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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592 vote 0 2015.04.08 (15:00:27)

     

    공자는 누구인가?


    사상思想은 통합적 관점을 의미한다. 구조론적 의미에서 볼 때 사상이 다르다는건 있을 수 없다. 만약 어떤 두 사람의 사상이 충돌한다면 하나는 진짜고 하나는 가짜다. 혹은 둘 다 가짜다. 사상은 없거나 있거나다. 근대인의 통합적 관점으로 보거나 아니면 봉건인의 차별적 관점으로 보거나다.


    ‘공자의 사상은 무엇일까?’ <- 이건 틀린 물음이다. 진정한 사상은 하나 뿐이다. 각자의 사상 같은건 없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특별히 무언가를 주장한 것이 아니다. 단지 사상에 섰을 뿐이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발견하고 ‘왜 아무도 이리로 가지 않지? 한 번 가보자고 제안했을 뿐이다.’


    사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가 함께 길을 가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공자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무엇을 가르치면 안 된다. 중요한건 태도다. 자세다. 입장이다. 포지션이다. 방향성이다. 관점이다. 공자가 무엇을 가르쳤다면 그것은 지적되어야 할 공자의 흠결이다.


    빵을 주는 사람은 하수다. 빵 굽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중수다. 그냥 채집경제로 가서 올챙이나 굼벵이를 먹어도 되는데 왜 1년씩이나 걸려 어렵게 농사를 짓고, 그 곡식을 겨울내내 저장했다가 커다란 가마로 빵을 구워먹어야 하는지, 그렇게 복잡한 일을 벌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주는 사람이 진짜다.


    진짜는 목표를 제시하는 사람이다. 이상주의가 진짜다. 빵을 먹으려면 매일 아침에 빵 가마 앞에 가서 길게 줄을 서야 한다. 도시에 모여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인생 전체를 통째로 바꾸는 것이다. 빵굽는 기술로는 부족하고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거대한 목표를 던져주어야 한다. 이것이 통합적 관점이다.


    두 꼬맹이가 싸운다고 치자. ‘네가 먼저 시비를 걸었잖니’ 하고 시시콜콜 따지며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사람은 지식인이 아니다. 교실은 비좁고 인원은 많아서 싸움이 일어난 것이다. 안이 아니라 밖을 보는 거다.


    이것이 구조론적 관점이다. 교실을 크게 늘려 짓고 학급당 정원을 줄이고, 교사 숫자를 늘리는게 답이다. 개개인을 붙잡고 씨름할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판 전체를 보고 전체의 흐름 바꾸는 방향으로 답을 찾아가야 한다. 그런 사람이 사상가다.


    공자를 사상가로 인정했다면 가르침의 세부내용이 아니라 돌아가는 판도 전체를 보고 말해야 한다. 김용옥처럼 시시콜콜 따지는 자는 두 꼬맹이의 싸움에 개입하여 ‘네가 먼저 잘못했잖니’ 하고 역성드는 사람이다.


    수준이하다. 이런 사람은 어른들의 대화에 끼워줄 수 없다. 김용옥은 사상을 논할 자격이 없다. 그는 지식인이 되지 못한다. 지식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김용옥은 아직 국어사전에서 ‘사상’ 두 글자를 찾아보지 않은 사람이다.


    공자의 사상은 ‘제대로 해 보자.’는 것이다. 해야할 사업은 인간존중이다. 공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운 사람이다. 존엄성은 한 개인이 인류 전체를 대표할 때 얻어진다. 먼저 인류 전체가 한 덩어리를 이루어 하나의 뇌로 기능하는 시스템을 건설해야 한다.


    그것은 수천 년이 걸릴 수 있는 어려운 작업이다. 짐승을 졸업하고 인간이 되어보자는 것이 공자의 입장이다. 야만에서 벗어나 문명을 이루자는 거다. 그것은 어떤 의견을 제시하는게 아니라 창업주가 첫 삽을 뜨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 착각하지 말라. 이런건 사상이 아니다. 그냥 머저리의 무개념이다. 사상은 벤처다. ‘나는 끝까지 가보려고 하는데 너도 함께 갈래?’ 이거다.


