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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0050 vote 0 2013.06.27 (18:17:40)

    존재는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다. 존재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면 문제에 대한 해법도 바뀐다. 사건으로 본다는 것은 타자성을 극복하고 주체성의 관점을 획득하는 것이다. 주체성의 관점은 비대칭행동이다. 그것은 의사결정에 있어서 상대방을 대상화하지 않는 것이며, 상대방을 팀의 동료로 인식하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여자가 남자를 가부장의 역할로 바라보거나, 주인이 노예를 한낱 도구나 수단으로 바라보거나, 회사의 보스가 직원을 머슴으로 바라보거나, 인간이 동물을 애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식의 사이코패스들의 비뚤어진 시선을 극복하는 것이다.


    한국팀 선수가 일본팀 선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대상화 하는 것이다. 나는 이쪽에 있고 상대방은 저쪽에 있다. 둘의 시선은 대칭을 이룬다. 주체성은 비대칭행동이며 상대방을 자신의 맞은편이 아니라 옆자리에 앉히는 것이며 팀의 동료로 여기는 것이다. 투수가 포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대상화가 아니다. 반면 키커가 골키퍼를 바라보는 시선은 대상화 하는 것이다.


    절벽에 꽃이 한 떨기 피어 있다. 그 꽃을 꺾는다면 그것은 대상화 하는 것이다. 그 옆에서 시를 한 수 읊는다면 그것은 대상화 하지 않는 것이다. 빵이 하나 있다. 그 빵을 먹는다면 대상화 하는 것이다. ‘빵에는 포도주가 제격이지’ 하고 구색을 맞춘다면 그것은 대상화하지 않는 것이다.


    대상화 하면 상대방의 행동을 지켜보고 거기에 연동시켜 자기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이때 무의식적인 대칭행동을 하게 된다. 대꾸하고 응수하는 것이다. 정치판에서 여야의 싸움처럼 상대방의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주체성의 관점은 이러한 무의식적 대칭행동을 극복하고 자기의 설계대로 가는 것이며, 존재의 결따라 가는 것이다. 상호작용의 세계관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가능하다.


    상호작용의 세계관은 팀의 관점으로 본다. 우리는 우주와, 진리와, 문명과, 세계와, 인류와 한 팀이다. 나의 승리가 아니라 우주의 승리, 진리의 승리, 인류의 승리, 문명의 승리, 세계의 승리가 진정한 승리이며 나의 기쁨은 그 세상의 커다란 승부 안에 있어야 한다. 거기서 삶의 방향성을 찾아야 한다.


    세 가지 세계관이 있다. 과거에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이며 이성은 영혼의 레벨로 결정된다고 믿었다. 이는 봉건시대의 종교적 관점이다. 노예는 혼탁한 영혼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저급한 이성을 소유한다.


    인간은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고급한 이성을 발휘하여 동물들 위에 군림한다. 이런 생각을 깨뜨린 사람은 프로이드다. 프로이드는 정신병자는 영혼이 혼탁해진 것이 아니라 단지 트라무마를 입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트라우마는 기계적으로 일어난다. 인간의 이성과 영혼에 대한 환상은 철저하게 깨졌다.


    이후 정신결정론이 등장했다. 여자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졌다는 식의 생각이다. 얼마전 있었던 법륜의 잘못된 설법을 빗댈 수 있다. 법륜은 그의 즉문즉설에서 성범죄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한다. 성범죄의 상처는 말하자면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리에 불과한 것이며, 깨달음으로 극복하면 된다는 식이다. 이는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거식증 환자에게 밥을 먹도록 설득하는 일은 실패한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오랫동안 밥을 먹지 않으면 위장이 축소되고 장기가 파괴되어 음식물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음식에 트라우마를 입은 뇌가 적극적으로 음식을 거부한다.


    음식을 보기만 신체적인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이 과정은 물리적으로 진행된다. 거식증은 하드웨어가 훼손된 것이다. 하드웨어가 훼손되었는데 소프트웨어를 치료하는 법륜의 방법이 성공할 리가 없다.


    거식증 환자를 말로 설득하려 든다면 잘못된 생각이며 먼저 육체를 치료해서 뇌가 음식을 받아들이게 만들어야 한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정신은 육체와 상호작용한다.


    육체는 인간의 신체 뿐 아니라 환경 전체를 포괄한다. 인간은 우주 전체와 상호작용한다. 먼저 우주의 마음을 얻지 않은 상태에서의 개인적 노력은 실패한다. 일체유심조는 거짓이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을 리가 없잖은가? 세상만사 세상과의 상호작용에 달려있다.


