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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530 vote 0 2015.04.21 (23:35:11)

     

    응수하지 말라


    축구시합이라면 상대성이 있다. 우리편이 있고 상대팀이 있다. 축구협회는? 그 상대가 없다. 야구협회가 축구협회의 경쟁자로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있다면 자기 자신이다. 혹은 국민이다. 구조는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있다. 상부구조 위에 또다른 상부구조가 있는데,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경우 소거한다.


    구조를 추적하며 올라가다가 보면 맨 꼭대기 층위에 도달하게 된다. 그 꼭대기층은 피아간의 대칭구도가 없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대립이 있다면, 그 위에 남한과 북한의 대립, 한국과 일본의 대립, 아시아와 유럽의 대립 하는 식으로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 정점에 도달하면 인류와 외계인의 대립은 없다.


    인류는 무엇과 대립하는가? 자기 자신과 대립한다. 자신의 과거인 야만과 미래인 문명이 대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과의 대립이 나머지 대립들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상부구조다. 나머지 하부구조는 그 상부구조에서 일어나는 자신과의 대립을 복제한 것이다. 최상층부는 외부에 대립 상대자가 없다.


    대립하는 상대가 없는 상층부에서 사유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보통은 어떤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축구경기의 관점으로 접근한다. 일단 우리편과 상대팀으로 나눈다. 바깥에 적의 존재를 설정한다. 2원론이다. 그런데 이것이 본능이다. 그 본능을 극복해야 한다. 하부구조는 당연히 이원론적 대립이 있다.


    그러나 그 대립은 상부구조의 대립을 복제한 것이다. 그러므로 허상이다. 인간은 본질에서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하부구조는 대립이 있으므로 대립의 논리는 현장에서 먹힌다. 너무나 잘 이해가 된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모든 철학이 일원론으로 출발하고서도 점차 2원론으로 퇴행한다.


    소설은 권선징악으로 시작한다. 동화는 착한 주인공과 나쁜 마귀의 대결구도로 시작한다. 어린이는 경찰과 도둑 이야기를 좋아한다. 여기에 대립을 앞세운 게임의 원리가 작동한다. 세상을 너와 나의 게임으로 본다. 막연히 세상을 투쟁과 경쟁, 대결의 장으로 여긴다. 생존경쟁을 앞세운 인종주의 먹힌다.


    ‘때려잡자 공산당.’ 하는 식의 대결논리는 정치에서 성공한다. 인간의 본능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족민들은 그렇다. 거의 모든 부족민은 적대부족이 있다. 백인이 인디언을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총을 주면 된다. 같은 인디언끼리 서로 쏘아댄다. 백인에게 제대로 저항한 부족민은 마오리족 뿐이다.


    한국 또한 다르지 않다. 백범일지에도 백범가문과 적대가문의 갈등이 묘사되어 있다. 태평천국의 난도 가문간에 적대하는 해묵은 전통 때문에 일이 커진 것이다. 일본은 조슈와 사쯔마의 대립이 유명하다. 세상을 피아간의 게임으로 보고, 대결로 보고, 흑백으로 보고, 선악으로 보는 2원론적 관점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에 소속되어야 한다. 그러한 소속을 유인하는 유전자의 장치는? 긴장이다.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할 때 에너지가 끓어오른다. 동기부여가 된다. 대결국면이 조성되어야 사회에 소속되고자 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진화했다. 극복해야할 짐승의 본능이다.


    경마장에서 돈을 버는건 마사회다. 주최측은 대립하는 라이벌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 돈을 번다. 카지노에서 돈을 따는 자는 카지노다. 항상 이기는건 월드컵 조직위원회다. 그들은 패배하지 않는다. 그들은 게임의 장 바깥에서 게임을 지배한다. 주최측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아야 한다. 구조론의 시선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으면 구조론이 어려워진다. 이 문제는 각자 해결하고 와야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집단 안에서 자신에게 역할을 부여하려 한다. 역할을 받는 방법은? 대칭행동이다. 타자화 하고 대상화 한다. 대결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망한다. 그런데도 인간이 대립에 집착하는 이유는?


    구조론은 질 다음에 입자다. 입자 단계에서는 당연히 맞서야 한다. 시합 중에 적과 맞서지 않으면 곤란하다. 우리가 새누리당의 깡패질에 맞서는건 당연하다. 그러나 침략하지도 않은 북한에 맞서는 꼴통은 곤란하다. 부모가 자식에게 맞선다면 곤란하다. 연애하기도 전에 맞서려고 한다면 사귈 수 없다.


