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사건을 해석하면 안 된다. 추상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설명하려면 눈에 보이는 사물에 빗대어 설명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물로 착각한다는게 딜레마다. 추상적 사건에 일어나는 일을 구체적 사물로 알아들으면 곤란하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간다. 기를 떠나서 승으로 가는게 아니다. 기 안에 승이 있다. 주소와 같다. 서울시 동작구 신대방동이라고 하자. 서울을 지나서 동작구를 거쳐서 마지막에 신대방동으로 가는가? 그건 아니잖아. 서울 출발 대전 찍고 부산으로 가는 것은 사물이고 서울 안에 종로 있고 종로 안에 서린동이 있는 것은 사건이다. 사물로 보면 서울 출발 대전 찍고 광주 가는데 시간이 걸린다. 사건으로 보면 서울에서 종로 찾아 서린동 가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시간이 걸린다. 이게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시간이 안걸리는데 시간이 걸린다. 시간이 안 걸리므로 사건을 시간축으로 놓으면 안 된다. 포개놓아야 한다. 학생이면서 교사를 겸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출석을 부를 때 자기 이름도 불러야 하는가? 반장에게 편지를 나눠주게 했다. 편지를 나눠줄 때 이름을 부른다. 자기한테 배달된 편지는? 자기 이름을 불러야 하나? 사적으로는 안 불러도 되는데 공적으로는 불러야 한다. 이런걸 엄밀히 따지자면 굉장히 많은 단어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용어가 겹치고 있다. 사건의 격발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건의 전달에는 시간이 걸린다. 사건은 시간과 관계없는 공간의 사정이다. 내부 밸런스가 붕괴되면 사건이 격발되는 것이다. 그것이 외부로 전달되는 데는 증폭과정을 거치므로 시간이 걸린다. 중요한건 순서가 있다는 것. 동시에 일어나도 순서는 있다. 우사인 볼트의 몸이 먼저 갔는가, 발이 먼저 갔는가? 몸이 먼저 갔다. 사진을 찍어보니 발이 먼저 결승점을 터치했는데도? 그래도 몸이 먼저다. 발은 몸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발을 별도로 따진다면 뒷발은 어쩌고? 발 중에 하나가 닿았을 뿐. 에너지가 몸을 거쳐 발로 전달되므로 몸이 먼저다. 무조건 몸이 먼저다. 발이 먼저 도착했어도 몸이 먼저다. 에너지로 봐야 보인다. 전쟁이 끝나도 산발적인 교전은 일어난다. 그런데 전쟁은 끝난 것이다. 전쟁과 전투는 동시에 끝난다. 그런데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