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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823 vote 0 2015.06.20 (16:24:43)

     

    희망을 버릴 수 있다는 희망


    문학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기술이다. 대개 하던대로 자신이 잘 아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쓰므로 실패한다. 구조론에서 '자기 소개 하지 말라'는 것도 그렇다. 자기소개를 한다면 서로간에 안면이 있다는 전제가 붙는다. 


    생판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자기소개를 왜 해? 설사 자기소개할 일이 있더라도 마치 남 이야기 하듯이 천연덕스럽게 해야 한다. 그것이 문학가의 기술이다. 원래 그렇게 한다.


    사람이 만난다면 서로 간에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성립되어 있는 거다. 공통분모가 있다. 그걸 깨야 한다. 철저하게 모르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너를 모른다. 작가는 독자와 친하지 않다. 아는 척 하지 마라. 신사는 당연히 그렇게 한다.


    희망을 버려야 한다. 희망은 자기소개가 되기 때문이다. 희망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데는 장애가 된다. 숲 너머에 강이 있다. 거기에 보물이 있다고 말하면 실패다. 보물을 탐하는 자신의 희망을 들키기 때문이다. 그 희망이 의사소통의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알지 않는가? 우리의 상대는 신이다. 신에게 다 들킨다.


    못 생겼지만 돈이 많은 여자와, 잘 생겼지만 신분이 하녀인 사람이 있다. 한국인들은 그만 희망을 들키고 만다. 잘생긴 하녀에게 돈을 안겨주고 싶어한다. 못 생긴 여자의 높은 지위를 빼앗아야 한다고 여긴다. 그래야 공정하다고 여긴다. 틀렸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이도다완은 못생겨서 가치가 있다.


    미녀가 하녀라니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욕망을 들킨다. 원래 세상은 미녀가 하녀다. 그래야 공정하다. 섣불리 개입하여 바로잡으려 들지 말라.

   

    우리는 희망 때문에 고통받는다. 김어준의 어머니가 자식에게 서울대를 가라고 채근하고 혹은 의사가 되라고 닦달했으면 오늘의 김어준은 없다. 희망을 발표하지 말라. 개인의 희망을 발표한다는건 모르는 사람을 해치는 방식이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잘 모르는 관계다. 부부라면 역시 잘 모르는 관계다. 부모가 자식을 안다면 그 순간 문학은 죽는다. 부부가 서로를 잘 안다면 역시 문학은 죽는다. 신이 서식할 은밀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부부간에도 서로 모르기 때문에 오늘도 작가는 밥을 먹는 것이다. 물론 문학성이 똥된 한국 드라마는 심지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몰상식한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기도 한다. 말이 돼?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우주의 양끝단 만큼 심리적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 절대 자기소개 하면 안 된다.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알게 하면 안 된다. 아들 자식을 뺏기지 않으려는 야만인의 저급한 마음을 들킨다.


    자신의 욕망을 들키면 안 된다. 바로 똥된다.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널려있는게 시어머니 욕하고 시누이 욕하는 똥이다. 한국인들은 왜 똥밭에서 뒹굴며 사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교양이 있어야지 말이다. 


    숲 너머에 강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의지가 된다. 거기에 뱀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보나마나 직업이 땅군이다. 자기소개다. 들켜버렸다. 그대의 직업은 내가 물어보지 않았으니 구태여 들키지 않아도 된다. 내가 당신을 이런 사람으로 혹은 저런 사람으로 규정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숲 너머에 강이 있다. 거기에 금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보나마나 한 탕을 노리는 얼빠진 녀석이다. 들켜버린 거다. 이미 어른들 간의 대화는 불능이다. 숲 너머에 강이 있다. 이것은 내가 당신을 초대하는 방식이다. 


    정의감을 발표하지 말라. 문제를 바로잡으려 들지 말라. 미녀는 귀부인이 되어야 하고, 추녀는 하녀가 되어야 한다는 당신의 비뚤어진 생각을 내게 들키지 말라. 그거 교양없는 짓이다.


    문학은 끝끝내 희망을 말해야 한다. 인간은 희망을 고리로 타인에게 말을 거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는 사람’이라는 나쁜 전제가 깔려 있다. 그들의 관계는 선후배관계거나, 친구관계거나, 고부간이거나, 사제간이다. 관계가 정해여 있다. 그래서 관계가 깨진다. 모임은 깨진다. 동호회도 깨진다. 이별하고 이혼한다.


    관계가 있기 때문에 관계는 깨진다. 관계가 없어야 타인을 초대할 수 있다. 그것은 희망을 버리는 것이다. 희망은 자신이 타인에게 다가가는 연결고리다. 거꾸로 독자가 작가에게로 다가와야 한다. 작가 스스로 손을 내밀어 독자에게로 다가가면 독자는 도망친다. 희망이라는 그대의 시커먼 손을 내밀지 말라.


    당신이 온전히 희망을 버렸을 때, 모든 기대가 완벽하게 무너졌을 때, 당신이 버린 것을 주워갈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타이밍이 늦어서 말이다. 완전히 포기하고 그들이 훔쳐가게 하라. 당신의 게임은 거기까지.


    문학은 집과 같다. 당신은 좋은 집을 한 채 지었다. 그러나 그 집은 결코 당신의 집이 될 수 없다. 당신이 그 집을 어떤 좋은 목적에 사용하겠다고 희망을 발표할 때가 모두들 당신을 떠날 때다. 당신이 그 집을 온전히 버릴 때 거기에 아이들도 오고 노숙자도 오고 장사치도 온다. 


    당신은 토지를 임대하는 지주다. 당신은 조건을 건다. 땅을 빌리러 온 사람에게 여기에다 무엇을 경작하기 바라노라고, 내 땅을 예쁘게 가꾸어주기 바라노라고 희망을 발표할 때 그들은 당신을 떠난다. 당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방법으로만 타인에게 말을 걸 수 있다. 


    모든 목수는 빈 집을 짓는다. 당신의 집 역시 빈 집이어야 한다. 희망이라는 세간을 내다버려야 한다. 당신이 희망을 버릴 수 있을까? 거기에 희망이 있다.



   DSC01488.JPG


    희망을 버렸을 때 무엇이 남는가? 에너지가 남습니다. 문학은 에너지를 주고, 기운을 주고, 호연지기를 길러줍니다. 비로소 타인에게 말을 걸 수 있습니다. 비로소 초대받은 사람에서 초대하는 사람으로 신분이 바뀝니다. 희망은 그 무대에 초대받은 사람의 것입니다. 


[레벨:8]상동

2015.06.20 (17:16:52)

초대하는 사람이 희망을 버릴때

초대받은 사람은 희망을 가진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만권

2015.06.21 (00:42:10)

잘 봤습니다
[레벨:8]펄잼

2015.06.28 (14:02:22)

나는 예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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