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쇼와 돌버츠 커쇼와 로버츠 감독은 예전부터 불안불안했다.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 특히 믿음야구를 하는 감독은 절대 믿을 수 없다. 믿는다는 것은 불안하다는 것이다. 감독이 불안해한다면 틀려먹은 것이다. 그것은 전략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수들의 전략은 상대팀의 전술을 읽고 맞대응하는 것이지만 고수들의 전략은 다르다. 오자병법이 손자병법을 이기듯이 고수라면 상대팀의 대응여하와 상관없이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자기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므로 특정 선수를 믿는 거다. 선수를 믿는다는 것은 확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률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자기 전략이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정신적 요소를 강조하면 틀려버린 것이다. 커쇼는 구종이 단조로워 포스트시즌에 상대팀이 작정하고 나오면 고전할 수 있다고 한다. 어디서 읽은 이야기다. 그레인키와 커쇼의 차이가 그렇다고. 그레인키는 초반에 공을 이곳저곳에 찔러보고 상대가 어떤 전략으로 나오는지 간파하여 중간에 레파토리를 바꾼다. 구종이 단조로운 커쇼는 그럴 수 없다. 1회부터 계획을 세우고 던진다. 상대팀은 커쇼의 어떤 공이 약한지 알아낸 다음 구종 셋 중에서 하나를 버리고 둘로 좁혀서 50퍼센트 확률에 건다. 그레인키는 반대로 상대팀 타자가 어떤 공을 노리는지 간파하여 중간에 구종을 바꾼다고. 그러려면 류현진처럼 구종이 다양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레인키는 전략이 있다는 거다. 상대가 어떤 공을 노리든 한 수 위에서 노는 자기 계획이 있다. 아주 머리꼭지 위에서 놀고 있다. 게르만족이 어떤 전술로 나오든 로마군단은 거기에 대응할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해 놓고 있다. 제갈량의 칠종칠금과 같다. 맹획이 어떻게 나오든 대응카드는 미리 준비되어 있다. 이쪽을 막으면 저쪽을 치고 저쪽을 뚫으면 이쪽을 막고 모든 경우에 대비해놓고 있다. 확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전투가 진행될수록 승리할 확률은 조금씩 올라간다. 커쇼는 그런 게 없다. 1회부터 9회까지 정해놓고 그대로 던진다. 세 가지 구종이 다 잘 들어가면 상대팀은 커쇼의 공을 칠 수 없다. 그러나 그중에 하나가 삐끗하면 확률은 50퍼센트까지 올라간다. 상대팀은 한 가지 구종만 노리고 도박을 걸어오게 된다.
로버츠 감독이 불안한 이유는 말을 잘하기 때문이다. 그는 시합에 이기든 지든 기자들이 원하는 말을 해준다. 그의 분석은 너무 뛰어나서 모두 수긍하고 납득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불안하다. 마치 유시민의 TV토론처럼 말을 잘하잖아. 그러기 있나?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은 믿을 수 없다. 맞는 말은 드러난 말이고 감추어진 부분에 당한다. 키움이 선전하는 이유는 과거 한국의 바둑 특히 충암사단이 선전하는 이유와 같다. 젊은 기사들이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시너지 효과를 만든다. 플러스알파다. 전력 외에 하나가 더 있다. 감추어진 부분이 있다. 젊은 투수들이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과 고참투수가 신참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다르다. 젊은 투수들은 모르므로 별소리를 다 하지만 고참은 확실한 것만 말한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매우 위험하다. 야구에 해박한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를 잘못 가르쳐서 망치는 일은 매우 많다. 이런 거 한두 번 봤나? 이기는 팀은 정해져 있다. 