    동물의 짝짓기를 예로 들겠다. 사람들은 암컷이 건강한 유전자를 가진 수컷을 선택할 요량으로 수컷들끼리 서로 경쟁시킨다고 믿는다. 틀렸다. 건강한 유전자 따위는 없다. 유전적 거리가 멀거나 가까울 뿐이다.


    유전적 거리가 멀수록 좋은 경우와 그 반대의 경우가 있다. 넓은 지역에서는 유전적 거리가 먼 수컷을 선택하여 고유성을 획득하려 하고, 좁은 지역에서는 유전적 거리가 가까운 수컷을 선택하여 외부와 차별화된 유전자의 고유성을 유지하려 한다.


    암컷은 수컷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신체상태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컷을 거부하는 것이며, 이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의 문제다. 수컷은 구애행동으로 암컷의 호르몬 분비를 유도한다.


    호르몬 반응에 의해 신체가 바뀐 결과로 암컷의 판단이 바뀐다. 이 부분애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오늘도 많은 솔로들이 거리에서 헤매고 있다. 이 사태를 누가 책임지겠는가?


    암컷이 수컷을 거절하는 것은 수컷의 유전자가 불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라 암컷의 신체가 준비되지 않았으므로 수컷이 분발하도록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며, 이 신호를 제대로 읽어야 솔로들에게 희망이 생긴다. 무엇인가?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상호작용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만사 상호작용이다. 의사결정은 자물통과 열쇠처럼 나누어진 반쪽을 찾아 조합을 완성하는 것이다. 자물통도 없는 판에 열쇠를 주물러봤자 답을 찾을 수는 없다. 상호작용의 세계관으로 확 바꿔야 한다. 관점이 바뀌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전반의 전략을 다 바꾸어야 한다.


    진보지식인들은 계몽으로 유권자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있다.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면 유권자의 판단이 바뀐다는 식이다. 틀렸다. 계몽의 방법은 하드웨어와 불일치로 결과할 뿐이다.


    지식인의 방법은 법륜이 성범죄 피해자에게 ‘그깟 일은 잊어버려.’ 하고 잘못된 해법을 내놓는 격이다. 성폭행 범죄는 피해자의 신체를 바꾼다. 호르몬 분비가 바뀐다. 피해자의 신체를 바꾸어야 정신이 해결된다. 피해자의 생활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무엇보다 진보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 진보의 개념은 나라마다 다르다. 중국의 극좌는 과거의 홍위병을 부활시켜 조폭들을 일망타진하고 부패인사를 광장에서 처단하자고 선동한다. 이는 극우와 유사하다. 한국의 우파는 반민족적이다. 북한은 좌파라면서 민족주의를 강조한다. 온통 뒤섞여 있다.


    바른 진보의 개념은 양자역학의 자발적 대칭성 깨짐에 의한 비대칭행동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수학의 수렴개념으로 해명될 수 있다. 수렴은 서버에 유저가 넘칠 때 유저를 적절히 분산할 수 있게 한다. 이 원리로 소립자는 원자로 진보하고, 눈이나 소금은 결정으로 진보하고, 생물은 고등동물로 진화하고, 행성은 먼지에서 별로 진화한다. 작은 것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수렴의 방법은 원소가 집합될 때 비대칭을 성립시켜 핵의 위치를 이동시키는 것이다. 뒤에 온 사람은 먼저 온 사람의 주변에 서면 먼저온 사람은 대칭성에 의해 포위된다. 새로 온 사람이 먼저온 사람을 찾을 수 없어 구조가 깨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핵이 바깥쪽으로 빠져주어야 한다. 생장점을 계속 가지끝으로 밀어내는 것이 수렴이다. 이 방법으로 게임회사는 동시접속한 수십만명의 유저를 처리한다. 이 방법으로 공룡은 덩치가 커져도 몸을 지탱한다.


    혹돔은 원래 암컷으로 태어나지만 수컷이 죽으면 암컷 중의 서열 1위가 수컷으로 몸이 바뀐다. 생각이 바뀌는게 아니라 신체가 바뀌는 것이다. 수렴의 원리를 이용하여 핵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집합의 원소가 아무리 늘어나도 원소를 결집하는 핵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를 개인적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 안에서의 수학적 행동 메커니즘으로 파악하는 것이 상호작용의 세계관이다. 보수는 핵의 위치를 고정시키고 그 주변에 포진하여 대칭을 성립시킨다.


