국이 갑이고 비단, 차, 도자기를 구하고자 하는 서양은 을이다. 잘 사는 중국이 가난한 유럽에 배우기는 어색하다. 


    그는 계몽군주가 될 기회를 날려버렸다. 200년 후 강희제의 불안한 예감은 맞아버렸다. 하여간 강희제의 주장은 이렇다. 주역의 본질은 점괘가 아니라 균형감각이라는 거다. 이건 그냥 배운다고 되는게 아니고 훈련해야 한다. 원형이정은 봄여름가을겨울이다. 일의 순환되는 한 사이클이다.


    봄여름이 선천이면 가을겨울이면 후천이다. 무엇인가? 어떤 신하가 아부하면 선천이다. 후천은? 그 신하의 배반이다. 봄을 보면 겨울을 안다. 신하가 아부하는걸 보면 탐관오리가 될 것을 안다. 강희제는 주역으로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본다. 이게 주역의 쓸모다. 선천과 후천은 인과율을 이룬다. 


    서양의 인과율은 밸런스가 없다. 대칭이 없다. 뭔가 허전하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방향성이 없다. 의사결정이 없다. 인과율을 별로 써먹을 데가 없다. 원형이정은 바로 써먹는 인과율이다. 예컨대 메르스라 치자. 원은 메르스의 잠복기다. 형은 극성기. 이는 전파기. 정은 소멸기다. 1사이클이다.

   
    ◎ 원(잠복기).. 봄은 잉태한다. 메르스가 잠복한다.
    ◎ 형(극성기).. 여름은 극성하다. 메르스의 증상이 나타난다.
    ◎ 이(전파기).. 가을은 이득을 준다. 메르스를 널리 전염시킨다.
    ◎ 정(정돈기).. 겨울은 정돈된다. 메르스가 소멸된다.


    원래 원형이정의 이는 가을의 수확이 주는 이익이다. 근데 메르스는 이익이 아니다. 메르스 자신에게는 이익이다. 잠복>극성>수확>정돈인데 구조론과 안 맞으므로 약간 변개하면 잠복>극성>전파>정돈이다. 근데 음악이든 미술이든 스포츠든 대개 이 구조로 간다. 원형이정 대충 들어맞는다.


    새로운 음악이 나오면 처음에는 홍대앞에서 인디음악으로 잠복해 있다가, 슬슬 방송을 타면서 극성하다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전파되어 이익을 주다가, 다시 정리된다. 구조론을 알면 원형이정을 잘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강희제가 구조론을 알았을 리는 없지만 경험적으로 터득하는거다.


    중요한건 원형과 이정이 선천과 후천으로, 곧 원인과 결과로 대칭되면서도 비대칭이라는 거다. 봄과 가을은 대칭된다. 봄도 따뜻하고 가을도 따뜻하다. 여름과 겨울은 비대칭이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 대칭이면서 사실 대칭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봐도 대칭이면서 비대칭이다.


hadonakser.jpg


    선천은 단순하고 후천은 복잡하다. 이게 핵심적인 비대칭이다. 선천은 하도의 가운데고 후천은 가장자리다. 가운데는 토대가 있고 토대는 서로 간에 공유되므로 대칭된다. 가장자리는 그 토대를 상실하므로 비대칭된다. 하나의 사건은 토대의 공유로 시작해서 토대의 상실로 마침내 결과한다.


    예컨대 이런 거다. 처음 자식을 낳으면 자식은 엄마와 아빠가 공유한다. 그런데 자식이 성장하면 부모는 갈라서고 자식은 둘 중 하나를 편든다. 공유가 깨진다. 이러한 구조는 광범위하게 관찰된다. 처음에는 제자들이 스승을 공유한다. 선천이다. 막판에는 각자 독립하여 서로 싸운다. 후천이다.


    획일성에서 다양성으로 가는 것이다. 닮음에서 다름으로 가는 것이다. 이 구조가 왜 중요한가? 보통 창의하라고 하면 곧바로 다름으로 달려간다. 창의는 실패다. 요즘은 모바일과 바이오가 대세다. 그쪽으로 가야 한다. 이상한데 가면 보나마나 망한다. 그러나 일단 자리를 잡으면 차별화가 답이다.


    창의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원형으로 가야한다. 이정으로 가면 망한다. 이정은 이익이다. 처음부터 이익을 꾀하면 망한다. 같고자 하면 다를 것이요 다르고자 하면 사망할 것이다. 토대의 공유에서 다름은 얻어지고 독립과 자유는 얻어진다. 토대를 잃고 나라가 망하면 사망이 기다릴 뿐이다.


