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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287 vote 1 2017.04.13 (17:27:48)

    

    창의란 무엇인가?


    숫자 0은 타원형이다. 왜 타원형일까? 종이를 아끼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종이를 아끼지? 종이값이 비싼가? 종이를 아끼지 않으면 ◯이 된다. 숫자를 10으로 쓰지 않고 1◯으로 쓰면 창의가 된다. 창의한다는 것은 간단히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라. 다들 돈을 아끼고 있다. 자연의 존재는 살아남은 것이다. 돈을 아껴서 살아남았다.


    소는 다리가 넷이다. 왜 넷일까? 다리가 열 개면 낭비잖아. 최적화되어 있다. 다들 허리띠를 바짝 조여매고 있다. 창의는 간단하다. 그 허리띠 풀면 된다. 질서는 최적화다. 그 질서 깨뜨려야 한다. 거기에는 당연히 돈이 든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예술은 한가한 자들의 취미생활이었다. 배가 불러야 창의가 된다. 마음이 여유로워야 창의가 되는 것이다.


    돈에 쫓기고 생활에 쫓기면 창의할 수 없다. 우리가 창의하지 못하는 것은 역시 쫓기며 살기 때문이다. 숫자 ‘10’을 1◍으로 쓰거나 1◎으로 쓰거나 1◊으로 쓰는건 창의가 아니다. 창의는 복제하는게 아니고 복제의 자궁을 만드는 것이다. 창의는 베끼는게 아니고 베껴먹는 원본을 만드는 것이다. 창의는 돈싸움이다. 베끼면 절약한다. 이미 망해져 있다.


    돈 없는 사람이 베끼는 것이며 이미 돈싸움에서 망해 있다. 남들이 베껴가게 하는 원본을 장악하는 것이 창의다. 돈은 조폐공사에서 찍어낸다. 찍어낸 돈은 창의가 아니고 그 원본이 창의다. 창의는 근본에 도전하는 것이다. 게시판에서 논의가 분분한 것은 잡다한 것을 창의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가짜 창의는 쉽고 제대로 된 창의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직감은 창의가 아니다. 직감은 찍어낸 돈이다. 그 직감을 깨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깨달음은 깨는 거다. 주변의 눈치를 보고 직감으로 판단하는 것이 창의처럼 보여질 수 있지만 그게 장난하는 거다. 진지하게 가자. 진짜 창의는 수학이다. 잔꾀로 빠져나가지 말고 물리적으로 이겨야 한다. 상대가 10을 베팅하면 100으로 받아야 한다. 11로 덤비지 말자.


    회화가 아카데미즘에서 인상주의로 넘어간 것은 아이디어의 차이가 아니다. 시장을 두고 한 판 승부가 벌어진 것이다. 인상주의와 같은 시도는 1만 년 전부터 있었다. 단 그림이 안팔렸을 뿐이다. 고전적인 그림이 시장에서 팔린 것이다. 누가 그림을 사느냐다. 귀족이 그림을 산다. 그림으로 신분을 증명한다. 인상주의는 그림의 수요자가 바뀐 것이다.


    재용이가 그림을 산다면 어떤 것을 사겠는가? 스타트업을 성공시켜 돈을 번 IT 부자가 그림을 산다면 어떤 것을 사겠는가? 신분을 두고 대결이 벌어지는 것이다. 창의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봉건귀족을 때려죽이는 것이다. 물리적 충돌이다. 이 그림이 좋다는게 아니다. 그건 그림이 아니다 하고 그림에 대한 정의를 바꾸는 것이다. 뽕짝은 음악 아니다.


