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6737 vote 0 2005.10.31 (23:28:10)

나이 마흔까지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도 좋지만, 마흔부터는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누군가가 말하더라.

일찍이 인간의 삶은 서른 이전과 서른 이후로 나눠진다고 보았다. 서른 까지는 제법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서른이 넘으면 어느 사이에 비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카프카의 변신을 참고로 하라. -

어느 사이에 서른을 넘기고 마흔을 넘겨 버렸다. 나는 여전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마흔부터의 삶은 타인을 위해 사는 것이어야 한다 했는데 그렇다면 나는 이제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일까?

돌이켜 보면 나는 살아오면서 원하던 것을 얻었지 싶다. 내가 바랬던 것이 무엇이었나? 첫째 진리를 보는 것, 둘째 세상을 엎는 것, 셋째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것이었다.

바램은 이루어졌다. 나는 진리를 보았다. 전복의 가능성은 확인되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났다. 나 자신을 위하여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자유인이 되고 싶었다. 자유인은 진리를 본 사람이다. 의미와 가치를 깨달은 사람이다. 지와 무지의 경계선까지 가 본 사람이다.

오래 사색했다.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모든 의문에 해답을 얻었다. 물론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지만 본질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의미를 알고 가치를 알고 진리의 완전성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나머지는 그 연잔성 상의 어디엔가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더 이상의 지식은 머리를 어지럽게 할 뿐이다. 사회를 위하여는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겠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는 이 정도의 깨달음으로도 완성이다. 내가 완성하고자 하는 나를 완성하기에 성공한 것이다.

또 나는 박정희와 그의 종들이 인간을 억압할 때 그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DJ와 노무현의 극적인 한판 뒤집기가 나의 인간을 회복해 주었다. 박정희의 남은 종들이 다시 권력을 잡는다 해도 한국인들을 예전의 그 비참했던 억압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박정희의 종들이 지배할 때 나는 대한민국의 바깥에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주민등록도 없었고, 투표도 하지 않았고, 세금도 내지 않았고, 공민권도 행사하지 않았다. 비국민을 자처하고 있었더랬다. 오래도록 혼자였고 고독했지만 미지의 누군가를 그리는 마음으로 하루를 견뎌내곤 했다.

독재가 끝났을 때 나는 돌아왔고 곧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을 통하여 그 모든 것의 주인인 신을 만났다. 나는 완전을 갈망했고 그 완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상을 보았으면 이미 정상을 밟은 것이다.

정치 현실은 여전히 어렵지만 어쩌면 한국인들에게는 시련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지금 그들은 자기네 선배세대가 어떻게 힘들게 싸워서 노예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를 잊어가고 있다. 시련은 있어도 굴욕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를 해방한 자의 자부심은 결정적인 위기에 빛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원하던 것을 얻었다. 언제나 오늘 죽기를 희망했지만, 또 죽을 때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 위해 늘 빈손이었지만 나의 심장은 40년을 넉넉히 일하고도 아직도 뛰고 있다.

엊그제는 치과에 가서 앓던 이를 뽑았다. 제법 살아보려고 어금니 씩이나 뽑은 것이다. 아픔이 싫어서 말이다. 안락함이 그리워서 말이다. 나의 살아있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어색하기만 한 살아있기에 벌써 중독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원하기만 한다면 당신들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그러나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을 바래야 한다고. 아무도 빈손인 나를 부러워 하지 않겠지만.

나는 또 한국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노예상태에서 벗어날 때의 그 감격을 상기해 보라고. 또 충고하고 싶다. 다시는 노예가 되지는 말라고. 후손들에게 노예의 신분을 물려주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그러나 수백만년의 진화의 결과물로 얻어진 바 딴나라들이 가진 자발적 노예의 취향은 나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들은 원래 그렇게 진화해 왔던 것이다. 그렇게 그 생존경쟁의 정글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내가 얻은 것을, 그리고 그 경험을 어떤 방법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되돌려 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이 사이트(drkimz.com)를 만들었다.

나는 여전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마흔부터의 삶은 타인을 위해 사는 것이어야 한댔는데 그렇다면 나는 이제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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