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인간에게 관측된 이후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가 움직여서 관측하면 정이요, 상대방이 움직여서 내게 관측되면 동이다. 움직이는 나에게 부딪히는건 정靜이요, 멈추어 있는 나에게 부딪혀 오는건 동動이다. 과학은 나의 개입을 배제해야 한다. 객관화 되어야 한다. 내가 멈추면 동動이 포착된다. 처음 상태는 정靜 아니면 동動이다. 동은 짝수요 정은 홀수다. 에너지는 짝수다. 에너지는 대칭원리로 짝지어 물질을 이룬다. 짝수만이 짝지을 수 있다. 짝짓는다는 것은 나의 일부를 타자와 공유하는 것이다. 홀수 1은 곤란하고 짝수 2라야 짝짓는다. 나의 전부가 공유되면 내 존재가 부정되기 때문이다. 존재는 사건이다. 사건은 동動≫정靜이다. 사건은 일어난다. 일어나면 동이다. 꺼지면 정이다. 사건은 동으로 일어나 정으로 꺼진다. 동은 능동이요 정은 수동이다. 능동으로 일어나 수동으로 종결한다. 사건은 원인에서 결과까지 진행한다. 원인은 능동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먼저 움직인 쪽이 가해자다.
동이 원인이면 정은 결과다. 동은 짝수다. 짝수는 경계면을 가진다. 사건은 그 경계면을 잃는 것이다. 경계면은 안과 밖의 경계다. 사건은 2에서 1로 진행한다. 1을 이루면 둘 사이의 경계면이 사라진다. 갈림길은 2다. 사건은 거기서 1을 선택한다. 나무의 가지에서 줄기로 갈수록 점차 2>1로 좁혀진다. 짝수만 짝지을 수 있다. 짝짓기는 토대의 공유에 의해 일어난다. 홀수는 짝지을 수 없다. 홀수는 토대를 공유할 수 없다. 홀수는 짝짓기 위해 상대방에게 갈 수 없다. 고리는 ∽자 모양으로 짝수라야 파트너와 연결된다. 무인도에 혼자 살면 짝지을 수 없다. 중매쟁이가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짝수로 있다. 짝짓기를 진행하면 1이 된다. 홀수가 된다. 칼로 무를 내리친 것과 같아서 1토막이 된다. 갈림길이 아니라 막다른 길이 된다. 에너지가 균일해지면 1이 되고 홀수가 된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적용한다. 짝지을 수 없는 상태.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짝수는 길이를 가지고 선을 이룬다. 우주는 선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선이 꼬여서 물질을 이룬다. 위치에너지는 짝수의 방향성을 가진 상태, 운동에너지는 홀수의 방향성을 가진 상태다. 짝짓기는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꾼다. 짝수를 홀수로 바꾼다. 위치에너지에서 일어나 운동에너지로 꺼진다. 여과 야당은 짝수다. 남북한은 짝수다. 짝수는 대칭을 이룬다. 개인과 개인이 짝지으면 가족이 되고 가족과 가족이 짝지으면 부족이 되고, 부족과 부족이 짝지으면 국가로 되고 국가와 국가가 짝지어 인류를 이루면 최종적으로 1이 되어 더 짝지을 수 없다. 파트너가 없다. 인류에서 더 짝지으려면 외계인이라도 만나야 한다. 인류는 홀수다. 사건은 짝수에서 시작해서 홀수로 끝난다. 동에서 시작되어 정으로 끝난다. 선으로 시작되어 점으로 끝난다. 점보다 작은 것은 없다. 점은 선이 끊어지는 지점이요 끊어지면 에너지가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없으므로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 인식되는 물질존재의 최소단위는 선이다. 점에 이르렀을 때 포착되지 않는다. 그것을 만질 수도 없고 발견할 수도 없다.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만지려는 행동이 선이므로 선과 짝지어 선을 만날 수 있다. 순수한 점은 텅 빈 공간으로 있다. 만져지는 물질은 짝수다. 만지는 행위가 짝수이므로 짝수와 짝수가 짝지어서 만져진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 안팎, 중심과 주변, 좌우, 전후, 피아로 다섯 번 짝수를 이룬다. 최종적으로는 홀수가 된다. 그리고 사라진다. 텅 비어 있는 무無의 바다는 그 사라진 자취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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