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생각하면 무섭다. 진리는 선택을 요구한다. 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알고도 못 가는 것이 인간이다. 선택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세상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압도적인 에너지로
맞대응 해나가는 것이다. 전략의 핵심은 에너지 입구를 차지하는 것이다. 삼국지를 보더라도 난이 일어나면
수도를 장악해야 한다. 에너지 입구를 장악한 자가 순서대로 풀어간다. 문제는 전체의 탑포지션이 아니라
부분에도 탑포지션이 있더라. 국민전체를 대표하는 것보다 지역구를 대표하는 것이 쉽다. 다들 쉬운 길로 가니
개판이 된다. 관계는 상부구조고 내용은 하부구조다. 결국 국민전체를 대표하는 포지션에 가 있는 사람이
국민의 에너지를 끌어다 쓴다. 문제는 집단의 에너지가 수렴되는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 시간을 버텨야 하므로 믿음이 필요하다. 어쨋든 국민은 일어났고 촛불은 번졌고 문재인대통령은
집단의 에너지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었다. 사실인지 김대중 대통령은 젊었을 때나 나이먹고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세상앞에 맞선 한 인간의 포지션은 말로 속이지 못한다. 김대중대통령은 변한적이 없지만 세상이
김대중 대통령을 쓰는데는 시간이 걸렸다. 영웅은 뜻이 있지만 사람들이 변하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신의 고통과 함께하는 것이 신이 마련한 시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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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핵심은 생산력이다. 생산력은 자연과학의 생산력과 인문학의 생산력이다. 자연과학의 생산력은 과학기술을
잘 발전시켜서 자연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뽑아쓰는 것이고, 인문학의 생산력은 결국 집단의 의사결정구조다.
기독교나 유대인 공동체나 독일의 종사제도나 유교나 결국 집단의 의사결정구조를 합리적으로 조직해서 집단
전체의 에너지를 쓰는데 성공하기 위해 고안해낸 것이다. 집단의 의사결정구조가 비합리적일때 결국 타격받는 것은
집단 내부의 약자다. 그럴 때 집단은 내전에 들어가고 외부집단과의 경쟁에서 패배한다.
외부와의 경쟁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인간은 모순에 반응하지 않는다. 따고 배짱인데 뭔들 못하랴.
먼저 열린 사회, 열린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21세기 인류문명의 도전은 인류전체의 에너지를 끌어쓸 수 있는 집단의 의사결정구조를 세팅하는 것이다.
언어혁명이나 인터넷혁명이나 집단을 만나게하는 장애물을 해결한 것이다. 이건 전초전에 불과하다. 장애물을 해결해서
집단의 에너지를 행동통일로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진도가 나가야한다. 결국 문명의 본질이 무엇이냐다.
문명은 하나의 사건이다. 사건은 운영하는 것이다. 인류라는 불덩이를 다룰 자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