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edia.daum.net/series/113066/newsview?seriesId=113066&newsId=20150330200311528
역시 답은 바깥에 있고, 상부구조에 있고, 상호작용에 있고, 외부환경에 있다. 구조론은 대칭이다. 나와 나 아닌 것의 대칭이 첫째이며, 그 '나 아닌 것'은 환경이다. 하나의 대칭관계가 하나의 입자를 구성한다. 그 입자의 숫자가 절대로 많아야 한다. 동전은 두 면이 있고, 주사위는 여섯면, 윷놀이는 다섯 말을 쓴다. 나와주는 경우의 수가 많아야 한다. 내부를 쥐어짜는 힘주기 방식은 백전백패다. 명상도 마찬가지다. 바깥의 환경변화에 민감해져야 한다. 환경에 일대일로 반응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자기 내부에 몰입하는 자아도취형 명상은 정신적 자위행위에 불과하다. 위빠사나든 사마타든 뻘짓이다. 대칭은 없는 것보다 일단 있는 것이 낫다. 단선적인 대칭보다 평면적인 대칭이 낫다. 평면적인 대칭보다 입체적인 대칭이 더 낫다. 입체로도 부족하며 입체 위의 중첩으로 나아가야 한다. 깨달음은 높은 단위에서의 대칭을 보는 것이다. 아이가 학교 지붕에서 달리는 이유는 위치가 높아서 짜릿하기 때문이다. 당겨진 악기의 현처럼 세상과의 팽팽한 긴장관계가 된다. 그럴 때 세상과의 일대일 대칭성을 느낀다. 그 대칭성이 창의성의 자궁이 된다. 소설에도 그림에도 반영이 된다. 천장이 낮으면 문제와 나의 일대일 대칭성이 강하게 느껴져 집중력이 향상된다. 독서실 책상처럼 좌우를 막으면 더욱 좋다. 천장이 높으면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보게 된다. 외부에 나를 도와줄 구원군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더 높은 레벨의 대칭성이 포착된다. 더 넓은 포석을 하게 된다. |
흔히 다양한 경험과 접촉을 이야기하는데 구조론적으로 이렇게 이해되네요.
나와 다른 환경들을 가능한 많이 접하게 하면 (나+환경들) = 입자들. 가능한 입자의 숫자가 많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