한창 성장하는 젊은 투수들이 구조론의 질을 형성하는 것이다. 거기에 관록 있는 고참 몇이 무게를 잡아주면 금상첨화다. 경험이 없는 햇병아리만 모여도 곤란하다. 우승을 노리는 다저스는 검증된 선수만 모은다. 그러므로 숨은 플러스알파가 아니라 드러난 마이너스알파가 된다. 전력이 드러났고 상대가 맞대응하기 때문이다. 승부는 건축과 같다. 모든 승부가 그렇다. 정치든 경제든 스포츠든 게임이든 마찬가지다. 초반에 자원을 모으는 과정이 있고 중간에 상대를 끌어내는 과정이 있다. 바둑의 정석처럼 기초부터 하나씩 쌓아가는 감독이 명감독이다. 즉 하나씩 숨은 미지수를 확실한 수로 확정해 나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확정된 전력으로 승부한다면 얼빠진 것이다. 반드시 예비대를 뒤로 돌려놓고 나폴레옹의 젊은 소년병이나 몽골의 만구다이를 투입하여 상대진영을 흔들어서 상대의 모든 전력이 끌어내졌을 때 본대를 투입하여 판을 정리하는 수순이다. 그러므로 유능한 지휘관은 아군의 숫자가 적을수록 예비대를 따로 뺀다. 상대가 10만이고 이쪽이 3만이면 그 3만에서 1만을 따로 빼고 그 1만에서 다시 3천을 따로 뺀다. 소수를 미끼로 내던졌다가 상대가 덮칠 때 예비대를 투입해 되치기하는 거다. 이렇게 미지수를 만들 때 미치는 선수가 나타난다. 숨은 플러스알파가 작동한다. 드러난 부분과 감추어진 부분이 있다. 특히 포스트시즌에는 감추어진 전략의 영향이 크다. 총력전이기 때문이다. 어느 팀이든 상대팀의 전력을 현미경으로 해부한다. 그런데 감추어진 전력은 염탐 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의 기량이 아니라 방향성이 있고 기세이기 때문이다. 우승을 노리는 팀이 다저스처럼 검증된 선수만 모으면 전력은 백퍼센트 노출되고 항상 마이너스 알파가 작동한다. 무조건 마이너스가 된다. 반대로 신예들을 중심으로 균일한 질을 형성하고 거기에 경험 많은 고참 몇이 가세하면 플러스알파가 작동한다. 기세가 있고 결 따라 간다. 사람을 믿지 말고 확률을 믿어야 한다. 정치개혁이라도 그렇다. 사람을 상대해서는 안 된다. 맞대응 때문이다. 상대가 되받아칠 수 없는 것으로 승부해야 한다. 상대가 반박할 수 있는 주장은 하지 않는 게 낫다. 법과 제도를 바꿔야 진정한 개혁이 되는 이유는 사람이 아닌 무생물이라서 상대가 받아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병 위주인 로마군단의 시스템과 같다. 사람은 맞대응할 수 있는데 시스템은 상대의 맞대응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프로야구도 말 잘하는 감독을 선임했다가 망한 사례가 많다. 야구에 대해 해박할수록 진짜 본질인 확률에 대해서는 잘 모르더라. 프로야구 해설자를 감독으로 뽑았다가 망한 예도 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관객이 알아듣는다는 말이고 관객이 안다면 드러난 것이고 그것은 먼저 기초를 놓고 다음 기둥을 세우고 마지막에 지붕을 올리는 수순에서의 기세를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기세는 기초단계, 기둥단계, 대들보단계, 지붕단계까지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다가 마지막 인테리어 단계에 와서 갑자기 힘을 내기 때문이다. 기승전결로 간다. 기에서 승과 전을 거치며 전혀 반응이 없다가 막판 결에서 갑자기 터진다.
그런 식으로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 진짜다. 진짜는 하나씩 쌓아서 100에 도달해야 효과가 있다. 미끼를 써서 적을 유인하고 본대를 투입하여 전면을 차단하고 따로 빼놓은 예비대를 투입하여 배후를 치는 전술은 막판에 갑자기 효과가 나타난다. 그것은 막판에 드러나므로 미리 알 수 없다. 관객에게 설명할 수 없다. 설명하지 않으니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오로지 확률이다. 안 먹힐 수도 있다. 그러나 다양한 카드가 있으므로 게임이 진행될수록 확률은 조금씩 상승하는 게 보통이다. |
"사람을 믿지 말고 확률을 믿어야 한다. 정치개혁이라도 그렇다. 사람을 상대해서는 안 된다. 맞대응 때문이다."
- http://gujoron.com/xe/1132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