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한국영화의 본질이라 할 '개김의 미학'에 충실한 영화다. 한국에서 뜨려면 일단 개김성이 좋아야 한다.
왕의 남자에서 장생도 그렇지만 괴물에서 송강호도 일단 개김성이 좋다. 하여간 한국에서는 일단 개기면 뜬다.
명언도 있다. "개겨라 그러면 대박을 맞을 것이니라."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그 어떤 잘난 평론가도 이 영화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 점이 섭섭했다. 나의 영화평론가 때리기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상당히 시간이 흐른 후 이 영화를 새롭게 조명하는 평론들이 제법 나왔지만 그 때는 이미 주유소식 영화들이 극장가에 대거 등장한 이후다.
이 영화를 지지하는 이유는.. 이와 유사한 수법의 영화들이 대거 쏟아져 나올 것으로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특히.. 이 영화가 한국영화의 고질병 중 하나인 ‘끝내기’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보통 한국영화는 끝내기가 안되기 때문에.. 단지 영화를 끝낼 목적으 로 주인공을 죽이는데 그 때문에 해피엔딩이 안되고 분위기가 너무 무겁게 가서 관객들에게 외면을 받는다.
주유소.. 한 마디로 말하면 ‘깨는 영화’다. 관습을 깨고 원칙을 깨고 규범을 깨고 전부 다 깬다. 물론 완벽하게 깨는 영화는 아니다. 주인공들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신들의 범죄를 변명하는 장면은 구차한 거다.
주인공들이 하나씩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비뚤어졌다는 것.. 그것은 쿨하지 않은 것이며 요즘 말로는 찌질이들의 찌질한 소리다. 그래서 나는 주유소에 100점을 줄 수 없다.
그러나 김기덕의 모든 영화 말고 이 영화처럼 깨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 노랑머리도 비슷한 시점에 나왔는데 제법 깨는 영화다.
왜 괴물에 주유소 이야기를 하는가? 두 영화는 닮아있다. 주유소는 하나의 작은 국가다. 고립된 세계다. 외부로부터 차단된.. 은밀한 왕국.
그 국가는 ‘무대뽀’라는 폭력에 의해 지배된다. 힘이 곧 법이다. 네 명의 악당은 단지 힘이 세기 때문에 밤 동안 주유소를 지배하고.. 그 국가를 통치하며 국가 안에서 일어난 자잘한 문제들을 해결한다.
주유소 국가에서 하룻밤 동안 온갖 사건이 일어난다. 이 영화는 하나의 단일한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거대한 세계를 주유소라는 압축기로 매우 압축시켜서 만화경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봉준호의 괴물은.. 한강이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괴물이라는 만화경을 이용하여 다양한 사건들을 나열식으로 보여준다. 괴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그 괴물이라는 거울 앞에 선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괴물의 등장이라는 돌발상황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웃기고 자빠진 실상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YTN의 돌발영상을 연상하게 한다.
주유소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들.. 철가방, 폭력배, 굉음을 내며 달리는 폭주족, 삥을 뜯는 경찰.. 기타등등 웃기고 자빠진 인간들의 행태를 연극무대처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아무래도 연극같다.
그 사건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세계를 극도로 집약하여 압축하고 상징한다. 즉 풍자하는 것이다. 무대뽀의 나무 몽둥이가 전두환의 권력을 풍자하듯이.
온갖 저질스럽고 잘난체 하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을 크로키로 스케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간략한 스케치는 옴니버스와 같아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그래서 관객은 심심해진다.
이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와 같에 손에 땀을 쥐고 몰입하여 보는 영화가 아니다. 총알탄사나이류의 패러디 영화처럼 피식 하고 웃으며 보는 영화다.
짧은 카툰이나 네컷만화를 연달아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다. 전체적인 줄거리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간간히 피식하고 웃음을 던지는 것이다. 양영순의 아색기가를 여러 편 이어붙여 놓은듯한 느낌을 받는다.
괴물도 비슷하다. 괴물은 헐리우드의 관습을 깨뜨렸다. 사건의 진행보다는 정치적 풍자에 촛점을 맞추었다. 송강호가 ‘노 바이러스’를 외칠 때 관객들은 부시의 ‘이라크에 핵 없더라’를 연상한다.
