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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72 vote 0 2025.06.02 (08:51:19)


    재명이 / 정이수[펌]

    1963년 음력 10월 즈음 태어난 것은 맞는데
    청량산 자락에 묻혀 몸이 부서져라 일하다 아이를 낳고
    차가운 방바닥에 나뒹구는 아이들이 눈에 보일라 

    헝크러진 머리칼 쓸어넘기기가 무서워
    그 입에 오늘 또 무엇을 먹여야할지.
    가뜩이나 타들어가는 입에
    아이들 눈을 보니 더 가슴이 타들어가
    어미는 핏덩이를 낳고도 출산일을 기억하지도 기록하지도 못하였던 탓에
    이재명은 자기 생일을 모른다.
    살라면 살고 말라면 말라지. 

    일곱째 이재명 위로 어차피 누나 둘이 죽었으니
    명이 길면 알아서 살겠지. 

    이듬해가 다 갈 즈음 출생신고를 하고 

    산골짜기에서 돌처럼 굴렀지만
    주린 배로 어두컴컴한 산길을 두 시간이나 걸어 학교가기가 너무 힘들어
    결석을 하면 하염없이 매를 휘둘렀던 선생이 있었다.
    선생은 가난에 매질을 한 자라 이재명은 복수하고 싶었다.
    무엇이 사람을 가장 절망하게 하는지 이재명은 잘 알고 또렷이 기억한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산골짜기 떠나 도시로 간다더니
    엄마는 재명이를 상대원공단 염산공장에 밀어넣었다.
    돌멩이처럼 구르던 삶이었지만 도시의 하이에나들은 돌멩이도 부수었다.
    고무벨트에 손이 감겨 고무 조각이 손가락에 박히고
    함석판에 손등이 찢어지고
    월급을 떼이고
    밥 먹듯이 맞다가 귀싸대기를 너무 많이 맞아 귀가 들리지 않고
    벤젠과 아세톤에 찌든 후각세포도 죽었다.
    어느날 프레스에 손목이 끼었는데
    손가락 잘린 공장 형들 앞에서 병원에 갈 수 없어 

    팔이 휜 이재명은 팔병신 되어 군 면제가 되면 어쩌라는 것이냐.
    여기서 더 괄시를 받으면 죽으라는 것이냐.
    혼자 일기장에나 대고 울지
    왜 중학교 보내지 않고 이런 꼴 만들었느냐고 따져보았자 소용없는 아버지.
    이럴 거면 나를 왜 낳았느냐.
    숨죽여 가슴만 터지던 밤마다 수십 권의 일기를 쓰다가
    공부를 해야겠다. 작업반장이 되어야겠다 결심했다가도
    고달픈 인생 도저히 못 하겠다 삶의 절벽에서 뛰어내리려 하길 여러 번.
    죽는 것도 쉽지 않던 이재명이 철이 들었는지
    시장 화장실 앞에서 돈 받던 어머니, 

    공장에서 하이에나들에 부서지던 여동생이 눈에 보이더니
    거리에 보이는 수많은 어머니, 여동생이 매일 밤 이 악문 울음 속에 삼켜져
    이재명은 밤마다 연필을 들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아버지가 전깃불 끄면 어둠 속에서 공부한 것을 외우다가 법대에 갔다.

    서울대 갈 수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그랬다.
    이재명은 꿈을 가진 사람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알고 또렷이 기억한다.
    경기도에서 어린이들에게 과일을 무상 지원한다고 했을 때
    ‘과일이 복지냐. 없는 사람한테는 더 중요한 것이 있을텐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라면만 먹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나는 딸기가 먹고 싶어요. 내가 딸기를 먹으면 빨간 크레파스가 진짜 빨간색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이재명은 안다. 그 마음을.

    한밤중 불 꺼진 방에서 썩은 과일 한 쪽을 먹어본 것이 전부인 사람은
    가난한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지워지지 않게 새겨진 흉터투성이 인생.
    이재명은 잘 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


    세상의 모든 빈정대는 자들에게 빅엿을 먹여야겠다.

    이재명이 잘할지 못할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이재명을 대통령 만드는게 내 관심사다.

    5년 후에 박수를 받을지 손가락질받을지는 관심 없다. 

    이재명이 잘못하면 이재명의 잘못이지 내 잘못이 아니다.

    이재명을 대통령 못 만들면 그건 내 잘못이다. 
    저렇게 태어나고 저렇게 살아온 사람은 무조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 못 만들거면 대한민국은 무엇 하려고 저런 짓을 벌였느냐다. 

