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이
간판인지 벽화인지
아마추어의 습작인지
전문가의 작품인지는 논외로 하고
한자 비슷한 느낌의 벽지무늬와
주변에 휙휙 그어놓은 푸른색 페인트는
필자의 의도와 부합한다.
그림에서 질은 기법이나 내용 양측면에서 있을 수 있다.
기법으로 보면 바탕에 기본 백그라운드로 깔아주는 것이 질이고
내용으로 보면 그림에 긴장을 부여하는 것이 질이다.
일단 뭐 하나 깔아주는게 있어야 하고
그것은 본인이 개발해야 한다.
김명국의 달마도
테두리 굵은 선이 위 벽지와 같은 효과를 준다.
전체적으로 깔아주는 효과가 있다.
계를 통일하는 기본 베이스가 되어주는 것이다.
묵직한 중량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다른 모든 달마도들은
그의 쓰레기라 할 수 있다.
굵은 선을 왜 썼는지 모르겠다.
굵은 선은 바탕에 깔아주는 효과인데
위 그림들에는 공중에 떠 있는게 더 많다.
굵은 선은 계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인데
위 그림들은 그냥 이유도 없이 남이 하니까 따라한 것으로 보인다.
굵은 선이 전체에 깔아주지 못하고 한쪽에 치우쳐 있다.
또 망설이고 주저한 흔적이 도처에 드러나서
굵은 선의 선이 굵은 효과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일필휘지로 내갈기지 못하고
망설이고 주저한 흔적이 드러나는 것이 선이 가는 그림이다.
질은 밀도다.
밀도란 것은 어느 한 부분만 밀도를 높일 수 없게 되어 있다.
질은 밀도이므로 전체에 전달되어야 한다.
기압이나 수압과 같아서 전체를 그것으로 단단하게 결속하는 것이다.
고흐가 그림 한 귀퉁이만 떡칠할 수 없듯이
그 긴장이 전체에 울려퍼져야 한다.
위 사이비한 달마도들은
그런 긴장과 밀도의 분포가 전혀 없고
굵은 선 뒤에 움츠리고 숨어있는듯이 보인다.
치명적인 것은 모든 달마아저씨들이 한가지 기법을 표절하고 복제하며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뭔가 느낌이 옵니까?
요 위에 못그린 작은 달마들은
잘 보면 전부 바위 뒤에 웅크리고 숨어 있지요.
왜 달마 할아버지가 돌방구 뒤에 숨어서 엿보고 있냐 이겁니다.
쪼잔하게 말이지요.
제 이야기는 화단에서 미술을 생업으로 하는
전문가 양반들과는 다른 겁니다.
그쪽에는 그쪽대로 논리가 있겠지요.
저는 구조론으로 보는 것이며 과학으로 보는 것입니다.
과학은 보편되므로 미술이라는 영역을 떠나 더 넓은 관점에서 보는 겁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예술하는 사람들은 그쪽으로 고집이 있어서
사진가라면 사진에 너무 집착하는듯 하고
김봉남 아저씨는 또 나름대로 자기 집착이 있어요.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하면서
미술애호가들은 그 애호과잉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지 않아요.
사진가들은 사진과잉입니다.
왜 미술은 미술을 깨지 못하고 왜 사진은 사진을 깨지 못하고
왜 패션은 패션을 깨지 못하고 왜 음악은 음악을 깨지 못하는가?
왜 관객의 기호에 겸손하게 영합하는가?
관객이 원하는 음악을 들려주는 겸손한 자들은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시체입니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과학성을 잃으면 취미집단이 되어서
점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순정만화는 눈을 크게 하고 다리를 가늘고 길게 하는 경쟁이 붙는 식이지요.
주변에 꽃장식도 많이 하고.
요즘 순정만화가들 중에는 한컷한컷을 거의 정밀묘사를 하던데
편협해집니다.
공감합니다. 매구판, 탈춤판에 있는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지요. 하나는 동렬님 말씀처럼 옛 명인들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몇 있었는데... 살아 생전에 돈은 좀 만졌을겝니다. ㅋ^^* 조잡해집니다. 담백하면서 거센 기개와 힘찬 맛이 하나도 없게 되는거지요. 또 다른 하나는.. 실험 하고 도전도 해서.. 신 앞에 홀로 서서 대화하는 마당인 매구판.. 자본주의라는 시장과 사회주의 가치가 마치 줄광대가 긴장된 줄타기를 하듯 소통해서 사랑을 확인하는 축제판이라는 종합된
선 굵은 그림이란 동렬님 말을 처음 듣고 입에 사악 감기더군요. 탈춤판, 매구판에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 역시나 무게감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쉽게 생각합니다. 경쾌한 중량감은 곧 정중동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매구 수련을 꾸준히 하지 못하는 처지고.. 제법 한다는 잽이들은 매구 치면서 소리와 춤으로 공간을 도화지나 그림천 삼아 그려냅니다. 언제 동렬님이 진짜 연기는 공간을 장악하는 능력이란 말을 하셨는데..깜짝 놀랐습니다. 어떤 예술이든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다 통한다고 보고 다 통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림이나 다른 예술갈래는 보는 눈이 없어서 막힐 때가 많습니다. 동렬님 덕분에 말문이 터졌습니다 그려..시원하네요. 고맙습니다. |
제가 겪어본 일인데
예술가들은 뭔가 말할 것이 있는데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지는 못하고 있었소.
본류와 지류가 있는데
본류를 타야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류로 빠지는 우를 범하게 되오.
지류와 본류와의 거리가 멀어지면
어느 순간에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지게 되오.
문제는 관객의 낮은 인식수준.
모든 예술에 공통되는 '본류는 이런거다' 하는 것을
만인이 공식화 하게 되면
본류로 나아가도 외롭지 않을 것이오.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지는 못하고 있었소. 2
공감 백배... 저도 그렇고..그런 예술가들 둘레에도 허다합니다.ㅋ^^*
제 둘레에서는 저도 왕따 비슷한데....ㅋ 조금 외롭긴 하지만 견딜만 하고....
여기서 외로움도 달래고 힘도 얻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곱슬이님도 힘주셔서 고맙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