    오자병법은 강자의 전략이고 손자병법은 약자의 전략이다. 다들 맞서기 위주로 가는 손자병법을 좋아한다. 그러나 손자병법으로 이길 수 없다. 실전에서는 언제나 오자병법이 이긴다. 그런데도 손자병법을 기웃거리는 이유는? 자신을 약자로 놓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다. 현실에서는 당신이 약자이니까.


    그런데 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지금 약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가? 약자이므로 약자의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의 전략을 선택하므로 약자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겠는가? 때로는 손자병법을 써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로마교범식 전투 - 이순신장군의 전투 - 오자병법이 먼저다.


    왜 로마군은 항상 이기는가? 로마군은 맞서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군은 공병대를 데리고 다니면서 삽질을 계속한다. 라인강에 다리를 놓는다. 거대한 참호를 파기도 한다. 적과 싸우지 않고 자기자신과 싸운다. 이것이 오자병법식 전투다. 징기스칸도 마찬가지다. 적과 싸우지 않고 하던대로 사냥을 한다.


    몽골군은 피를 흘리면 영혼이 흩어져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미신을 믿었다. 징기스칸이 라이벌 자무카를 죽일 때도 피를 흘리지 않게 가죽부대로 싸서 말발굽으로 밟아죽였다. 몽골군은 근접전을 하지 않는다. 근접전을 하면 피를 흘리기 때문이다. 피를 흘리지 않으려다보니 양양성을 6년간 포위했다.


    아랍을 점령할 때도 공성기를 쓸 뿐 피를 흘리지 않았다. 대신 사냥할 때 쓰는 수법으로 몰이를 했다. 징기스칸은 40번 싸우면서 한 번도 같은 전술을 반복하여 쓰지 않았는데 이는 피를 흘리지 않으려다가 보니 생긴 일이었다. 몽골군은 적을 싸움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사냥감으로 여길 뿐이다.


    바둑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상대하지 않는다.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왜? 그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하지 않는 자의 관점을 얻어야 한다. 정치도 그렇다. 대통령이 야당을 상대하려고 생각하는 순간 바보된다. 야당이 여당을 상대하는건 당연하다. 야당은 탑포지션이 아닌 입자포지션이기 때문이다.


    질은 결합하고, 입자는 독립한다. 질은 결합하므로 남녀의 연애와 같아서 상대하지 않는다. 이기려 하지 않는다. 이기려 하면 파트너와 결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입자는 독립하여 적을 상대한다. 상대하여 이긴다. 상대할 때 상대하더라도, 먼저 상대하지 않는 질의 결합을 완성하고 난 다음이라야 한다.


    손자병법을 쓰더라도 오자병법의 큰 개념 안에서 세부전술로 구사해야 한다. 남녀가 서로 이겨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결합을 깨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해야 한다. 질이 먼저고, 입자는 두 번째다. 질의 관점을 얻어야 한다. 입자가 앞서면 종속되고 만다. 야당이 여당을 이기려고만 하면 평생 야당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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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는 지나치게 대결의 논리, 응수의 논리, 입자의 논리에 치우쳐 있습니다. 그래서 망합니다. 유럽의 경제위기가 대표적입니다. 미국을 본받아서 그냥 돈 찍어내면 되는데 독일이 그리스를 적으로 보고 대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짐승의 본능입니다. 자본주의가 그러면서도 노동자에게는 한 가족이라고 주장하죠. 특히 삼성. 사회주의 역시 'social'이라는 말의 어원이 '사귄다'는 뜻인데서 보듯이 본질은 '한 가족주의'입니다. 사회주의는 당연히 가족주의인데도 끝없는 대결을 주장하는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하부구조는 경쟁하고 대결하는게 맞습니다. 그러나 정상은 대결하지 않습니다. 질의 관점에서 시작해야 이깁니다.  


    정치에서는 약자의 전술, 손자병법이 집권에 유용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신나게 망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대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리입니다. 수학과 문학이 대결하는 일은 없습니다. 적어도 진리탐구에 임해서는 대결의 논리, 타자화의 논리를 버려야 합니다. 진리는 통짜덩어리 하나로 존재합니다. 진리는 적이 없습니다. 대결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 한 진리를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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