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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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932 vote 0 2019.06.21 (17:58:12)

      
    세상은 불연속이다


   세상은 연속이 아니라 불연속이다. 볼츠만과 칸토어와 뇌터는 공통적으로 불연속성을 말하고 있다. 지식인은 거기서 어떤 위화감을 느낀다. 시공간의 연속성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수동기어와 무단기어의 차이다. 무단기어는 매끄럽게 변속된다. 연속적이기 때문이다. 수동기어는 덜컹거린다. 기어비 사이의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분자든 원자든 입자는 필연적으로 불연속적인 간극을 만든다. 중간에 뚝뚝 끊어진다. 곤란해졌다. 메꾸어야 할 틈새가 발견된 것이다. 여기에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근본적인 대립의 지점이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그리고 화를 낸다. 타자성의 문제이다. 우리는 다 한 가족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말한다. 아닌데? 너는 너고 나는 난데?


    이런 때 인간은 분노한다. 단락이 일어나는 지점을 메꾸려 든다. 우리는 세계시민이요 사해동포요 인류는 모두 한식구라고 말하는 순간에 초를 치는 자가 있다. 너는 잘난 백인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분위기는 깨지고 만다. 흑인은 흑인의 지도자가 필요하지. 피부색을 초월해서 한 형제라고 말하면서 흑인을 백인 밑에 집어넣지. 


    간디가 모든 인도인이여 단결하라고 외치는데 암베드카르가 말한다. 그 인도인에 불가촉천민도 포함되니? 이렇게 되면 곤란해진다. 갑분싸다. 무뇌진보가 영웅의 등장을 싫어하고 반노를 외치며 카이사르를 죽이고 문재인을 배반하고 이재명을 공격하는 이유는 역사의 계단식 진보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 때문이다. 암베드카르를 배척한다.


    엘리트들은 연속성을 옹호하고 불연속성을 반대한다. 간디와 암베드카르 사이의 덜컹거림이 괴롭기 때문이다. 세상이 연속성에 지배된다면 간디와 암베드카르의 불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피아노의 건반처럼 세상은 띄엄띄엄 떨어져 등을 돌리고 있다. 계급이 다른 간디와 암베드카르의 진정한 화해는 절대 불가능하다. 현실을 받아들이자.


    비행기라면 입자다. 활주로와 연속되지 않고 덜커덩거린다. 소프트랜딩은 쉽지 않다. 피해갈 수 없는 장벽이다. 그들은 비행기는 활주로가 없어야 해. 마땅치 않아. 하고 소리친다. 왜냐하면 불편하니까. 그런 단절의 지점을 그들은 두려워하는 것이다. 문제는 화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느 한쪽은 굴복해야 한다. 역사는 암베드카르 편이다. 


    우주는 불연속이다. 원래 그렇다. 세상은 피아노 건반처럼 띄엄띄엄 있다. 나팔소리처럼 연속되지 않고 북소리처럼 중간에 마디마디 끊어진다. 톱니라면 이가 맞지 않는다. 요소요소에 구리스를 칠해야 한다. 베어링이 마모되지 않게 관절부분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자투리를 잘 처리해야 한다. 구리스는 불연속의 단락을 연속으로 무마한다. 


    역사는 매끄럽게 점진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불화를 일으키는 입자는 제거되어야 한다. 그래서 칸토어가 죽고 볼츠만이 죽고 뇌터가 외면된 것이다. 보존이 있다면 불연속이다. 곤란해진다. 삐꺽거리면서 문제를 일으킬 것이 틀림없다. 장애물이다. 역사는 계단식으로 진보한다. 비스듬한 사선이 아니다. 역사에 비스듬한 점진적 진보는 없다. 


    반드시 정동과 반동이 교대한다. 역사는 혁명적 진보라야 한다. 그래서 영웅이 필요하다. 징기스칸이나 나폴레옹과 같은 몇몇 인물이 역사의 간선과 지선을 만들었다. 그런데 점진적이라야 귀족의 입지가 있다. 엘리트의 공간이 있다. 자기들이 중간에서 베어링에 칠해진 구리스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엘리트냐 대중이냐, 친노인가 비노인가.


    영웅이냐 반영웅이냐, 카이사르냐 원로원이냐. 이는 역사의 본질적인 대립이며 보통은 영웅이 죽는 비극으로 끝난다. 그락쿠스 형제는 죽었다. 카이사르도 죽었다. 노무현도 죽었다. 세상을 연속으로 이해하는 자들이 노무현을 죽였다. 불연속은 절대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분위기가 푸앙카레를 화나게 하고 아인슈타인을 착각하게 했다.


    많은 천재 수학자를 미쳐버리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은둔생활을 하도록 한 것이다. 어리석은 연속에의 집착이다. 구조론은 불연속이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도 다섯 번 끊어진다. 사건의 마디마디 끊어진다. 그리고 대칭을 만든다. 대칭의 복원력이 반동을 만든다. 진보가 옳기 때문이 아니라 건수 때문이다. 로마라면 토지개혁이 입자가 된다. 


    개혁이 생산성을 높일 때 건수가 된다. 한국이라면 국민교육, 가문폐지, 의료, 전쟁, 인터넷, 복지 등이 역사의 입자를 이루는 건수가 된다. 그 때문에 정동과 반동이 있다. 밸런스의 복원력에 따라 입자에 붙잡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입자를 찾을 때까지 역사는 머뭇거린다. 엘리트의 세계는 연속적이다. 그들은 같은 학교 출신에 같은 계급이다. 


    같은 패거리를 이룬다. 그들 사이에 틈새는 없다. 그들은 죽처럼 걸쭉하게 존재한다. 저어주면 잘도 섞인다. 밀가루처럼 좋은 반죽이 된다. 그런데 노무현과 같은 영웅들이 건더기가 되어 홀로 우뚝하고 그들 사이의 매끄러운 연결을 방해한다. 툭 불거져 나온다. 그래서 화가 난다. 불화의 기운이 감지된다. 그래서 영웅은 비극적으로 죽는다.


    귀족들은 어디를 가도 대접받는다. 엘리트들은 주변과 매끄러운 관계를 이룬다. 그들이 입자를 만나면 껄끄러움을 느낀다. 그들에게 노무현은 그리고 카이사르는 껄끄러운 존재다. 그래서 화가 난다. 어디를 가도 존경받던 푸앙카레에게 그리고 아인슈타인에게 칸토어라는, 볼츠만이라는, 통계역학이라는, 양자역학이라는 입자는 껄끄러웠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0]kilian

2019.06.22 (04:18:42)

"역사는 계단식으로 진보한다. 비스듬한 사선이 아니다. 역사에 비스듬한 점진적 진보는 없다. "

http://gujoron.com/xe/1099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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