    ‘끝까지 가느냐’가 중요할 뿐 의견차이는 원래없다. 문명과 야만은 생각의 차이가 아니다. 문명은 모여 있고 야만은 흩어져 있다. 공자의 주장은 인류가 힘을 한 번 모아보자는 거다.


    개인은 힘이 약하고 집단은 힘이 세다. 집단의 힘을 모으는 것이 본질이며 방법론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맹자의 종교적 접근도 있고 순자의 제도적 접근도 있다. 과학의 방법, 지리의 탐험, 종교적 공동체의 건설, 예술과 문화의 창달 등으로 다양한 곁가지가 돋을 수 있는 것이며,


    공자가 그 중에서 예禮에 특별히 관심을 두었다 해도 그것은 공자 개인의 취향에 불과하며, 공자가 과학을 반대하거나 혹은 지리탐험을 부정하거나, 경제적 번영을 반대하거나 혹은 예술과 문화의 부흥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건 백과전서다. 백과전서운동에서 계몽주의가 촉발된 것이며 공자는 백과전서식 지식의 백화점을 차린 거지 구멍가게를 낸 것이 아니다. 서점을 낸 거지 단행본을 발간한 것이 아니다. 공자이래 중국에서 백과전서식 사유는 꾸준히 있어왔다. 그것이 중요하다.


    ◎ 공자의 가르침은 ‘제대로 한 번 해보는 것’이다. 

    ◎ 공자의 목표는 인간존중≫인간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 학문은 짐승을 인간으로 바꾸고, 야만을 문명으로 바꾼다. 

    ◎ 공자는 여러 사람이 힘을 하나로 모아 강해지는 방법을 찾았다.

    ◎ 마음을 모으는 것은 이상주의요, 힘을 모으는 것은 학문이다.


    화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종이쪽지에 불과하다. 사막에 사는 부시맨에게 말이다. 그 종이가 힘을 가진다면 그것이 이상주의다. 이상주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지만,


    야만의 정글을 벗어나 도시의 문명으로 오면 여러사람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수단이 된다. 광장에 모인 일만 명으로 하여금 하나의 표적을 보게 하려면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을 빼놓고는 이상주의가 답이다.


    공자는 주나라 시대로 역사를 되돌려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천만에. 공자는 여러사람의 힘을 하나로 모으려고 이상주의를 내세웠으며, 그 이상주의 정체가 뭐냐고 묻자 대답이 궁해져서 요순시절이니 왕도정치니 하고 주워섬겨본 것 뿐이다. 그것은 공자의 아이디어가 아니고 그 시대의 유행에 공자가 편승한 거다.


    서양인의 이상주의는 에덴동산이다. 과연 에덴동산은 낙원이었을까? 집단은 결집하기 위해 랜드마크로 이상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누가 캐물으면 할 말이 없으니까 에덴타령으로 회피하는 거다. 그런데 에덴이 어디야? ‘거 참 거시기 하구만. 하여간 그런게 있다고 치자고. 요순시절이 참 좋았다고 치자고. 다들 그렇게 말하고 있잖냐고.’ 그런 거다. 본질을 봐야 한다.


    본질은 인간이 강해지는 거다. 강해지는 방법은 여러사람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맹자의 종교적 방법과 순자의 제도적 방법 그리고 문화예술의 방법, 과학의 방법, 자본의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때 그시절 공자나 예수가 과학의 힘, 자본의 힘, 예술의 힘을 몰랐다고 해서 욕 먹을 이유는 없다. 2500년 전 그때는 그런 시대였으니까.


    ◎ 근래의 방법 - 과학적 발견, 지리의 탐험, 자본의 부흥으로 힘을 모은다. 

    ◎ 전통적 방법 - 종교적 공동체, 법률과 제도, 문화와 예술로 힘을 모은다.


    공자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공자사상의 본질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집단 안에서 인간의 생존본능이다. 집단은 강하고 개인은 약하다. 인간은 강한 집단의 힘을 이용하려 하면서도 그 집단에 맞서 개인을 보호하려고 한다. 집단에 맞서는 생존본능의 방법은 불안정한 것이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과 같다. 소년은 단지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고 그 집단의 중심에 서고 싶었을 뿐이다. 남들은 모여서 노는데 혼자 양떼를 돌보는 생활이 쓸쓸하기 때문이다. 본능을 따르면 양떼를 지키지 못한 양치기 소년처럼 위태롭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집단과 소통하는게 낫다.