이런 풍자는 웃음을 낳는 대신 몰입을 방해한다. 괴물의 모습을 보고 긴장해야 하는데 웃게 되는 것이다. 고질라류 괴수영화인데 코미디라? 생뚱맞다.
봉준호는 다양한 풍자와 위트를 모자이크처럼 나열한다. 전통적으로 이런 식의 영화는 대박을 기대할 수 없다. 이건 중박이어야 맞다. 그런데 대박이 터졌다. 왜? 사실 나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를 즐겁게 보기는 했지만.. 천만 관객이 들 만큼 아주 재미있는 영화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흥행한 이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영화가 전체적으로 관객의 예상을 깨는 의외의 흐름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말하자면 생뚱맞음의 연속이 이 영화의 흥행요인은 아닐까?
생뚱맞음을 강조하면 대박이 아니라 중박인데 .. 예컨대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는 충분히 생뚱맞음에도 불구하고 쪽박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확실히 ‘지구를 지켜라’는 걸작이다.
어쨌든 잘해야 중박인 생뚱 영화-깨는 영화가 의외로 대박을 맞았다는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 단지 영화만 보고 판단한다면 대략 500만 정도를 예상할 것이다.
거기다가 여름방학+청소년 관람가+괴물의 CG효과를 더해도 800만을 넘기 어렵다. 그 이상의 성공은 언론의 호들갑 때문?
영화가 소개되기 전에 괴물에 괴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있었다. 과연 괴물에 괴물이 나올까? 기자 시사회 전에 이런 물음들이 있었다.
왜냐하면 괴물은 심형래나 만드는 건데 봉준호가 괴물이라니 생뚱맞잖은가.. 이 영화는 많이 생뚱맞다. 헐리우드의 관습을 깨고 괴물이 극 초반에 나와버리는 것도 생뚱맞다.
그것도 껌껌한 밤이 아니라 벌건 대낮에.. 고질라든 에일리언이든 어두운 밤이다. 환한 대낮에 괴물의 전체모습을 다 보여준다는건 자살행위다. 그런데도 보여주었다는 것은.. 그만큼 CG에 자신이 있었다는 뜻? 아니면 의도된 생뚱전략?
더욱 생뚱맞은 것은 이야기가 괴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풍자 - 부시에 대한 야유- 개인과 사회 시스템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의 화염병 시위에 대한 회고-
한국인의 자화상에 대한 회상이다. 옛날 가난하고 못살던 시절의 초라한 모습이 담긴 낡은 가족앨범 사진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갖는다.
어수룩한 변희봉. 잠만 자는 송강호.. 대학 나와서 취직도 못한 삼촌.. 이건 한국인들의 낡은 앨범에 다 들어있는 거다.
이런 다양한 메뉴구성의 생뚱맞음 때문에 - 그렇게 가족주의로 잔뜩 무게를 잡아가다가 괴물이 한강다리를 휙휙 날아다니는 모습은 더욱 생뚱맞다. 나는 그 장면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 생뚱맞음의 연속이 이 영화의 흥행포인트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영화가 심하다고 불평하는 관객들은.. 그러한 줄거리를 어느 정도 알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해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관객들은 대략 재미있어 했다. 나는 솔직히 심심했지만.
그러나 나는 심심한 영화에 충무로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를 지켜라는 진짜 심심한 영화였지만.. 그래서 망했지만 그런 영화에 희망이 있다.
왜인가? 심심하지 않은 헐리우드의 가족영화들은 어차피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안된다. 1000억을 안들이고 영화를 흥행시키려면.. 코미디를 활용할 수 밖에 없고 코미디를 끼면 일단 심심해진다. 코미디는 긴장감의 적이다.
실미도나 태큭기휘날리며 한반도류의 무게 들어간 영화는 어차피 돈 들여야 한다. 그래도 태풍처럼 왕창 자빠지는 수 있다. 한반도도 반쯤 자빠졌다. 그러므로 강우석의 그쪽에는 희망이 없다.
강우석의 전략은 양념 두 배다. 한겨울에 배우를 바다에 처넣는다. 모든 배우들은 악을 쓰고, 깡을 쓰고, 인상을 쓴다. 돈도 두배로 쳐넣는다. 애국도 두 배, 민족애도 두배, 홍보도 두 배, 상영시간도 두 배, 모든 게 두 배.. 물량작전이다.