    초반에는 팀플레이 해야 한다. 패스를 하라. 그러나 골대 앞에서 패스하면 일본넘이다. 골대앞에서는 개인기로 해결하라. 패스하지 말고 슛을 하라. 이것이 원형이정의 법칙이요 선천과 후천의 작동원리다. 이 구조만 알면 강희제 수준의 균형감각을 얻어 인간존재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대칭이지만 비대칭이다. 상부구조에서 대칭되고 하부구조에서 비대칭이다. 구조론의 질에서 균일해지고 입자에서 차별화 된다. 팀이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개인이 답을 내야 한다. 학교에 모여야 하지만 독립하여 흩어져야 한다. 동질성을 먼저 찾고 토대를 얻은 다음 각자 차별성을 추가하라. 


    공통분모를 먼저 찾고 개성을 드러내라. 이것이 주역의 가르침이다. 나머지 공자왈 맹자왈은 개똥같은 소리니 듣지도 말라. 유교는 그래서 강하다. 뭉치고 흩어지는 법을 안다. 타이밍을 안다. 단 구조론을 아는 사람에게만 쓸모가 있다. 옛날엔 무수히 반복훈련하여 주역의 균형감각을 키운다. 


    주역은 점치는 건데 점을 칠 필요는 없고 해석을 잘해야 한다. 해석은 정답이 없고 반복훈련을 하다보면 감각으로 하는 것이다. 옛 선비들은 그 감각을 키워서 일을 잘 처리해 왔다. 그래서 18세기까지 중국은 발전했다. 큰 흐름에서 기세를 탔을 때는 유교의 균형감각이 확실히 도움이 된다. 


    아시아권은 팀을 잘 만든다. 그런데 선천의 동질성과 후천의 차별성을 순서에 맞게 구사해야 한다. 후천개벽 이런건 개소리고 인과율로 풀어야 한다. 그냥 원인과 결과로 보면 얻는게 없다. 선동질 후차별을 알아야 보탬이 된다. 처음에는 힘을 모아 회사를 키우고 다음 노동자도 몫을 찾는다. 


    막연히 균형과 조화를 타령하기보다 대칭과 비대칭이라는 순서를 알고 작업들어가야 한다. 연애를 해도 그렇고 창업을 해도 그렇다. 구조론은 길을 알고 간다. 유교는 대략 경험적 감각으로 간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을 인, 의, 예, 지, 신으로 같다붙이는 식이다.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하다. 


    "만물의 일원(一原)을 말하면 이(理)는 동(同)하고 기(氣)는 다르다[위키검색]"고 하였다. 이것이 이기일원론이니 이기이원론이니 하는 율곡과 퇴계의 유명한 논쟁이다. 선천은 이니 동이고 후천은 기니 다르다. 이와 기는 대칭되면서 대칭되지 않는다. 여기서 율곡과 퇴계의 노선이 갈라진다.


    토대를 공유하며 수평적으로 대칭되다가 독립하여 토대를 상실한 다음 수직적으로 비대칭한다는 것이 구조론이다. 이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면 율곡이고, 두 개의 사건으로 바라보면 퇴계다. 그런데 율곡이 정답이다. 수평적 대칭이 먼저다. 먼저 서로 토대를 공유하여 1의 팀을 이루어야 한다. 


    여자와 남자, 노동자와 사용자, 전라도와 경상도, 동양과 서양이 지구라는 별 하나를 토대로 삼아 수평적으로 지구를 공유한 다음, 먼저 평등을 이룬 다음, 이를 선천으로 삼고, 후천에 가서 각자 개성을 살려 제 갈 길 가는 것이 율곡이다. 먼저 서열부터 정하고 다음 팀을 짜는건 퇴계방식이다.


    한국사람은 만나면 먼저 나이를 묻는다. '난 형님이고 넌 동생이야' 하고 서열을 정하면 퇴계다. 아니다. 고향을 먼저 묻는다. ‘난 강릉출신인디 넌 동해출신이여? 아 같은 영동출신이구만.’ 하고 친구먹으면 율곡이다. 구조론은 율곡이 정답이다. 먼저 수평으로 만나기다. 서열부터 정하면 망한다.


    검사들은 등산을 해도 기수별로 줄서서 간다는데 이거 망하는 퇴계병이다. 등산을 할 때는 누가 사장이고 직원인지 적군이 망원경으로 염탐해도 알아낼 수 없어야 한다. 일할 때만 서열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직관적 판단이 몸에 배어 있는 즉 훈련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크다.


    서양인은 이런 팀플레이 매뉴얼이 안 되어 있다. 그들은 업무 매뉴얼을 미리 만들어놓지 않으면 일을 못한다. 동양인은 팀매뉴얼이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업무매뉴얼이 없어도 일을 할 수 있다. 근데 대기업이 되었는데도 업무매뉴얼이 없어서 망하고 있다. 어쨌든 창업단계까지는 잘 간다. 