    진보는 핵의 위치를 계속 이동시킨다. 보수는 확산하여 대칭을 성립시키고 진보는 수렴하여 비대칭을 성립시킨다. 대칭을 따라가는 것이 대상화 행동이며 타자성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보수는 차별근성을 발휘하여 남자와 여자, 임금과 신하, 선배와 후배, 적군과 아군 식으로 부단한 대칭을 이루며 만약 그러한 대칭이 깨지면 불안해 한다. 집합 안에서 대칭이 깨지면 핵이 원소를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보는 원소를 결집하는 핵을 바깥에 둠으로써 한 방향으로 수렴하여 차별을 극복한다. 평등한 구조 안에서 동료와 호흡을 맞추고 팀플레이를 끌어내는 것이다.


    양은 시력이 나빠 길을 잃으므로 무조건 다른 양의 뒤에 가서 서려고 한다. 양떼가 너무 밀집하여 가운데서 압사당하는 수가 있다. 어떤 양이 기준양의 뒤에 가서 서는 것이 보수이고, 그 기준양을 무리의 바깥쪽으로 옮기는 것이 진보다. 이는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신념이 아니라 단순한 수학적 법칙에 불과하다.


    세 가지 관점이 있다. 봉건시대에는 운명이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왕은 왕으로 태어나고, 귀족은 귀족으로 태어나고, 노예는 노예로 태어난다는 식이다. 인간은 특별히 우월한 존재로 태어났으므로 동물을 지배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 근거로는 영혼과 이성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믿음은 근대과학에 의해 철저하게 깨뜨려졌다. 그 중심에 다윈과 프로이드가 있다.


    근대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결정론에 빠졌다. 이는 소승적 태도이다. 개인의 생각을 바꾸면 된다고 믿는다. 소프트웨어를 바꾸면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존재는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다.


    상호작용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하나의 서버에 동시접속한 수만명의 유저를 처리하려면 부단히 기준양을 무리의 바깥쪽으로 옮겨야 하며 이 과정은 하드웨어에서 물리적으로 진행된다. 부단히 환경과 상호작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는 소승의 방법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체유심조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려있지 않다. 오늘날 진보의 전략은 소승적이다. 대승으로 갈아타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육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자연과 진리와 역사와 문명과 세계가 곧 우리의 육체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뀌는게 아니라 세상을 바꿔야 생각이 바뀐다. 진보의 생장점을 끝없이 가지끝으로 밀고가지 않으면 안 된다.


    게는 딱딱한 등껍질 때문에 생장점을 밖으로 밀어낼 수 없다. 최장집 핵은 가운데서 대칭되어 교착되었고, 김어준 핵은 변방에서 비대칭한다. 김어준을 버리고 최장집을 찾는 강단진보는 게딱지 신세가 되었으니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허물을 벗어야 한다. 등딱지를 떼고 새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 봉건시대의 숙명론 :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 근대지식의 소승론 : 계몽으로 사람의 생각을 바꾸면 된다.

    ◎ 대승의 상호작용론 : 세상을 다 바꾸어야 생각이 자리잡는다.


    타자성을 버리고 주체성을 얻어야 한다. 사물을 버리고 큰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혼자서는 답이 없고 세상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 나 혼자의 깨달음은 의미없고 커다란 세상의 승리 안에서 나의 기쁨을 찾아야 한다. 환경을 바꾸어야 트라우마는 극복된다. 세상의 한가운데서 만날 사람을 만날 때 상처는 진정으로 치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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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나의 대응을 결정하는 대칭행동을 깨고 내 안의 결을 따라가는 비대칭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저울의 날개가 되지 말고 축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라는 육체 안에서만 나의 정신은 평안합니다. 배는 항해를 멈출 때 죽고 비행기는 날기를 멈출 때 죽습니다. 인간은 상호작용의 호흡을 멈출 때 죽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무득

2013.06.28 (16:16:53)

[본문]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는 소승의 방법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체유심조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려있지 않다.

오늘날 진보의 전략은 소승적이다.

대승으로 갈아타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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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를 너무 편협하게 해석한 것 같습니다.

일체유심조가 소승과 대승하고 무슨 상관이죠?

[대승으로 갈아타지 않으면 안된다]자체가 이미 일체유심조 입니다.

[레벨:5]yhy

2013.06.29 (10:11:28)

일체유심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본문은 일체유심조를 말그대로 풀어놓았고 문제 없다고 생각했는데요, 무득님께서 말씀하신 편협하다라는 말뜻이

(일체유심조가 나오는 불교문헌의 문맥이 왜곡됐다) 라는 뜻인지요. 문맥이 궁금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무득

2013.06.29 (19:53:46)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는 소승의 방법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체유심조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려있지 않다.

오늘날 진보의 전략은 소승적이다.

대승으로 갈아타지 않으면 안 된다.

----------------------------------------------------------

일체유심조 :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  

 

이 사전적인 뜻을 가지고 윗 문장을 분석하면 이렇게도 할 수 있습니다.