    이발소그림은 그림 아니다. 이건 전쟁이다. 진보와 보수도 마찬가지다. 생각의 차이가 아니다. 전쟁이다. 우리는 창의를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창의는 같은 것이다. 창의는 하나 안에 둘을 집어넣는 것이다. 그것이 소실점이다.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13인의 인물은 흩어져 있다. 그것을 가운데 자리한 예수 하나로 모아주어야 한다.


    za.jpg


    다른 13에서 같은 1을 도출해야만 한다. 그것이 소실점이다.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안 들어가면? 깨버려야 한다. 옷을 벗기면 한 명을 더 집어넣을 수 있다. 량을 깨면 운동을 넣을 수 있다. 운동을 멈추면 힘을 넣을 수 있다. 힘을 잠그면 입자를 넣을 수 있다. 입자를 가두면 질을 넣을 수 있다. 질은 결합이다. 꽁꽁 묶어야 한다. 창의는 계 전체를 통제한다.


    지휘관은 말을 안 듣는 병사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 백범은 자신을 이인이라고 주장했다. 소매자락에 일본도를 숨기고 있는 왜인을 단번에 처단하려면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곳에 모아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어버려야 한다. 방해하지 않도록 말이다. 백범이 주막집 주인장을 불러서 자신은 하룻밤에 7백리를 가야하니 밥 일곱상을 가져오게 했다.


    모든 사람이 눈이 휘둥그래져서 쳐다보았다. 그들의 마음에 의심을 불러 일으켜 일제히 동작을 멈추게 만들었다. 바로 그때 단 한 번의 발길질로 왜인을 쓰러뜨리니 주막에 머무르던 많은 인물은 백범 하나를 막지 못했다. 백범이 그들의 마음을 묶어버렸기 때문이다. 창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기존의 질서를 때려부숴야 한다.


    직감이 그 때려부숴야 할 기존 질서다. 문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직감을 쓰면서도 자신이 직감을 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눈치 빠른 개가 주인의 의도를 알아채듯이 인간은 무수히 직감을 쓴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주변의 분위기에 맞춘다. 필자와 같이 둔감한 사람이 분위기를 맞추지 못하고 어색하게 삐져 나가서 창의하게 되는 것이다.


    분위기를 잘 읽고 주변에 잘 맞춰 줄수록 창의하지 못한다. 직감이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벌이 육각형 집을 지으니까 나도 육각형집을 짓자. 이런건 개소리고 창의가 그런 식으로는 안 된다. 자연의 건축은 지구의 중력을 쓰는데 중력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복제가 안 된다. 처음에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다가 거기서 하나씩 질서를 빼나가야 한다.


    어느 순간에 창의가 된다.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고자 하나 모방이 안 된다. 그게 잘 안 되는 이유를 깨달으면 창의가 된다. 모방을 해서 쉽게 모방이 되면 창의가 안 된다. 처음에는 사실주의 곧 리얼리즘으로 가서 자연을 그대로 복제하다가 거기서 어떤 질서를 깨달으면 재질서화를 시도할 수 있다. 그냥 복제만 반복하고 있으면 당연히 창의는 실패다.


    대개 리얼리즘으로 시작하지만 거기서 그치면 안 된다. 어떤 핵심을 남기고 군더더기를 제거해야 한다. 그럴 때 근원의 질서를 포착하게 되며 그것은 보나마나 에너지의 결이다. 거기서 위대한 창의가 시작된다. 대부분 불평불만이 많고 시비를 잘 거는 사람이 창의에 성공한다. 그들은 직감이 발달하지 않았다. 눈치가 없어 마찰한다. 그들이 창의를 한다.


    일본 만화가 발달한 것은 오타쿠들이 하루종일 집에 처박혀 있으니 불평불만이 많아서 자꾸 시비를 걸어서 그런 것이다. 그들이 집구석에 박혀 있는 것은 직감이 발달하지 못해 사회와 마찰하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도 어색하다. 노래방에 가면 노래를 못 불러서 어색한다. 탬버린을 쳐도 박자가 맞지 않다. 게임을 하면 반드시 진다. 고스톱 치면 잃는다.


    운동을 해도 늘 진다. 게다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필자가 그렇다. 직감이 퇴화해서 분위기 못 맞추고 주변과 마찰하는 것이다. 직감은 창의의 반대말로 보면 된다. 그리고 우리는 보이지 않게 무수히 직감을 쓴다. 눈치를 보고 분위기를 읽고 주제파악을 하고 흐름을 탄다. 일베충들처럼 무리지어 가세한다. 질서에 순응하므로 질서를 창조하지 못한다.


