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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양을 쫓는 모험
read 10015 vote 0 2010.09.03 (12:59:04)

1.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jpg 

이런 무시무시한 제목의 책이 있나보다. 샘앤파커스 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책을 돈주고 사서 제대로 본 것은 아니지만, 서점에서 얼추 훑어보니 회사에서 제 몫을 해내기 위한 이런저런 처세의 글이 주된 내용이다. 말하자면 상사에게 인정받는 방법.
이 책이 얼마나 팔렸는 지는 모르지만, 지하철에서 이 책의 광고를 보았을 때, 정말이지 그 제목의 강렬한 지랄성 때문에 위장이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다그치며 하는 그 말.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


댁의 위장은 안녕하십니까?


 

 

2. 일을 하면 성과가 나오나?




이런 종류의 자기계발서는 시중에 널리고 널렸다. 이것도 그런 것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상사에게 혼나는 것을 진심으로 즐거워하라', '상사는 사실 피자를 먹고 싶어 한다' 등등... 결국 상사에게 적당한 아부와 충성스러운 일처리로 사랑받겠다는 이야기. 정말로 이런류의 책을 읽어서 자기계발이 될런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이 책을 비난하려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고, 유독 그 제목이 눈에 들어와서 이것을 명제로 한마디 하련다. 제목이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 이다. 전형적인 인과율인데, '일을 하다' 가 원인이고, '성과를 내다' 가 결과 인 셈이다. 그런데 과연 일을 하면 성과가 나오는가?


상사가 만약 당신에게 이 말을 했다면, 아마도 이런 뜻일 것이다. 일을 했으면 당연히 성과가 나오는데, 너는 왜 성과가 안나오는 거야? 하지만 일을 한다고 해서 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일을 시킨 상사의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는 있지만, 상사가 내가 한 일에 대해서 만족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회사의 성과와 꼭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착각하기 쉬운 부분이 바로 이런 것이다. 개인의 능력과 회사의 수익이 일치하지 않는다. 만약 회사의 수익이 급감한다고 해서 그것을 사원의 능력 탓을 한다면 그가 바로 가장 능력없는 상사인 것이다. 세상 일이란 것이 그리 계산대로 되지는 않는다. "왜 난 열심히 하는데 회사는 망하지?" 사업의 성격 자체가 그렇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집단의 밸런스, 내부의 시스템 보다는 외부의 상황에 따라서 흥망이 결정된다.


회사에서 당신한테 월급을 주는 이유는 당신이 특별히 일을 잘해서도 아니고, 당신이 그 세력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착각하지 마시라. 토익 900점 맞고 입사해서 영어 제대로 시키는 직장이 몇이나 있던가?


 


3. 일이란 무엇인가?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고 했는데, 그 말 이전에 '일' 이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과연 일이라는 것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가? 구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시장 > 기획 > 관리 > 생산 > 소비
의 1사이클이 있다. 이중에 시장은 외부 요인이고, 기획, 관리, 생산이 내부 요인이고, 소비(매출)는 그 결과물이다. 잘 나가는 회사는 이 과정이 선순환 하는 것이고, 망하는 회사는 악순환 하는 것. 이것은 회사의 직급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즉, 시장(사장) > 기획(이사급) > 관리(부장, 과장급) > 생산(사원) > 소비(결과) 인 것이다.


사장의 일은 회사 외부에서 내부로 에너지를 끌어오는 것이 일이다. 그것이 일꺼리를 가져오든, 투자를 받아오든, 인재를 데려오든... 사장이 슬슬 놀면서도 외부로부터 일꺼리와 투자를 이끌어내면 제 몫을 다 하는 것이다. 반면에 사장은 엄청나게 뛰어다니는데, 사원들은 할 일이 없어서 놀고 있으면 이것은 최악이다.


외부에서부터의 에너지가 있고, 내부의 밸런스가 있다. 외부의 에너지라면 회사 밖의 시장상황이고, 내부의 밸런스는 의사결정구조다. 사장이 의사결정을 상황에 맞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는가? 기획의 컨셉대로 일이 착착 진행이 되는가? 하는 것은 명령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가? 하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관리자가 원하는 만큼 일을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면, 관리자가 명령을 잘못한 것이고, 관리자가 명령을 제대로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면, 기획자가 기획을 제대로 못한 것이고, 기획은 제대로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면 사장이 결정을 잘 못 한 것이다. 하나의 성과를 내는 것은 여러가지 필요충분조건이 맞았을 때의 가능한 것이다.


 


4. 회사의 구조



나름 대기업에서 중역으로 오래 근무하다가 은퇴 후에 자기사업을 시작하는 사장님들이 술마시면서 잘 하는 얘기가 있다. "나는 전략이 좋으니까 잘 될거야", "컨텐츠가 좋으니까...", "인맥이 좋으니까..."  각자마다 장점이 있겠지만, 대체로 망하는 케이스는 대부분 그거 믿다가 망한다.