고춧가루 팍팍 넣고, 미원 왕창 넣고, 설탕 태배기로 넣고.. 이런 요리는 맛이 있어도 건강에 안좋다. 강우석 영화 한 번 보면 한 6개월 동안 영화보고 싶지 않아진다. 뭔가 큰 국가적 거사를 치른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나는 괴물을 보고 주유소 습격사건을 연상했다. 주유소도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영화다. 극장에서 보기 보다는 비디오로 보는 게 더 어울릴듯한 영화.. 단 주유소는 끝마무리가 좋았다.
김상진표 반전이 없는 괴물의 평범한 끝마무리는 조금 아쉬웠지만.. 배두나는 죽었어도 소년이 살았으니 절망 보다는 희망이 크다. 나쁘지 않다.
주유소는 다양한 에피소드와 코미디와 풍자를 나열식으로 이어서 끝말잇기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주유소의 미덕은 전통적인 영화의 관습을 깬다는 것이다. 우선 주인공이 악당이라는 설정부터 그렇다.
범죄를 저지른 주인공이 경찰에 잡히지 않고 달아난다는 설정은 관습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생뚱맞다. 그리고 통쾌하다. 권선징악이라는 헐리우드의 관습을 깨는 이런 영화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선과 악의 대결을 고수와 하수의 대결로 전환해 버리는데 있다. 이 방식의 효시는 구로자와 아키라의 요짐보가 아닌가 한다. 요짐보를 베낀 서부영화가 황야의 무법자다.
대대로 원수지간인 한 마을의 두 악당세력.. 그리고 홀연히 나타난 떠돌이 무법자.. 무법자는 원수지간인 두 세력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곡예를 피운다. 결국 두 마을의 악당이 모두 소탕된다.
주인공은 악당이고 배신자이며 돈에 자신을 파는 저질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한가지 계획이 있다. 두 악당세력을 동시에 토벌해 버리는 것이다.
주인공은 뛰어난 실력으로 앙숙인 두 마피아 중 한 세력에 고용되어 반대세력을 치다가.. 힘의 균형이 깨어지면 이번에는 배신해서 저쪽에 붙어서 이쪽을 친다. 그러다가 악당들이 서로 화해하면 교묘한 속임수로 싸움을 붙인다.
결국 두 악당세력은 모두 주인공에게 맞아 죽는다. 악당은 모두 죽고 마을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주인공은 표표히 떠난다. 이것이 깨는 영화의 원조 공식이다.
여기서 주인공이 선(善)이 아니라 악(惡)이라는 설정이 문제로 된다. 어쨌든 이 수법은 성공했고.. 이후 우후죽순으로 비슷한 영화가 쏟아진 것이 마카로니 웨스턴이다. 거기에는 보안관이 무법자로부터 마을을 지킨다는 서부극의 정통적 관점이 없다.
단지 고수가 하수를 갖고 논다는 재미가 있을 뿐이다. 고양이가 쥐를 갖고 놀듯이 주인공은 악당들을 갖고 논다. 주인공은 고수다. 주유소가 그렇다. 고수인 주인공들이 하수인 양아치와 철가방과 경찰을 갖고 논다.
결론은 생뚱맞음의 연속 - 정통 서부영화를 보러 왔던 관객들에게 황야의 무법자는 생뚱맞기 짝이 없는 전개인 것이다. 그게 먹힌다.
그리고 적당한 풍자와 위트.. 주유소의 흥행요인과 괴물의 흥행요인은 생뚱맞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
괴물을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은 헐리우드 영화를 너무 많이 본 사람이다. 손에 땀을 쥐고 긴장하여 몰입하게 하는 영화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영화는 솔직히 애들이나 보는 것이다.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은 여름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을 위한 가족영화다. 어른영화가 아니다. 어른은 보지 말라고 써붙인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것보고 잼있다고 말하는 어른은 솔직히 창피하다.