    창의는 직감, 본능, 예단, 선험, 경험, 눈치, 분위기, 눈썰미, 데이타, 교리, 논리, 지식, 시스템 등 인간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일체의 것을 타파해가는 것이다. 직감은 흔히 편견, 선입견이라고 한다. 직감을 고정관념 혹은 주관이라고도 한다. 또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주관을 타파하고, 편견을 타파하고, 선입견을 타파하고, 지레짐작을 타파해야 한다.


    형식논리와 도그마를 타파하고 본능도 버리고 생각도 버리고 일체의 먼저 와서 자리깔고 있는 것들을 버리고 의식의 표백이라는 절차를 밟은 다음에야 창의에 소용되는 마음의 백지가 펼쳐지는 법이다. 점쟁이는 척 보면 고객이 왜 왔는지 알고 베테랑 형사는 척 보면 치정사건임을 안다. 그래서 창의가 안 되는 것이다. 척 보고 알아채지는 말아야 한다.


    개들이 사람 눈치를 잘 본다. 공을 던지면 개는 공을 물어오지만 고양이나 늑대나 여우나 소나 말은 공을 물어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개는 창의력이 발달한 동물일까? 개는 직감으로 사람이 공을 원한다는 사실을 안다. 타파해야 한다. 본능적으로 알면 안 된다. 어릴 때 나는 한국인들이 한국팀을 응원하는게 신기했다. 왜들 저러지? 왜 한국을 편들어?


    한국과 헤어지기로 했다. 나는 눈치가 없었던 거다. 직감이 퇴화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마찰한 것이다. 한국이와 친해지기가 어렵다. 그래서 친구가 없었다. 창의는 직감을 버리는데서 시작된다.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마이너스 시키고 그 버리겠다는 생각까지 버려야 한다. 무거운 깡통은 동조화 되지 않는다. 자연의 진리와 쉽게 공명하지 않는다.


    주파수가 맞아지지 않는다. 내 안에 들어찬 모든 것을 비워서 완전히 제로가 되었을 때 커다란 공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창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비판하면서 때려부수는 전투과정에서 얻어진다. 스스로 꾀를 내어 이기는 법은 거의 없다. 적진을 망원경으로 살피다가 적의 헛점을 포착하고 두들겨 패는 과정에 의미있는 창의가 생겨난다.


    나폴레옹이 천재라서 창의적인 전술을 구사한게 아니고 망원경으로 딱 보니까 적진의 헛점이 관찰된 거다. 적이 진지를 갖추기 전에 보병의 행군속도를 두 배로 올려서 병사들이 녹초가 되도록 몰아붙여서 적의 본진을 그대로 들이친다. 이는 초딩도 할 수 있는 전술이지만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창의는 부단한 관찰과 부단한 타파과정에 얻어진다.


    무조건 때려부수는게 창의다. 김기덕 감독이 무슨 직감이 발달해서 창의한 것은 아니다. 그는 가난해서 영화라고는 본 적이 없다.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창의할 수 있었다. 남들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논할 때 이해력이 떨어지는 김기덕은 영화를 눈으로 읽었다. 남들이 영화내용을 볼 때 그는 영화의 형식을 봤다. 창의는 그런 식으로 일어난다.



20170108_234810.jpg


    구태여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람들이 질의 창의가 아닌 량의 창의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창의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창의에서 멀어집니다. 조급하게 소설을 쓰려고 하면 결국 남의 글을 베끼게 됩니다. 제대로 창의하려고 하면 자본주의 시스템과 싸우게 됩니다. 창의 좀 한다는 김기덕과 홍상수가 돈을 못 버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창의는 너죽고 나죽고 사생결단 전쟁입니다. 물론 잡스는 그 전쟁에서 이겼지요. 반면 상업작가들은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게 창의한게 아니지요.