    본능을 따를 것인가 이성을 따를 것인가다. 개인이 집단으로부터 보이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아 몸에 문신을 새기는 등 부족의 표지를 만들거나, 혹은 양치기 소년처럼 돌출행동을 하거나, 혹은 귀신이나 UFO, 휴거설, 북한땅굴설 따위 되도 않은 헛소문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려 하거나, 혹은 분리불안에 빠져 지역주의, 종북놀음, 인종차별 등으로 반사회적인 소집단의 결속력을 추구하거나 하는 따위다.


    지금이라면 문신이 개인의 취미지만 당시는 부족의 표지였다. 부족전쟁 때 자기부족을 헷갈릴까봐 문신을 새긴다. 어두컴컴한 정글에서 모르고 이웃부족을 따라갔다가는 살해될 수 있으니까. 공자가 머리칼을 자르지 말라고 한 것은 부족민 행동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부족의 표지는 신체훼손 방법을 쓰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이 원초적 본능이므로 의심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 입장에서 고소의 공포는 너무나 자명한 것이어서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할 계제가 못 된다.


    높은데 있으면 실제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모형탑 위에서 손잡이 철봉을 꽉 잡았는데 근육이 굳어서 놓을 수 없다. 일베충이나 사이비 집단의 확신은 생생하게 체험되는 본능이므로 결코 논리로 격파되지 않는다.


    배고픈 돼지에게 ‘너는 점심을 충분히 먹었잖아.’ 하고 말로 설득한다고 해서 그게 먹히겠는가? 소화액이 벌컥벌컥 쏟아져서 위벽을 갉아대는 판에 그런 점잖은 말씀이 귀에 들어오기나 하겠는가?


    ◎ 공자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은 부족민의 본능이다.

    ◎ 분리불안으로 반사회적인 소집단의 강한 결속력을 추구한다. 

    ◎ 부족의 표시로 문신, 머리모양, 복장 등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을 치려고 귀신, UFO 따위를 지어낸다. 

    ◎ 명상을 한다며 개인의 문제에 매몰되는 퇴행행동을 한다.


    나치나 일베나 다문화논란이나 성차별이나 지역주의나 종북놀음이나 일체의 차별주의는 분리불안이 만들어낸 부족민의 허상이다. 그들은 집단의 결속력을 추구하며, 집단이 결속하는 방법은 이웃 부족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타자를 차별하고 증오함으로써 그 반작용으로 되돌아오는 힘을 이용하여 자신이 소속된 집단에 강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귀신이니 마녀니 UFO니 초능력이니 북한땅굴이니 하며 되도 않은 헛소리를 지껄여서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에 진입하려고 한다.


    공자는 이러한 부족민의 원시행동을 반대한 것이다. 물론 공자의 부작용도 있다. 공자의 이름을 내걸고 부족민의 행동을 하는 자가 있다. 충효를 떠벌이는 자가 그러하다. 지나치게 예법에 매몰되는 행동도 그러하다.


    부족민의 차별표지나 미국 대사관 앞에서 생쇼를 한 자들의 과공비례 행동은 본질이 같다. 미국부족과 한국부족은 같은 부족이라는 증거를 만들려고 부채춤을 춘 것이다.


    천하의 문제를 해결해야 개인의 문제가 해결된다. 개인의 문제에 매몰된 소승불교는 반공자적, 반사상적 작태다. 부족민의 행동과 다를바 없다. 인간은 집단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편안하다는 증거를 보여야 한다.


    다문화차별, 성차별놀음, 종북놀음, 일베놀음은 그들이 지쳐있고 불안하다는 증거다. 지나친 충효타령도 심리적으로 불안하다는 증거다. 충효는 공자도 극복하지 못한 그 시대의 유행이다.


   111.JPG 


    사상思想은 공공도서관과 같습니다. 도서관은 ‘어떤 생각’을 진열하는 곳이 아닙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 이런건 사상이 아닙니다. 사상은 인류의 모든 생각을 한 곳에 모아놓았을 때 거기서 얻어지는 시너지 효과를 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총류입니다. 도서관이 총류를 얻으면 마침내 스스로 사유할 수 있게 됩니다. 인류는 바야흐로 그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구조론은 사상의 총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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