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자기완성이 대한 비전을 얻는 것이다. 자기 삶에 있어서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얻어 자신의 삶을 미학적으로 완성하는데 있다.
깨닫지 못하면? 설사 업적을 이룬다 해도 누군가에 보이기 위한 것이다. 타인과 비교하기 위한 것이다. 사회에 내놓고 자랑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식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시계가 태엽에 의존하듯이 바깥에서 주어지는 힘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것은 붙잡히고 얽매인 것이어서 불완전하다.
한 개의 도자기를 빗든, 혹은 한 그릇의 밥을 짓든, 한 채의 집을 짓든 제대로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완성에 대한 비전을 얻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물에 완성이 있다. 모든 작업에 완성이 있다. 모든 삶에 완성이 있다. 모든 순간에 완성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 그것을 완성할 수 있어야 한다.
완성이 아닌 것이 있다. 세상은 기계와도 같은 정교한 시스템이며 개인은 그 시스템의 한 부품으로 기능하고 있다면? 만약 그렇다면 완성은 필요하지 않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그러하다. 부품들은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 부품들은 완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단지 투입된 외력에 의해 기계적으로 작동할 뿐이다.
그러나 신이 창조한 바 생명의 원리는 다르다. 낱낱의 세포가 각각 살아있어야 한다. 자기 내부에 동력원을 가지고 스스로 역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이 창조한 세상은 기계의 톱니바퀴와 같은 정교한 맞물림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완성된 것 끼리의 공명(共鳴)에 의해서 널리 소통할 뿐이다.
세상은 기계가 아니고 인간은 부품이 아니다. 세상은 커다란 생명이며 인간은 스스로 완성될 때 기어이 세상과 소통한다. 소통에 성공할 때 제 역할을 한다.
기계는 동력원이 외부에 있고 생명은 동력원이 내부에 있다. 기계는 맞물려 있고 생명은 거리두고 있다. 기계는 작동하고 생명은 소통한다.
우리는 맞물려 있지 않아야 한다. 부품이 아니어야 한다. 우리 낱낱이 독립해 있어야 한다. 나는 혼자여야 한다. 나 스스로 완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세상 속의 나, 사회 속의 나, 집단 속의 나, 가족 속의 나, 조직 속의 부품으로 존재하는 나로 존재해 왔다. 타인에 의해 평가되고 비교된 나 말이다.
그러한 나를 버려야 한다. 누구에 의해서도 평가되지 않는,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가족에도, 조직에도, 집단에도 의존하지 않는 나를 완성해야 한다.
진정한 나를 찾을 때 기계의 부품에서 벗어나 스스로 완전해져서 세상으로부터 독립하여 신과 단독으로 채널을 열고 소통할 수 있는 즉 참된 생명성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