[레벨:4]암흑이

2017.04.13 (19:47:35)

흠.. 저도 본능적으로 박수칠 때 가만있고
윗 사람에게 인사도 안 하고
선생님이 맞다고 하는 거에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라고 토 달고
매일 체육복 입고 댕기고
횡단보도에서 사람들이 신호동 눈치를 보면
어차피 사람 없으면 지나갈 거면서 하고 그냥 건너갑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7.04.14 (00:58:57)

뭔 소리 하시는건지....?니체의 말을 빌려 얘기해 드립니다. 창의는 새로운 귀족을 만드는 것. 츄리닝 입고 무단행단 한다고 창의가 되겠는지...세력을 교체하는 거요. 창의는...세상이 바뀌는 것.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당장 현재에서도 마찬가지임.

[레벨:4]암흑이

2017.04.14 (13:30:37)

유튜버 신태일은 새로운 귀족 아닌가요? 초등학생들에게 대통령인데 10대 20대들에게 말이죠.

반유교적 행동을 하는데 지지층과 세력이 상당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7.04.14 (14:22:47)

신태일(유투버) 검색해보니, 누가 참 구구절절 빠짐없이 잘도 일대기를 정리해 놓았네요.
살펴보니, 좀 극단적인 성격이 있는듯. 본인 말대로라면 유년의 영향인듯. 인기를 끄는 방식은 주로 어그로 끌기 이네요. 초등학생들이 이런거 좋아하겠지요. 아직 세상을 보는 시선이 확장이 일어나는 때는 아니니까... 중고딩때도 어느정도는 마찬가지고...요즘은 어느정도 대학생들도 확장의 시기가 늦은듯...머~~~저도 이십대 초반 까지를 보면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악마와 천사를 왔다갔다 하는 자기와의 싸움은 감정절제에서 보자면, 유년기나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흔한 증상 같다는 생각도 들구요.
자기에너지를 좀더 시간이 흘러서 어느 방향으로 폭발시켜 내느냐에 따라 귀족(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세력)의 일가에 포함되는 방향성을 제대로 찾아내었는가? 하는 것이 결정되겠지요.
환경과 자기인성 그리고 세상과의 낙차의 폭이 크니, 그 에너지는 분명히 쌓여 있겠지요. 유투브 활용은 세상과 손발을 맘춰가는 과정에 있으나, 유투브활용으로 만들어진 인기 그 자체가 자기확장은 아닌 것이니까, 자기걸 갖게되는 것은 좀더 지켜봐야 할듯해요. 제 생각에는.
또한, 인간은 존엄을 원하므로 - 욕망은 상승하므로 자신의 욕망의 크기가 존엄한 방향을 결정하겠지요. 욕망의 레벨을 높일수 있는지가 관건이겠지요.
[레벨:4]암흑이

2017.04.14 (17:51:04)

신태일이 돈 때문에 그리고 인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하는지는 몰라도
의도적이든 아니든 유교라는 분위기를 엿 먹이는 대단한 사람인데
사회에서는 누구든 바보 같은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걸 신태일이 대신해주고 있고 다들 그걸 보고 있으니
사회가 외면으로는 유교를 원해도
내면으론 반유교를 원한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인물 같네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유교라는 분위기에 아부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깨트리고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서 창의적이라고 봅니다.
심지어 시비도 잘 걸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7.04.14 (18:11:27)

양이 질이되진 않죠...
머~~~놀때는 잼나게 놀면 되는거죠~~~
[레벨:4]암흑이

2017.04.14 (18:54:21)

량이 유리한 창업을 하는 거 아닌가요?

누가 연필을 만들었으니 색연필이나 크레용 같은 연필을 모방한 100가지 용품을 만드는 게 량의 창의 아닌가요?

신태일은 불리한 창업을 했고 누굴 모방하지도 않았는데

질이 아닌 거 같아도 량도 아닌 거 같은데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7.04.14 (02:02:50)

창의하는 방법


김기덕이 영화를 잘 만든다는데, 이 인간 영화만 봐서는, 어떻게 잘 만들 수 있게 됐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인터뷰를 들어보니,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가 프랑스어라 이해가 안 됐었다고 한다.

