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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748 vote 0 2015.04.12 (12:46:28)

     

    구조냐 창조냐?


    세상에는 오직 구조와 창조가 있을 뿐 다른 것은 없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제조되거나, 혹은 구조되거나, 아니면 창조된 것이다. 반드시 어떤 조造를 거친 것이다. 인위로 만들면 제조, 저절로 만들면 구조, 거짓말로 만들면 창조다.


    ‘저절로’는 자연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제조는 구조의 일부다. 창조는 거짓말이므로 빼고 결국 구조만 남는다. 세상은 구조다.


    ◎ 구조론은 세상이 특별한 조건에서 저절로 만들어졌다는 이론이다.


    창조론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거다. 구조론은 ‘일정한 조건’에서 저절로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거다. 그렇다면 그 ‘저절로 만들어지게 하는 특별한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이 구조론이다.


    돌멩이를 하나 주워서 잠실운동장에 던지면 저절로 신형 BMW 자동차가 만들어질까? 그럴 리 없다. 그런데 만약 만들어졌다면 그 조건은 무엇인가? 돌멩이를 던짐과 동시에 헛방귀를 세 번 끼고, 집게손가락으로 콧잔등을 일곱 번 문지른 다음 약속된 주문을 외우면 BMW가 만들어질까? 천만에. 그래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뭐라도 만들어졌다면 그것이 만들어지게 하는 조건은?


    먼저 계를 정해야 하고, 다음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하고, 임계까지 밀도가 걸려야 하고, 외부에서 핵이 투입되어 내부에 축과 대칭이 생성되어야 하며, 다시 그 축이 움직여서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바뀌는 형태로 내부대칭이 외부대칭으로 전개해야 한다. 그럴 때 무언가 만들어진다. 그다지 신통한 것은 아니라도 일단 만들어지기는 한다.


    구조론은 ‘저절로 된다’는 이론이다. 단 조건이 있다. 그 확률은 낮다. ‘저절로 된다’는 떡밥은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을 헷갈리게 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이후 보수꼴통들이 정부의 간섭만 없으며 경제가 저절로 된다고 주장하며 나쁜 짓을 많이 해 왔다. 그럴 리가 없다. 경제는 되게 해야 되는 거다.


    그런데 모르면서 되게 한다고 함부로 나대다가 더 망한게 사회주의다. 되게 해야 되지만 그냥 한다고 다 되는게 아니고 일머리를 알고 해야 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알고 해야 하는가? 바로 그게 구조론이다. 순서와 방향을 알아야 한다.


    도교에서는 ‘무위이화’를 말한다. 그러나 무위이화 잘 안 된다. 구조론은 한 마디로 마이너스다. 무위하면 자연스럽게 망한다는 거다. 프로야구 한화팀을 그냥 놔두면 저절로 우승할까? 그럴 리가 없다. 다만 특별한 조건에서는 적은 확률로 저절로 될 수 있다.


    ‘그’ 특별한 조건이 뭐냐?‘를 규명하는게 구조론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일어난 것은 지정학적 조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인데 그 지정학적 조건이 구체적으로 뭐냐다. 지금 그리스가 망한건 인구변동과 교통발달로 그 조건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은 지금 운좋게 좋은 흐름을 타고 있다. 한국은 조건이 좋고 확률이 높다.


    그게 저절로 다 될 확률은 매우 낮으므로 지구 정도의 생태계를 무위이화의 방법으로 연출하고자 한다면, 지름 1천억 광년의 사이즈를 가진 우주 정도의 크기가 필요하다. 우주는 쓸데없이 커서 터무니없이 공간을 낭비하고 있는게 아니라, 사실은 원래 그만큼 무위이화로 뭐가 될 확률이 낮은 것이다.


    무위이화의 성공은 절묘한 밸런스를 필요로 한다.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공간의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 옛날에 고을에 부자 하나가 나려면 주변의 1천 호가 망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흉년이 거듭 들고, 전염병이 나돌아 인근 마을이 죄다 망해야 헐값에 토지를 사들여서 소작료를 무려 50퍼센트씩 뜯어가는 경주 최부자 같은 악질 부자 하나가 겨우 탄생하는 것이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모든 것은 안정되려고 한다. 뭐가 되든 어떤 되는 것은 계에 불안정을 유발시킨다. 그러므로 뭐든 되려면 상부구조에 더 큰 불안정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불안정한 시스템이다. 민주주의보다 더 큰 상부구조의 불안정이 붕괴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민주주의로 가는 것이다.


    세상은 확률이고 그 확률은 기본적으로 낮다. 인간이 고도로 짱구를 굴려야 실낱같은 문명이 겨우 유지된다.


    존재를 설명하는 이론은 창조론과 구조론 밖에 없다. 그런데 창조론은 이론이 아니라 이론인 척 하는 거다. ‘창조자는 누가 창조했느냐?’ 하는 질문이 추가로 따라붙기 때문이다. 컴퓨터에 비유할 수 있다.


    창조론은 물 자체에 고유한 속성이 있다는 거다. 그 속성을 바꿔주면 새롭게 창조된다. 컴퓨터 게임이라면 아바타가 마음에 들지 않을때 다른 걸로 바꿔주면 된다. 클릭 몇 번으로 간단히 해결된다. 그러나 이는 사전에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 프로그램은 어떻게 창조되었나?’ 하는 질문이 따라붙으므로 무효다. 창조론은 존재를 설명하지 않는다.


