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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77 vote 0 2020.02.24 (15:58:13)


    이사지왕은 누구인가?


    유물이 하나 나올 때마다 뒤집어지곤 하는게 고대사학계다. 근래에 나온 유물 중에 유명한 것은 영일 냉수리비와 금관총의 이사지왕도다. 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음은 물론이다. 냉수리비는 차칠왕등이라는 표현이 문제로 되었는데 식민사학의 거두 노태돈의 부체제설과 관련이 있다. 


    차칠왕이라는 표현은 일곱 명의 왕이 존재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신라는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매금 등으로 왕호가 변하다가 6세기에 이르러 지증왕 대에 처음으로 왕호를 쓰게 되는데 이 시기는 나제동맹으로 신라가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의 남하를 막던 시기였다. 


    백제가 왕을 칭하고 있으므로 신라도 격을 맞추어 왕호를 쓰게 된 것으로 보면 자연스럽다. 그런데 500년에 즉위한 지증왕이 503년에 세운 냉수리비에 지도로갈문왕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즉위하자마자 곧바로 마립간을 폐지하고 왕호를 썼다고? 지증왕이 왕이 아닌 갈문왕이라고?


    그런데 울진 봉평비의 금석문을 보면 법흥왕을 이르는 모즉지 매금왕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왕에서 다시 매금으로 돌아갔다고? 그렇다면 시대가 앞서는 금관총의 이사지왕은 또 뭐지? 유물로 보면 이사지왕은 법흥왕 곧 모즉지매금왕보다 이른 시대의 왕이다. 그래서 무덤이 작다. 


    고구려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던 것이다. 법흥왕은 지증왕 이후 신라가 잘나가던 시대의 왕이다. 필자가 중학생 때 금관총을 찾아가 본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가옥이 무덤 일부를 올라타고 있었다. 뒤의 거대한 봉황대와 비교하면 사이즈가 작다. 그런데도 4만 점의 유물이 나왔다.


   봉황대는 아마 지증왕의 무덤일 것이다. 그 정도로 큰 무덤을 만들려면 대단한 업적이 있어야 하는데 지증왕뿐이다. 그렇다면 이사지왕은 소지왕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소지왕이면 아직 왕호를 쓰지 않은 마립간 시대다. 이미 왕호를 쓰고 있었지만 대외적으로 쓰이지 않았던 거다.


    눈에 띄는 점은 울진 봉평비의 모즉지매금왕이 서석대의 추명에는 모즉지태왕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고구려나 일본의 기록에도 매금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매금이 왕을 뜻하는데 매금왕은 왕왕이라 역전앞이면 이상하다 싶어서인지 매금을 떼고 태왕으로 표기한 것으로 본다. 


    매금왕이라는 표현은 갈문왕과 구분하기 위한 것인데 지도로 갈문왕의 예를 보면 지증왕이 왕이면서도 갈문왕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지증왕이 사탁부 출신이기 때문이다. 대대로 탁부가 왕을 먹고 사탁부가 갈문왕을 하는데 사탁부의 지증왕부터 꼬여서 이상하게 되었다. 


    이후 갈문왕은 슬그머니 폐지되었다. 여기서 핵심은 노태돈의 부체제설이다. 필자는 신라가 왕을 여러 명 두는 유목민의 후예이므로 차칠왕이라는 표현이 있을 수 있다고 보았는데 사실은 학자들이 한자를 잘못 읽은 것이다. 이 분야에 정통한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의 논문이 있다.


    김태식 기자와 몇몇 네티즌에 의하면 차칠왕등은 차칠왕+등이 아니라 차칠+왕등이며 왕을 제외한 6인은 간지라고 분명히 나오므로 차칠왕등은 왕+6간지다. 일곱 명의 왕이 아니라 한 사람의 지도로갈문왕과 6명의 간지를 합쳐서 차칠+왕+등으로 왕에 여섯을 더하여 7인이 된 것이다.


   그런 점은 사부지왕과 내지왕을 차이왕이라고 표현한 사실로 알 수 있다. 여섯 간지들은 모두 간지라고 명확히 표현했다. 가야에서 왕을 한기라고 부르는데 신라의 간지와 같다. 즉 족장이다. 6부의 간지는 왕이 아니라 가야의 한기와 급이 맞는 간지다. 나무위키부터 죄다 잘못되어 있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사지왕도를 비롯해서 지증왕 이전 마립간시대부터 신라에 왕이라는 명칭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관제 식민사학자들이 당시는 왕이 아닌 귀족들도 왕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물타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즉 식민사학의 거두 노태돈의 승리인 것이다. 


    그런데 백제에도 흉노식 표현인 좌현왕, 우현왕이 개로왕 때 있었다. 흉노는 좌곡려왕 우곡려왕까지 5왕을 두어 백제의 고추가, 마가, 우가, 저가, 구가와 같은 5가를 이루었다. 필자는 이 가들을 가야의 가로 본다. 즉 가야는 마가 우가와 같은 가들의 나라이며 가+나라=가라가 된다. 


    신라의 육부도 이와 같은 개념이다. 부라는 것은 후대의 해석이며 당시에는 가의 지배자를 간기라고 불렀다. 신라의 왕족은 탁부와 사탁부인데 당시 발음은 달이었다. 달부와 새달부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신라가 국명이 계림으로 된 것이다. 그런데 부자지간에 부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부는 모계를 중심으로 파악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사지왕은 누구인가? 이사지왕도에는 八과 十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이사를 잇으로 본다면 이사금이 된다. 이사는 왕명이 아니라 임금을 뜻한다. 제작자가 감히 왕의 이름을 칼에 새길 수는 없는 것이다. 