> 말귀를 못 알아먹으니깐 그림만 봤겠네. 


여전히 알 수 없다. 김기덕이 프랑스에서 노숙을 했다는데, 노숙한다고 영화 잘 만든다는게 납득이 됨?

그러므로 가보면 뭔가 알 수 있겠지. 가봐, 김기덕이 프랑스 굴다리에서 봤을 법한 게 이런 거구나 한다. 


1. 빈집 > 노숙자가 빈집 찾아다녔을 테니 

2. 아멘 > 외국에서 말을 한달간 한 마디도 안 해봐 

3. 악어 > 세느강 굴다리

4. 피에타 > 공장출신

5. 나쁜남자, 수취인불명 > 군대출신

6. 실제상황 > 프랑스의 광장


정리하면, 김기덕은 자기가 잘 아는 걸 소재로 삼고 있음. 

근데, 보통 김기덕처럼 어렵게 커 온 사람들은 대체로 명박이처럼 돈 벌려고 혈안이 되는데,

이 인간은 미쳐서 예술을 하겠다는 거지. 이럴 때 대박이 나는거. 

돈 많은 놈이 예술하면 퇴폐주의. 그런 놈들 작품은 딱 봐도 할 일 없는 놈이 뽕빤 느낌이 남. 


생각해보슈. 거지 주제에 돈들어 가는 예술을 하는게 가능함? 

근데 그걸 해내면 예술가. 아니, 대가.

결국 예술이라는건, 혹은 창의라는 건, 양립할 수 없는 모순 사이에서 자구책을 찾아내는거. 

두개의 상호모순이 어떻게 양립이 가능하냐고? 그걸 알면 깨달음. 


깨달음은 차원상승이니깐. 현 차원에서 모순한다면 이전 차원에서는 뭔가를 공유하는거.

소매치기 남자와 재벌가 여자가 결혼을 하게 만들어야 해. 이 어려운 난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머리 좀 굴려봐.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가 그렇게 만들어진거. 둘이 공유했던건 뭘까?

인간이 돈으로 모순이라면, 돈 이전에 공유할 만한게 뭘까를 고민했던 거야, 그 작가는. 


아무튼, 창의 하기 전에, 그걸 할 수 있는 상태로 자신의 머리통을 도구화 하는게 중요하다는거. 

배부른 부자는 창의할 필요가 없잖음?

창의를 하는 방법을 찾기 전에, 자신이 창의할 필요가 있는지를 생각해봐야함. 

당신이 창의가 안 되는건, 창의할 필요가 없는 인간이기 때문임.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7.04.14 (03:08:40)

당신이 머리가 나쁜 이유를 모르겠다고?
사실은 머리가 좋을 필요가 없는 거야.
모든건 나라는 인간을 특정 환경에 던지고 괴롭히는데서 시작되는거.

살만한데 미쳤다고 머리를 쓰냐고. 약빤 소리 하는 인간들은 약빨 소리 하는 환경에 있는 거라고. 아직
믿는 구석이 있는거지. 헛소리를 지껄여도 대갈통을 때려주지 않으니깐, 아직은 쳐박힐 집이라도 있으니깐. 그 지랄인거야.

머리를 쓰는 인간들은 약빨 환경에서도 제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몰린거야. 주위를 둘러봐도 날 도와줄 수 있는 인간이 하나도 없을 때, 철저히 고립됐을 때, 죽으나 사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거 같을 때.

바로 그때 창의적으로 자기 손을 자르고 고립을 탈출하는 게 영화 127시간이지. 그렇게 극한으로 내몰려야, 겨우 머리를 쓰는게 인간이라고. 집단 속에 있으면 남에게 기대려고 하니깐, 머리 안 쓰고.

이런건 아무나 하는거 아니니깐, 못 하겠으면 그냥 평범하게 살아. 누구도 당신을 알아보지 못할 테니깐. 저 군중 속으로 들어가면 되는거. 그게 훨씬 쉬운길이야.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7.04.17 (06: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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