    창조론자의 관점에서는 모든 존재에 고유한 속성이 있다. 귀족은 귀족의 영혼이 있고 노예는 노예의 영혼이 있다. 노예라도 기도를 열심히 하면 이를 가상히 여긴 하느님이 노예영혼을 귀족영혼으로 영혼등급을 바꿔준다. 혹은 불교라면 선한 까르마를 쌓아 영혼의 등급을 올릴 수 있다. 단 이번 생에 안 되고 다음 생에 가능하다.


    구조론은 그 고유한 속성을 부정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건의 방아쇠는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수류탄의 기폭장치는 내부에 있지만 안전핀은 밖에 있다. 소총의 공이는 내부에 있지만 그 공이를 때리게 하는 방아쇠는 외부에 있다. 감기에 걸렸다면 바이러스는 내부에 있지만 외부에서 들어왔다. 유전병이라도 외부의 부모에서 받은 것이다.


    백퍼센트 내부에만 원인이 있는 것은 절대로 없다. 원인의 인因은 글자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원인이 내부에 있다고 생각된 것이다. 그러나 틀렸다.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온 것이다. 구조론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설명한다. 보통은 입자를 원인으로 친다. 그런데 질이 원인이다. 질은 바깥에서 안으로 원인이 들어오는 절차다.


    야구팀이 게임에 졌다면 내부의 최희섭이 저지른 에러 때문이라 해도 그 최희섭을 데려온 것은 외부의 프런트다. 모든 사건은 항상 외부에서 시작된다.


    ◎ 모든 사건은 반드시 외부에서 시작된다.


    원인이 외부에 있다는 한 가지 원칙을 받아들이면 창조론 혹은 창조론적 관점은 모두 붕괴된다. 창조했다는 것은 완전하다는 것이고, 완전하다는 것은 닫혀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닫혀있으면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여 원인을 기폭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창조론적 관점 – 원인은 내부에 있고 존재는 닫혀있으며 완전하다.
    ◎ 구조론적 관점 – 원인은 외부에 있고 존재는 열려있으며 불완전하다.


    존재는 불완전하므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에너지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밖으로 빠져나간다. 존재는 에너지가 지나가는 통로에 불과하다. 에너지가 들어오지 않으면 존재는 시체다.


    ◎ 구조론적 관점 – 존재는 기본적으로 불완전하며 외부로부터의 에너지 순환에 의해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졌을 때 일시적으로 완전해진다.


    인간이 짐승보다 우월한 것은 인간 내부에 좋은 영혼이 있기 때문에 아니라 인간 외부에 좋은 사회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우수한데 개인이 우수한 척 하는 것이다. 사회로부터 분리된 개인은 벌레와 같다. 대표적인 예가 일베충이다.


    ◎ 창조론의 관점 – 존재는 그냥 존재한다.
    ◎ 구조론의 관점 – 존재는 외부와 연결되어 에너지가 순환될 때 연출된다.


    원인이 외부에 있다는 것은 그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고, 그러한 연결에 의해 우주 전체가 하나의 통짜덩어리로 존재한다는 것이며, 개개인의 의미는 없다는 거다. 위대한 인물이 탄생했다면 그 사회, 그 시대 전체의 작품이지 개인의 우월성은 아니다.


    ◎ 창조론 – 어떤 A가 존재한다.
    ◎ 구조론 – 어떤 A+ 에너지 순환 + 구조적 연결망이 존재한다.


    이순신이 특별히 뛰어난 인물인게 아니라 그 시대가 그나마 괜찮았기에 이순신, 유성룡, 권율, 퇴계, 율곡과 같은 좋은 인물이 떼로 탄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인물을 탄생시킨 선조도 재평가되어야 한다. 분위기가 좋으면 묻어가는 거다.


    그냥 어떤 존재는 없다. 에너지 문제와 구조적 연결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한 그루의 나무는 햇볕이라는 에너지를 받아야 하고 뿌리가 흙을 단단히 붙들어 지구와 연결되어야 한다. 나무에서 나무 아닌 것을 제거하면 나무는 사라진다. 죽는다.


    타오르는 불과 같다. 연료가 없고 산소가 없을 때 불은 죽는다. 존재는 불이며 불은 창조되는게 아니라 번져가는 것이다.


    존재는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살아있는 것이며 그 조건이 해제될 때 죽는다. 생명도 죽고 물질도 죽고 우주도 죽는다. 창조론이 가짜라는 사실은 오래 전에 판명되었지만 인류는 여전히 창조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창조론의 대체재는 구조론이다.


111.JPG


    구조론 외에는 존재를 설명하는 이론이 없습니다. 수학자만 수학을 비판할 자격이 있고 구조론자만 구조론을 비판할 자격이 있습니다. 창조론을 언급한 것은 워낙 언급할게 그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언급할 가치도 없지요. 이론의 부재를 먼저 발견해야 합니다. 그게 발견되지 않은 분과는 대화가 불능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계돌이

2015.04.13 (13:00:55)

"우주는 쓸데없이 커서 터무니없이 공간을 낭비하고 있는게 아니라, 사실은 원래 그만큼 무위이화로 뭐가 될 확률이 낮은 것이다.".....


"우주에 오직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거대한 공간의 낭비"라고 했던 

칼세이건이...이 글을 본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군요....


'존재는 에너지가 지나가는 통로'.....자꾸 음미해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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