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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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02 vote 1 2019.10.18 (13:32:39)

    죽음의 게임      
   
   

    죽음이 두려운 것은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죽음 하나는 어떻게 상대해 보겠는데 뒤에 따라붙는 것이 있다. 삶이 기쁜 것도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결되어 있음에서 인간은 에너지를 얻는다. 답은 그 연결의 선두에 서는 것이다.


    연결고리의 맨 뒤에 서 있을 때 인간은 두렵다. 상황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꾸로 통제를 당하기 때문이다. 그 연결고리 맨 앞에 서 있을 때 인간은 기쁘다. 상황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게임이다. 인간은 게임 하는 동물이다.


    인생은 게임이다. 우주는 게임이다. 존재는 게임이다. 게임은 이기거나 아니면 지거나다.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는 게임이다. 상대방에 의해 방향이 바뀌면 지고 상대방의 방향을 바꾸면 이긴다. 거기에 내밀하게 작동하는 권력구조가 있음은 물론이다.

 

    하거나 아니면 당하거나다. 하는 것은 삶이고 당하는 것은 죽음이다. 사는 게 만만치 않은 것은 당하고 살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을 강제 당한다. 돈이 있을 때는 여유가 있다. 가격에 신경쓰지 않는다. 돈이 없으면 쫓기게 된다. 의사결정을 강제당한다. 


    10만 원의 돈으로 술을 먹고 잔소리를 들을 것인가 아니면 선물을 사고 칭찬을 들을 것인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의 의지가 아닌데 상황에 떠밀려 당하는 것이 게임에 지는 것이다. 원하지 않는 의사결정을 강제당하는데 인생의 비극이 있다.


    왜? 그럴 때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맹수에게 쫓길 때 인간은 호흡을 멈춘다. 100미터 달리기는 무호흡 경주다. 숨을 쉬면 안 된다. 고통이 왜 고통스러운가? 호흡의 단절 때문이다. 하늘이 푸른 것이나 팔이 아픈 것이나 같다. 그냥 감각일 뿐이다.


    하늘이 푸른 것은 하늘의 사정이고 팔이 아픈 건 팔의 사정이다. 그런데 왜 내가 괴롭지? 호흡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아프면 힘을 주게 되고 그 순간 근육이 경직되어 호흡이 멎는다. 아프면 다른 것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한 연결구조가 문제로 된다. 


    인간은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러한 연결이 무섭다. 죽음보다 허무가 무섭고, 허무보다 실패가 무섭고, 실패보다 결정이 무섭다. 하나의 결정이 다른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고백하다가 차이는 건 괜찮은데 그 이후에 따라붙는 나쁜 기억이 무섭다. 


    잊어버려야 하는데 잊혀지지 않는다. 하나를 상대하는 것은 괜찮은데 이것들이 단체로 덤비는 데는 당해낼 장사가 없다. 죽음과 허무와 실패와 의사결정과 나쁜 기억과 호흡의 차단과 근육의 경직이다. 이러한 연결구조가 에너지다. 에너지에 치인다.


    그러한 연결의 맨 뒤에 당신이 서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죽음에 치이고 허무에 떠밀리고 실패에 당하고 의사결정에 채근당하고 나쁜 기억에 습격당하고 호흡에 곤란을 겪고 근육이 경직된다. 이리저리 휘둘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게임에 지는 것이다.


    이건 당신의 계획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겨야 한다. 의사결정권자가 되어야 한다. 연쇄고리의 맨 앞에 서야 한다. 그럴 때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그것이 에너지의 획득이다. 그럴 때는 은행잔고가 두둑한 사람이 백화점 앞을 지날 때의 기분이 된다. 


    결정을 채근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움직이면 연동되어 다른 것이 움직인다. 예상할 수 있고 대응할 수 있다. 즐길 수 있다. 그 연쇄고리가 문제다. 당신의 앞에 무엇이 있는가? 집단이 있다. 집단의 대표성을 획득할 때 죽음은 극복된다. 전위에 서야 한다.


    아기 때는 그랬다. 내가 재롱부리면 엄마도 웃고 아빠도 웃고 형도 웃고 동생은 흉내낸다. 내가 사건의 맨 앞에 있다. 뒤에 설 때도 있지만 울어버리면 된다. 다들 항복하고 나를 달래기 시작한다. 다시 내가 주도권을 잡았다. 쉽잖아. 좋은 시절이었다.


    현대사회는 갈수록 집단과의 관계가 느슨해진다. 아기가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밀도가 떨어지면 의사결정은 실패한다. 사회는 바람빠진 풍선이 되었다. 수압이 떨어져 수도꼭지를 틀어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원하는 지점에 물줄기를 보낼 수 없다.


    그럴수록 더 큰 단위를 찾아야 한다. 인구가 줄고 아기가 없고 가족과 소원해지고 주변에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어디라도 연결되지 않는다. 연결되지 않으므로 전위에 설 수 없다. 그럴수록 큰 단위로 치고 올라가서 더 큰 세계의 사건을 만나야 한다.


    국가와 인류와 우주 단위로 자신의 스케일을 키워야 한다. 내 앞을 막아서는 적을 발견해야 한다. 그때까지 진격해야 한다. 지금이라면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 우리 앞을 막아서는 방해자다. 밀도를 느낄 수 있는 지점이 된다. 예민한 반응을 느낄 수 있다.


    내 앞을 막아서는 방해자의 존재를 느낄 때 삶은 절절히 지각된다. 긴밀해진다. 복수해야 한다. 맞대응해야 한다. 게임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야 한다. 그럴 때 삶은 농밀해진다. 풍성해진다. 간격은 타이트하게 조여진다. 대상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발사가 고객의 머리를 깎는다. 소년이 정원의 잔디를 깎는다. 5분 내로 결과가 나온다. 반응한다는 말이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반응한다. 반응하게 하는 것이 게임에 이기는 것이다. 반응이 없거나 반응이 너무 느릴 때 인간은 지친다. 


    삶은 반응하는 것이며 죽음은 반응이 멈추는 것이다. 중요한 건 게임이다. 반응을 끌어내는가 반응을 당하는가다. 반응을 끌어내는 것은 삶이요 반응을 당하는 것은 죽음이다. 집단의 중심에서 대표성을 얻어 서로 긴밀해질 때라야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


    그것이 삶이다. 사건이다. 상호작용은 여여하게 진행되고 인간은 그 도도한 에너지 흐름을 타고 강물처럼 태연하게 흘러간다. 삶은 내 몸뚱이 부피에 갇히지 않고 세계에 두루 걸쳐져 있다. 사건은 격렬한 연쇄반응을 끌어내며 끊임없이 확장되어 간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0]kilian

2019.10.19 (02:59:55)

"반응을 끌어내는 것은 삶이요 반응을 당하는 것은 죽음이다. 집단의 중심에서 대표성을 얻어 서로 긴밀해질 때라야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

http://gujoron.com/xe/1133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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