 

철학 > 인프라 > 시스템 > 컨텐츠 > 전략



회사가 진화되는 구조는 이렇다.
그런데 철학은 눈에 보이질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이란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기준점을 세워야 주변사람에서 인프라가 생긴다.


애플이 최초의 컴퓨터를 만들었을 때, 그 프로그래밍 부터해서 모든 작업은 워즈니악에 의해서 가능했다. 그래서 혹자는 스티브 잡스는 딱히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워즈니악이 전자기판을 낳았다면,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키웠다. 그가 사람들을 향하여 "해적이 되자!" 라고 외칠 적에 이미 그는 큰 깃발을 꽂은 것이다.


만화 슬램덩크와 같다. 고릴라 채치수가 버티고 있으니, 키작고 발빠른 송태섭이 달리고, 불꽃남자 정대만이 3점슛을 던지고, 서태웅이 내외각을 누비고, 천재 강백호가 리바운드 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철학의 깃발을 세우면, 인프라가 있는 사람, 시스템 관리자, 컨텐츠 생산자, 전략가 각자 제 몫을 하는 것이다. "우리팀엔 득점할 녀석들이 많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도 좋다." 이래야 강팀이다. 기업의 초반은 깃발의 신뢰성에서 승부가 갈린다.


 


5. 스스로 깃발을 세워라



사원이 '열심히 일한다' 라는 표현 자체도 아주 모호하지만,  구글의 사원이 한국 기업의 사원보다 근무시간이 길지 않을 것이다. 사원 개인의 능력이 애플의 사원보다 아주 크게 뒤쳐지지도 않을 것이다. 한국의 기업에서 근무하는 사원들이 미국의 기억에서 근무하는 사원보다 더 열심히 일하면 일했지,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인가? 애초에 사원 개인의 능력과 근면에서 문제가 아니라, 상부구조에서의 문제. 우리나라엔 애플보다 우수한 사원은 얼마든지 있지만, 스티브 잡스만큼 하는 사장은 단 한 명이 없다. 그런 말이 있다. 일본은 하사관이 강하고, 독일은 장교가 강하고, 미국은 장군이 강하다. 장군이 강해야 진짜다. 훌륭한 장군이 강한 군대를 만든다.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야 한다. 하지만 그 일의 90%는 말단사원이 아닌 사장의 일이다. 이미 거기에서 사업의 흥망이 결정이 된다. 말단사원이 보고서에 오타가 났거나, 기획서 형식이 바뀌었다거나 정도로 될 일이 안되고, 안 될 일이 되지는 않는다. 상사가 꾸중한다고 자책하지 마시고, 아부하지 마시고, 당당하게 할 일은 하고, 할 말은 하시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레벨:3]x맨의 비극

2010.09.03 (21:10:55)

알엤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양을 쫓는 모험

2010.09.03 (23:35:58)

간만이오. 무쟈게 방갑소.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0.09.03 (22:32:13)

자영업자의 위안과 진보혁신과 성공이 한 눈에 쫘악 들어오는 듯 하오.
난 입사 3년차 영업직에 있을때 내 오더 한 건의 마진이 내 1년 연봉과 맞먹는 것 보고 놀래 자빠졌었소. 오너는 좋겄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양을 쫓는 모험

2010.09.04 (00:00:29)

저런 류의 자기계발서에는 대부분 이런 내용이 있소. 사장이 사원 한 명을 뽑을 때에는 그 사람의 연봉 뿐 아니라 부대비용, 보험료, 인프라 등 해서 상당히 비용이 들어간다. 한 명을 뽑을 때에는 그 연봉의 1.5배의 수익이 나야 본전이라고 생각을 한다. 당신은 당신의 연봉만큼 값어치를 하는가?

연봉만큼 값어치를 하려면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만 잘 따라오시라는 얘기. 요거 어떻게 보면 꽤나 그럴듯하게 보이는 말이오. 모르는 사람들은 이 말에 혹 하는 거요. 애초에 회사의 수익이라는 것이 개인의 능력단위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각 사원마다, 각 포지션마다의 조합에 의한 결과물이오. 회사 수익이 100조가 나면 그 수익만큼 직원의 연봉을 올려줬을 때에나 성립되는 얘기. 

구조를 모르면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레벨:3]율두스

2010.09.06 (15:17:59)

직원을 코스트로 보는 관점은 우리 사장으로 부터도 지겹도록 듣고 있소 ^^
당연히 구조적, 미학적 관점의 포지셔닝 조합은 기대하기 어렵고..외부로부터의 에너지 유입이나 환경 조성보다는 직원들의 성공을 향한 자발적 열정을 매우 강조하고 계시오. 국내 기업 CEO 99%이상은 그런 것 같소.  철학>인프라>시스템>컨텐츠>전략...스스로 세력을 키우고 깃발을 세울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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