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왕의 남자’는 거의 모든 대박코드를 골고루 담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의외로 흥행한 영화 ‘집으로’와 ‘말아톤’에서 잘 보여지는 ‘의사소통법’이다. 이건 그냥 관객 눈물 쥐어 짜는 거다.  

‘이래도 안 울거냐. 울어! 울어! 울어!’ <- 이런 거다. 관객이 울지 않으면 두들겨 팰 기세다. 아주 빨래짜듯이 눈물을 강제로 짜낸다.

예컨대 이런 거다. 아이가 들판에서 놀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큰 일이다. 그러나 울지 않는다. 집에 와서 엄마를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왜? 자신이 손가락을 다쳤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위험이 닥쳤다는 중요한 정보를.. 엄마가 알아주지 않는다는 설움..

어떤 상황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가? 인형극이다. 왕과 공길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인형으로 대신 의사소통을 한다. 공길은 장생과 자신의 러브스토리를, 왕은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말로는 못해서 인형으로 대리하는 것이다.

적은 예산으로 만들었는데 의외로 흥행에 성공하는 감동영화들은 대부분 이러한 의사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 ‘집으로’에서 할머니와 꼬마가 말로 아니하고 마음으로 의사소통을 하듯이.

그 외에도 많은 테크닉들이 구사되고 있다.  

● 의사소통법..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 점입가경법.. 주인공이 단계적인 신분상승을 이루며 점차 변방에서 중심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 관객들의 흥분감은 극도로 고조된다.

● 전문지식법.. 글래디에이터의 검투사라는 전문직업, 허준이 의사라는 전문직종, 대장금이 궁중요리사라는 전문직업, 왕의 남자가 궁중광대라는 전문직업을 보여준다. 전문지식을 살짝 전수하게 되는데 너무 어려운 지식은 안되고 관객에게 익숙한 나이롱 지식을 찔러주는 센스.

● 복합구성법.. 선과 악의 진부한 대결에서 고수와 하수의 신선한 대결로 방향을 트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수인 육칠팔 패거리와의 비교, 연산군을 전형적인 악당으로 묘사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전략을 구사하는 존재로 그린 예가 그러하다.

예컨대.. 영화 무사에서 주인공 주진모와 정우성, 장쯔이는 철딱서니 하수로 묘사되고 람불화와 안성기가 인생의 심오한 측면을 아는 멋쟁이 고수로 묘사된 것은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는 설정이다.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가 진짜 고수인 것에 비하면. 그리고 왕의 남자에서 감우성이 왕을 향해 ‘이 잡놈아’ 하고 꾸짖을 수 있는 멋쟁이 고수인데 비하면. 주인공을 철 없는 하수로 만든다는 건 영화 망하라고 고사 지내는 거다.

● 이중멜로법.. 한국 드라마가 강한 이유는 청춘남녀의 러브스토리에 생뚱맞게 시어머니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주변인물을 자연스럽게 개입시키는 테크닉이다. 왕의 남자에서 장생과 공길의 러브스토리에 연산과 녹수가 끼어들어 심층적인 구성을 가져간 예도 이러한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 다다익선법.. 영화에서 모여든 군중들은 관객의 입장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다. 예컨대 춘향전에서 어사출도를 놓을 때.. 일제히 달려가는 역졸들은 그 영화를 보는 관객인 것이다. 관객과의 감정이입을 위한 주요한 장치다.

왕의 남자에서 리더인 왕이 민중계급의 상징적 대표자인 장생일행과 전략적으로 제휴하여 귀족계급(조정의 중신)을 협살한다는 설정은 의미가 있다. 예컨대 서프 네티즌이 리더인 노무현과 전략적으로 제휴하여 중간에 낀 금뺏지를 협살하려는 같은 거다. 역사에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 감정이입법.. 연산이 어린애처럼 손으로 문살을 뚜르륵 긁으며 지나가는 장면은 관객들과 체험의 공유를 노린 것이다. 유년의 외톨이 체험이다. 글래디에이터에서 소년 막시무스가 보리밭길을 가는 장면에도 비슷한 점이 있다.

● 수미일관법.. 처음에 어떤 동그라미를 보여주고 그 안에서의 마찰을 설명한 후 더 큰 동그라미로의 비약을 통해 지평을 열어젖히는 것으로 관객들에게 깨달음의 후련함을 보여준다. 첫 승부는 우물 안에서 두 번째 승부는 우물 밖에서.
심리와
결론하자. 충무로에서 블록버스터 전략이 실패하는 이유는.. 이러한 흥행공식을 모르고.. 오히려 그 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몇 가지 공식이 더 있다. 예컨대 수미일관법이 있다.

왕의 남자도 줄타기로 시작해서 줄타기로 끝나는데.. 의도적으로 시작과 끝을 일치시키는 테크닉은 많은 함의가 있다. 이거 공식이 넘 많군.. 다 설명하려면 길어지고.. 하여간 기획사는 이런 측면을 챙겨야 한다.

성공에는 공식이 있다. 스필버그가 칸에서 그랑프리를 받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일정 수준이 되는 영화를 다작하고 있는 점은 평가되어야 한다. 거기에는 몇 가지 기본적인 테크닉이 있고 이 수법은 재현이 가능한 것이다.

어쩌다 한번 걸작을 만들지만 재현을 못하는 명감독들이 많다. 그런건 안쳐주는 거다. 자신이 왜 성공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진짜 실력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좋은 시나리오에 좋은 배우에 좋은 기획사를 만나 우연히 성공한 것이다.

재현할 수 있는가다. 실질적인 테크닉이 있어야 재현이 가능하다. 김기덕은 재현을 할 수 있는 감독이다. 그래서 다작을 한다. 흥행은 못해도 남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자기만의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분들은 인간적인 결함이 있어도 존경해줘야 한다.

오늘날 한국의 잘난 평론가들은 민중들의 살아있는 지식, 진짜 지식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평가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네 계급의 이익을 위하여 임의로 정해 놓은 게임의 룰이다. 그 빌어먹을 룰을 깨부수자는 것이다. 용기있는 반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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