 

[일체유심조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런 판단도 마음이 어느 관점에 있느냐에 따라

내릴 수 있습니다.  즉, 일체유심조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소승적 전략과 대승적 전략의 판단은 전재 조건이 상황성입니다.

꼭 소승이 맞고 꼭 대승이 맞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면 어느 때 소승적 전략이 필요하고 어느 때 대승적 전략이 필요한가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안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집니다.

안목에 따른 판단은 결국 마음이 들어 하기 때문에  어느 것을 선택하든 마음의 조화이기 때문에

일체유심조인 것입니다.  맞고 틀리고에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윗 문장에서는 어느 한쪽에만 국한 시켰기 때문에 지적하는 것입니다.

일체유심조의 본래 뜻을 왜곡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구조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상반된는 의견을 논리로 지적하셔야 합니다.

저도 이곳에서 사고의 유연성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걸려도

반대 논리를 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 공부하게 되고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6.29 (20:37:45)

헛소리 하지 말고 사라지세요.

대학교 수학 시간에 초딩이 나타나서

1+1=0 이라고 계속 우기면 곤란한 겁니다.

꼭 대승이 맞고 소승이 틀립니다.

그게 구조론입니다.

그러니까 댓글달지 마세요.

당신은 구조론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겁니다.

발언권 없다는 말이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6.29 (19:31:47)

무득님은 대화가 안 되는 사람입니다.

일정한 수준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합니다.

댓글 달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조론은 일체유심조를 부정하는데서 출발합니다.

출발선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게임은 없습니다.

퇴장하실 밖에요.

 

특히 종교인들은 이 사이트에서 종교적 입장을 버려야 합니다.

제일 불쾌한 것이 구조론으로 기독교나 불교의 종교적 입장을 강화하는데 이용하는 것입니다.

구조론을 배우니 성경이 더 잘 이해되었다거나 하는 식은 최악입니다. 

그런 말 하는 사람은 진짜 염치없는 사람입니다.

기본적인 신의를 어기는 거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6.29 (20:41:02)

'빛도 있고 어둠도 있다'는 말도 맞고

'빛은 있고 어둠은 없다'는 말도 맞습니다.


그런데 구조론은 두번째를 채택하고 전자를 부정합니다.

첫번째도 말은 되는데 그건 구조론이 아닙니다.


존재를 사물로 보느냐 사건으로 보느냐에서 완전히 갈라집니다.

사물로 보면 빛도 있고 어둠도 있지만 사건으로 보면 빛만 있습니다.


빛과 어둠은 하나의 '사건의 맥락' 안에서 통섭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것과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따지는건 다른 겁니다.


그림이라면 소실점이 있는 서양화법도 있고 소실점 없는 동양화법도 있습니다. 

과학으로 보면 반드시 소실점이 있어야 하며 구조론은 최대한 엄밀하게 따집니다.


길을 가려면 왼발도 필요하고 오른발도 필요합니다.

진보도 필요하고 보수도 필요한 겁니다.


그런데 그건 구조론이 아닙니다.

구조론은 절대적으로 진보 한 발로만 갑니다.


제트기는 공기를 빨아당겨서 갑니다. 

사람의 발은 땅을 밀어서 가고 


제트기는 진공으로 공기를 당겨서 가므로 완전히 다른 겁니다.

밀어서 가려면 두 발이 필요하나 당겨서 가면 한 발로 갑니다.


엎어진 물을 주워담을 수 없다는건 엔트로피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일상적으로는 주워담을 수 있습니다.


엎어진 물을 잘 증류해서 마실 수도 있습니다.

과학법칙과 일상의 경험을 혼동하는 사람과는 대화가 불필요합니다.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따지면 

우주 안에 오직 하나의 진행하는 방법이 있으며


그것은 제트기의 방법이고 사람의 방법은 아닙니다. 

우주 안의 모든 존재는 절대적으로 한 발로만 갑니다.


남자도 필요하고 여자도 필요하지만 

인류가 멸망해서 딱 한명만 우주로 보내야 한다면 절대로 여자입니다. 


우리의 일상경험은 대칭의 양 날개를 모두 필요로 하지만 

과학적으로는 극한의 상태에서 딱 하나만 허용이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끝까지 따지고 들어가면 모든 2는 1로 환원됩니다.

대칭은 사라지고 하나만 남으며 그러므로 소승은 소멸합니다. 


이런 논의는 과학적 엄밀성을 필요로 하는 겁니다.

이거 헷갈려서 피곤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이곳에 오면 안 됩니다.


분명히 말하면 무득님은 이런 문제를 토론할 수준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댓글 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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