괴물에는 많은 풍자와 은유가 있다. 그 풍자와 은유는 몰입을 방해하지만 대신 퀴즈문제를 푸는 즐거움이 있다. 대사 하나하나에 암시가 있고 복선이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배두나는 늘 남자로 나와서 흥행이 망하는데 이번에도 남자로 나왔다. 흥행은 했지만 남자로 나왔기 때문에 주연이 못된다.
● 남자인데 여자로 나와서 뜬 사람 - 이준기
● 여자인데 남자로 나와서 못 뜬 배우 - 배두나
왜 배두나는 늘 남자로 나올까? 이건 수수께끼다. 여배우는 여자로 나와야 뜬다. 그것은 주인공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역할을 말한다. 극중 공길은 장생과 연산군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하여간 배두나 다음에는 여자로 나오기 바란다.
결론은.. 수백만편의 영화가 있다해도 기본적인 이야기의 틀은 20여가지 뿐이라는데.. 구로자와 아키라의 요짐보가 새로운 이야기틀을 제공했고.. 그 틀이 마카로니 웨스턴의 대박행진으로 이어졌듯이..
주유소가 새로운 이야기틀을 제공했고.. 그것은 연극처럼 좁은 공간과 짧은 시간에 어떤 상황을 설정해 놓고.. 여러 등장인물들이 주어진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다.
요즘 TV오락프로가 그렇다. 어떤 상황을 설정하고 연예인들이 죽 늘어서서 각자 한마디씩 하는 것이다. 주유소는 하나의 상황설정이며 그 상황 속에서 여러 인물들의 반응을 보여준다.
이 방식은 몰래카메라와도 비슷하다. 어떤 상황이 설정되고 그 상황에 몰카의 대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시청자들은 지켜본다.
괴물은 하나의 상황이다.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인간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아둔한 인간, 비열한 인간, 한심한 인간, 겁대가리 없는 인간, 복지부동 공무원, 제멋대로 부시.. 등이 자기 얼굴에 카메라가 비치면 각자 한 마디씩 하는 것이다.
이런 영화는 몰입해서 보는 영화가 아니다. 그런데 괴물의 출현이라는 중대상황이 몰입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몰입해서 본 관객도 있고.. 반대로 나처럼.. 괴물이라니 장난하나.. 싶은 관객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괴물을 헐리우드 식으로 가져가지 않고 만화처럼 만든 감독의 방식에 찬사를 보낸다. 왜?
몰락의 길을 걷던 정통 서부영화가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비아그라 한방으로 돌연 회춘하였듯이.. 이러한 방법이 한국관객들에게 지속적으로 먹힌다면 충무로가 전체적으로 회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괴물이 비아그라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려면 괴물을 잘 분석해야 한다. 이태리인들은 요짐보를 잘 분석해서 마카로니 웨스턴 붐을 만들었다. 반면 일본인들은 요짐보를 분석하지 못했기에 사무라이 영화 붐을 이어가지 못했다.
괴물과 요짐보, 괴물과 마카로니 웨스턴 붐, 괴물과 지구를 지켜라, 괴물과 주유소 습격사건의 공통점을 분석해 볼 수 있어야 한다.
하여간 영화에는 일정한 이야기틀이 있고 그 이야기틀의 숫자는 많지 않으며 봉준호가 코미디+풍자+괴수영화라는 언밸런스한 이야기틀을 성공시킨 것은 분명하다. 거기에 점수를 줘야한다.
장준환이 지구를 지켜라에서 비슷하게 선보인 것을.. 그러나 실패한 것을 마침내 봉준호가 완성한 것이다.
김상진의 주유소 습격사건은 조폭+코미디라는 새로운 이야기틀을 성공시켰다. 그 결과 한국에서 조폭영화가 쏟아졌다. 이 영화들은 모두 저예산으로 만들어졌고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에 밀리지 않았다.
코미디+조폭=생뚱.. 그 결과는 수 많은 아류작 출현.. 이건 바람직한 전개다. 코미디+괴수=생뚱.. 수 많은 아류작 출현? 이건 미지수다.
하여간 새로운 이야기틀을 하나 성공시키는 것은 스필버그가 ET 열편 만드는 만큼이나 가치있는 일이다. 그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과연 봉준호가 새로운 공식을 성공시켰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러나 흥행성적이 증명하듯이 장준환의 시도 보다 나아진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