    동양은 정말 쉽게 창업한다. 기술을 확보한 다음 창업하는게 아니라 창업해놓고 기술을 찾아봐도 되는게 동양이다. 팀을 만들줄 알기 때문이다. 유교주의라는 이름의 인간관계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는 거다. 물론 다 그런게 아니고 동양의 좀 아는 사람은 그런 감각이 교양되어 있다는 말이다. 


    공자의 인의는 인이 의 앞에 있다. 인은 개인적이고 의는 사회적이다. 의가 인에 앞서야 한다. 충이 서에 앞서면 안 된다. 서는 똘레랑스다. 충은 그 똘레랑스를 배반하지 않는 것이다. 공자는 개인의 도덕심을 앞세우는데 이건 도교주의 영향을 받은 거다. 중국인의 기질이 원래 도교주의다. 


    유교에는 도교가 섞여 있다. 유교와 도교가 교류한 것이 아니라 원래 중국적 사유가 도교적이다. 사실 공자가 중국인 치고는 특이한 사람이다. 중국은 원래 개인주의에 이기주의다. 옆에서 살인나도 모른척이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과 팀플레이 절대로 안 한다. 2천년 전에도 그랬다. 


    내 몸에 터럭 하나를 뽑아서 천하에 이익이 된다해도 그 터럭을 끝내 뽑지 않는다고 떠드는게 중국인 다운 거다. 양주의 말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회가 앞서고 개인이 따른다. 수평이 앞서고 수직이 따른다. 선천이 앞서고 후천이 따른다. 토대의 공유가 앞서고 개인의 창의가 따른다. 


    동질성이 앞서고 차별성이 따른다. 둘은 대칭이나 대칭이 아니다.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는게 아니고, 가족이라는 사회 안에서 개인이 태어나는 것이다. 원래 사회가 있다. 공유지를 먼저 확보하고 사유지를 나중 분배한다. 신대륙의 개척민은 교회를 먼저 짓고 자기집을 나중에 짓는다. 


    이 순서만 알아도 인생의 반은 건진 셈이다. 의가 인에 앞서야 한다. 

   


[레벨:30]이산

2015.07.16 (02:23:42)

늦은시간에 좋은글이 올라 왔네요
감사합니다
[레벨:7]새벽이슬2

2015.07.16 (06:54:17)

인생의 반은 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5.07.17 (03:17:52)

여자와 남자의 차이
여자는 세력(자손에 의한)을 스스로 생산할 수 있으나 남자는 아니다.

그래서

여자는 개인에 의한 세력싸움을 하지만 남자는 서열싸움을 한다. 남자가 조직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 세를 만들 수 없기 때문. 여성의 사귐과 쌈은 수평적으로 나타나고 남성은 수직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고양이와 개도 비슷하다.
고양이가 인간에 대해 주인행세를 하고 개는 신하 행세를 하는 것은 고양이는 단독 사냥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양이는 세력싸움을 개는 서열싸움을 인간과 같은 맥락으로 하게 하게된다.

대충 정해지는 고양이와 개의 진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5.07.17 (03:27:35)

개가 세력싸움을 하는 것은 먼저 팀을 이루고 난 이후에 즉 서열정리가 끝나고 나서 이루어진다.

유교의 군자 개념은 스스로 생산자가 될 수 있으냐, 즉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느냐의 관점이다.

유교에서의 군자개념은 집단이 세를 이루는데 방해가 되기도 하는데 다들 서로 잘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단을 이루는 의사결정을 돕기 위하여 메뉴얼을 만들고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바로 고리타분한 교리가 아닌가 한다. 이게 바로 팀플레이 메뉴얼이다. 어디가든 나이와 고향을 묻는다. 서열을 정함과 동시에 팀플레이를 하기 위함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5.07.17 (03:43:57)

유교는 고양이가 개처럼 팀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는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으며 가장 진보한 팀플레이 방식이다.
[레벨:8]상동

2015.07.18 (07:47:17)

인간은 개포지션입니다.

그 속에서 여자는 고양이포지션..남자는 개포지션을 나눠 가졌죠.


남자는 무조건 개포지션이니까..개념잡기가 좀 쉬운반면

여자는 상부는 개포지션..하부는 고양이포지션이라서


여자 포지션이 묘한 위치에 있습니다.

남자보다 여자들이 열등감(우울증)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복잡한 포지션때문에 역할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 내기만 한다면 초대박입니다.


어떤 남자도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니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5.07.18 (12:01:48)

성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하더라도 차별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말하는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무튼 일반론으로만 말하자면 개냥이 포지션을 구조론 용어로 주체적 포지션이라고 할 수는 있겠네요.

1인칭 = 새끼 (엄마에 종속됨)

2인칭 = 개 (사회에 종속됨)

3인칭 = 냥 (사회에서 독립됨) 

주체적관점 = 개냥이 (사회를 지휘함)


대충 이렇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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