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믿는가?
나는 모든 것을 믿지만 나는 또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
사람을 믿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 사람이 세치 혀로 말하는 언어를 믿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람들이 수집해 놓았다는 오래된 기록도 그다지 믿을만한 것은 못 된다.
한 인간의 내부에는 고유한 본성이 있는 거다.
신의 완전성으로부터 유도된 바 진리를 파악하는 본성이 있는 거다.
그리고는 부단히 대화하기다.
인간의 입으로 뱉어진 언어는 믿을 것이 못 되고
그 언어의 메신저라 할 승려들도 믿을 수 없는 거고
그 승려들이 살펴 보았다는 성서들도
그 성서의 주인공인 성자들도
겉으로 드러난 표지 만으로는 진짜가 아니다.
이면의 진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신의 완전성과 인간의 사랑
그 둘 사이의 부단한 대화 그 자체이다.
기도는 신과의 대화를 목적으로 하지만
입으로 중얼거리는 언어로의 기도는 진짜가 아니다.
마음의 대화가 진짜 기도이지만
맘 먹고 맘 상하고 맘대로인 그 마음은 진짜가 아니다.
그것은 ‘전지적인 마음’의 대화이어야 한다.
내 마음 바닥 깊은 곳에 또다른 마음이 있는 거다.
그 마음은 나를 둘러싼 온갖 환경이 조성하는 거다.
내 마음이 악기라면 나를 둘러싼 환경이 그 마음을 연주하는 거다.
그렇게 들려지는 노래가 있다.
‘전지적인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은 감정이나 욕망이 아니다.
맘 먹고 맘 상하고 맘대로인 그 마음이 아니다.
내면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가 있다.
인간은 그 마음의 언어로 신과 대화하는 거다.
그 대화는 속삭임이 아니고 중얼거림도 아니다.
그 대화는 고백이 아니고 하소연도 아니다.
그 대화는 질문도 아니고 답변도 아니다.
그 대화는 의견교환의 대화가 아니라 존재의 대화여야 한다.
내 마음의 질곡들을 실패의 실처럼 낱낱이 풀어놓을 때
바람이 잎새를 깨우듯이 조용히 전해오는 울림이 있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신과의 대화를 한다.
주어진 두 갈래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은 나의 욕망도 의지도 목표도 아닌 그 어떤 운명이 결정하는 거다.
그 길을 가지 않으면
곧 죽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떠났던 거다.
그래서 나는 또 돌아왔던 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거 같은 느낌이다.
내 존재의 무게에 떠밀리는 거 말이다.
신 앞에서 내 존재의 대화방법은
나의 전부를 들어 세상이라는 벽에 툭 부딪혀 보는 거다.
내 존재의 현을 세상이라는 활에 태워보기다.
그때 전해오는 울림으로 내 존재의 무게를 느끼어 안다.
문득 바람이 잎새를 깨우듯이
정원에 비치는 햇살처럼 가득하게 울려퍼지는 것이 있다.
환경이 내 마음을 연주하는 거다.
그제 전해져 오는 메아리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