    나는 피죽을 먹어본 마지막 세대다.

    댓돌에 놓인 어머니의 짚신을 기억한다.

    고무신은 70년대에 일반화되었고 60년대까지는 짚신을 신었다.

    한비야가 40킬로 짊어지고 여행다녔다니 못 믿겠다는 자들이 MZ 세대다.

    MZ 애들 앞에서 피죽 먹던 시절 이야기하면 무슨 조선시대에서 시간여행을 왔느냐고 대꾸할 것이다. 비현실적이라는 말씀.

    중학교까지 한 번도 내 옷이라는 것을 입어본 적이 없다.

    중학교 교복도 이춘복 명찰을 떼고 내 이름을 붙인 거였다.

    속옷도 안 입고 학교를 다녀서 신체검사 시간에 곤란해졌다.

    삼각팬티를 입어야 한다는걸 몰랐다. 본 적이 없어서.

    나는 우리집이 한국에서 제일 가난한 줄 알았다.

    한국에서 제일 가난하면 그것도 나름 기록인데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나는 가난을 자랑삼기로 했다. 

    세상과 대결할 근거. 프로레슬링의 기믹 같은 것.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집보다 가난해서 야반도주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영양실조로 곱추가 되는 아이도 있었다.  

    가을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온 동네 감홍시를 다 주워 왔다.

    산기슭 어디에 주인 없는 밤나무가 있는지 훤히 꿰고 있었다.

    우리집은 그래도 밥은 먹었다. 

    어머니는 남들이 보는 옷은 동네에서 얻어다 입혀도 밥은 배부르게 먹여야 된다는 실용주의자였다. 

    봄만 되면 어머니는 아침을 굶었다. 저녁은 당연히 죽이었다. 정부에서 밀가루가 나와 보릿고개가 사라졌는데도 무슬림이 라마단 지키듯이 습관적으로 보릿고개를 지켜서 어머니 체중이 37킬로가 되었던 일도 있었다.

    늙은 쑥으로 쑥버무리를 만들었는데 온 식구가 배탈이 난 적도 있었다. 

    도토리묵을 잘못 쑤어서 일제히 배탈이 난 적도 있었다. 도토리는 물에 담가서 독을 제거해야 하는데 제대로 못 했던 것이다.

    20대에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가난이나 돈이나 성공이나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게 세상은 신의 실패작이었다. 꼴불견이었다. 내가 신이라면 앗 실패다! 하고 세상을 때려부수고 다시 만들었을 거다. 총체적으로 한심하다. 신이 다 창피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스무 번쯤 왕복했다. 

    겨울은 남쪽에서 보내고 여름은 서울에서 보냈다. 

    벼라별 인간을 다 만나 보았다. 

    거지도, 조폭도, 양아치도, 좀도둑도, 대학생도 만났다.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까지였다. 

    경상도든, 충청도든, 강원도든, 전라도든 똑같았다. 그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알았다. 내가 민망할 때는 상대도 민망하다는 것을. 내가 불편할 때는 상대도 불편하다는 것을. 타인은 내 바깥의 또 다른 나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없고 좋은 대본과 나쁜 대본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세상은 이재명에게 특별한 대본을 주었고 그것은 이유가 있다.

    세상은 내게 특별한 경험을 주었고 그것은 이유가 있다.

    적어도 빈 대본은 아니었다. 에피소드가 넉넉히 채워진 대본이었다.

    내 인생에 별일이 다 일어났는데 그렇게 대본이 채워진 것이다. 

    신의 세상이 허술해 보인 것은 그것을 보완할 책임을 일깨우려는 것이었다.


    옥동자 집에는 취미실이 있다. 음악실, 목공실, 영화실, 사진실, 만화실, 게임실, 공부실 다 있는데 그의 마음은 텅 비어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타인들에게 전시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을 취미실로 그의 초대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취미가 다양한 게 아니라 손님의 취미가 다양한 것이고 자신의 취미는 응대하는 것이다. 손님이 찾아오길 기다리지 말고 제 발로 걸어서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세상은 끝없이 이재명의 엉덩이를 차서 세상 속으로 밀어넣었다.

    써먹을 생각이 없었다면 왜 그랬겠나? 

    팔은 안으로 굽는다.

    나는 내게 투표한다. 

    내 바깥의 또 다른 내가 이재명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0]cintamani

2025.06.02 (09:05:52)

 이재명을 대통령 못 만들면 그건 내 잘못이다.

[레벨:15]오세

2025.06.02 (22:52:38)

눈물이 나네요.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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