    이사지왕도는 임금님의 칼이다. 먼저 글자를 새기고 나중에 도금한 사실로 알 수 있지만 칼의 소유자가 자기 이름을 쓴 것은 전혀 아니다. 이사지의 이는 너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한자의 용법을 모르는 장인이 너 소지왕이라고 썼을 수도 있다. 八과 十은 일괄주문을 받아 숫자를 썼다.


   1) 가야는 가의 나라이다. 가는 고구려의 고추가 마가 우가 저가 구가와 같다. 


   2) 흉노는 한족의 황제에 해당하는 선우 밑에 좌현왕, 우현왕을 두고 또 좌곡려왕, 우곡려왕이 있는데 이는 유목민 습속이며 고구려와 다섯 가와 가야의 한기, 신라의 갈문왕과 간기가 되었다. 백제의 왕호 어라카=어라하는 어라+가다. 백제도 개로왕 때는 좌현왕이라는 표현을 썼다.

    3) 냉수리비의 차칠왕등은 일곱왕이 아니라 왕과 여섯 간기를 의미한다. 왕은 매금왕과 갈문왕이 있을 뿐이다. 


    4) 노태돈의 부체제설은 중국 중심의 식민사관이고 유목민 사관으로 갈아타야 진실이 보인다.


    5) 이사지왕의 이사+존칭 지+왕인데 이사를 임금으로 본다면 임금님왕이다. 즉 이사는 그냥 임금이다. 혹은 소지왕을 한자를 모르는 장인이 잘못 썼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너)+소지왕이 된다.


   신라의 기와 유물에 나오는 명문은 글자를 모르는 장인이 좌우를 바꿔 쓰는 등 글자를 잘못 쓴 것이 많다. 붓을 잡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윗사람이 써준 한자를 베껴쓰다가 삑사리가 난 것이다. 필자가 이사지왕을 논하는 이유는 고대사학계의 깎아내리기 경향을 비판하려는 의도이다.


    금관총에서 무려 4만 점이라는 막대한 황금유물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일개 귀족의 무덤으로 깎아내리고 있다. 도대체 부를 축적한 통일신라도 아니고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에 밀려 영덕까지 영토가 쪼그라든 소지왕 밑의 육부촌장이 이 정도의 어마어마한 황금을 손아귀에 넣었다? 


    왕도 아닌 왕족의 무덤에서 이 정도 황금이 쏟아진다면 대왕 곧 매금왕의 무덤에서는 얼마나 많은 유물이 나와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말이다. 금관총보다 황금이 많이 나온 무덤은 천마총밖에 없다. 신라 왕릉은 다수가 발굴되었는데 일부는 왕비의 무덤이다. 부부의 무덤이 쌍분이다.


    그렇다면 금관총에 서봉총, 천마총, 황남대총, 금령총까지 왕릉급 고분이 다섯밖에 발굴되지 않았는데 통일신라도 아닌 신라 전기에 한참 고구려에 짓밟히고 왜구의 침략에 시달리던 시절의 귀족 무덤에서 이 정도의 유물이 나온다면 매금왕의 릉에서는 얼마나 나와야 한다는 말인가?


    금령총 금관은 작고 무덤은 더 작다. 교동금관이 여섯 번째 금관이지만 이른 시기의 유물인데다 금관의 지름이 14센티라서 왕관은 확실히 아니고 왕자의 관일 것이다. 디자인도 상당히 다르다. 이사지왕은 신라의 왕이 맞고 강력한 권한을 가졌다. 권력의 크기와 부장품의 량은 비례한다. 


    https://younghwan12.tistory.com/3370 <- 귀족 무덤이라기에는 황금이 너무 많다. 당시 보고서로는 황금 7.5킬로그램인데 투탕카멘왕의 무덤이 발굴되기 4년 전인 당시로는 미케네 무덤 다음으로 많은 황금이다. 노태돈 주장대로 신라가 왕도 없는 부족국가 시대에 족장이 이 정도라면? 


    결론 .. 식민사학의 부체제설은 중국 한족 중심사관이며 식민사관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은 초기부터 강력한 권한을 가졌으며 신하들과 토론하여 의사결정하는 것은 유목민 특유의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다. 강력한 왕권에 의한 독재정치가 역사의 진보라는 믿음은 틀렸다. 


    힘이 센 이웃의 중국을 상대하다보니 자연히 독재화 되었을 뿐이다. 추가하자면 신라는 매금왕과 갈문왕 뿐 아니라 여왕도 있었다. 서석곡의 어사추여랑왕은 왕이다. 이 부분을 학자들은 그냥 왕족이라고 해석하는데 왕이라고 써놓았으면 왕이라고 읽어야 한다. 멋대로 왜곡하지 마라.


    황남대총은 부인의 묘에서만 금관이 나왔다. 왕이 여럿이기 때문에 장인은 매금왕, 갈문왕, 여왕 중에서 어느 왕에게 칼이 갈지 몰라서 그냥 이사지왕이라고 쓴 것이다. 어느 왕이 소지하게 되든 왕의 칼이라는 말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kilian

2020.03.10 (14:40:21)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은 초기부터 강력한 권한을 가졌으며 신하들과 토론하여 의사결정하는 것은 유목민 특유의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다. 강력한 왕권에 의한 독재정치가 역사의 진보라는 믿음은 틀렸다."

http://gujoron.com/xe/117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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