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read 6351 vote 0 2007.02.24 (22:06:02)

한달 전.. ‘미녀는괴로워’의 흥행을 뻔한 신데렐라신드롬으로 치부하는 영화평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데렐라신드롬이라니.. 초딩 수준의 무성의한 평론들. 상투적인, 진부하기 짝이 없는, 늘 반복되는 그 소리에 그 소리들.

지식인들이 ‘미녀는괴로워’를 폄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영화에서 배울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들은 영화에서 무언가 배울 것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왜인가? 그들의 직업이 ‘교사’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항상 배워야 하고 자기네는 당연히 가르쳐야 한다고 여긴다. 주제넘게 관객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다. 수직적인 계몽의 시대는 지났고 수평적인 소통의 시대가 왔는데도 말이다. 세상이 바뀐 줄도 모르고.

그렇다. 미녀는 계몽하려는 영화가 아니라 소통하려는 영화다. 미녀는괴로워가 관객들에게 어필한 이유는 하나다. 여자들이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극중 강한나가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말을 못하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말을 하게 될 때 관객들은 공감한다. 그 장면에서 눈물이 터져 나온다. 바로 그것이 소통이다. 소통이 즐겁다. 소통이 아름답다.

신데렐라신드롬이라니.. 이건 정말이지 소통의 실패다. 그 인간들은 정말이지 소통이 안 되는 자들이다. 지식인이 대중과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남자가 발기가 안 된다는 것과 같다. 대략 끝난 거다.

김용화감독은 관객과의 소통에 성공했는데.. 평론가들은 여전히 관객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있다. 대중과의 소통에 실패하면 지식인의 역할이 끝났다고 봐야 한다. 더 이상 지식인이 아니다.

오늘날 지식의 문제는 대중과의 소통이 막힌데 있다. 지식의 실패다. 이거 인정해야 한다. 지식은 이제 그만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대통령께 쫑코먹은 최장집부터 순서대로 살살 기어내려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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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원이 ‘1번가의 기적’으로 떴다. 연기를 잘해서일까? 아니올시다. 나는 그가 연기를 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엽기적인 그녀’에서의 전지현과 비슷하다. 둘 다 중성적인 캐릭터다.

예전에는 ‘귀여운 왈가닥’이 떴는데 요즘은 왈가닥으로 부족하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대놓고 남자에게 ‘거침없는 어퍼컷’을 먹일 수 있어야 한다. 왜인가? 시대가 그렇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트렌드다. 요즘 여자들은 할 말이 많다. ‘할 말 다하는 여자’가 뜬다. 전지현과 하지원이다. 남자와 겨루되 힘으로나 지혜로나 조금도 밀리지 않는 중성적인 캐릭터. 이거 먹힌다. 어지간하면 흥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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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한국은 홍콩영화가 주름잡았다. 평론가들은 평론할 가치도 없는 영화라 무시하고 아예 평론을 안했다. 타란티노를 위시한 유명감독들이 홍콩영화를 찬양하자 뒤늦게 평론을 쏟아냈지만 뒷북이었다.

왜 홍콩영화가 떴는가? 그때 그시절 한국인들은 ‘폼 나는 남자’를 추구했다. 때문에 주윤발의 폼이 어필한 거다. 그 시대엔 폼이 트렌드였다. 숨막히던 독재시대 ‘잘살아보세’의 압박에서 벗어난 90년대 한국인들에게는 폼이 간절했다.

특히 젊은이들이 그랬다. 70년대의 기성세대가 살아남기 위해 비굴한 처신을 보여주는데 신물이 났다. 노예근성으로 가득한 비굴한 아버지 세대의 모습을 지켜보고 ‘나는 저렇게 안살아야지’ 하고 결심한 것이다.

● 1990년대 공식 - 폼 나는 남자
● 2000년대 공식 - 할 말 다하는 여자

그때 흥행이 망한 한국영화의 공식은 어떠한 것이었는가? 뻔할 뻔자다. 최인호의 겨울나그네에서 보여지듯.. 높은 신분이지만 갇혀 있는 남자(운동권 암시)와 낮은 신분이지만 자유로운 여자(호스티스 영자)의 썸씽.

새장에 갇혀 있는 높은 신분의 남자는 낮은 신분의 자유로운 여자에게 위로를 받는다. 이것은 지식인의 자위행위다. 그때 그시절 그랬다. 호스티스 문학에 호스티스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모든 지식인들이 영자를 필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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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이 뜨고 하지원이 뜨고 김아중이 뜨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자들이 세상을 향해 할말이 있는데 전지현과 하지원과 김아중이 그 할말을 대신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소통이다.

흥행? 간단하다. 관객이 하고 싶은 말을 배우가 대신해주면 된다.


사마라구의 마술적 리얼리즘

리얼리즘은 과학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심리과학이다. 마술을 쓰지 않고는 파헤칠 수 없는, 최면을 걸지 않고는 들여다 볼 수 없는 세계가 있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거기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즐겨 최면에 걸리는 자가 그 과학에 도달할 수 있다. 환자가 최면에 걸리기를 거부하면 심리학자는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다. 관객과 독자들은 작가의 마술에 걸리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사마라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는다. 보이는 것을 차단했을 때 보이지 않는 것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미녀는괴로워에서 강한나의 변신 역시 그러하다. 신데렐라의 허상을 심어준 것이 아니라 마술을 건 것이다.

김기덕은 현미경이 도달할 수 없는 지점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재능이 있다. 사람들은 그의 마술을 혐오하지만 나는 그의 심리과학을 좋아한다.(김기덕 영화를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설명한 사람은 정성일이다.)

보이지 않는 염색체를 염색하여 보이도록 위조함은 과학적 허구이지만 그 허구 덕분에 우리는 오히려 과학적 진실을 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마술.. 그것이 예술가의 소통능력이다. 예술가는 얼마간 마술사다.

미녀는괴로워.. 비만은 눈에 보인다. 그것을 제거했을 때 보이지 않던 진실이 드러난다. 소통의 문제다. 김기덕 영화의 주인공들이 말을 잘 하지 않는 이유도 그렇다. 소통의 단절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쉽게 말로 아니하고 어렵게 행동으로, 그것도 크게 오버된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소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자신의 백퍼센트를 보여주는 진정한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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